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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5  2022.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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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3.0의 시대]
문학 주류 권력의 소멸

 

 

 

이의성((주)리디 일반도서팀 제휴 파트장, 안티에그 시니어 에디터)

 

2022. 8.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이었던 2019년 당시, 펀딩 커뮤니티 플랫폼인 텀블벅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등록됐다. ‘잠들면 나타나는 비밀 상점,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라는 제목의 소설로, 저자로 보이는 ‘글쓴이 A’는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와 함께 대략의 시놉시스를 공유하며 사람들의 후원을 모집했다. 낯설면서도 신비한 콘셉트의 소설에 사람들은 반응하기 시작했고 후원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당초 목표로 했던 100만 원을 훌쩍 넘긴 1,800여 만 원으로 성황리에 후원이 종료됐다.

 

이미 베스트셀러에도 오른 바 있는, 그래서 지금은 모두가 다 아는 책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시작은 이처럼 단출했다. 텀블벅을 통해 독자들이 직접 선택한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제목과 함께 리디에서 전자책으로 선출간되며 인기몰이를 시작했고, 그해 서점가 전역을 강타하며 저자 이미예를 단숨에 스타 작가의 반열에 올렸다. 거대 출판사를 통한 출간도 아니었고, 엄청난 마케팅에 힘입은 결과 또한 아니었다. 저자의 면면 또한 흥행했던 전작이 있는 기성 작가가 아니었을뿐더러 공모전에 입상한 전력도 없는, 이제 막 집필을 시작한 신생 작가였기에 당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흥행은 기존 문학 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을 가져왔다.

 

독자가 원하는 이야기는 시대에 따라 늘 변모해왔다. 그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문법과 서사로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이에게 기회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이미 그런 시대를 우린 살고 있다.

독자가 원하는 이야기는 시대에 따라 늘 변모해왔다. 그 변화 속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문법과 서사로 독자들을 만족시키는 이에게 기회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이미 그런 시대를 우린 살고 있다. ⓒunsplash.com

 

 

물론 이와 유사한 사례가 출판계에 전무한 일은 아니었다.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도 2018년경 텀블벅과 독립출판으로부터 촉발된 도서로 서점가를 장악하다시피 하며 유례없는 흥행을 거둔 바 있다. 전작이 없던 신생 작가와 무명 출판사의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암묵적으로 통용되던 출판계 흥행 공식을 깨뜨린 것이다. 당시는 에세이라는 장르가 커다란 주축으로 자리매김한 시기이기도 했다. ‘힐링’과 ‘소확행’의 트렌드가 도서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면서 높은 문턱 없이 일상의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고 편안하게 풀어낸 에세이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이 같은 시대의 흐름과 조응한 결과로 에세이 열풍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에세이 장르와 달리 소설 부문에서 주류 밖에서 새로운 스타 작가가 등장했던 사례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가벼운 에세이와 달리 진성 독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소설 시장에서 기성 문학 출판이나 공모전을 거치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그 한계를 깨며 자신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독자들을 불러 모았다는 점에서 기존 문학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았다. 주류 문학에 부여된 정통성과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힘이야말로 신진 작가들을 불러 모으는 동인임과 동시에 독자들에게도 유효한 마케팅력이며, 이렇게 만들어진 선순환이야말로 기존의 권력을 공고히 만드는 동력이었지만, 그 정통성의 힘에 의문이 제기된 셈이다. 혹은, 그것이 유일한 길이자 통로라고 생각했던 모두의 믿음에 균열이 생겼다.

 

독자들과의 직접적인 접점을 만드는 디지털 플랫폼

 

과거 새로운 신진 소설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이 필수였다. 이를 위해 작가들은 신문사가 주최한 공모전에서 입상을 해야 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이미예 작가의 사례는 이 같은 단일한 길 외에 다른 길을 통해서도 같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10대부터 20대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독자들을 타깃으로 한 웹소설 생태계를 포함하여 텀블벅과 브릿G를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의 출현과 가세는 작가가 자신만의 작법과 영향력을 통해 독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발신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기성 문단의 선택을 받아야 독자들과의 대면이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텍스트 기반의 다양한 디지털 매체들의 출현은 기성 주류 문학에 집중된 권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기존의 주류 문학 시장을 지탱해 온 독자들의 이탈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10대와 20대 독자들이 웹소설과 웹툰을 비롯한 다양한 디지털 매체에 흡수되는 사이, 기존의 문학 주요 소비층이 30대와 40대로 이동하면서 종전의 문학 소비량이 가파르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을 소비하는 형태 또한 종전의 중·장편에서 점차 단편 위주의 분량으로 재편되면서 중량감과 파급력 또한 이전과 비견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의 변화 속에서 사실상 기성 주류 문학 작가들 역시 새로운 독자층에 유효한, 시의적절한 트렌드를 반영하지 못하면서 종전의 파급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권력은 결국 공급은 물론 주요 소비자의 수요를 통해 확보되기에, 주류 문학을 소비해 온 독자들의 감소 추세는 기성 주류 문학의 시장성을 위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SF 소설을 필두로 한 장르 문학을 소비하는 새로운 독자들의 등장

