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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1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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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책을 연결하는 사람들]
북튜버, 축의 전환
- 독서 기록에서 좋음의 전달로

 

 

 

공백(북 크리에이터)

 

2021. 5.


 

자세를 가다듬고 휴대폰 카메라의 녹화 버튼을 누른다. 만면에 생기 있는 웃음을 띠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공백입니다.” 목소리가 좋지 않다. 잠긴 목이 아직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헛기침 몇 번으로 목청을 가다듬은 후 다시 한 번 말한다. “안녕하세요. 북튜버 공백입니다.” 본격적으로 촬영이 시작되면 미리 준비해둔 스크립트를 단락 단위로 외워서 전달한다. 기억력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에 촬영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꾸만 틀리게 말하고, 재촬영하기를 반복한다. 녹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기억력이 원망스러워지지만, 재미있게도 나는 바로 이 나쁜 기억력 덕분에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

 

‘책은 열심히 읽었는데 나중에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는 독서인들의 고민을 종종 듣게 된다. 나는 대답한다. ‘독서 후에 반드시 아웃풋의 시간을 가지세요’. 읽은 내용을 요리조리 재구성하여 어떤 형식으로든 밖으로 꺼내놓으라는 뜻이다. 스스로의 말에 좀처럼 확신을 가지기 어려워하는 나지만 이 대답을 할 때만큼은 단호해진다. 이것은 일종의 간증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야 책의 재미에 빠져들었다. 손에 잡히는 책들을 아무렇게나 호로록호로록 읽어나간 지 몇 년쯤 지났을까. 슬슬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그간 읽은 책들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밤새워 재미있게 읽은 책들도, 특별하게 여겼던 책들도 자꾸만 휘발되었다. 일기를 안 쓰면 바로 어제 일도 기억나지 않듯, 독서 생활에도 기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나는 다짜고짜 독서기록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나는 기억력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끈기도 없었다! 꾸준히 독서 기록을 남기겠다는 다짐은 금방 시들해졌다.

 

낙담한 나는 패인을 분석했다. 혼자 쓰고, 가끔 들춰보는 독서기록장은 내게 견고한 틀이 되어주지 못했다. 지구력이 없고 게으른 내게는 약간의 강제성이 필요했다. 나는 나를 조금 더 엄하게 다루기로 했다. 스스로를 옥죌 도구로 유튜브를 선택했다. 독서 기록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로 남기자! 미루거나 관두면 부끄럽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큰소리도 떵떵 쳐놓자! 2018년 10월에 개설한 채널 〈공백의 책단장〉은 사실 책을 부지런히 읽고 효과적으로 기록하기 위한 배수의 진이었던 것이다.

 

유튜브는 모두에게 개방된 독서기록장이었다(만인에게 공개되어 있었으나 한동안 아무도 봐주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생책들, 베스트셀러들, 주목할 만한 책들, 최근 읽은 책들을 모아 열심히 촬영을 이어나갔다. 영상으로 재탄생한 책들은 어김없이 내 기억 속에 더 많은 잔여물을, 더 오래도록 남겼다. 기록과 강제성의 승리였다!

 

게다가 운 좋게도 구독자가 꾸준히 증가했다. 나를 위한 기록으로 시작된 유튜브가 점차 다른 방향으로, 즉 타인에게로 흘러가고 있었다. 재미있었다. 유튜버로서의 시간이 누적될수록, 기록의 존재 이유는 ‘나’라는 점에서 ‘시청자’라는 점으로 이동했다. 지금의 나는 ‘책을 잘 기억하고 싶다’가 아닌 ‘어떤 책의 장점을 타인에게 잘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에 방점을 찍는다.

 

여기서 잠깐 멈춰야겠다. 이 글은 북튜버로서의 내 역사를 늘어놓기 위해 쓰인 글은 아니다. 여기에는 ‘좋음’을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북튜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잠깐 다른 주제를 경유해보자.

 


독서모임 공백 AND READ WITH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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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는 일을 하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다. 지켜본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고, 심지어는 하지 말라는 짓을 반복해서 자신의 버릇으로 만들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내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여럿 있는데 그중 세 명의 사연을 소개한다.

