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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  20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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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가게를 담아내는 큰 출판사 〈브로드컬리〉에 관한 짧은 보고서

 

 

 

최지훈(〈브로드컬리〉 photographer)

 

2019. 01.


 

어떤 공간에 관한 개인적 경험이 그 지역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로 남는 경우가 많다. 마음 편한 카페, 소박한 밥집, 작고 예쁜 서점, 맛있는 베이커리까지. 소비의 취향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가게에서의 경험은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고, 최근의 동향은 시내 중심가에서 골목 상권으로, 대형 프랜차이즈에서 로컬숍으로 그 트랜드가 옮겨가는 추세다. 이에 따라 출판을 비롯한 많은 미디어에서 연일 로컬샵을 조명하고 다양한 이미지와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넘쳐나는 정보의 대부분이 맛집 소개, 이른바 ‘힙’스러운 것들에 대한 팬시한 접근으로 주를 이루다 보니 정작 로컬숍들이 직면한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어느 매체도 제대로 다루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진 1 _ <브로드컬리> 인터뷰 사진


사진 1 _ 〈브로드컬리〉 인터뷰 사진

 

여기 로컬숍들의 현실을 세세하게 담아낸 잡지가 하나 있다. 잡지 〈브로드컬리(Broadcally)〉는 로컬숍 연구 잡지로 독립적인 관점에서 자영업 공간을 연구하는 인터뷰지다. 3년 동안 로컬 베이커리, 동네 서점, 제주도로 이주한 자영업자들의 가게를 테마로 한 책을 네 권 냈고, 현재는 퇴사자들의 가게를 주제로 다음 호를 발행 준비 중이다. 전직 증권사 기업 분석가에서 현재 잡지 편집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조퇴계 씨를 만나 〈브로드컬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브로드컬리〉는 어떻게 시작했나요?

 

저는 증권사에서 사업을 잘하고 있는 회사를 분석해서 적당한 자금을 조달하고 투자하는 일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업을 하는 회사의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 정보를 제공하면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그리고 금전적으로도 보상이 있는 일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거기서 재미와 보람을 느꼈죠. 그 당시 제가 회사를 분석하는 일 못지않게 좋아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매력 있는 로컬숍들을 찾아가는 것이었어요. 가게 사장님들의 과거 직업이나 가게를 운영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는 것들 혹은 덜 신경 쓰는 것들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이 즐거웠고, 그곳에 친구들을 데려가 제가 알아낸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합정동(당시 퇴계 씨[브로드컬리 편집자]의 집) 주변 단골 카페 두세 군데가 연달아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던 공간들이 사라지는 게 정말 안타까웠어요. 동시에 큰 회사를 분석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만 작은 가게를 분석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결국 퇴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작은 가게에 관한 보고서 형식의 무언가를 만들어서 책의 형태로 돈을 받고 팔 수 있다면 어떨까? 소비자들에게는 좋은 정보를 제공하고 운영자들에게는 가게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이런 고민과 아이디어에서 잡지 형태의 보고서 〈브로드컬리〉가 시작되었습니다.

 

〈브로드컬리〉는 어떻게 취재하나요?

 

본격적인 취재는 인터뷰 후보의 목록을 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최근 호인 제주도 편을 예로 들자면, 다른 매체들의 경우엔 이미 제주도에서 유명한 가게들을 제주에 정통한 분들을 통해 추천 받겠죠. 아마도 인터뷰 콘셉트에 제일 잘 맞는 곳부터 톱다운 방식으로 섭외할 거라고 예상됩니다. 하지만 〈브로드컬리〉의 경우, 책의 주제인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 질문에 대해 좀 더 의미 있는 답을 줄 수 있는 인터뷰이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여타의 매체들과 같은 방식을 취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인지도와 상관없이 일단 찾아가야 하고, 또 어디를 가야 한다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무조건 많이 가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주도 편의 경우 초기 인터뷰 후보 목록만 200군데가 넘었고 방문한 건 120군데 정도였지만 실제로 인터뷰에 들어간 가게는 일곱 군데였습니다. 한 번 방문한 것으로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열 배수 이상의 가게를 두세 번씩 방문했죠. 물리적인 에너지가 많이 소요되는 방식이라 새로 취재를 시작할 때마다 선뜻 첫발이 내딛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시작하면 정말 힘들다는 걸 몸이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가게를 선정하는 기준이 따로 있나요?

 

종종 받는 질문인데 사실상 대답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추상적으로라도 답하자면 ‘가게가 수단인 공간보다 그 자체로 목적인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마다 성격이 다른 공간을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가게에 찾아갈 때마다 그 공간에 맞는 또 다른 기준이 새롭게 생겨나니까요. 책을 네 권이 아니라 사십 권, 사백 권 냈으면 뭔가 관통하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으로선 그 기준에 대해 말하기가 모호합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입니다. 제게는 공간 자체가 목적인 곳이 재미있어 보이고 취재하고 싶어집니다. 결국 취재했을 때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기도 하고요.

