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7 2023. 09.
[출판과 ESG]
주영재(〈경향신문〉 기자)
2023. 09.
폭염과 산불 등 기후 재난이 일상이 되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 원인은 온실가스 때문이며 그 대부분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의 활동에서 비롯됐다. 기업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온실가스의 상당 부분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구가 정말로 달라졌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최근 수년 사이 기업의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환경·사회적 책임·지배 구조) 경영의 중요성도 커졌다. 기후 위기 해결의 주체로서 기업의 역할이 강조됐기 때문이다. 이제 웬만한 기업 중에서 ESG 경영을 내세우지 않는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이다.
ESG 경영이 대세가 되면서 기업 활동이 환경에 주는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 환경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소개하는 내용이 ‘지속가능성 보고서’라는 이름의 문서에 담겨 공개되기도 한다. 환경 문제에 예민하고, 노동자 처우나 노동 환경, 기업의 지배 구조 문제에 관심 있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기업이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달리 말하면, 이런 문제에서 우리 기업은 앞서가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홍보함으로써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ESG 경영에 적극 나서는 해외 출판계
출판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해외 주요 출판사들은 수년 전부터 ESG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ESG 경영은 환경 경영과 사회 공헌, 윤리·인권 경영을 포함하지만 최근 초점은 환경으로 모이고 있다. 기후 위기를 누구나 피부로 느끼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출판이 환경을 고민한다고 할 때 종이 문제를 그냥 넘길 수 없다. 출판의 전 과정을 평가하면, 온실가스의 90% 가까이가 종이 생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영미권 단행본 시장의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펭귄랜덤하우스(Penguin Random House, 이하 PRH)가 모범 사례로 꼽힌다. PRH는 2018년부터 2019년까지 2년 동안 탄소 배출량을 49% 줄였고, 2021년 기준 사용 용지 중 96%를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지사로부터 공급받는다. PRH의 환경 성과는 모기업인 베텔스만(Bertelsmann)의 적극적인 ESG 경영 의지 덕분이다. 베텔스만은 2020년 2월, 203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2030년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절반 수준인 50만 톤으로 줄이고, 남은 배출량은 상쇄 활동을 통해 제거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사업장의 전기를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로 했다. 또한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전기차 사용도 확대하기로 하였다.
베텔스만은 SBTi(Science Based Target initiative, 과학 기반 감축 목표 이니셔티브)에도 가입했다. SBTi는 기업이 과학 기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할 수 있도록 돕고 모니터링하는 계획이다. 유엔글로벌콤팩트(United Nations Global Compact, UNGC), 세계자원연구소(World Resources Institute, WRI), 세계자연기금(World Wide Fund for Nature, WWF),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arbon Disclosure Project, CDP) 등이 파트너십을 맺고 2015년 설립했다. 베텔스만은 자사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SBTi의 검증을 받았다고 밝혔다. 산업화 이후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로 제한하자는 파리협정의 목표에 일치한다는 것이다.
베텔스만은 PRH를 비롯해, 방송사 RTL 그룹, 음악 회사 BMG 등 전 세계 약 50개국에서 11만 7,000명을 고용하는 세계 최대 미디어 그룹이다. 동종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베텔스만의 약속이 충실히 이행되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직까지 잘 이행되고 있다. 베텔스만의 2022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사업장은 378개소로 전년도 181개소 대비 197개소가 증가하며 크게 늘었다. 전력 소비량 100MWh 이상인 사업장에서 조달한 전기 중 재생에너지의 비율은 76%를 차지한다. 회사 자체 부지에서 태양광 발전 시설을 확장하면서 온실가스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베텔스만의 스코프1(기업이 보유하거나 통제하는 시설에서 직접적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 스코프2(전기·증기·냉난방 등을 이용하면서 간접적으로 발생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년도 100만 유로당 18.2톤에서 2022년 12.9톤으로 감소했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귀터슬로에 있는 베텔스만 본사 건물의 전경(출처: 베텔스만)
베텔스만의 사례에서 눈여겨볼 점은 탄소 중립 전략을 매우 체계적으로 수립하여 실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환경 관리는 ‘기후 전략(Bertelsmann Climate Neutral 2030)’과 ‘베텔스만 ESG 프로그램’이라는 두 축을 기반으로 한다. 기후 전략은 탄소 배출량 상쇄 이전에 배출량 증가를 억제하고, 줄이는 조치를 우선한다. 일단 탄소를 배출한 후 나무를 심는 식으로 벌충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탄소가 배출될 수 있는 과정을 줄이겠다는 뜻이다. 이는 모든 기업이 본받을 만한 접근법이다.
