Vol.11 2020. 06.
[1020세대 독자를 찾아서]
김상미(너머북스‧너머학교 대표)
2020. 06.
요즘 누가 책을 읽어?
‘비대면’, ‘거리 두기’라는 생소했던 단어를 누구나 알게 되고 ‘화상 회의’와 ‘인강’이 ‘뉴노멀’한 것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과 컴퓨터, 인터넷, 동영상과 함께 자란 고등학생 딸은 온라인 수업 자체는 힘들지 않은데 얼굴이 작아 보이는 각도로 노트북 카메라를 조정하는 게 힘들다고 한다. 매년 우리 출판사의 책을 읽고 ‘저자와의 만남’을 진행해 온 어느 학교는 1학기에 하기로 했던 저자 강의를 동영상으로 할 수 있는지 문의를 해 왔다. 아마 다른 학교들도 이렇게 요청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우리 사회와 온라인에 익숙해진 세대들에게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하긴 어린이, 청소년 책을 만들어 온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책이 좋다거나 책 읽기가 너무 재미있다는 어린이, 청소년을 만난 적은 거의 손가락 안에 든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많은데 책을 왜 보냐” 혹은 독서는 못난 애들만 하는 거라는 조롱도 십 대 문화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십 대 대부분을 ‘입시’에 보내라는 강요, “책 읽을 시간에 공부나 해.”라는 희한한 말이 불쑥불쑥 들리는 게 우리 사회다.
그렇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한동안 문자 문명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식과 사유, 재미와 감동을 담는 가장 오래되었지만 가장 고유한 매체인 책을 읽으며 사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의 질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책 읽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즐거움을 알고 있고, 또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만들고, 또 책을 읽게 하기 위해 애쓴다. 의지가 굳은 선생님들과 사서 선생님들이 독서교육을 해야 한다고 애쓴 덕분에 ‘한 학기 한 책 읽기’가 공교육의 교육과정이 되기도 했다. 너머학교 출판사가 책을 꾸준히 낼 수 있는 것도 이런 노력들 덕분이기도 하다. 학교 독서교육 중 가장 널리 하고 있는 저자 특강에 관한 경험을 이야기하려 한다.
『관찰한다는 것』 표지
지평선학교에서 온 전화
고병권 선생님과 『생각한다는 것』을 비롯한 너머학교 열린교실(~한다는 것) 시리즈를 기획하고 책을 몇 권 내었을 때 ‘강의 유람단’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벌써 12년 전, 전국 어디든 부르는 곳에 가서 강의를 하며 ‘청소년을 위한 새로운 인문학 교실’을 열자는 것이었다.
학교 도서관 운영을 열심히 하시는 한 선생님과 알게 되어 이런 구상을 말씀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셨다. 이미 몇몇 출판사들이 하고 있는 일이라며, 저자들을 학생들이 직접 만나면 책 읽기의 경험이 달라지더라고 했다. 학생들이 책을 쓴 저자를 만나는 건 유명(?)한 사람을 본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도 자기가 만지고 읽은 책의 내용이 작가를 통해 살아 있는 표정과 목소리, 촉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으로 남는다. 이런 경험이 더 풍부한 책 읽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강의료는 출판사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신생 출판사라 그렇게 할 형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강의를 듣는 건 학생들인데 비용은 학교에서 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당시는 저자 특강을 위한 학교 예산이 없는 시절이었다. 출판사들이 강연을 기획하는 건 물론 강의료, 포스터 등 홍보물 제작, 때로는 진행도 한다고 했다. ‘강의 유람단’ 구상은 무산되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 몇 달 후, 김제에 있는 지평선학교 엄희재 선생님이 전화를 하셨다. 엄희재 선생님은 ‘책읽는시민사회모임’에서 활동하시다가 ‘인문학, 도서관교육 특화 대안학교’인 지평선학교에 부임하게 됐고, 그때, 열린교실 시리즈 저자들의 연속 강연을 제안하신 것이었다. 열린교실 시리즈가 철학, 과학, 역사, 독서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룬 시리즈이고 책도 얇아서 학생들에게 부담이 적은 편이라 연속 강의에 잘 맞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렇게 2년, 4학기 동안 토요일 오전(가끔 오후)에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열린교실’이 도서관에서 열렸다. 두 번째로 열린 『탐구한다는 것』의 저자 남창훈 선생님 강의에는 출판사 사람들과 같이 가서 듣고 인사도 나누었는데, 출판사를 개업하면서 꿈꾸던 일 하나가 실현되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선생님처럼 과학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우선은 과학을 좋아하고, 공부도 좀 열심히 해야 합니다.”라고 하시니 뒤에서 듣던 어머니가 열성적으로 박수를 치시던 게 기억에 남았다.
