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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  20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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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출판 : 『인류의 기원』 두 나라에서 출간하기까지

 

 

 

이상희(미국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대학교 인류학 교수)

 

2019. 09.


 

‘잡글이나 쓰는 교수…’
30년 전 학창 시절에 신문과 잡지에 기고하던 교수에게 하던 평가였다. 많은 사람이 읽고 싶어 하거나 읽어낼 수 있는 글을 쓰는 교수는 학자가 아니었다. 교양서적을 쓰는 교수는 학자로서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모름지기 학자란 고독한 연구 작업 끝에 풍부한 자료를 얻어 고급스러운 언어로 물샐틈없이 탄탄한 논리로 무장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가 쓴 글은 같은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땄거나, 따려고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읽어낼 수 있어야 했다. 이삭과 쭉정이를 구별해 낼 수 있는,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를 구분해 낼 수 있는 글이어야 했다.

 

미국으로 유학 와서 교수로 자리를 잡은 후까지도 이 생각이 옳았음을 계속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테뉴어(Tenure, 정년보장) 심사에서 실적으로 인정받는 책은 대학출판사에서 낸 책이어야 했다. 20권이 팔리면 많이 팔린다고 했다. 팔린 20권 중에 막상 읽히는 책은 10권 남짓이라는 자조적인 멘트가 오갔다. 테뉴어를 따기 전 조교수가 자주 듣는 조언은 “교과서는 쓰지 마라. 교양서적은 쓰지 마라.”였다. 교과서나 교양서적은 테뉴어 심사에서 연구 성과로 쳐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감점될 수도 있었다. 학자로서 실력을 의심받기 때문이었다. 블로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프레임 안에서 훈련받고 자리 잡은 나 역시 그런 류의 글을 쓸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글쓰기에 대해 심한 열등감이 있었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글짓기는 제일 하기 싫은 숙제였다. 박사 논문을 쓰는 생지옥의 시간을 견디면서 나는 내가 과연 학자의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여하튼 논문은 쓸 수 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 내가 어찌어찌하여 《과학 동아》에 인류의 진화에 관한 글을 연재하게 되었다. 동료 학자들에게서 얕보일까 봐 알리지도 않았고 교수 평가 보고서에 넣지도 않았다.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5)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5)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내 책을 읽고 좋아한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인류의 진화라는 생소한 주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내 글을 읽고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과학 동아》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서 책으로 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5)은 나오자마자 많은 관심을 받았다. 신문과 인터넷에 꾸준히 올라오는 서평들을 찾아 읽으면서 뜻하지 않게 보람도 느꼈다.

 

영문판을 내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회의적이었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영어권에서 이런 주제의 책은 수없이 많이 출판되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문판을 낼 출판사를 섭외하기 위해서 『인류의 기원』에 실렸던 글 세 꼭지를 영어로 번역하고 책과 저자에 대한 소개문을 썼다. 영국의 노턴출판사(W. W. Norton)에게 책을 낼 용의가 있는지 떠보았다. 노턴은 이전에 내게 교과서를 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었던 출판사다. 물론 그때는 제안을 받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먼저 그쪽에 접근해 인류의 진화에 관한 교양서적을 낼 생각이 있는지 타진하는 이메일을 보냈고, 노턴 쪽에서 호의적인 답장을 보내왔다. 2016년 봄에 노턴과 계약을 하면서 번역자 문제가 제기되었다. 나는 번역은 하지 않겠노라고 딱 잘라 말했다. 세 꼭지로 충분했다. 교양서적이 낮은 평가를 받는다면 번역서는 그보다도 더 낮은 평가를 받았다.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것이 뻔한데, 성과로서 인정도 받지 못한다면 당연히 손도 대기 싫었다. 노턴 쪽에서는 책을 영문으로 옮길 만한 번역가를 찾아달라고 했다. 게다가 영문 원고가 완성되면 내가 감수해줄 것을 요구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 무렵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 한강의 소설을 영어로 옮긴 번역자는 한글 공부를 7년을 했다고 했다. 한글 소설을 영어로 옮기는 것도 그 정도로 힘든데 생소한 분야의 한글을 읽고 영어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인류의 진화에 대한 글을 한글로 읽고 영문으로 번역할 만한 사람을 어디에서 찾는다는 말인가!

 

게다가 어찌어찌 그런 사람을 구한다고 해도 번역된 원고를 감수해야 한다니, 그 역시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남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쓴 글을 다른 사람이 영어로 번역해 놓은 것을 내가 다시 감수한다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일 것이 뻔했다. 앓느니 죽는 것이 낫다는 말이 이럴 때 들어맞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나는 내가 번역하겠다고 나섰다.

 

번역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예상했던 어려움도 있었다. 『인류의 기원』 꼭지에는 호기심을 끌기기 위한 에피소드로 시작한 경우가 있다. 동요 ‘어머니의 은혜’라든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농자천하지대본 같은 한국적인 에피소드는 순전히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글이었는데 영어로 옮기면 주석을 달아야 했다. 하지만 주석으로까지 읽게 할 만한 에피소드는 아니었다. 호기심을 끌기 위한 에피소드에 주석까지 달면 독자들은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오히려 외면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과감하게 뺐다.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도 있었다. 『인류의 기원』 한글판은 2012-2013년 《과학 동아》에 연재했던 글들이었다. 2016년이 되면서 이미 최신 정보가 아닌 경우가 있었다.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그렇게 반년에 걸친 번역 작업을 마치고 2016년 9월에 원고를 보냈다. 이로써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새로운 과정이 시작되었다.

