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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3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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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싸다 vs 비싸다]
미국의 책값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신인실(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과장)

 

2022. 6.


 

미국의 책값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2020년 미국의 평균 책값은 소설의 경우 하드커버 기준 27달러(약 34,000원), 페이퍼백 기준 17달러(약 22,000원) 정도였고 비소설은 하드커버 기준 31달러(약 39,000원), 페이퍼백 20달러(약 26,000원)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1) 원화 기준 미국 도서의 정가는 문고판을 제외하고 2만 원에서 4만 원 사이로 책정되는 것이다. 미국 도서의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무엇일까?

 

미국 도서의 가격 책정 방법은 여느 선진국의 출판 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책 뒤표지에 적힌 정가에는 인쇄, 제본, 유통, 마케팅, 디자인 비용, 작가 인세, 도판 저작권료, 기타 보이지 않는 비용(출판사 운영비 및 직원 인건비 등)과 출판사가 얻으려는 이윤이 포함된다. 작가의 명성이 높고 유명 디자이너가 작업을 했다면 인세와 인건비가 올라가기 때문에 당연히 도서의 가격은 더 비싸진다. 또한 미국은 같은 책을 하드커버, 페이퍼백, 문고판까지 다양한 크기와 질로 제작하여 소비자들에게 구매 가격의 선택권을 제공한다. 책의 가격은 소비자에게 그 콘텐츠의 가치와 상품의 품질에 대한 안내 표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책정된 도서 정가가 정말 미국 책값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까?

 

도서정가제는 가격 담합?

 

미국은 도서정가제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다. 미국인들에게는 50% 이상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구매하는 것이 익숙한 일이다. 구글 검색 창에 “How to buy cheap books(책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법)”를 검색하면 여러 블로그와 SNS에서 수많은 도서 할인 구매 팁을 알려준다. 당연히 모두 합법적인 방법이다. 유럽 선진국들이 FBP(Fixed Book Price, 도서정가제)를 출판 시장 보호를 위한 필수 정책으로 여기지만 미국에서는 이를 일종의 가격 담합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2011년에 있었던 애플사와 미국 Big 5 출판사의 전자책 가격 담합 소송 사건과 2021년 아마존닷컴과 Big 5 출판사의 유사한 피소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2)

 

미국 Big 5 출판사의 로고


미국 Big 5 출판사의 로고

 

2011년 미국 법무부는 애플과 미국 5대 대형 출판사(펭귄랜덤하우스, 아셰트, 하퍼콜린스, 사이먼앤슈스터, 맥밀란)를 가격 담합 혐의로 고발했다. 애플이 출판사들과 협상하여 당시 아이북스토어에서 동일한 가격을 제공하지 않는 한 다른 플랫폼에서 더 저렴한 가격으로 전자책을 판매할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3) 애플과 Big 5 출판사는 이 소송에서 패소했다.4) 그로부터 10년 후, 이번에는 아마존닷컴이 동일한 Big 5 출판사와 함께 불법 전자책 가격 담합 혐의로 소비자들에게 집단 소송을 당했다. 원고의 주장은 Big 5 출판사가 아마존닷컴 외의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전자책에는 추가 금액을 부과하여 아마존닷컴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전자책을 판매할 수 없게 했다는 것이다.5)

 

이번 소송에서 원고는 아마존닷컴이 경쟁 유통사를 지배하려 했으며 Big 5 출판사는 전자책 가격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으려 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아마존닷컴과 대형 출판사들의 이러한 비즈니스 제휴가 가격 경쟁을 파괴하며 소비자의 선택을 억제한다고 보았다.6) 다시 말해 그들이 아마존닷컴의 잠재적 경쟁사가 소비자를 위해 프로모션 이익을 제공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완전도서정가제가 시행된 지 8년이나 되어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지 오래인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도서정가제가 담합의 요소가 있다는 점, 위헌적일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미국은 소비자를 최우선의 가치에 두는 나라이다. 그리고 책을 문화적 자산이자 역사적 유산으로 여기는 유럽과 아시아의 관점과 달리 미국은 책을 여타의 제품과 서비스와 동일한 가치로 여기는 상업적인 의식이 강하다. 상기 소송 건과 미국 사회의 책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고려해 볼 때 미국에서 앞으로도 도서정가제가 시행될 여지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출판사가 책정한 도서의 정가를 보호하지 않는 미국에서 ‘진짜’ 책값은 누가, 어떻게, 얼마로 정하는 것일까?

 

책을 값싸게 사는 방법

 

미국에서는 책을 얼마에 살 수 있을까? 미국에서 책을 정가보다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로는 온라인 서점에서 제공하는 도서 할인 판매를 이용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온라인 서점 북아울렛(Book Outlet)은 출판사로부터 재고와 반품된 도서, 약간의 하자가 있는 신간 도서 등을 사들여 50%에서 90%까지 할인해서 판매한다. 아마존닷컴은 투데이스 딜스(Today’s Deals)의 책 코너에서 70%까지 할인된 가격에 종이책과 전자책을 판매하고 있다. 미국의 가장 큰 서점 체인인 반스앤노블(Barnes & Noble)은 자체 선정한 월간 도서 1권을 구매하면 다른 1권은 50%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미국의 다양한 온라인 오픈 마켓에서는 대폭 할인된 새 책과 중고 책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종이책 구독제이다. 미국에서는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종이책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구독형 모델이 운영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으로 무려 1926년부터 운영되어 온 미국의 종이책 구독 플랫폼인 북 오브 더 먼스(Book of the Month)는 월 17달러 정도에 이용자들이 선택한 신간 하드커버 도서를 5~7권 배송한다.