 

그럼에도 가장 근본적인 요인을 꼽는다면 기성 주류 문학을 소비하던 독자들이 점차 이탈함과 동시에 새롭게 유입된 독자들이 장르 문학에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하위 문학으로 평가절하 당했던 장르 문학이 젊은 독자들의 지지와 함께 주류 문학으로 발돋움하며 문학의 탈중앙화 흐름에 속도를 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일부 마니아들만의 문화로 일컬어지던 장르 소설은 지금 SF 소설을 필두로 독자들을 결집시키며 해마다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SF 소설 시장이 5.5배가량의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다는 통계와 함께 독자들의 연령대 또한 20대가 주류를 이룬다는 사실은 SF 소설의 성장성을 뒷받침한다. 온라인 주요 서점 통계에 따르면 SF 소설 시장의 20대 점유율은 1999년~2009년 3.5%에서 2010년~2019년 19.3%로 상승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중심 독자가 40대 초반으로 이동 중인 전체 도서 시장에서 20대가 밀집된 분야는 SF 소설을 제외하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 시장에서 20대 독자들의 존재는 앞으로의 시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척도라는 점에서 이 같은 결과는 SF 소설을 위시한 장르 문학의 시장성과 장래성에 긍정적인 지표로 볼 수 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표지

2019년 발표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김초엽 작가는 일약 스타덤에 오름과 동시에 한국형 SF 소설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블

 

 

이 같은 변화는 2019년에 출간된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감지되기 시작했다. 김초엽 작가는 이 작품으로 ‘오늘의 작가상’과 ‘젊은 작가상’을 받으며 기존 SF 소설과도 차별화된, 동시에 2030 여성 독자들에게 유효한 문법을 탄생시켰다. 출간 직후 15만 부 이상 판매되며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대중성 또한 증명해냈다. 신진 작가가 기성 문학계에서 이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또한 김초엽의 등장과 함께 정세랑과 천선란, 문목하, 심너울 등 신진 작가들의 작품 흥행은 장르 문학으로 새로운 작가들을 유입시키는 또 다른 동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젊은 독자들의 세를 통한 선순환은 앞서 언급한 대로 문학계 주류 권력의 해체와 직결된다. 20대 독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공급할 수 있는 젊은 신진 작가들의 필요가 증대됨에 따라 이를 모집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등장하고 또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종전엔 주류 문학 바깥에서 꾸준히 독자들을 모으던 출판사들이 SF 소설을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 소설을 주로 출판하며 본래의 기능과 역할에서 조금 더 확장하여 신진 작가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출판사 아작을 비롯해서 허블, 알마, 고즈넉이엔티 등은 범대중적인 이야기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이야기와 작가들을 찾고 있다. 안전가옥과 리디, 그리고 밀리의 서재 역시 그 연장선상의 플랫폼으로서 기존 출판시장에 국한된 활동을 넘어 영화와 드라마, 웹툰의 원작이 되는 소설들의 원천 IP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현 출판시장에서 다양한 주체들이 부상하고 있는 형국이다.

 

(좌) SF 전문 계간 문학 잡지 〈어션 테일즈〉를 전개하고 있는 아작은 SF 소설 독자들에게 친숙한 장르 소설 전문 출판사다. ‘RIDI X 아작 문윤성 문학 공모전’을 주최하는 등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며 독자들에게 새롭고 재기발랄한 소설을 연이어 출판하고 있다.(우) 안전가옥은 ‘모든 이야기들의 안식처’라는 슬로건으로 다수의 SF 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학을 전개하고 있다. 『칵테일, 러브, 좀비』의 조예은 작가를 비롯해서 신진 스토리 작가를 계속해서 발굴하며 새로운 이야기의 수급과 공급에 매진하고 있다.

