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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7  202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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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와 열독 사이, 책을 대하는 사람들의 심리 탐구]
게임은 ‘현질’을 하면서 왜 책 구매에는 인색할까?

 

 

 

강상준(대중문화 칼럼니스트)

 

2021. 11.


 

고작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가공의 게임 아이템 하나가 현금 몇 억 원을 호가한다는 게 더 이상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은 요즘이다. 물론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인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책을 사는 데 쓰는 돈과 비교한다면 더더욱 별세계 이야기처럼 느껴질 만하다. 비록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이 같은 ‘게임 현질’과 달리 ‘책 현질’에 어디 억 소리가 가당키나 한가. 막연한 심정적 격차는 액수가 아닌 구매 빈도에서도 마찬가지로 다가온다. 게임 현질보다 책을 구매하는 일은 이상하게도 좀처럼 체감하기 힘든 게 사실이니까. 설마 게임 현질과 달리 책 현질은 늘 남몰래 조용히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알다시피 ‘현질’이란, 현금(現金)의 ‘현’에 접미사 ‘질’을 합친 조어다. 본디 게임에서 유래한 용어지만 요즘엔 마치 ‘소비’보다 조금 더 ‘힙’한 단어 정도로 취급되며 꽤나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듯한 모양새다. 그래서인지 현질의 ‘질’을 “그것을 가지고 하는 일”이란 일차원적인 뜻으로 생각하는 사람 또한 많은 듯하다. 그러나 이 경우 실은 “주로 좋지 않은 행위에 비하하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인 ‘질’을 뜻하는 게 맞다.

 

이는 온라인 게임이 등장하면서 게임 상품이 패키지를 구매하는 개념에서 탈피해 점차 게임 내에서 유저의 과금을 유도하거나 현실의 재화를 직접 적용하는 방식으로 변모한 데서 기인한다. 애초에 ‘현질’의 목적은 게임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과는 달랐다. 현질은 게임을 플레이함에 있어 다른 유저보다 빠르게 성장하거나 우수한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한 방책으로, 소위 게임 실력을 재력으로 제압하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자연히 이를 고깝게 여긴 대다수 게이머들은 현금을 사용하는 행위를 경멸하며 낮잡아 이르렀으니, 그래서 현‘질’이다. 그러나 현질은 오래지 않아 당연한 것으로 자리 잡으면서 본래 의미가 휘발된 채 현재의 보편적인 의미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게임에 돈을 쓰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한 일도 비겁한 일도 아닌 것으로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게임에 돈을 쓰는 행위 또한 일반화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고작 상향평준화를 위한 소비에 불과하지만, 경쟁이란 이름의 마법은 이 모두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강력했다.

 

게임에는 당연하다는 듯 현질을 하는 반면 책을 구매하는 데에는 더없이 인색한 이유는 우선 이 ‘경쟁’이란 지표에서 찾을 수 있다. 게임 현질이 처음부터 경쟁을 기반으로 쌓아올린 소비인 데 반해, 책을 사는 행위는 경쟁과는 거의 무관하다. 아마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 어떤 소비보다 가장 경쟁과 멀다고 해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책을 경쟁적으로 팔기는 하나 경쟁적으로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책을 통해 쌓아올린 지식이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언정 그렇다고 책을 구매하는 양으로 이를 가늠하지는 않는다. 희귀본 같은 것이 경제적으로 고평가받으며 경쟁의 대상으로 떠오를 수는 있으나 이는 독서 행위를 전제한 일반적인 책 구매로는 볼 수 없다. 즉, 책은 게임에 비한다면 태생부터 완전무결한 비경쟁 분야에 속한다.

 

게다가 책의 생산자는 이런 소비자 입장과는 완전히 반대다. 한국에서 책은 늘 다른 매체와 경쟁해야만 했다. 영상이 대세가 되면 영상과, 웹이 등장했을 때는 웹과 경쟁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책 뿐만 아니라 웹이 대세가 되면서 웹과 경쟁하려 했던 당시 레거시 미디어들의 움직임은 이를 방증하기 충분하다. 다른 문화 콘텐츠에 비해 유독 소극적으로 이뤄지는 책 구매의 패착 요인은 여기에도 있다.

 

책을 비롯해 신문과 잡지마저도 과거 웹의 공세와 맞닥뜨렸을 때 웹과 적극적으로 경쟁을 펼쳤다. 뉴미디어를 의식한 기존 텍스트 미디어의 과도기는 모두 웹을 ‘경쟁재’로 전제한 데서 시작한다. 무료에 가까웠던 웹 매체와 차별화를 꾀하며 병존을 택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도 생산자도 책을 완전히 대체할 것 같은 웹 콘텐츠에 한껏 마음을 빼앗겼던 것이다.

