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Vol.15  2020.10.

게시물 상세

 

[오늘의 청소년과 독서]
청소년에게 책을 읽히려면

 

 

 

황왕용(광양백운고 사서 교사)

 

2020. 10.


 

무인도에서 청소년 한 명이 책, 음식과 함께 한 달을 산다면 책을 읽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무인도와 다르다. 책을 읽히는 일도 만만치 않은데 심지어 대상이 청소년이라니 더욱 어렵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끼기에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다. 주제를 찬찬히 살펴보면 청소년은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어 있고, 그런 객체에게 수동적으로 책을 읽혀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제가 어려워서 주제 자체에 시비를 걸어본다. 주제 문장을 이렇게 고치면 어떨까? ‘청소년이 책을 읽는다’. 글을 풀어내기에는 더 어려워진다.

 

위 주제는 ‘청소년이 책을 읽지 않는다’라는 걱정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독서 인구 지표를 보면 흥미로운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2004년 조사한 독서 인구 통계에서 청소년 1인당 연간 평균 독서 권수는 31.9권이었다. 2019년 통계 15.7권의 두 배 정도 높은 수치다. 100명당 독서 인구도 81명에서 70명으로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러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의 독서 또한 비슷한 추세로 줄어들었다. 위 사실은 청소년 세대만의 특성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요인이 반영되었다는 방증이다. 또한 학생에게 책을 읽히려고 노력하는 사서 교사로서 단순한 수치 하락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현장에서 발견한다.

 

고등학생은 책의 깊은 맛을 느끼지 못한 채 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에 기재하기 위해 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종종 학생의 생기부에 『이기적 유전자』, 『코스모스』가 등장하는데 책 내용을 제대로 말하는 친구는 많지 않다.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입시에서도 이러한 ‘기록을 위한 독서’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는다. 기록을 위한 독서는 책의 깊은 맛을 발견할 수 없다. 어떤 이는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제도가 기록을 위한 독서를 만들었다고 하나, 제도의 문제라기보다 과정을 무시한 채 결과만을 지향하는 태도의 문제라 할 수 있다.

 

 

 

학교에서 청소년이 ‘더불어 책’을 읽는다.

 

청소년에게 책을 읽히려면, 좀 더 정확한 표현으로 청소년에게 평생 독자로서의 길을 열어주려면 입시가 아닌 독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면 독서 인구나 권수가 더 줄어들 수도 있다. 일시적인 통계에 대한 두려움은 버리고 기본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독서를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즐거운 것인지에 대한 토론과 나름의 답이 따라와야 한다. 위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야 청소년도 독서할 맛이 나지 않을까?

 

청소년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근본적인 질문에 단순한 답이 따라온다. 독서를 하면 ‘여러 가지’로 좋으니까! 너무 단순한가? 그럼 몇 가지 보충해 본다.

 

독서를 하면 낯선 상황에 대한 균형을 유지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등교를 하지 못 하는 상황과 같이 일상에서 벗어나 두려움과 공포를 대면하는 상황은 개인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앞으로도 자주 벌어질 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낯선 상황을 직면하는 데에 책을 읽고 몰입하는 것만큼 좋은 수단이 없다. ‘나라면, 너라면, 우리 사회라면?’이란 질문을 들고 책을 만나면 낯선 상황에서 균형 잡는 방법을 연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전체를 보는 시각이 생긴다. 작가는 타인의 감정과 상황, 사회에 대한 인식, 판단 등을 할 수 있도록 책을 구성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에게 상황을 종합적으로 인식하는 능력이 생기는 일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생기는 사회적 문제, 개인적 한계를 느껴 본다면 넓은 시야를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책 읽기 한 팀의 기념사진


더불어 책 읽기 한 팀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독서하며 서로의 본모습을 알아간다’는 메시지를 담아 첫 모임에서는 얼굴을 가리고 찍었다. (문보라 교사 제공)

 

 

‘어떻게’에 대한 답은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책을 읽는다면 ‘찐 독자’가 되리라 생각한다. 읽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된다.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독서의 완성이다. 그러나 나 역시 어떻게 독서를 완성을 하는지 정답을 알지 못한다. 주체적으로 읽지 못하는 원인과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려는 노력을 할 뿐이다. 그리고 지금, 여태까지 학생과 함께했던 노력의 흔적을 몇 가지 적어본다.

