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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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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번역가의 현실과 직업윤리

 

 

 

윤영삼(번역가)

 

2019. 11.


 

번역이라는 작업을 직접 해본 사람이라면 번역일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 잘 알 것이다. 단순히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정신적인 노력과 인내를 쏟아 부어야 한다(번역을 하여 생계를 꾸려 나가는 사람이라면 대개 하루 10시간씩은 번역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매번 새로운 텍스트를 만날 때마다 번역가는 무수한 문제와 마주한다. 엄청난 학습과 조사를 해야 하고 다른 텍스트들도 수시로 참조해야 한다. 그러한 탐구작업은 실제 번역문을 만들어내는 과정 못지않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에 비해 번역결과물에 주어지는 보상은 많지 않다. 자신이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상이 너무 적다고 느끼는 번역가들이 많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번역가들은 각자 자신만의 전략을 짤 것이다. 안정적으로 일거리를 받기 위해 편집자들과 친교를 강화하기도 하고, 몸값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학위를 따거나 직접 저술을 펴내기도 하고, 또는 번역그룹을 만들어 협상력을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번역가에 대한 처우가 나쁜 것은 우리만의 사정이 아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번역가들을 인터뷰하여 쓴 쓰지 유미의 『번역과 번역가들』을 읽어보면 이들이 대부분 동의하는 말이, 번역만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양한 형태의 번역 중에서도 출판번역은 특히 보상이 넉넉지 않다. 그것은 출판번역에 보수를 적게 주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번역-기술번역, 문서번역, 영상번역 등-에 비해서 출판번역이 더 오래 걸리고 더 어렵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게 느껴지는 것이다(물론 실제로 적기도 하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번역을 하고 있고, 번역으로 먹고 산다. 보상도 많지 않고 사회적 지위도 그다지 높지 않은 일을 계속해 나가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그 일을 하는 것일까? 오래 번역을 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번역이라는 작업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희열, 그리고 우리 사회와 문화에 번역이 기여하는 역할과 거기서 얻는 보람 때문이다.

 

출판시장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상황에서 출판사에게만 번역료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정부에서 번역가들에게 기본소득을 지원해주는 것이 훨씬 실현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거대한 '번역행위 생태계' 속에서 그 중 한 역할을 담당하는 번역가가-더욱이 번역가 한 개인이-두서없이 떠올린 아이디어를 여기서 나열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그보다 나는 번역가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번역가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해보고자 한다. 세상에는 매우 다양한 번역가가 존재하며, 번역을 하는 방식도 다양하고, 번역수준도 다양하다. 번역가가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정당함의 기준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그 정당함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번역에 대한 보상이 낮다고 주장하려면, 그만한 이유를 번역가 스스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번역학자 Douglas Robinson이 쓴 『Becoming a Translator』라는 책을 읽다가 흥미로운 힌트를 얻었다. '번역가는 누구인가?'라는 문제에 답을 하기 위해 Anthony Pym은 번역가를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한다. 번역을 의뢰하고 번역결과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외부시선'과 번역을 직접 하는 번역가들의 '내부시선'이다. 이 두 시선은 번역가의 현실과 직업윤리에 대해 흥미로운 이분법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 두 시선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결국 번역이라는 하나의 작업의 양면일 뿐이며, 긴밀히 상호작용한다. 그리고 이 두 시선을 번역가 스스로 이해하고 자신의 직업세계를 개선해 나갈 때 번역가는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단순히 출판사나 정부와 같은 다른 주체의 시혜적 보상을 수동적으로 바라는 자리에 머물기보다는, 주체적으로 공동체를 조직하고 직업윤리와 사회적 역할을 스스로 각성해나감으로써 스스로 사회적 지위를 개선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번역가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우선 외적 지식(external knowledge)이란 번역사용자, 즉 번역료를 지불하는 사람들이 번역에 대하여 아는 지식이다. 이들은 번역결과물- 텍스트-로 모든 것을 평가한다. 또한 번역평가기준은 철저하게 원문(source text)을 중심으로 삼는다. 물론 번역가 개인의 전문성도 눈여겨본다. 번역가로서 믿을 만한 사람인지, 다시 말해 '번역가다운' 사람인지 평가한다. 이들에 게 중요한 요소는 또한 속도와 가격이다. 자신이 원하는 기한 내에 번역을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적절한 가격-대개 낮을수록 좋다-에 작업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반해 내적 지식(internal knowledge)이란 번역가들이 번역에 대하여 아는 지식이다. 번역과정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내용이 모두 포함된다. 텍스트의 난이도, 정보를 검색하는 방법, 문서편집/수정방법처럼 번역작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은 물론, 번역계약과정에서 필요한 지식들-계약서 쓰는 법, 편집자와 관계 맺는 법, 번역료 독촉하는 법 등-들을 모두 포괄한다. 또한 프리랜서 번역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것도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내적지식은 크게 다음 세 가지 요인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세 요인은 번역가들이 번역을 계속해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1. 직업적 자긍심