 

A는 주구장창 손톱을 물어뜯는다. 피가 날 때까지. 상처가 나고, 고름이 차고, 손톱이 들리다가 결국 빠져버릴 때까지 물어뜯는다. A와 나란히 앉아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딱딱딱(손톱 뜯는 소리), 냠냠냠(손톱 먹는 소리)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고 물어보면 어렸을 때는 엄마가, 지금은 내가 사랑을 덜 줘서 그렇단다. 사실무근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하는 A는 내 남편이다.

 

B는 어린 시절부터 속눈썹을 만지는 버릇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잠들기 직전까지 자신의 속눈썹을 하염없이 만지곤 했는데, 이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면 지금쯤 B의 속눈썹은 몽땅 빠져서 한 올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B는 커가면서 속눈썹을 만지는 행동 대신 새로운 버릇을 들였다. 유난히 곱슬거리는 머리(지랄 머리라고 부른다)를 뽑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 버릇은 내게도 전염되었고, 나와 B는 나란히 앉아서 맹렬하게 지랄 머리를 뽑다가 엄마에게 혼이 나곤 했다. 이 행위는 두피의 상태를 고려해 소강과 재활성화를 반복해왔다. 나는 이 버릇을 거의 고쳤는데, B는 어떨는지 모르겠다. B는 우리 언니다.

 

마지막으로 C의 버릇은 거의 기억의 최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오래된 버릇이다. C는 잠자리에 누우면 곧장 이불 끝자락을 세모꼴로 접어 뾰족하게 만든다. 이 모서리로 손가락을 차례대로 문지른다. 열 번째 손가락을 문지르고 나면 다시 첫 번째 손가락부터 반복한다. 이불이 아닌 옷자락으로도 뾰족한 꼭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이 버릇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C의 남편은 열정적으로 손가락을 문지르는 C를 보면서 조만간 손끝이 다 닳아버릴 거라고, 종내에는 지문이 지워져버린 나머지 공항에서 특별 검문 같은 것을 받게 될 거라고 으름장을 놓곤 한다. 지문이 위태로운 인간 C. 바로 나다.

 

우리는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걸까.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고 심지어는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냥 좋아서, 편해서, 안 할 수가 없어서, 참지 못해서 하는 것뿐이다. 그 결과 버릇은 고착되었고 타인이 아무리 말려도, 스스로 그만해야겠다고 다짐해봐도 도저히 끊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을 뿐이다. 버릇이라는 게 그렇다. 쉽게 고쳐질 리 없다. 세 살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쩌면 한평생에 가까운 기나긴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위 사례들처럼 어렸을 때부터 지속된 버릇이 있는가 하면 성인이 되고 나서 뒤늦게 생긴 버릇도 있다. 내 경우에는 몇 가지 말버릇이 새로 생겼다. 스스로 말버릇을 감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북튜버가 되고 난 후였다. 영상을 편집하다 보면 녹화된 내 모습을 고스란히, 몇 번이고 돌려봐야 하는데(무척 괴롭다), 이 과정에서 내게 스며든 말버릇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목소리가 이래? 너무 이상해!’라며 놀랄 때, 나는 목소리보다는 내 말버릇에 깜짝 놀라게 된다. 내가 이 말을 이렇게 많이 쓴다고? 내가 이런 추임새를 이렇게 자주 쓴다고? 하면서.

 

북튜버인 내가 책을 소개할 때 자주 쓰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너무”
“좋았어요.”
“인상 깊었습니다.”
“권해드립니다.”
(보통 이 네 단어를 크리티컬 연속기로 사용하며, 10분 남짓한 영상에서 많게는 열 번 넘게 ‘좋다’는 말이 반복되기도 한다. 충격적이다.)