 

첫째, 독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시작한다. 독서가 어렵다니? 독서를 즐거워하는 이에게는 다소 어리석은 생각처럼 비칠 수 있으나, 바쁜 청소년에게는 독서하는 시간을 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되었다. 단행본 한 권을 정독하려면 최소 두 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물리적 시간이라는 난관에 더해 ‘유튜브’나 ‘틱톡’에 비해 재미가 없다는 어려움도 있다. 우리는 ‘어렵다’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뭉치기로 했다. 뭉치면 덜 어려워질 거라고 판단했다. 어떻게 뭉칠 것인지도 관건이었다.
학생들에게 문제를 냈다. ‘347, 898, 644, 317, 531, 331, 987, 613, 589, 813’ 세 자리 숫자 열 개를 불러주고 바로 외워 발표하는 문제였다.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에 네 명이 한 팀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1분 뒤에 똑같은 숫자를 불러주겠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네가 앞에 세 개, 내가...” 성공하는 팀이 꽤 나왔다. 혼자 외울 때와 넷이 외울 때의 마음가짐부터 다르고, 결과도 달랐다. 발표가 끝나고 독서도 이렇게 어려운 과제라고 말하면서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사람끼리, 또는 친한 사람끼리 모여 팀이 되어보자고 했다. 이제 한 고비를 넘겼다.

 

방법론적인 문제가 많이 남아 있었다. 실제 독서 모임을 하기 전에 두 시간 정도 워크숍을 진행했다. 워크숍에서는 독서 모임에서 예상되는 문제를 떠올려보며 프로세스를 제시해 주었다. 독서 모임 과정은 책 선택, 개별적 읽기, 질문 만들기, 질문 공유 및 선택하기(모임), 선택한 질문에 대해 생각 정리하기, 정리한 생각으로 토론하기, 그 과정을 글로 정리하기 등이었다. 이러한 과정 중에서 기존 관념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생각을 뒤집도록 함께 이야기 나눴다.

 

둘째, 책 선택은 학생에게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했다. 위에서 언급한 팀별 독서는 팀 주인으로서 이끌어간다는 생각에 주체성이 보장된다. 자기주도적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나게 토론할 수 있는 책을 고르는 능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능력이 한 번에 ‘뾰로롱’ 하고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경험상 가장 좋은 방법은 도서관 또는 서점에서 마음껏 책을 들춰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다. 너무 뻔한 이야기라 실망스럽겠지만, 네 명이 팀이 되었다면 네 명이서 도서관을 헤매고 다니면 좋다. 각자 두세 권의 책을 선택해서 한 권으로 좁혀가는 방법이 제일 좋다. 학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도 부여하고, 네 명이서 함께 선택하기 때문에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책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진다.

 

셋째, 책을 읽고 어떻게 대화를 나눌지에 대해 고민해 본다. 독서토론의 기억을 떠올리면 딱딱한 분위기, 생각에 대한 자기 검열, 타인에 대한 눈치, 배경지식의 한계 등으로 실패로 귀결되는 경험이 많다. 왜 독서토론은 진지해야 하는가? 생각을 뒤집어야 한다. 일단 분위기는 가벼워야 한다. 간식, 가벼운 일상 이야기 등으로 이끌 수 있도록 한다.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책과 자신의 이야기를 적절히 조화시키도록 지도한다. 타인에 대한 눈치나 자기 검열을 깨부수기 위해서 듣는 사람이 무조건적 반응을 하도록 지도했다. 호응하는 일은 말하는 이에게 생각보다 큰 용기를 준다. 배경지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실제 독서토론이 있기 며칠 전에 책을 읽으면서 생기는 질문을 공유하며 나누는 일을 한다. 선택한 질문을 토론이 있기 전까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함이다.

 

넷째, 과정을 글로 기록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 독서토론의 즐거움을 상쇄시키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친구와 나눈 대화를 녹음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록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은 과정을 기록하며 자신의 생각을 더 확실히 정리하고, 즐거운 기억을 복기했다.

 

다섯째, 팀별로 읽고 나눈 이야기를 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자랑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우리 팀은 이런 책을 읽었는데 저런 이야기도 나왔어. 그리고 우리가 가진 생각의 틀을 깰 수도 있었어.”와 같은 식으로 발표할 수 있는 시간을 5분 내외로 주었다. 학생들은 색다른 방법으로 진행된 토론과 경험을 나눌 수 있었고, 팀의 사고와 자신의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지적 충만을 느낀다고 했다.

 


독서여행 중 책 읽는 모습



독서여행 중 책 읽는 모습


독서여행 중 책 읽는 모습

 


백운고의 서재 차례 및 출판기념회



백운고의 서재 차례 및 출판기념회


백운고의 서재 차례 및 출판기념회

 

위 과정이 내가 생각하는 비교적 완벽한 독서법이었다. 학생들이 완벽한(?) 독서법을 경험하면서 독서의 즐거움을 느꼈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도 제대로 조리해야 그 맛을 오롯이 느낄 수 있듯이, 독서도 제대로 된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똑같은 조리법으로 매끼를 먹을 수는 없다. 그런 차원에서 독서 방법 중 하나로 함께 읽고, 토론하고, 기록하는 일을 진행했을 뿐이다. 학생들은 이 조리법을 참 좋아했다. 독서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긴 듯하다. 제대로 맛본 음식은 평생 찾아 먹듯이, 제대로 한 독서가 평생 독자가 되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책 읽기’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책 읽기, 그들의 후기를 엿본다.