탄소 중립 목표 달성 혹은 ESG 경영을 위한 지배 구조 구축도 중요하다. 베텔스만은 각 계열사 대표자들로 구성된 실무 그룹(be green)에서 그룹 전체의 탄소 중립 활동을 조정하고 있다. 2022년 이 실무 그룹의 초점은 재생에너지 전력 조달과 생산, 그룹 전반에 걸친 환경 계획 개발, 기후 친화적인 출장을 위한 지침 마련, 인쇄 및 디지털 제품 관련 배출에 대한 투명성 향상, 인쇄 제품의 탄소발자국 개발 및 외부 검증 등이다.
기업 활동에서 얼마나 많은 탄소 배출량이 나오는지 측정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베텔스만은 2009년부터 정기적으로 기업 전체의 탄소 배출량을 발표하고, 배출량 감소 과정을 문서화했다. 직원의 IT 장비가 소비하는 전력, 출장 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을 수집할 정도로 꼼꼼하다. 온실가스 데이터는 그룹 차원의 ‘그린 스크린 IT 플랫폼’을 활용해 정량화된다. 여기서 종합된 정보는 각 부서나 회사 수준에서 환경발자국 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활용된다. 기후 위기에 따른 기회와 위험을 평가하고, 협력사와 협의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베텔스만은 2022년부터 공급망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스코프3)을 정량화하기 위해 공급업체와 협력사로부터 관련 데이터도 수집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에는 외부적 요인도 있다. 유럽연합(EU)이 2026년부터 시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가 바로 그것이다. CBAM은 유럽연합의 탄소 배출권 가격(탄소 배출 비용)보다 원산지 국가의 탄소 배출 비용이 낮을 경우 그 차이만큼을 부당한 보조금으로 보고 인증서 비용이라는 이름으로 세금을 걷는다. 수입 상품의 탄소 배출량에 유럽연합 배출권 거래 시장의 탄소 가격을 곱한 금액에서 생산 기업이 원산지 국가에서 이미 지불한 탄소 배출 비용을 제한 금액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스코프1·2 배출량만 대상으로 하는데, 향후 스코프3(중간재 생산·물류 등에서 발생한 탄소를 모두 포함)까지 포함할 수 있어서 다국적 기업을 중심으로 공급망에 속한 기업에 관련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 종이 생산량의 절반 가까이를 수출하는 제지업계로선 민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은 2021년 기준 1,150만 톤의 종이를 생산한 세계 7위의 종이 생산국이다. 생산된 종이의 80%는 재활용된 종이이다.
기후 공시로 진화하는 ESG 경영
베텔스만과 PRH가 독보적이지만 탄소 배출량 감소를 주요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은 영미권의 다른 출판사도 마찬가지이다. PRH와 상당히 큰 격차로 2위에 머물고 있는 하퍼콜린스(HarperCollins)의 경우 2017년 기준 사용하는 종이의 95%를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 국제삼림관리협의회) COC(Chain of Custody, 연계 관리) 인증을 획득한 종이로 확보했다. FSC COC 인증은 공급망을 통해 숲에서 생산된 제품의 경로를 추적해 FSC 인증 물질이 공급망 전체에서 인증되지 않은 물질로부터 식별되거나 분리된 상태로 유지되는지 확인한 것이다.
하퍼콜린스의 모기업 뉴스코프(News Corporation)는 매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한다. 2022년 기후 성과를 보면 하퍼콜린스UK에서는 공급망의 탄소 배출량 저감을 위해 기차로 도서 운송을 시도하고 있다. 장식용 반짝이(글리터) 사용량을 1.5톤 줄이는 등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이다. 플라스틱 에어백, 상자 밀봉용 테이프 사용도 줄였다. 글래스고 사무실과 유통 센터의 재생에너지 사용도 확대했다.
사이먼 & 슈스터(Simon & Schuster)는 2022년 기준 모든 용지를 FSC 또는 SFI(Sustainable Forest Initiative) 인증 제품으로 사용하고, 배송 상자와 완충재의 재활용에도 적극적이다. 아셰트(Hachette)의 경우 2021년 4월, 2020년 탄소발자국의 34%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모기업 아셰트 리브르(Hachette Livre)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30% 줄이겠다는 목표를 밝힌 상황이다.