 

웹과 경쟁하면서 책은 단지 유료라는 이유로 더더욱 차선으로, 차차선으로 밀려나기에 이르렀다. 웹툰이 무료 구독을 유지하다 유료로 전환하면서 독자들의 반발을 산 것과도 엇비슷하다. 그에 비해 오늘날 웹소설 독자들은 유료 구독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유는 딱 하나, 웹소설은 웹툰과 달리 처음부터 유료 정책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책 역시 웹의 엄청난 속도와 낮은 장벽, 가벼운 콘텐츠에 동화되거나 따라잡을 필요가 없었음에도 웹 콘텐츠와 동시에 함께 즐기는 것으로 노선을 다잡지 않은 까닭에 외려 소비자를 빼앗겼다. 한때 수많은 잡지가 일제히 몰락한 것을 단지 시대의 변화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여전히 한편에서는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듯한 태세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독서는 직관적인 영상과 달리 습관의 산물이다. 매년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조사한들 ‘시간이 없어서’가 ‘아예 관심이 없어서’를 넘어선 통계를 얻긴 힘들다. 즉, 육아나 취업 등 환경적 요인으로 독서와 멀어진 ‘비자발적 비독자’보다 독서에 대한 긍정적 체험을 해보지 못해 스스로 독서와 멀어진 ‘자발적 비독자’의 수가 훨씬 많다. 특히 자발적 비독자 중에는 유년기부터 지속적으로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이가 대다수다. 당연히 출판 시장은 늘 이 자발적 비독자를 새로운 시장으로 삼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나,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들을 공략하는 수밖에 없는데 알다시피 이 숫자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전체 인구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는 데다 주요 구매층의 연령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더더군다나 경쟁해야 할 매체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책을 사면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인식 역시 구매를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다. 사놓고 읽지 않는 책을 죄악시하는 강박은 사실 책을 하나의 상품으로 보자면 굉장히 독특한 사고라 할 만하다. 물론 실제로는 책을 많이 구매하는 사람일수록 사놓고 읽지 않는 책이 더 많다. 결국 언젠가 읽을 책이라며 완독에 구애받지 않는 감각에 더 익숙한 탓이다. 일례로 『사피엔스』, 『정의란 무엇인가』, 『총, 균, 쇠』 등은 구매자의 완독률과는 무관히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켰다. 결국 책의 주요 고객층이 책을 구매하고 읽지 않는다는 뜻이니 사놓고 읽지 않는 책이 출판 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실제로 두껍고 어려운 인문학 저서는 이를 해설하는 강연이나 관련 영상으로 읽은 셈 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니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책 역시 ‘선매후곰’, 즉 일단 사고 고민은 나중에 하라는 식으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기반에 둔 전략을 적용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출판 시장은 그보다는 아예 새로운 전략을 세웠으니, ‘커피 두 잔 가격에 무제한 독서’라는 카피 그대로 정액제 독서 플랫폼을 만들어낸 것이다. 마치 OTT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나 온라인 음악 서비스처럼 한 달이라는 기간을 기본 단위로 삼아 수십만 권의 책을 한번에 공급하는 식으로 책 구매 방식을 근원부터 뒤엎었다.

 

실제로 한 달 구독 가격은 대부분 책 한 권 값에도 미치지 않아 관련 서비스의 구독자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일단 첫 달은 무료라니 진입 장벽도 낮다. 출퇴근 시간까지 옹골차게 활용하시라고 오디오북까지 추가했다. 그럼에도 각각의 독서 플랫폼들의 구독자 수가 증가함에 따라 출판 시장 또한 더불어 확대되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본질을 들여다보건대 이는 읽고 싶은 책을 ‘무제한 독서’한다기보다는 실은 읽지 않을 책을 구매하지 않는 방향에 더 가까운 탓이다. 대개 극장 개봉 후 VOD로 서비스하는 영화의 부가 시장과 비교하기도 쉽지 않은 까닭이다. 조금 더 냉소적으로 말하자면, 그보다는 온라인 음악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창작자의 몫을 줄이고 헐값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전자책을 기반으로 하는 독서 플랫폼이 책이 지닌 물성을 무형의 것으로 치환한 데도 책 구매의 원천적인 장벽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을 사는 것의 부가적인 효과로 종종 농담 반 진담 반, 인테리어 효과를 이야기할 때가 있다. 실제로 벽면을 가득 메운 책장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만족감과 희열은 비단 소유자만의 것은 아니다. 제3자에게도 눈요깃거리 그 이상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취향을 전시하는 데 있어 책만 한 것도 없다. 탄핵당한 대통령의 서재에 맨 어디서 받아온 책들밖에 없다며 깎아내리던 것만 상기해 봐도 금세 알 수 있다. 인테리어가 구매의 직접적인 이유가 될 수는 없어도 읽은 책이든 읽을 책이든 보관하는 순간 또 다른 의미를 가지는 셈이다.

