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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1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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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시장에 찾아온 NFT 열풍]
NFT 시대, 출판 콘텐츠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남시현(IT동아 기자)

 

2022. 4.


 

2019년 2월, 영국 소더비스(Sotheby’s) 경매에 뱅크시의 작품 ‘소녀와 풍선(Girl With Balloon)’이 출품됐다. 치열한 경매 끝에 그림이 15억 원에 낙찰되는 순간, 액자 속에 숨겨져 있던 세단기가 작동하면서 그림이 갈려나갔고, 결국 절반만 남게 됐다. 뱅크시는 이 그림에 ‘러브 인 더 빈(Love in the Bin)’이라는 새 이름을 붙이며, 가치도 없는 그림을 고가에 사고파는 미술품 경매 시스템 자체를 조롱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때 세단된 그림은 뱅크시의 정품이지만, 원본은 아니다.

 

뱅크시는 건물의 외벽에 그림을 그리는 그라피티 아티스트로, 벽에 그려진 작품이 진짜 원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훼손되거나 사라지기 쉽기 때문에, 뱅크시와 거리 예술가들은 ‘픽처스 온 월(Pictures on Walls)’이라는 인쇄소를 열었다. 픽처스 온 월은 원본 그라피티가 등장한 이후 해당 그라피티의 복제품을 스텐실, 실크스크린으로 복제해 판매했다. 복제본은 종류에 따라 서명본 100~200매, 비서명본 500~700매 정도가 판매되는데, 지금은 픽처스 온 월이 폐쇄돼 그림이 판매되진 않는다. 앞서 갈려나간 ‘소녀와 풍선’도 여기서 판매된 정품 중 하나다.

 

뱅크시의 작품, ‘러브 인 더 빈’ 원래 ‘소녀와 풍선’이지만 그림이 세단된 이후 뱅크시가 이름을 바꿨다. 출처: 소더비스 영상 캡처


뱅크시의 작품, ‘러브 인 더 빈’
원래 ‘소녀와 풍선’이지만 그림이 세단된 이후 뱅크시가 이름을 바꿨다.
출처: 소더비스 영상 캡처
(https://www.sothebys.com/en/buy/auction/2021/contemporary-art-evening-auction-2/love-is-in-the-bin-2)

 

문제는 그림을 복제하는 일은 솜씨 좋은 작가나 인쇄소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뱅크시는 픽처스 온 월에서 판매된 그림에 대한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페스트 컨트롤(Pest Control)’이라는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사이트는 합법적으로 판매된 뱅크시의 작품에 대한 정품 여부를 확인해주며, 벽에 그려진 원본이 아닌 복제품이 진품으로써의 가치를 갖게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픽처스 온 월에서 내놓았던 복제품은 어디까지나 뱅크시가 직접 만든 복제품일 뿐, 벽에 그려진 원본이라고 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스트 컨트롤’의 정품 판단이 포함되는 것 하나만으로 인쇄본은 고유성을 인정받고 작품으로 거래된다.

 

NFT, 암호화된 원본 키가 있어야만 원본이다

 

NFT(Non-Fungible Token, 대체 불가능 토큰) 역시 뱅크시의 복제품 거래 시장과 비슷한 면이 많다. NFT는 블록체인에 저장된 데이터 단위로, 고유하면서 상호 교환할 수 없는 데이터 단위를 뜻한다. 어떤 데이터든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사진이나 비디오, 오디오, 3D 아트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지만, 복제 및 위조가 불가능한 암호가 증명서로 첨부된 데이터만 원본으로 인정받는다. 데이터 특성상 누구나 NFT에 사용된 데이터를 구해서 쓰거나 보유할 수 있지만, 암호화된 키를 보유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 고유한 소유자로 인정받는다. 누구나 뱅크시의 작품을 인쇄해서 액자로 걸어놓을 수는 있지만, 뱅크시가 인정한 작품만 진품으로 인정받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NFT가 주목받는 이유는 지금까지 경험해온 원본을 증명하는 방식을 기술적으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재화나 작품 등은 진품이나 원본임을 규명하기 위해 비용이나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하지만 NFT는 암호화된 원본 키가 함께 제공되는 것이므로 사람이 눈으로 보고, 성분을 분석하는 등의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곧바로 원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나 실존하는 작품이더라도 원본을 스캔하거나 3D화해서 NFT로 증명하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 NFT의 핵심이다.

 

NFT 시장, 증명 용이한 ‘미디어 아트’ 중심으로 성장

 

세계 최대 NFT 거래소, 오픈씨(opensea) 출처: 오픈씨(opensea) 공식 블로그


세계 최대 NFT 거래소, 오픈씨(opensea)
출처: 오픈씨(opensea) 공식 블로그
(https://opensea.io/blog/announcements/introducing-the-opensea-mobile-app/)

 

누구나 복사해서 가질 수 있는 데이터지만, 오로지 유일한 진품임을 규명하는 NFT의 특성은 전 세계 IT 기업과 자본가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아직까지 활용도가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증명 방식 하나만으로 NFT 거래 시장이 성장하고 있을 정도다. 해외에서는 세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인 오픈씨(opensea), 니프티 게이트웨이 등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카카오의 클립드롭스에서 주로 거래되고 있다. 거래되는 항목은 데이터화가 용이한 일러스트나 디지털 미디어 아트, 인터랙티브 미디어 조각 등 예술 작품 부분에 집중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디지털 의류나 현물 자산을 NFT화한 거래 증명, 디지털 카드 등 더욱더 다양한 항목에 NFT가 적용되고 있다.