(좌) SF 전문 계간 문학 잡지 〈어션 테일즈〉를 전개하고 있는 아작은 SF 소설 독자들에게 친숙한 장르 소설 전문 출판사다. ‘RIDI X 아작 문윤성 문학 공모전’을 주최하는 등 새로운 작가들을 발굴하며 독자들에게 새롭고 재기발랄한 소설을 연이어 출판하고 있다. ⓒ리디
(우) 안전가옥은 ‘모든 이야기들의 안식처’라는 슬로건으로 다수의 SF 소설을 비롯한 장르 문학을 전개하고 있다. 『칵테일, 러브, 좀비』의 조예은 작가를 비롯해서 신진 스토리 작가를 계속해서 발굴하며 새로운 이야기의 수급과 공급에 매진하고 있다. ⓒ안전가옥

 

 

 

독자와의 연결로부터 힘과 권력이 창출되는 시대

 

독자들이 몰리는 곳에는 작가와 독자 그리고 출판 사이의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과거 순문학이 주류를 이루던 당시에도 이와 동일한 선순환이 있었으나 그 권력이 이른바 주류 문학이라 일컬어지던 중앙으로 편입됨으로써 기회의 통제와 제약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학의 소비 주체와 형태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 독자들의 지지와 함께 SF 소설이 주류로 부상하게 되면서 기성 주류 문학에 집중된 힘이 다수의 공급자와 작가 모두에게 분배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신규 독자층의 유입과 증대, 이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출판사의 유입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가장 중요한 신진 SF 작가들의 연이은 등장이야말로 기존 주류 문학과 명확히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김보영과 듀나, 배명훈 등의 중견 작가들에 이어 김초엽과 정세랑 작가 등의 작품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심너울, 천선란 등 신인들의 첫 작품들 또한 주목을 받으며 흥행을 이어나가는 지금의 SF 문학의 모습은 주류 문학과 달리 장르 문학 시장의 건강한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달에서 온 불법체류자』 표지

(주)리디에서 전개하고 있는 SF 소설 단편선 중 심너울 작가의 『달에서 온 불법체류자』는 위지윅스튜디오를 통해 영상화가 예정되어 있다. ⓒ리디

 

 

결국 작가의 장르적 실험이 독자에게 유효하게 가닿고, 출판이 이러한 독자와 작가 사이의 접점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면서 그 파급을 연이어 일으켰을 때 비로소 한 장르의 건전한 지속 가능성이 생겨난다. 성장이 둔화된 문학 출판 시장에서 작가로, 또한 출판사로 살아남기가 힘들어졌다고는 하지만 빠르게 급변하는 시대에서 새로운 생태계는 이미 구축되고 있다. 자신만의 확고한 독자층과 그들이 원하는 새로운 이야기를 연결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등장하며 오히려 이야기의 다양성은 전보다 더 다채로워지고 있다.

 

혹자는 문학의 위기를 말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문학의 위기는 출판사나 기성 주류 문학의 문제일 뿐 독자, 혹은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며 이 또한 현시대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고 해서 독자들의 지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이후 지속적인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으리란 보장 또한 점차 사라지고 있는 지금, 일부 유명 작가들을 제외하고 이름만으로 책을 팔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주류 문학의 변방에 존재하는, 펀딩 플랫폼에서 독자들로부터 지지를 얻은 소설이 서점가를 장악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새로운 시대에서 힘과 권력이 독자들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앞으로의 기회 또한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건, 작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기대를 파악하고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이다. 그것을 성공적으로 써 내려간 작가에게 그리고 그것을 출판하여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알린 출판사에 권력은 주어진다. 다만 그것 또한 잠시 머무르는 것일 뿐 그 지속성은 독자와의 밀접한 접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어야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애당초 문학의 속성 자체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시대정신을 반영해야 하지만, 그것을 넘어 독자에게 장르적 재미까지 제공해야 하는 장르 문학의 경우 독자와의 소통이 더욱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맥락에서 힘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권력은 독자에게 이미 이양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더해 일방향을 넘어 쌍방향 간의 직접적인 소통과 시너지야말로 문학 3.0 시대를 관통하는 대표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의성

이의성 (주)리디 일반도서팀 제휴 파트장, 안티에그 시니어 에디터

평일에는 (주)리디 일반도서팀 제휴 담당자로 근무하며, 주말에는 문화 예술 커뮤니티 플랫폼 ‘안티에그’ 시니어 에디터로 출판 및 문학과 관련한 다양한 글을 발행하고 있다.
eesung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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