 

후기1.

더불어 책 읽기는 내 자신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 주었다. 친구, 선생님과 의견을 공유하면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게 되었고, 단순히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읽은 후 활동을 하면서 사고가 더욱 풍부해졌다.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점차 책을 안 읽게 되었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책을 읽게 된 것이 참 좋았다. 수행평가며, 수업이며 늘 바쁜데도 열심히 책을 읽고 생각하는 모습에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같은 책을 읽고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인상 깊었다.

후기2.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내용, 나와 다른 해석과 생각을 씨줄과 날줄을 엮듯 이어가니, 책 읽기보다 더한 즐거움이 있었다. ‘공감과 소통이 이런 것이구나’를 처음 느낀 순간이었다. 더불어 책 읽기 후 가장 많이 변화한 점은 주위에 대한 통찰력이 생겼다는 것이다. 뇌에 대한 책을 읽고, 배운 것을 실생활에 적용하면서 주변을 더욱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었다. 또한, 내가 사서 선생님에게 자신 있게 책을 추천해 볼 수도 있었다.

 

완벽한 독서법이라는 표현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나는 세상 모든 일에 ‘완벽’이라는 단어를 쓰는 일을 경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중 한 명인데, 굳이 완벽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건 작년 3학년 학생의 모습에서 얻은 자신감 덕분이다. 더불어 책 읽기를 하다가 3학년으로 진학한 아이들이 수능과 학과 공부에 여념이 없을 텐데도 금요일 점심시간 학교 주차장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시험기간인 금요일에도 그들은 한 주도 빠짐없이 네 명이서 책을 들고 나왔다. 그들은 그렇게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교도서관을 지키는 사서 교사로서 독서 수준과 흥미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독서 경험을 맛보게 하는 프로그램과 수업법을 많이 적용했다. 실패한 사례, 책 읽는 모습만으로 감동적인 사례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많은 학생이 가장 깊이 있게 완전한 독서법을 실천한 방법은 더불어 책 읽기였음을 밝힌다.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책을 읽고 난 후의 활동이다. 눈과 입으로만 읽는 것이 아니라 손과 발로 읽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읽고, 토론을 통해 알게 된 내용과 성찰한 내용을 직접 실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은 청소년의 자존감을 높이고, 후속 독서활동으로 연결된다. 플리마켓, 기부, 독서 여행, 글쓰기 등 실천할 수 있는 일이 참 많다.

 

 

 

대한민국 청소년에게 책을 읽히려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학생들이 앉아서 책과 삶, 이웃 이야기를 하는 것이 소문나서 다른 학교에서도 컨설팅 요청이 오곤 한다. 개인적인 범위에서 조금 벗어나 지역적으로 통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청소년에게 책을 읽히려면’이라는 주제가 아주 답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학교 밖에서는? 필자의 딸이 곧 청소년이 된다. 시간이 부족해지는 대한민국 청소년으로서 딸에게 제안을 할 생각이다. 일요일 오후 두 시간 정도는 제일 친한 친구 두세 명과 함께 우리 집에서 함께 놀면 어떻겠냐고. 그리고 함께 책을 읽으면 어떻겠냐고. 가정에서도 친구와 함께 책을 읽고 방학에는 손과 발로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사서 교사가 없는 학교는? 대부분의 청소년이 머무는 학교에는 학교도서관이 있지만, 그곳을 지키는 사서 교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사서 교사는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줄 수 있다. 학생에게 독서의 길을 제공하기도 한다. 학교도서관과 더불어 학교 밖 청소년에게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도움을 줄 전문가를 두는 일이 시급하다. 물론 사서 교사가 오롯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학교와 학교 밖 전문가의 경험을 공유하는 장이 활발해진다면 훨씬 더 진지하고 세련된 청소년 독서활동이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리라 생각한다. 지금도 멋진 모습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다만 여전히 그렇지 못한 학교나 여건이 안 되는 학교 밖 공간이 훨씬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 문제다. 전문가가 청소년에게 영향력을 지닌 사람으로서 독서가 수단이 아닌, 책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준다면 청소년에게 책을 읽히려는 고민과 걱정은 조금 덜어지지 않을까 싶다. 언젠가는 청소년이 독서에 너무 몰입하여 책이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고민을 해 보길 기대한다.

황왕용(광양백운고 사서 교사)

사서 교사로 13여 년간 근무했다. 청소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오롯이 이해하지는 못한다. 학생에게 배우는 입장이다. 학교에서 학생과 독서상담을 하고, 라디오를 진행하고, 그림자 인형극을 제작하며, 독서여행을 자주 떠난다. 때로는 학생에게 장미꽃과 책을 선물하는 낭만 사부다.

 

커버스토리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