 

세 번째는 중고 책 구매이다. 미국에는 여러 개의 대형 중고 서점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날짜 지난 신문 외에 모든 인쇄된 것과 녹음된 것을 사고, 판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미국 최대의 중고 책 전문 서점인 하프 프라이스 북스(Half Price Books)에서는 1달러에서부터 시작되는 금액으로 질 좋은 중고 책을 구매할 수 있다.

 

미국 최대의 중고 책 전문 서점 하프 프라이스 북스(Half Price Books)


미국 최대의 중고 책 전문 서점 하프 프라이스 북스(Half Price Books)

 

미국에서는 온라인 서점마다 할인 경쟁을 펼치고 중고 책 서점마저 가세한 덕분에 저렴한 책을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책값을 결정하는 것은 출판사이지만 도서 ‘실거래가’를 결정하는 것은 도서 산업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자유 시장 경제 논리와 책을 대하는 미국인 독자들의 가치관이 아닐까? 대형 서점과 구독 모델 플랫폼은 책의 가격을 가파르게 떨어뜨리고 있고, “책을 값싸게 사는 방법(How to buy cheap books)”이라는 질문에 수많은 팁을 제공하는 독자들은 싼 책을 찾아다니며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한다. 『프랑스 아이처럼』의 저자 파멜라 드러커맨(Pamela Druckerman)은 자신의 뉴욕타임즈 칼럼 〈프랑스인들은 책을 산다. 진짜 책을〉에서 프랑스에서 시행하고 있으나 미국에는 없는 반 아마존 법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단돈 몇 달러와 침대에서 쇼핑하는 즐거움을 위해 우리는 귀중한 천연자원인 우리나라의 책을 엔지니어 학위를 가진 야심 가득한 억만장자에게 넘겨준 것은 아닐까?”7)

 

그 책은 정말로 얼마였습니까?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나라들의 기본적인 공통된 철학은 책을 문화 자산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들은 책, 출판 시장, 독서 활동의 장기적인 건강 증진을 위하여 값싼 책을 사는 단기적인 편리함을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일본의 도서 출판협회 웹사이트에는 책을 국가의 문화 복지를 형성하는 기본 자원으로 명시하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선도했던 독일의 서점협회 회장 하인리히 리트뮐러(Heinrich Riethmüll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과 같은 나라는 군사적 유산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독일 사람들은 문화적 성취를 더욱 강하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은 매우 길고 유서 깊은 출판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 독일에서는 책이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특별한 위치에 놓이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아마존닷컴에서 투데이스 딜스 탭을 클릭하면 A부터 Z까지 알파벳순으로 나열된 수많은 각종 할인 상품 속에 나란히 끼워진 Book 카테고리가 있다. 이처럼 미국 사회와 미국인들이 책을 대하는 방식이 미국의 진짜 책값을 결정한 것일 수 있다. 책값이 저렴하다고 하여 그 안에 담긴 콘텐츠의 가치까지 폄하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책이 일반 상품이 되고, 거대 자본이 제공하는 혜택으로 책을 싸게 사는 것이 당연해진 지금의 경향이 미국의 출판 시장에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가 없고, 한 독자이자 애서가로서 예의 주시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1)
SLJ Staff (2020.5.12.). SLJ’s Average Book Prices for 2020 〈School Library Journal〉.
2)
Moè Nakayama (2015.5.12.). For What It’s Worth: Fixed Book Price in Foreign Book Markets 〈Publishing Trends〉.
3)
Everything you need to know about the e-book lawsuit in one post (2012.4.11.).
4)
Sian Cain (2021.1.15.). Amazon.com and ‘Big Five’ publishers accused of ebook price-fixing. 〈The Guardian〉.
5)
William Gallagher (2021.1.15.). Amazon, ‘big five’ book publishers sued for ebook price fixing. 〈Appleinsider〉.
6)
Andrew Albanese (2021.11.2.). Lawyers Argue that E-book Price-Fixing Case Against Amazon, Big Five Publishers Should Proceed. 〈Publishers Weekly〉.
7)
Pamela Druckerman (2014.7.9.). The French Do Buy Books. Real Books. 〈The New York Times〉.
8)
Roger Tagholm (2014.12.22.). On French and German Attitudes to Book Prices 〈PUBLISHING PERSPECTIVES〉.

신인실

 

신인실(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과장)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였으며, 2016년부터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에서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 영미 지역과 유럽권의 다양한 작품들을 발굴하여 한국 출판계에 널리 알리면서 함께 기획하고 있다.
insilshin@imprim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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