 

반면 누군가에게는 무겁고 거대한 종이 덩어리가 쓸데없이 생활공간을 차지하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우선 부동산을 확보한 다음 책을 구매하겠다는 젊은 독자들의 이야기는 결코 낯설지 않다. 아예 책을 구매하지 않고 오로지 도서관 대출만 이용하는 이유로도 종종 거론된다. 전자책은 이를 대체하는 좋은 수단이며, 중고 서점 또한 이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준다. 특히 중고 서점의 경우 출간 시점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가격이 떨어지기에 독서를 종용하기도 한다니, 책 구매에 필요한 부담은 줄이면서 소유하지 않고 읽는 방법으로는 더없이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결론적으로 책이 가진 물성이 때때로 구매를 방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법 또한 얼마든지 있다. 게임처럼 가볍게 사서 가볍게 즐기는 것이 가능하도록 구매를 유도하는 방법 또한 다양화하고 보다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책은 다른 콘텐츠와 달리 제도가 구매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부터가 여전히 논쟁거리이기도 하다. 논란의 중심에 선 제도가 바로 도서정가제인데,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지금까지도 현행을 유지하고 있다. 도서정가제의 근본 취지는 거대 온라인 서점과 경쟁하기 어려운 동네 서점에서도 동일한 가격으로 책을 공급하는 데 있다. 하지만 이런 취지와 무관히 소비자 입장에선 괜스레 책값만 올린 것으로 보일 법하다. 도서정가제가 적용된 후부터는 많이 산다고 할인되지도 않고, 서점이 자율적으로 책 가격을 낮추는 것도 불가능하다. 출간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도서에 한정해 다시 정가를 매길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도서정가제가 동네 서점 살리기에 얼마나 일조했는지는 다소 회의적이다. 실제로 주변에 서점이 전무한 동네에 사는 탓에 한 달에 두세 번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는데, 그 주기는 장바구니에 5만 원어치 책이 채워질 때마다다. 이유는 5만 원 이상 구입 시 지급되는 2천 원짜리 포인트 때문이다. 미미한 액수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딱히 마다할 이유가 없다. 반면 동네 서점은 이 작은 차이조차 메우기 힘들다. 결국 가격 경쟁력을 제로베이스로 만들기 위한 제도가 근원부터 허점을 지닌 셈이다. 더불어 출판사 역시 얼마 없는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기기 위한 것은 아닌가 싶을 만큼 물가를 핑계 삼아 계속해서 책값을 올리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가끔은 왜 이런 책까지 양장본으로 만들었나 싶기도 한데 책값을 보면 금세 납득이 가니 말이다.

 

자본주의사회의 특성상 어디에 돈을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문화 콘텐츠는 더 그렇고, 책은 더더욱 그렇다. 책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여러 요인들을 살펴보면 소비가 한 사람의 개성을 대변한다는 점이 더욱 드러난다. 여기엔 책 가격에 대한 다양한 감각도 있겠지만 역시나 가장 큰 장벽은 결국 책을 읽지 않는 풍조에서 찾는 게 옳을 것이다. 일례로, 글쓰기 주제로 강연할 때마다 식상하게도 ‘다독’을 강조하고야 마는데 그럴 때마다 반드시, 반드시 맞닥뜨리는 질문이 있으니 바로 책을 읽지 않고도 충분히 좋은 글쓰기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반문이다. 경험과 정보로 단단히 무장한 저자가 쓰고 숙련된 편집자의 손을 거친 책을, 그것도 많이 읽지 않고선 좋은 글을 쓸 수 없을 거란 말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반면 누군가에게는 번거롭고 불필요한 것으로까지 간주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책을 구매하는 것은 더더욱 아득한 일처럼 느껴질 법하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제는 독서의 필요성보다는 책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강화하거나 강제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읽는 즐거움보다는 사는 즐거움을 먼저 느끼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러다보면 게임처럼 손쉽게 현질하고, 음악처럼 늘 곁에 두고, 드라마처럼 뻔질나게 보고, 마침내 영화처럼 스스로 나서서 감동과 재미를 찾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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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준(대중문화 칼럼니스트)

〈DVD2.0〉, 〈FILM2.0〉, 〈iMBC〉, 〈BRUT〉 등의 매체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영화, 만화, 장르소설, 방송 등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글을 쓰며 먹고살았다. 『위대한 망가』, 『빨간 맛 B컬처』 시리즈를 썼고, 『웹소설 작가 입문』, 『매거진 컬처』, 『젊은 목수들』을 공저했으며,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을 번역했고, 대중문화서 ‘에이플랫’ 시리즈를 비롯해 『좀비사전』, 『탐정사전』을 기획, 편집했다.
parandi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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