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9 2022. 02.
[2022년 청년 책의 해 - 2030이 말하는 책 생태계]
임명묵(작가)
2022. 02.
얼마 전에 키우는 개한테 심하게 물리는 사고가 있었다. 한 번 ‘입질’하고 만 것이 아니라, 마치 맹수한테 사냥을 당하는 것처럼 물어 뜯겼다. 팔 한 쪽에는 마치 커다란 구멍이 파인 것 같았다. 사고를 대충 수습하고 우리 집은 나를 문 개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했다. ‘안락사를 시켜야 하나?’ 아무리 내가 공격당했다 하더라도, 이미 가족이 된 개를 죽이는 건 차마 하지 못할 일처럼 느껴졌다. ‘중성화 수술을 하면 나아질까? 그래도 바뀌지 않고 계속 사람을 공격하면 어쩌지?’ 걱정과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한 애견 훈련사를 부르면서 문제는 놀랍도록 쉽게 해결되었다.
애견 훈련사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실제 개의 행동을 관찰한 뒤에 어쩌다가 이런 사고가 나게 되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문제의 원인은 우리 가족이 개를 키우는 방식이 잘못된 데 있었다. 우리가 개에게 예쁘다고 귀여워하는 많은 행동이, 개에게는 ‘무리 안의 우두머리 지위’, 즉 알파 지위를 주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강아지 때를 지나서 성견이 되고도, 거의 2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렇게 개를 예뻐했으니 개는 이제 자신이 우리 가족보다 위에 있는 알파라고 여기고도 남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알파의 심기를 거슬렀기 때문에, 개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공격받아야 했던 것이다. 훈련사는 가족들 사이에서 개의 지위를 낮추는 데 필수적인 해결책들을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시연을 보여준 뒤 떠났다. 우리 개는 아직도 훈련을 받는 중이지만, 이제는 알파 자리는 상당히 내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훈련사가 말해준 무리 동물의 행태와 습성은 내가 거의 다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놓으며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무리 구성원으로부터 항상 인사를 받고자 하는 모습과, 무리 구성원의 행동을 통제하고 그들을 보호하고자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모습들. 이런 행동 양태는 몇 년 전 내가 프란스 드 발의 『침팬지 폴리틱스』를 시작으로 영장류 행동학 서적들을 교양 삼아 읽을 때마다 수없이 반복되었던 주제들이었다. 나는 당시 읽었던 여러 영장류학 책들 덕택에 나 자신이 인간과 동물에 대한 이해를 크게 늘렸다고 생각했고, 내가 느낀 점을 정리해서 몇 편의 글로 기고하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런 지식이 무색하게도 개 하나도 제대로 못 키워 내다니! 역시 책을 읽는 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인간을 키워내고, 독서는 그저 실용적 쓸모가 없이 독서를 위한 독서가 될 뿐인가? 내 상처를 보고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솔직한 말로 당장 할 말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한다면 몇 년 전 읽었던 영장류학에 관한 책들은 이번 사건을 대할 때도 나에게 소중한 자산이 되어주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인 반려견을 통해서, 나는 내가 책으로 배운 지식들이 내 주변의 세계와 어떻게 연관될 수 있는지를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리고 이는 위험천만했던 사고를 받아들이는 내 자세에도 영향을 주었다. 훈련사는 반려동물을 키울 때 생기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바람을 반려동물을 향해 투사하며, 반려동물의 실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이 마음대로 의인화한 이미지에 맞춰서 끝없는 생각의 연쇄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가 나를 공격한 것은 내가 미워서일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던 것일까? 저 개는 태생부터 공격적이고, ‘성품이 나빠서’ 그런 것일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개에 대한 연민부터 원망까지 온갖 감정이 솟구쳐 오른다. 아마 우리 개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아버지는 이런 혼란한 감정을 꽤 겪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심지어 개에게는 인간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과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상당수는 인간이 자신의 생각을 덧씌운 것이라는 말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개의 행동 패턴과 그 동기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단순하다면, 개와 우리의 관계도 우리 생각처럼 ‘진실된’ 것이 아니라 더 ‘삭막한’ 무언가였던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아마 들지 않으셨을까.