 

창간호 때 〈토미스 베이커리〉라는 빵집을 섭외하고 싶었습니다. 빵집의 주인장이 프랜차이즈와 로컬 베이커리의 갈등이 대두되던 시기에 알게 된 한국어에 능통한 일본인 셰프였기 때문입니다. 일본 베이커리 업계의 사정도 궁금했고요. 하지만 주인장은 “이미 인터뷰는 많이 했다. 특별히 필요하지 않다. 괜찮다”면서 거듭 거절했어요. 저는 사장님의 그런 태도가 좋았습니다. (물론 작은 잡지이긴 합니다만) 홍보를 통해 제품을 하나라도 더 팔자는 입장이 아니라 그런 거 없이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어요. 유사한 경우로 제주도 카페 〈그곳〉도 기억납니다. 매체의 소개로 찾아오는 외지 사람들보다 단골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장님이었습니다. SNS에서 제주도에서 가볼 만한 곳으로 선정되어도 굳이 연락해서 게시 글을 내려달라고 하신다더라고요. 기사를 보고 찾아오는 외지 사람들 때문에 단골들이 불편을 겪을까봐서요. 외지인의 돈이든 단골의 돈이든 다 똑같은 돈인데 그런 연유로 인터뷰를 거절한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가게를 그저 수단인 공간으로 삼지 않는다는 게 느껴졌어요.

 

평균 몇 가지 정도의 질문을 하나요?

 

호마다 다르지만 100~150가지 정도 준비해 갑니다. 그리고 질문 한 번으로 끝내기보다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난 다음 논리적으로 충돌하는 답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 지점에 대해 한 번 더 물으려고 합니다. 논리적인 답을 했더라도 그 뒤에 숨어 있는 맥락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나누게 되는 질문과 답은 200가지에서 많으면 300가지까지 됩니다. 시간으로 따지면 기본 다섯 시간 이상이고 가장 길게 했던 곳은 3호 서점 편에 나왔던 〈사적인 서점〉으로 두 번에 나눠 열 시간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 2 _ <브로드컬리> 인터뷰 사진


사진 2 _ 〈브로드컬리〉 인터뷰 사진

 

서점은 2호와 3호로 나눠서 진행했는데, 이유가 있나요?

 

서점에 관한 이슈를 다뤘을 당시 인터넷 서점과 소규모 서점의 갈등이 한창 부각되었고 소규모 서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시기여서 언론의 조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심도 있게 서점에 관한 내용을 다뤄보자 싶어 첫 번째 책을 기획하고 취재하는 과정에서 저도 인지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편견을 발견했습니다. ‘오로지 책으로만 승부하는 서점이 진정한 서점이 아닌가. 커피나 술, 심리 상담, 디자인 외주 등 책 이외의 다른 서비스를 병행하는 서점들은 진지하게 서점으로서의 생존을 고민하는 공간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들이었습니다. 저희 거래처 서점들 중에도 분명히 커피나 술 판매를 병행하는 서점들이 있었고, 운영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렇게 서점을 유지하는 데에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취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서점들을 배제했더라고요. 2호를 다시 읽으면서 책 이외의 서비스를 병행하는 서점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정보들이 인지되었고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오해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빠르게 기획을 해서 3호를 만들었던 겁니다.

 

책을 만들고 나서 생각의 변화가 있나요?

 

있죠. 제 삶에 만족의 기준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있는가’였습니다. 이전에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책을 만들고 난 후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다양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일은 사람이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가’, ‘가족이나 연인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그리고 예전에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취미 생활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는가’ 등의 여부가 저마다의 삶의 만족에 다양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삶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기준이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되었달까요.

 

3년 동안 책을 만들면서 취재한 가게들 가운데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가게들이 생겨났습니다. 건물주의 횡포 같은 타의적인 이유도 있었고, 출산이나 이사 같은 자의적인 경우도 있었죠. 예전 같았으면 소비자로서 좋아하던 가게가 사라져서 마냥 안타깝기만 했을 텐데, 지금은 그 가게의 내밀한 사정을 알게 된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도 하고 감탄을 하기도 하고 그 결정에 응원을 보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감정이 다양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언젠가는 문을 닫은 가게들의 이야기만 모아서 책을 내보려고도 생각합니다. 실제로 가게를 닫는 과정에서 생기는 절차나 감정들이 공유된다면 이제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여러모로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가게를 하는 것이 행복의 나라로 가는 게 아닌 것처럼 가게를 닫는 것 또한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것 역시 아니므로 가게를 닫은 이후에 어떤 삶이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는 이슈가 존재한다면 나름대로 굉장히 의미 있는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잡지를 만드는 조퇴계 씨는 (네 번째 책의 주제인) 원하는 삶의 방식을 얻었나요?

 

일단은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의 성과는 낸 것 같아요. 여기서 어느 정도의 성과라 함은 제 기준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먹고살 수 있는가의 문제였는데 풍족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유지가 되고는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서 만족을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금에 이르니 더 잘하고 싶고, 원했던 삶의 방식을 통해서 더 큰 목표를 새롭게 세우고 싶어집니다. 그게 저를 긴장하게 하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삶이라는 게 하나를 메운다고 해서 온전해지지는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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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편한 카페, 소박한 밥집, 작고 예쁜 서점, 맛있는 베이커리까지.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로컬숍들은 다양한 기호 아래 저마다 의미 있는 형용사를 달고 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콘셉트와 이야기를 지닌 가게들이 거리마다 골목마다 숨어 있다. 그런데 이를 소개하고 보여주는 방식은 어쩐지 너무 쉽고 빠르고 일률적이기만 하다. 〈브로드컬리〉는 좀 더 냉정하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로컬숍들을 기록하는 데 애를 쓰고 있었다. 물론 대상을 심도 있게 다루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려 했다는 점이 이 작은 잡지가 3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입소문을 내고 있는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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