그 뒤부터 김해도서관에서, 해남고등학교, 인덕원고등학교, 전주 영생고등학교에서 4회 내지 8회의 연속 강의 요청이 오기 시작했다. 이때가 저자 강연에 필요한 예산이 생긴 시점이 아닐까 싶다. 대개는 지방에 있어 하루를 꼬박 강의에 써야 했지만 너머학교 열린교실의 저자 선생님들은 마다하지 않고 가 주셨다. 정말로 감사했다. 특히 ‘땅 끝’ 해남고는 내려가는 데 하루, 강의 끝나고 학교 관사에서 하루 자고 다음 날 귀가하는 이틀간의 일정이었는데, 사실 이틀로도 먼 거리다.
인문학 교실을 진행하신 어떤 선생님과 퇴근 지하철에서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인문학 교실을 학부모들이 무척 좋아해서 매년 열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뭐든 새로운 걸 하자고 하면 교감이나 교사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뉜단다. “일 벌이기 좋아하는 선생님이 이 일도 하세요.”라며 또 다른 일을 떠맡게 되는 경우가 많고, 그렇게 승진하고 싶냐고 비아냥거리는 분위기라는 것이었다. 학교가 바뀌기 어려운 공간이구나 하는 걸 실감한 순간이었다.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 책 사는 도서관용 예산으로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사서 수서 할 예산이 줄었다고 한 일도 기억난다. 하지만, 이것도 몇 해 전부터 도서관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연속 강의 외에도 2회, 혹은 하루에 네 강의를 동시에 하는 경우, 1박 2일의 독서캠프 등 다양한 형식의 강의 요청이 전국에서 온다. 그래서 11월부터 2월 정도까지 나는 임시 ‘강좌 매니저’를 자처한다. 학교에서 일정과 책, 저자까지 다 짜서 제안해 주시는 분도 있고, 몇 월 몇째 주 수요일, 연 6회, 책은 알아서 짜 달라는 경우도 있고, 정말 다양하다. 일정이 잘 맞아서 착착 짜지는 경우도 있지만, 저자 선생님들께 두세 번 전화해서 바꿔 달라고 해야 할 때도 많다. 올해처럼 특수한 상황이 아니어도 일정을 정한 뒤에 바꾸는 학교는 많았다. 모 학교 선생님은 11월에 전화해서 4회 강연을 다 확정했는데, 다음 해 2월에 한 번, 4월 강의 직전에 한 번, 가을에 또 한 번 총 3번 일정을 바꾸어 달라고 했었다. 내년에 또 강의 요청이 오면 “저자분들이 그날은 안 됩니다.”라고 해 버릴까 싶다. 그래도 막상 연락 오면 고맙다고 하겠지.
독서 교실 감상문을 책으로 펴낸 선생님
독서 교실(혹은 인문학 교실 등 저자와의 만남)에 최고의 열정을 기울이시는 선생님은 단연 효암고등학교 김순남 선생님이다. 거리의 철학자로 존경받는 채현국 선생님이 이사장으로 계셨던 효암고. 김순남 선생님에게서 3년 전 연락이 왔었다. 독서 교실을 8회 동안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직접 일정을 다 짜서 제안해 주셨다.) 강연 한 달 전에 미리 책을 읽고 토론을 했고, 2주 전에는 질문을 뽑아서 저자들에게 보내며 강의 당일에는 기차역까지 마중도 나오셨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건 독서 교실 8회차가 끝난 뒤 아이들이 쓴 감상문을 모아 400쪽 가까운 책을 직접 편집하고 인쇄해서 아이들에게 나눠 주신 것이었다. 두 해째 보내주시는 책을, 가끔 심란할 때면 펼쳐 본다. 소박한 글이지만 진심이 느껴져서 참 좋다.
강의가 끝나기 불과 10분 전만 해도 나는 ‘관찰한다고 사랑하나?’, ‘애초에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사랑이 뭐지?’라는 질문들이 잘 정리되지 않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왜 딱따구리를 사랑하시는 걸까? 그것만을 바라보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텐데, 그럼에도 끝까지 붙들고 있으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이미 시작한 일에 대해 미련이 있어 계속하는 것일까? 보통 저 정도면 질릴 만도 한데 이건 특별한 경우라서 이런 건가? 사랑을 가득 담고 오신 김성호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사랑에 대한 내 오랜 의문점들에 마침표를 찍어주셨다.