 

NFT의 응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아직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지는 않은 터라 시장 자체는 크게 세 갈래로 형성되고 있다. 하나는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를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 기술 시장, 다른 하나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현물의 원본 여부를 규명하고 분할해서 소유하는 등의 응용 시장이다. 두 시장은 기술 활용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반면 NFT 재화를 거래하고 경매하는 시장은 조금은 다른 성격을 띤다. NFT 경매 시장은 기술의 개발과 발전보다는 소유에 대한 욕구를 충족하는 데 우선시하며, 상업성이 짙다. 대신 NFT 경매 시장은 다른 두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매일: 첫 5000일(THE FIRST 5000 DAYS)’ 출처: 크리스티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의 ‘매일: 첫 5000일(THE FIRST 5000 DAYS)’
출처: 크리스티(https://onlineonly.christies.com/s/beeple-first-5000-days/beeple-b-1981-1/112924)

 

세계적인 경매 회사 크리스티가 좋은 사례다. 크리스티는 256년 역사를 자랑하며, 해외 46개 국가에 지사를 두고 80개 이상의 카테고리의 품목을 경매한다. 그런 크리스티가 지난 3월, NFT로 제작된 비플(Beeple)의 디지털 아트인 ‘매일: 첫 5000일’을 온라인 경매를 통해 6,930만 달러에 판매했다. JPG 한 장에 대한 원본 증명이 약 830억 원에 낙찰되자, 전 세계 관련 업계의 이목이 단숨에 NFT 시장으로 쏠렸다. 덕분에 더 많은 품목을 NFT화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한 기술 개발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경매 시장 자체가 NFT에 기여한다기보다는, NFT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다른 시장에 동기를 부여하는 셈이다. 문제는 현재의 경매 및 응용 시장 모두 디지털 아트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출판 업계와 NFT와의 접점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NFT 시장의 한계에서 출판 시장과의 접목 가능성이 시작

 

출판 업계가 NFT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고질적인 시장 정체를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업 그랜드뷰리서치가 조사한 전 세계 책 시장 규모는 2020년 1천 321억 달러(한화 약 163조)며, 2028년까지 매년 2.4%씩 복합적으로 성장하리라 예상된다. 하지만 2028년까지 매년 2.4%씩 성장한다는 의미는 소비자의 구매력 상승은 거의 늘지 않고, 물가상승률에 따른 성장 정도만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일부 시장 조사기관은 최근 5년간 출판 시장의 성장률을 0%로 잡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지금의 현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않으면서도, 주목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이 바로 NFT를 접목하는 것이다.

 

배수연 시인이 오픈씨(opensea)에 출품한 『쥐와 굴』 경매 내역 출처: 오픈씨(opensea)


배수연 시인이 오픈씨(opensea)에 출품한 『쥐와 굴』 경매 내역
출처: 오픈씨(opensea)
(https://opensea.io/assets/0x495f947276749ce646f68ac8c248420045cb7b5e/34522892632756766764653243278613732703025603911530128546381731073504005062657)

 

NFT가 가장 빠르게 도입될 수 있는 부분은 희소성 있는 서적에 대한 취급이다. 일반적인 하드카피 서적의 가치는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해당 도서가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했을 경우, 그 책의 초판본이나 1쇄본은 책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희소성을 띠게 된다. 이 부분이 바로 NFT 시장에서 그토록 원하는 소유에 대한 욕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국내에서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5월, 배수연 작가는 시집 『쥐와 굴』의 1쇄를 NFT로 만들어 ‘오픈씨(opensea)’에 출품했다. 국내 문학 작품을 NFT화하여 거래한 것은 국내 문학 역사상 처음이다.

 

해당 NFT의 최종 낙찰가는 2.94 이더, 한화 약 900만 원을 기록했다. 해당 서적의 정가가 9천 원임을 감안하면 1천 권을 단번에 판매한 셈이다. 배 시인이 2013년 등단한 후 두 권의 시집 『조이와의 키스』와 『가장 나다운 거짓말』의 인세로 총 900만 원을 벌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NFT를 통해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만약 『쥐와 굴』이 더욱 유명한 작품이 되거나,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는 작품이 된다면 NFT의 가치도 덩달아 뛸 것이다. 기존에 출판 시장에 없던 가치가 NFT를 계기로 새롭게 창출된 순간이다.

