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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3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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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싸다 vs 비싸다]
책의 가격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김슬기(매일경제신문 문화스포츠부 기자)

 

2022. 6.


 

모두가 납득할 만한 책의 가격이 있을까. 책은 지식을 담는 그릇이다. 물리적인 성분으로는 종이와 잉크, 표지에 사용되는 일부 장식물과 가름끈 정도로만 이뤄진 책의 원가는 일정 금액 이상을 넘어서긴 힘들다. 하지만 한 권의 책에 담긴 정보를 채우기 위해서는 작가의 막대한 노력과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의 집필 시간의 투입이 필요하다. 국내 단행본 가격의 평균이 1만 6천 원(2020년 납본 기준)대임을 감안하면, 책의 정가가 지식의 가치를 다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많다. 반면 형편없는 책을 읽고 나서 책값을 못한다고 푸념하는 독자들도 많다. 책의 가격을 매기는 일은 그만큼 복합적인 가치 판단이 개입되는 측면이 있다. 책값을 둘러싼 갈등도 그래서 늘 끊이지 않는다. 책의 제작 단계에서부터 유통 과정에 이르기까지 책값을 구성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분석해 보면 책을 쓰는 이와 만드는 이, 사서 읽는 이들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쇄 이미지

 

책의 가격과 작가의 몫

 

책의 원가를 구성하는 것은 크게 제작 비용과 유통 비용으로 나눌 수 있다. 제작 비용은 책이 따끈따끈하게 인쇄되어 나와서 서점으로 넘어갈 때까지 들어가는 비용이다. 책의 원고를 작성하는 주체는 작가다. 작가의 원고를 사면서 출판사는 책의 정가의 8~10% 정도를 지불한다. 이를 인세라고 부른다. 유명세를 가진 인기 작가의 경우에는 출판사들이 원고를 받기 위해서 줄은 서곤 한다.

 

이때 경쟁이 치열해지면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선인세 경쟁이 불붙는다. 제작 비용에서 인세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는 이유다. 국내 출판시장은 판매량이 작가의 명성에 좌우되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매년 스타작가들의 책이 출간될 때마다 선인세 가격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2022년에 들어서는 소설 『파친코』를 둘러싸고 떠들썩한 이슈가 있었다. 『파친코』는 윤여정, 김민하, 이민호 배우 등이 출연하는 애플TV+의 드라마 방영으로 국내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 1위를 석권하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지난 4월 13일 오전 10시를 기점으로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 등 주요 서점에서 판매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파친코』 초판을 출간한 문학사상사와 판권 계약 연장이 불발되면서 판매가 중단된 것이다. 이후 4월 말까지 국내 10여 개의 주요 문학 출판사들이 뛰어들어 치열한 판권 경쟁을 벌였다.

 

『파친코』의 새로운 계약 조건은 판권 기간 4년, 판매량 보고 간격은 3개월로 하고, 최소 선인세 20만 달러(약 2억 5,000만 원)를 포함해 인세 10% 지급 조건으로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출판사가 판권을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출판사 인플루엔셜이 이 책의 판권을 계약했고, 국내 출판계에서는 최종 선인세가 200만 달러(약 25억 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경우 기존 책 가격(권당 1만 4,500원)으로 약 170만 부가 팔렸을 때 지급되는 비용을 책의 계약과 동시에 미리 지급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스타작가에게 과도한 베팅이 이뤄지면서 출판시장의 물을 흐린다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는 인세에 베팅을 크게 하더라도 책의 손익분기점만 넘길 수 있으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통상적으로 책의 매출액이 인세와 순수 제작비를 포함한 손익분기점을 넘는 판매 부수는 60만 부 선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히트작을 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시장에서 출판사들이 판권 경쟁에 뛰어드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기존 해외문학의 국내 선인세 기록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가 20억~30억 원대로 알려진 바 있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도 10억 원대로 알려져 있다.