 

북튜브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어떤 책의 ‘좋음’을 구체적으로 듣길 원한다. 좋다는 말만으로는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책이 어떤 부분이, 왜, 어떤 식으로 좋은지를 듣기 위해 십여 분의 귀한 시간을 투자해 영상을 본다. 그러므로 책을 소개하는 북튜버에게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과제가 주어지는데 그것은 좋은 책을 좋다는 말로만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좋다’는 말이 입에 밴 나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좋은 걸 좋다고 말하는 게 뭐 어때서!’라며 반항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너무 좋아요’와 ‘정말 인상 깊었어요’를 남발하는 리뷰란 어떤 느낌일까. 안 봐도 무지하게 재미없는 리뷰일 것만 같다……. 그런 말만 주구장창 늘어놓다가는 북튜브 계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 분명하다.

 

이 치명적인 말버릇을 고치기 위해, 나는 요즘 일상 속에서 한 가지 훈련을 하고 있다. ‘이말 저말 다 써보기 훈련’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얼마 전 책을 읽다가 나와 같은 훈련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바로 김하나 작가다.

 

“어휘를 다양하게 활용하지 못해서 반복이 잦은 단어나 구절이 들리면 그것을 어떤 어휘로 대체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이를테면 ‘베스트셀러가 되다’라는 뜻으로 ‘인기가 많다’ ‘화제가 되다’ ‘굉장한 주목을 받다’ ‘독자들을 사로잡다’ ‘대박이 나다’ ‘핫이슈가 되다’ ‘파란을 일으키다’ ‘순위에서 내려오지 않다’ ‘팬층을 확보하다’ 등등 뉘앙스가 조금씩 다른 다양한 표현을 쓸 수 있다. 생각을 한 번쯤 해보기만 해도 다음 녹음에서는 매번 쓰는 단어가 아닌 다른 단어들을 대화에 활용해볼 수 있다.” - 김하나 『말하기를 말하기』 중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는 내가 바른길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김하나 작가는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멋진 목소리로, 가장 멋지게 말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말하기 계의 대왕 프로랄까(그냥 프로 아니고 ‘대왕’ 프로). 나는 더 열심히 훈련을 계속해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최근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는 얼마 전 백은선 시인의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읽고 이 책을 유튜브로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스크립트를 쓰다 보니 버릇대로 저 위의 단어들을 줄줄 반복하고 있었다. 너무 좋았어요. 인상 깊었어요. 권해드립니다.

 

나는 곧장 이 단어들을 제쳐두고 다른 단어를 찾기 시작했다. 매력적이다. 치명적이다. 솔직하다. 날것이다. 다채롭다. 과감하다. 공감된다.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변화무쌍하다. 멜랑꼴리하다…. 열 개의 단어를 찾아내 스크립트에 적절히 배치했다. 처음보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더 나은 대본이 된 것 같았다.

 

북튜버의 일상을 글로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독서법도, 촬영 노하우도, 편집의 지난함도 아닌 이 일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러니까, 좋음을 좋다고만 말하지 않는 것이 북튜버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북튜버 영상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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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북 크리에이터 공백이는 다채로운 말로 맛깔나게 책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승승장구하여 스타 북튜버가 되었습니다….’라고 끝맺으면 좋겠지만 이 글에는 작은 반전이 있다.

 

나는 요즘도 그놈의 ‘좋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버릇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그 말을 기어이 또 꺼내 쓰는 게 민망하기 때문에 온갖 비언어적 표현을 동반하는 구차함까지 갖추게 됐다. 예를 들면 두 손을 기도하듯 간절하게 맞잡으며 호소하거나(“제발 이 책을 읽어주세요”) 엄지를 힘차게 추켜세우는 식으로(“이 책 진짜 엄청 좋아요. 나 지금 진심임”)….

 

이 글을 빌어 불특정 다수의 구독자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어떻게든 책의 장점을 전달해보려는 제 눈물겨운 노력을 긍휼히 여겨주시길, 한두 번의 ‘좋음’ 발사는 좀 봐주시길, 제 빈곤한 설명을 찰떡같이 알아들어주시길, ‘좋아요’라는 말이 진절머리 나더라도 영상 하단에 있는 ‘좋아요’ 버튼은 꾹 눌러주시길, 그리고 제가 추천하는 책들을 꼭 한 번 펼쳐봐주시길.

공백(북 크리에이터)

책을 권하는 유튜브 채널 〈공백의 책단장〉을 운영한다.
다수의 북토크, 강연,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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