 

NBA 탑샷은 저작권이나 소유권이 아닌, 경기 자체의 순간을 NFT로 취급한다. 출처: 대퍼랩스 홈페이지


NBA 탑샷은 저작권이나 소유권이 아닌, 경기 자체의 순간을 NFT로 취급한다.
출처: 대퍼랩스 홈페이지
(https://nbatopshot.com/listings/p2p/12a8288a-addc-4e5c-8af7-b3ba6e5161d4+4c58ee46-29cf-4aa6-9be0-0377ca2e6323)

 

아울러 책의 문장이나 낱장을 NFT로 거래하는 현상도 출현할 수 있다. 하드카피를 NFT로 거래하는 게 아닌, 말 그대로 문자 자체를 거래한다는 의미다. 미국의 블록체인 기업 대퍼랩스(Dapper Labs)는 실제 NBA 경기 중 포착된 다양한 순간을 카드 형태로 제작해 판매한다. 구매자는 프로농구 경기 장면 중 10초가량이 담긴 순간을 NFT로 거래할 수 있다. 경기 자체의 녹화본이나 저작권을 거래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어떤 경기의 한 순간의 유일성을 거래하는 것이다. 저작권도 아닌 카드를 거래하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생각할 순 있지만, 대퍼랩스의 작년 매출액은 8억 8천 달러에 달한다.

 

대퍼랩스의 사례는 NFT를 활용해 책에 담긴 의미 자체를 가치로 만들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의 출판 시장은 문학적 가치를 거래하기보다는, 문학적 명성을 토대로 책을 팔아서 수익을 올린다. 하지만 책의 저작권과 무방하게 책에 있는 문장이나 단어를 NFT로 거래할 수 있는 단위로 만든다면, 또 다른 2차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 사람들은 유명 서적의 멋진 문장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 NFT를 거래할 것이고, 작가나 출판사가 지분을 갖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테사는 블록체인 기술로 실물 미술품의 소유권을 분할해 취급한다. 출처: 테사 블로그


테사는 블록체인 기술로 실물 미술품의 소유권을 분할해 취급한다.
출처: 테사 블로그(https://blog.naver.com/artbloc/221905934887)

 

또 하나의 가능성은 책 자체의 지분을 NFT로 나눠 갖는 방안이다. NFT의 근간이 되는 기술인 블록체인은 모든 참여자가 거래 내역을 공유해 상호 지분을 증명하는 방식이다. 이 특성 덕분에 특정 재화의 소유권을 분할한 뒤 나눠 갖는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아트테크 기업 ‘테사(TESSA)’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미술품의 소유권을 분할한 뒤, 이를 공동의 투자자들에게 나눠서 배분하는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원래 미술품 경매는 기업이나 개인이 작품 자체의 원본을 구매하는 방식이지만, 테사는 사들인 미술품의 지분을 천 원 단위로 잘게 쪼갠 다음 거래한다. 같은 맥락으로 책 자체의 존재를 NFT로 만들어 분할 거래하거나, 펀드처럼 분할 투자하는 방식으로 응용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시장 증명이 관건

 

관건은 출판 시장에서 생성한 NFT가 기존 NFT 시장에서 얼마나 인정받는가에 달려있다. 우리가 책을 사는 이유는 종이나 잉크가 가치 있어서가 아니라, 책에 담긴 문자와 의미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데이터인 전자책이 금전적인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이유도 문자 자체가 가치를 갖고 있어서다.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매체의 차이가 존재할 뿐, 글 자체의 힘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의 NFT 시장이 글이 지닌 힘에 거래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를 내려야 출판 업계도 NFT 시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세계 최초의 NFT 소설인 『머메이드 이클립스』 하지만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시장에서 전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출처: Mintable


세계 최초의 NFT 소설인 『머메이드 이클립스』
하지만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시장에서 전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출처: Mintable
(https://mintable.app/collectibles/item/MERMAID-ECLIPSE-BOOK-1st-Edition-NFT-Novel/20_gfteNeQDRrGT)

 

지난해 3월, 세계 최초의 NFT 소설인 『머메이드 이클립스』가 출간됐다. N.E. 칼라일이 만든 이 NFT 서적은 완전한 원고와 전체 원본의 삽화 서명 사본이 담긴 디지털 데이터로, 출시와 동시에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머메이드 이클립스』는 세계 최초의 NFT 서적이라는 타이틀을 달고도 거래가 되지 않았다. 상징성에 비하면 높다고 보기 어려운 5만 6천 달러에 책정됐음에도 주류 시장의 주목을 전혀 받지 못했다. 『머메이드 이클립스』의 실패 사례는 출판 업계의 NFT 진출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특이성이 없는 NFT의 남발은 주목받지 못하며, 소유욕을 자극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질적인 가치가 없는 디지털 카드나 일러스트만으로도 사람들이 소유할 만한 가치를 충분히 느낀다는 점은 증명되었으니, 앞으로 어떻게 출판 업계와 NFT를 엮을 것인가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남시현

 

남시현(IT동아 기자)

세상은 점점 더 가까워지고, 기술은 우리를 연결합니다. 겪어보지 못한 세상에서 길 잃는 이가 없도록 모두를 위한 글을 씁니다.
sh@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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