 

인세가 정해지고 나면, 여기에 더해 조판비, 인쇄비, 용지비, 부속재료비라는 순수 제작비가 더해진다. 편집자의 임금과 교통・통신비, 편집비, 디자인비 등이 포함되고 책이 출간된 뒤에는 마케팅과 홍보비, 광고비가 덧붙여진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비롯해 SNS와 미디어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마케팅 비용의 씀씀이가 커지고 중요성도 더해지고 있다. 순수 제작비는 책값의 20~25% 선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출판사 마진 20~25%를 더해 서점에 책을 넘기는 가격인 도매가격이 결정된다. 여기까지 계산한 책의 원가는 출판사가 평균적으로 들이는 비용을 수치로 설명해 본 것이다. 실제로는 인쇄 부수에 따라 해당 비용도 달라진다. 대부분의 책들은 1,000~2,000부 안팎인 초판을 모두 팔아야 겨우 순수 제작비를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쇄를 거듭할수록 인건비 등이 추가로 들지 않고 용지비와 인쇄비만 들기에 마진이 늘어난다. 수십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면 출판사 마진이 50%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책의 가격과 서점의 몫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제작 원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유통 비용이 더해진다. 유통 비용을 이해하는 데 핵심은 ‘공급률’이다. 서점에 책을 넘기는 도매가격에서 정가의 비율을 나눈 것을 공급률이라고 부른다. ‘공급률(%)=서점 공급 가격÷정가×100’이라는 공식이 통용된다.

 

예를 들어 출판사가 정가 1만 원인 책을 서점에 7,000원에 공급하면 공급률은 70%로 계산된다. 도서정가제 시행으로 책의 정가가 정해진 만큼, 출판사들이 도매 공급률을 높이면 서점의 이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공급률은 영업력이 강한 대형서점의 경우 직거래를 하는 소형서점보다 낮은 편이며 장르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지만 일반적으로는 60~70% 선이다. 적은 부수를 찍는 인문서나, 베스트셀러로 직행하는 인기 수험서나 교재의 경우는 90%를 넘어서는 경우도 있다. 출판사들은 서점과의 거래를 하면서 생존 마진 65%를 지키려고 호소하기도 한다.

 

산술적으로는 65% 공급률로 책을 위탁받은 서점이 책을 팔 경우 35%의 마진이 보장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도서정가제는 15%의 할인(10% 가격 할인에 간접 할인 5%)을 허용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한 대형서점은 기본적으로 모든 책의 15% 할인을 최소한으로 보장한다. 여기에 국내에서는 무료 배송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 대형서점들은 1만 원 이상의 책을 구입할 경우 유통 비용을 모두 자사가 부담한다. 택배 비용은 박스당 3,000~4,000원대로 알려져 있다. 올해 들어 국내 최대 택배 회사가 파업을 하는 등 택배 비용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서점은 대규모의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수십만 종의 책을 당일 배송으로 보내기 위해서 보관 비용도 투자하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은 입지가 좋은 상업지에 비싼 임대료를 지불해야 하고, 서점을 운영하는 인건비도 매년 늘어난다.

 

국내 서점가에서는 ‘책 한 권을 팔아서 100원을 남기기 위해 장사를 한다’는 자조적인 농담도 있다. 교보문고와 예스24, 알라딘 등 국내 3대 대형서점의 매출액이 작년 기준 1조 8,976억 원인 데 비해, 영업이익이 약 308억 원에 그친 걸 감안하면 영업이익률이 1.6%에 달하는 서점업계의 책 한 권에 100원이 남는다는 추산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

 

무료배송 정책으로 인해서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난다. 1만 2,000원짜리 책과 1만 1,000원짜리 책 중 어느 쪽이 더 저렴할까? 당연한 질문 같지만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한다면 전혀 엉뚱한 답이 튀어나온다. 1,000원 더 비싼 책을 구입하는 고객이 결과적으로는 1,600원을 절약하게 된다. 1만 원 이상 구매를 할 경우 무료배송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으므로, 1만 2,000원짜리 책을 구입하는 고객은 10%를 할인해도 1만 800원이기 때문에 배송료를 면제받는다. 반면 정가 1만 1,000원짜리 책을 살 때 10% 할인을 하면 정가가 9,900원이 되기 때문에 면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결국 배송료 2,500원을 더 내므로 고객은 총 1만 2,400원을 지불해야 한다. 책값의 마지노선이 1만 2,000원으로 어느 정도 굳어진 배경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전쟁의 나비효과와 인플레이션

 

올해 들어서 출판사들의 가장 큰 고민은 들썩거리는 물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누구도 예상 못 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최근 종이값이 급등하고 있다. 국제 펄프 가격이 급등하면서, 지난 5월 1일 국내 1·2위 제지기업 한솔제지와 무림페이퍼가 종이 가격을 15% 인상했다. 연초에도 제지 값이 인상된 데 이어, 불과 반년 사이에 30% 가까운 종이값의 상승이 있었다고 한 출판사 대표는 말했다.