그러나 훈련사가 해준 이야기들은 내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나는 영장류 행동학에 대한 책들도 읽었고, 동시에 동물의 감정을 다룬 책도 몇 권 읽은 상태였다. 동물의 감정과 그 성격에 관한 이야기는 여전히 학계에서 논쟁 중인 영역이라고 하지만, 훈련사가 말해준 이야기는 분명히 그중 설득력 있는 하나의 가설을 대표하고 있었다. 그런 사전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나는 내가 겪은 사고를 객관화해서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개가 ‘나빠서’ 공격을 한 게 아니고, ‘착해서’ 공격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개는 그저 무리 동물로서 자신의 본성에 충실했다. 우리 가족이 개를 우두머리의 자리에 ‘올려준’ 것이었고, 우두머리가 된 개는 무리의 질서와 규칙을 지키고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카리스마적인 행동을 보여야 했다. 그런 사건들과 신호들이 하나씩 누적되면서 마침내 내게는 한없이 사랑스럽던 개가 나를 물어뜯는 사태까지 이르고야 만 것이다. 문제는 개에 있는 게 아니었다. 전혀 다른 문법의 사회적 언어, 즉 개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 사이에서 오해가 쌓이고 쌓이다 빚어진 사고였다. 나는 일찍이 그런 지식을 머리로라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 수용을 훨씬 차분하고 빠르게 할 수 있었다. 오직 남은 것은 (개가 인간의 언어를 배울 수는 없으니) 우리가 개의 언어를 배워가며 사랑하는 가족으로서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익히는 일이었다.
개에게 물린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개와 사람 사이에 있었던 사고를 넘어서 지식의 무용함과 유용성에 관한 일반적인 문제를 대표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 특히 순전히 지적 유희를 위한 각종 교양서를 읽을 때면 으레 이런 질문이 따라붙는다. “그거 읽어서 뭐해?” 확실히 그렇다. 40년 전 네덜란드에서 침팬지 무리를 한참이나 관찰하고 기록한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인간 의식의 비밀을 파헤치는 책을 수십 권 읽는다고 해서 우리의 의식이 더 고결해지는가? 로마 제국이 어째서 붕괴했는지를 아는 게 우리 삶에서 무슨 도움이 될까? 동물행동학이니 생태학이니 하는 책을 읽었다고 으스대며 글까지 썼던 나이지만, 실제 개를 키울 때는 그런 책들 첫머리에서 경고하는 ‘의인화의 오류’를 아무 의식도 하지 않고 적극 실천하다가 사고를 겪지 않았는가?
확실히 순전히 책을 통해 배우는 지식이 즉각적인 어떤 유용함을 주지는 않는다. 사실 내가 책을 고를 때도 의식적으로 실용성을 목적으로 고르진 않는다. 재밌을 것 같은 책, 그리고 나의 지식과 설명 욕구를 만족시켜줄 것 같은 책들이 내게는 가장 좋은 책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재미를 위해서만 읽었다 하더라도, 세상을 설명해주는 여러 지식을 머리에 꾸준히, 차곡차곡 쌓다 보면 분명 어느 순간에는 예상치 못한 데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영장류에 대한 책을 읽을 때는 우리 집이 개를 키울 거란 상상도 하지 못했고, 설령 개를 키운다 해도 이런 큰 사고를 겪을 거라고 절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무리 동물과 서열 본능에 대한 나의 지식, 동물이 느끼는 감정과 인간이 감정을 투사하는 기제에 대한 내 지식은 사태를 객관화해서 받아들이고 더 나은 해결책을 신속하게 수용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것이 나와 내 반려견의 관계에 준 도움을 생각하면 분명히 그 지식이 내게 ‘실용적’이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돌이켜 보았을 때 독서를 통해 얻는 지식은 늘 이런 식으로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인간 뇌의 작동 기제와 의식의 실체에 관한 지식은, 내 자신의 상태와 감정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것은 물론이고, 현대 사회의 최소 구성단위인 ‘개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게 해 사회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리는 데 근거가 되어주었다. 로마의 멸망에 기후변화와 전염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8년 전에 처음 책에서 접했을 때는 “그거 참 재밌는 분석이네”하면서 흥미로워만 했지만, 실제 기후변화와 전염병의 위협 앞에서 인류가 백척간두에 서 있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깨달음의 과정을 계속하다 보면, 실용성의 영역을 넘어서는 데까지 생각이 닿고는 한다. 이를테면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지식이 어떤 식으로 내 삶과 연결되고, 또 그 지식끼리는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이 세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숙고할 때, 일종의 경이감까지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이다. 