 

번역가라는 직업에 대한 긍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번역가들은 대개 프리랜서로 혼자 일을 하기 때문에 이러한 직업의식이나 사회적 주체로서 역할을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자신의 경험을 다른 번역가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회도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보니 번역이라는 직업에 보람을 느끼기보다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 번역을 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돈이 목적이 되는 순간 번역가는 자신의 임무를 져버리고 번역은 '날림'이 될 확률이 크다.

 

번역가들의 직업의식을 자극하고 사회적 주체로서 인식을 북돋기 위해서는 번역가들의 '직업모임'에 참여해야 한다. 번역가 세미나, 컨퍼런스 등 다양한 형태의 공식적인 모임이 활성화되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가까운 번역가들끼리 모여서 저녁 먹는 친목모임으로는 직업의식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이러한 공식적이고 권위 있는 논의과정을 통해 번역가들이 처한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나올 것이며, 자연스럽게 번역가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높아질 것이다.

 

 

 

2. 소득

 

어쨌든 번역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만 사람들은 번역을 계속할 것이고, 그래야 기량도 축적되고 번역수준이 올라갈 것이다. 만족할 만한 수준에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번역가로서 품위를 해치지 않는 수준의 소득을 얻기 위해 번역가는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품질을 높이면서도 번역속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원문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축적할수록 번역속도는 빨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 소득도 높아질 것이다. 또한 자신에게 맞는 작업방식을 찾아 최상의 생산성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IT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개인의 명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번역가의 직업적 지위가 올라가면 전반적인 소득도 올라갈 것이다.

 

 

 

3. 즐거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번역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묘한 언어의 차이를 감지할 때, 절묘한 번역문을 만들어냈을 때 느끼는 희열이 얼마나 짜릿한지 경험해본 사람은 번역을 포기하기 어렵다. 그런 이유 때문에 보수도 낮고 지루한 번역을 많은 번역가들이 계속해 나가는 것이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 결과물도 엉망이 되기 마련이다. 번역의 수준을 높이려면, 더 나아가 번역가로서 자질과 명성을 높이려면, 번역이 주는 즐거움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단순히 의뢰 받는 것만 번역을 하는 데 머물지 말고 번역가로서 자신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에 도전할 수 있다면 더 행복한 번역가로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결론

 

번역가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은 정부가, 또는 어떤 돈 많은 갑부가 내일부터 번역료를 50퍼센트씩 더 주기로 한다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보상이 낮다고,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라준다고, 또 자신이 하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이야기는 가끔 나가는 번역가들 모임에서도 들을 수 있지만,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편집자들 모임에서도 들을 수 있고, 그 옆에 있는 컴퓨터AS기사들의 모임에서도 들을 수 있다.

 

번역이 우리 사회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고 소중한 일이라면, 또 번역가 스스로 그 가치를 다른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일 줄 안다면, 번역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달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 처우도 개선될 것이다. 막연히 세상이 달라지기만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실현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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