 

순수 제작비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항목이 종이값이다. 출판계에서는 책값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지난 수년간 물가 인상 압력이 강했지만 코로나19라는 특별한 이슈도 있었고, 최대한 가격을 올리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상황에서 책값을 그대로 두면 책을 찍을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이 온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실제로 여러 중소 출판사들이 지난 4월 제작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책값을 2,000원가량 인상했다. 반면 일부 출판사들은 책값 인상을 막기 위해서 기타 비용을 줄이며 허리띠를 조이는 곳도 늘고 있다. 책 기획 단계와 제작비를 줄이는 건 물론이고 홍보 마케팅 비용도 아끼고 있다.

 

종이값 부담이 늘어나면 책의 페이지 수를 줄여 제작비를 절약하는 방법이 보편화될 가능성도 있다. 마침 최근 독자들의 독서 트렌드도 두꺼운 책보다는 가벼운 책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터다. 책 페이지 수를 줄이고 컬러 사진도 덜어내는 제작 방식이 늘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제작비를 아껴서 당장의 적자를 줄여볼 것인가, 아니면 책의 질과 정보량으로 승부해 독자들을 끌어들여 수익 감소에 대비할 것인가. 출판사들은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상황에 처했다.

 

도서정가제와 구독 경제의 역습

 

한국의 독자들은 책값에 매우 예민한 편이다. 도서정가제가 개정 시기를 맞을 때마다 시끌벅적한 갈등을 빚어내곤 했던 이유다. 독자들이 책값에 둔감하다면, 과거처럼 도서정가제 개정을 앞두고 50~80%가 넘는 폭탄세일이 경쟁적으로 일어나고 이 책들이 베스트셀러 차트를 점령하는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없다. 출판사들이 1,000원, 2,000원의 가격을 올리는 결정에도 고심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큰 변수는 콘텐츠 소비시장의 변화다. 소위 ‘넷플릭스의 시대’가 열리면서 독자들은 구독 경제에 익숙해졌다. 단적으로 말해 한 달에 1만 원이면 무제한으로 전 세계 드라마와 영화를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시대에, 200페이지의 책 한 권을 동일한 가격으로 구입해 소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큰 부담으로 여겨지게 됐다.

 

최근 들어 많은 책들이 더 예쁜 표지와 사은품을 제작하며, 책의 ‘굿즈화’로 승부에 나서는 이유도 독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지 않으면 단지 읽기 위해서 책을 사는 수요가 줄어드는 것에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OTT로도 버거운데, 지난 2~3년간 전자책을 무제한으로 대여해 주는 도서 구독 서비스도 보편화됐다. 밀리의 서재는 9,900원, 예스24 북클럽은 5,500원, 리디는 4,900원 등 월 1만 원이 되지 않는 비용으로 신간과 베스트셀러를 손쉽게 읽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책값을 쉽게 인상할 수 없는 이유로는 이런 전방위적 시장의 변화가 더 큰 변수라고 할 수 있다.

 

원가의 상승과 소비문화의 변화. 둘 다 앞으로도 해결이 쉽지 않은 변수다. 출판사들로서는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킬러 콘텐츠를 역량을 다해 개발하는 것 외에는 대응책이 없어 보인다. 인플레이션의 시대를 맞아 출판시장의 대외적인 환경은 앞으로도 점점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김슬기

 

김슬기(매일경제신문 문화스포츠부 기자)

2008년 매일경제신문 입사 이후 14년째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부터는 10년째 출판과 문학 담당 기자로 책과 관련한 뉴스를 보도하고 있다. 서평집 『읽은 척하면 됩니다』를 펴냈다.
sblake@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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