 

담당 편집자와 편집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편집자는 6개월 동안 내용을 편집했다. 한국어로는 부드러운 전개였지만 영어로는 어색한 부분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몇 군데는 한국어 독자에게는 필요한 설명이지만 영어권 독자에게는 불필요하므로 뺄 것을 제안했다. 반대로 설명을 붙여야 하는 곳도 있었다. 나도 몰랐던 상습적으로 오용되는 영어 표현을 교정받기도 했다. 예상보다 힘들었지만 매우 도움이 되는 과정이었다. 2017년 봄, 드디어 편집이 끝났다.

 

이로써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새로운 과정이 시작되었다. 교열 편집자와 교열 작업을 할 차례였다. 교열 편집자는 오탈자 교정을 중심으로 편집했지만, 가끔 문법이나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내 책은 점점 번역판이 아니게 되었다. 깔끔하고 매끄러운 책으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Close Encounters with Humankind』


『Close Encounters with Humankind』

 

교열 편집이 한창 진행되던 2017년 여름에 책 제목과 표지 안이 나왔다. 출판사 편집부에서 책 제목으로 제안한 ‘Close Encounters with Mankind(인류와 가까운 만남)’는 마음에 들었지만, ‘mankind’라는 용어가 마음에 걸렸다. mankind는 남성이 아닌, 인간이라는 뜻의 보통명사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남성이 아닌 인간이라는 보통명사로 쓰인다고 하면서도, 막상 실제 내용은 남성이라는 비판은 역사학에서 첨예하게 제기되어왔다. 학계에서는 점점 퇴출되고 있는 말이었지만, 일반 교양서적으로 내는 책에는 mankind라는 표현이 독자 눈높이에 맞을 수도 있었다. 며칠 고민하다가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Mankind'를 'Humankind'로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의외로 출판사에서 선선히 수락했다.

 

내친 김에 사실 마음속에 걸리던 문제를 하나 더 제기했다. 2015년 9월 처음으로 출간된 『인류의 기원』에는 고인류를 묘사하는 그림 대부분이 남성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여성이 등장하는 그림은 몇 개 없었다. 빨래를 하거나 아이를 안고 있는 그림이 전부였다. 당시에는 이왕 책이 그렇게 나왔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류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인데 여자, 남자를 굳이 가를 필요가 없다고 애써 자신을 설득했다. 게다가 여자의 모습이 어땠는지 알 수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Mankind' 대신 'Humankind'로 써 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진 김에 이때다 싶었다. 앞서 말한 그림들도 모두 빼 달라고 요구했다. 노턴 측에서는 그림들의 느낌이 좋은데 왜 빼고 싶으냐고 물어왔다. 나는 남성 편향적인 그림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노턴 측에서는 여성이 등장하는 그림을 더 그려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사이언스북스 측에서도 흔쾌히 그림을 다시 그리겠다는 답과 함께 한국어판 10쇄에는 젠더 감수성을 반영한 새로운 그림을 넣겠다고 알려왔다.

 

막상 그림을 새롭게 그리는 작업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여성이 그려진 고인류 그림은 흔치 않아서, 일러스트레이터가 참조할 만한 자료가 많지 않았다. 여성이 나오는 몇 안 되는 그림은 동굴 속에서 아이를 안고 있거나 불 옆에서 고기를 굽거나 옷을 만드는 등 살림하는 장면 위주였다. 결국, 그림을 다시 그리기보다는 차라리 『인류의 기원』에 나와 있던 기존 그림 중 몇 개를 여성으로 바꾸기로 했다. 석기를 만들고 사냥을 하고 땅을 가는 모습을 여자로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 완성된 그림은 한 장 한 장 모두 마음에 들었다. 나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글만큼 그림도 중요했고, 내가 신경 쓰고 정성을 들여야 할 부분이었다.

 

『인류의 기원』 다음에 쓴 책 『이상희 선생님이 들려주는 인류 이야기』(우리학교, 2018)에서는 시작부터 의견을 분명히 표했다. 그림에 대한 의견을 낼 권리를 받았다. 삽화 경험은 내게 다음 연구 주제의 영감을 주었다. 선사시대 여성이 대중의 상상 속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알아보게 된 것이다. 대학원 학생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본 결과 선사시대 사람 중 남성 수가 여성보다 두 배 이상 많게 그려져 있었다.

 

수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하는 일 역시 달랐다. 남성은 동물을 사냥하거나 벽화를 그리거나 돌을 깨서 도구를 만드는 장면에 등장했다. 여성은 아이와 함께 있는 장면이 많았다. 이런 조사 결과를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해석해 논문집에다 실었다. 그리고 지도자급에 있는 여성 리더십에 대한 연구도 논문으로 발표했다.

 

‘인류의 기원’ 프로젝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전문 지식을 대중을 위해 풀어쓴다는 입장에서 시작했다. 연구자로서, 학자로서 나의 경력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대중을 위한 저술 활동은 내게 새로운 연구 주제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인류의 기원과 함께 진화사 속의 여성,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여성, 그리고 여성으로서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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