“하나뿐인 나 자신을 내가 포기할 수 없어서.”
지금도 이 말 한마디가 마음속에 진하게 남는다. 선생님께 새를 관찰한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일과 같다는 것이다. - 김수정 학생이 쓴 『관찰한다는 것』 감상문 중에서
김성호 선생님께서는 여러 사진들 또한 보여 주셨는데, 그중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원앙들이 나무를 떠나 뛰어내리는 사진들이다. 선생님께서는 우리를 나무에서 뛰어내리는 원앙들에 비유하시며, 우리들은 아직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들이라는 의미의 격려를 보내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내 진로에 대한 걱정을 많이 떨쳐 낼 수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은 3년이 아닌, 남은 수많은 세월 전부이며, 내 가슴에서 빛나는 존재는 언제든지 나무에서 뛰어내릴 수 있다는 말이 내게 전해져 왔다.
김성호 선생님께서 강연 막바지에 하신 말씀 중에 관찰은 결국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있었다. 이 책은 나에게 나 자신을 자세히 관찰하며, 나 스스로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섬의 주체가 됨으로써,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난 앞으로 이 책을 교훈 삼아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을 찾은, 또 다른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손문성 학생이 쓴 『관찰한다는 것』 감상문 중에서
남원에서 온 귀한 손님들
경험을 나누고 하던 대로 책을 만들고
올해 1월 17일, 귀한 손님이 출판사를 찾아 왔다. 남원시 고등학교 독서동아리 연합에서 활동하는 고1, 고2 학생들 20명과 인솔 선생님 두 분이었다. 몇 해 동안 12월에 우리 출판사 책으로 저자 강연을 하셨던 이현주 선생님이 겨울방학 동아리 체험활동으로 서울에 있는 미술관을 가려 하는데 출판사 방문을 하고 싶다는 연락을 주셨다.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작은 사무실이라 약간 망설였지만, 자기가 읽은 책을 누가, 어떤 공간에서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싶어 한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롱패딩을 입은 모든 학생들이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사무실 거실을 꽉 채워 앉았다. 교정지와 컬러 프린트 등을 들어 보여주며 정말 ‘아날로그식’으로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나칠 정도로 조용히 듣던 친구들이 관심을 보인 건 ‘책을 써서 얼마나 버는가’였다. 미술 전공하는 친구들은 일러스트를 어떻게 그리는지, 화료는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대답을 해줬더니 “많은데” 하며 웃기도 했다. 견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차에 타고서야 말문이 터졌다며, 재미있어 했다고 선생님이 전해 주셨다.
아이들과 책이 친해지는 경험, 책을 살아 있는 것으로 체험하는 ‘독서교육’은 이런 선생님들과 저자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너머학교도 작은 힘이나마 계속 보태고 싶다. ‘한 학기 동안 한 권’을 읽게 되면서 독서지도안이나 활동지, 각종 부교재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규모 있는 출판사의 책들 위주로 선정한다는 소리가 들리고, 어떤 출판사는 아예 교사들을 위한 자료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대부분 교사들이 그 사이트가 출판사에서 하는 줄을 모른다는 소리도 들린다. 씁쓸하다. 하지만 출판계가 양극화된 건 한두 해 일은 아니고, 그 어떤 제도라도 모두 좋게만 작용하지는 않기 마련이다. 책을 잘 만들기 위해 집중하자고 다짐해 본다. 좀 감상적이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 한 사람의 가슴에 닿는 책을 만들 수도 있을 테니까. 김상미(너머북스‧너머학교 대표) 대학을 졸업한 뒤 어린이, 청소년 책을 만들고 있다. 좋은 역사 서가를 만드는 너머북스와 함께 책으로 만드는 교실을 꿈꾸는 너머학교 출판사에서 12년째 책을 만들고 있다. 『생각한다는 것』, 『탐구한다는 것』, 『차별한다는 것』(너머학교 열린교실), 『삼국유사 끊어진 하늘길과 계란맨의 비밀』 등 고전교실, 『나는 곰팡이다』, 『시민 과학자의 원소 교실(가제, 근간)』 과학교실 시리즈와 『고무 따라 역사 여행』, 『증기기관차, 대륙을 달리다』 등 역사그림책과 『아이라서 어른이라서』 등 너머학교 생각그림책 시리즈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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