뇌에서 지식을 서로 연결하는 과정은, 나 또한 우주와 인류의 거대한 이야기 속에 하나의 흐름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고, 최종적으로는 ‘존재의 의미’에 대하여 잠깐이나마 생각하게 해준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말하는 것은 어차피 ‘지식’의 문제이니, 굳이 그것을 독서를 통해서 얻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다른 대안적 지식 획득의 수단이 보편화된 오늘날에도 독서가 그런 유용함을 독점한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분명히 타당한 지적이다. 개인적으로 작가로서 어느 정도 인기를 얻게 된 뒤에 “와, 그 많은 책을 대체 언제 다 읽으셨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사실 제가 읽는 게 느리고 집중력도 좋지 못해서 그렇게 많이는 안 읽습니다.” 으레 하는 겸양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가장 부지런히 읽을 때도 아마 평균적으로 1주일에 1권씩 읽었던 것 같다. 나는 평소에 유튜브, 웹툰, 단체 채팅방의 메신저, SNS 등으로 각종 지식을 습득하고 콘텐츠를 소비하느라 분주해서, 순전히 독서만 하는 시간을 따로 찾기가 오히려 힘들 때가 많다. 그러니 사실 진짜 문제는 인간이 어떤 식으로 자신이 습득한 지식과 경험을 통합하여 성찰하는지, 그에 관한 방법론의 문제지, “요즘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다.”며 개탄할 필요는 없다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 습득의 수단으로서 독서가 차지하는 독보적인 영역은 분명 존재한다. 이 또한 이미 많이 논해진 사실들이다. 무게감 있는 지식을 하나의 큰 덩어리로 소화하는 일은 우리의 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만든다. 종이에 집적된 글자를 보는 일은 그 물리적 성격 때문에 우리가 대상과 차분하게 거리를 두게 한다. 흔히 독서의 비효율성으로 지적되는, 정보가 우리에게 들어오는 그 느린 속도는 지식을 내 안에서 깊이 소화하게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적 여유와 동의어이다. 당분간은 기술의 발전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할 이런 경쟁력 때문에, 앞으로도 세계를 설명하고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은 인쇄된 책이든 화면에 뜬 전자책이든 간에 ‘책’이라고 불리는 기나긴 글자의 연쇄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독서에만 의지하라는 것은 아니다(아마 훌륭한 ‘독서인’들이라면 그러지 않으리라 짐작하지만). 책의 지식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실제 세계를 관찰하고 분석해서 정리한 결과물이다. 즉 책은 실제 세계에 대한 충실하면서도 필연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반영물이다. 개한테 물리는 아픔을 책으로 읽는 것과 직접 개의 이빨이 내 살 속으로 파고드는 경험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경험의 풍성함이 세계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꾸준한 독서만큼이나 추구해야 할 미덕임을 항상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이 습득한 지식과 경험이 어떻게 합치되는지, 혹은 어떻게 괴리되는지를 파악하는 과정, 즉 경험을 통해 지식을 점검하고 보완하는 과정은 내가 서두에서 묘사하였던 지식을 통해 경험을 해석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이런 것들은 그 어떤 주제에 관하여 글을 쓰고자 할 때 내가 일반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원칙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음에도, 나의 이야기가 공감가지 않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마 많을 것이다. 그런 독자들에 대해서는 같이 독서에 참여하면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이 ‘유용한 느낌’을 한 번 ‘경험’해보라고 권해보고 싶을 따름이다. 자신의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관심사를 다룬 책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어떨까. 나는 그런 의미에서 조만간 나에게 아픔과 행복을 동시에 주었던, 나와는 다른 사회적 신호와 행동 체계를 갖춘 이 동물을 다룬 책들을 조금 더 읽어보고자 한다. 그 책을 통해 얻은 지식이 전혀 다른 순간 나에게 빛을 밝혀줄 등불이 될 것을 기대하며.
임명묵(작가) 작가, 서로 연관 없을 것 같은 다양한 분야의 관심사를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연결하는 것을 좋아한다. 시진핑 체제로의 전환을 다룬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과 한국 사회 비평서인 『K를 생각한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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