(좌) 프랑스 파리에 있는 아셰트의 본사 전경, (우) 프랑스 모르파에 있는 아셰트 물류센터의 박스 라우팅 설비의 모습(출처: 아셰트)
해외에 비해 늦지만 국내 출판계도 ESG 경영에 시동을 걸고 있다. 기후 변화의 위험이 미래 세대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만큼 학습지를 출판하는 회사들이 더 적극적인 모양새이다. 웅진씽크빅은 2006년 4월 환경 경영을 선포한 이후 콩기름 인쇄기 도입, 출퇴근 통근 버스 운행, 페이퍼리스(Paperless) 보고 문화, 점심시간 소등 등 환경 영향을 줄일 수 있는 활동들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2021년에는 읽은 책을 회수해 마일리지로 제공하는 종이 회수 제도 ‘바이백’도 출시했다. 파주 사옥에 재생에너지 시스템을 도입하고, 친환경차 사용을 8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도 잡혀 있다. 2020년 이후 스코프2까지의 온실가스 사용량도 공개하고 있다. 다만 환경 경영의 실질적인 성과라 할 온실가스 배출량은 해마다 조금씩 늘고 있어 아쉽다. 금성출판사의 경우 2022년 그린오피스를 도입해 출력물 대신 디지털 파일을 활용하고, 이면지·에코 폰트·다회용품 사용 등으로 쓰레기를 줄이는 친환경 캠페인도 벌이며 ESG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8월부터는 전자 계약·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연간 47톤의 종이 절감, 약 1,702kg의 탄소 저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출판업계는 출판계의 ESG 경영이 환경 이슈 대응에서 시작하지만 향후 더 넓은 범위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관계자는 “출판의 ESG 경영은 우선 친환경 용지 사용과 에코 프린팅, 전자책 전환 등 환경 이슈에 대응하는 것, 사회적 다양성과 노동 이슈 등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것, 저자-출판사-서점-도서관 등 책을 둘러싼 생태계에서 상호 협력하는 것 등으로 나뉜다”면서 “ESG 경영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더라도 가장 예민하게 사회적 이슈를 포착하는 출판인들에게 ESG 경영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환경 이슈와 사회적 이슈는 출판사별로 대응하고 있지만, 사회적 이슈의 경우 국제도서전 같은 굵직한 행사를 통해 소화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서울국제도서전은 매년 환경과 사회적 다양성 문제를 관람객에게 환기시키는 주제와 전시를 선정하고 있다. 친환경 용지 사용은 아직 대세로 자리 잡진 못했지만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ESG 경영이 중요시 여겨지면서 환경 경영을 표방하는 기업이 늘었지만 아직까지는 홍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기업이 많다.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담긴 내용도 구체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앞으로 상황이 바뀔 전망이다. 2025년부터 단계적으로 기업의 기후 대응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기후 공시’가 국내외에서 의무화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6일 국제회계기준재단(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Foundation, IFRS) 산하의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nternational Sustainability Standards Board, ISSB)가 확정한 기후 공시안에 따르면 기후 변화로 기업이 맞게 될 물리적 위험 요인과 저탄소 전환과 관련한 정부 규제, 소비자 선호 변화에 따른 전환 리스크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공급망 수준에서의 온실가스 배출 정보도 밝혀야 한다. 기후 변화 적응과 대응 과정에서 신상품·신사업으로 기회 요인이 생겼을 때도 공시로 알려야 한다.
기업의 매출과 손익 정보만이 아니라 기업의 기후 변화 대응·적응 수준도 투자를 결정할 때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된다는 뜻이다. 국내의 경우 2025년 자산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2027년 자산 1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2029년 5,000억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 2030년 코스피 상장사 전체로 의무화 대상을 확대한다. 2030년 이후 상장된 출판사라면 기후 공시 의무를 피할 수 없다. 베텔스만의 사례를 따라, 환경 경영을 책임질 거버넌스(governance) 체계를 만들고,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줄인 양을 측정하고, 이를 전체 공급망 수준에서 파악해야 한다. 벅찬 과제일 수 있으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중요한 건 출판계가 주눅들 필요는 전혀 없다는 점이다. 화력발전소,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회사에 비하면 출판이 주는 환경 부담은 그야말로 조족지혈(鳥足之血)이다. 기후 위기의 경각심을 높일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책이다. 온실가스를 얼마간 배출하더라도, 그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모을 수 있다면 출판의 사회적 기여는 이미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 출판이 앞서간다면, 나쁠 건 없다. 더불어 서점과 도서관 등 시민들이 직접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을 기후 친화적으로 바꾼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겠다. 옥상과 주차장, 벽면 등 유휴 공간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환경 기후 관련 책들을 전면에 배치한다면 좋지 않을까.
주영재 〈경향신문〉 기자 문화부, 국제부, 산업부 등을 거쳐 주간경향부에서 일하고 있다. 지구인을 위협하는 기후 변화와 불평등에 관심이 많다. 3년 동안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배웠다. 텃밭 정원에서 채소와 꽃을 키우고,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차를 충전하는 집을 꿈꾼다. 『비즈니스 액티비스트』(다른백년, 2023), 『나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메디치미디어, 2015)를 따로,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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