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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  20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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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이 보는 출판]
나의 이름으로 일하고 싶은 세대

 

 

 

김세나(퍼블리랜서 운영자)

 

2019. 11.


 

 

 

나를 위한 ‘존버정신’ 세대

 

“오늘 이거 함께 진행하려면 늦게까지 있어야 하는데 괜찮을까?” 편집팀장이 조심스레 신입사원에게 물었다. “네, 괜찮습니다.” 여기까지는 여느 세대와 별로 다르지 않은 신입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던 팀장에게 신입은 곧바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제가 성장할 수 있는 야근이라면 괜찮습니다.”

 

당찬 신입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는 한 출판인의 이 이야기가 나는 지금의 2030세대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했다. 흔히들 2030세대 하면 회사 일보다 나를 더 중시하기 때문에, 야근이라면 무조건 싫어할 거라고 짐작한다. 한참 잘못 봤다. 자신을 가장 중시하기에 성장의 기회라면 야근도 마다 않는 게 바로 지금의 2030세대다.

 

단,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다. 그것이 성장의 기회인지는 내가 정한다는 것! 강요되는 열정과 성장은 절대 사절이다. 된장도 내가 먹을 때나 된장이지, 회사가 떠먹이는 된장은 그들에겐 똥이나 다름없다.

 

직업관부터 그들은 이전 세대와 다르다. 이전 세대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좋은 책을 만든다는 신념 하나로 버틸 수 있었다면, 2030세대는 회사의 발전과 출판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끝까지 버티는 ‘존버정신’ 따위는 없다. 오로지 자신, 그러니까 개인의 발전을 위한 ‘존버정신’만 있을 뿐이다.

 

일이 힘들어도 끝까지 해내려면 셋 중 하나는 충족되어야 한다. 돈을 많이 주거나, 노후를 확실히 보장하거나, 재밌거나! 그런 눈에 비친 출판계 사정은 어떤가. 작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연봉, 이번에 또 이직했다는 전 직장 동료, 퇴근길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자기 얼굴. 사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도 없다.

 

 

 

2030 눈에 비친 출판계 풍경

 

우스갯소리로 ‘잉크만 찍혀도 책이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유명한 출판사는 대부분 그 시절 책을 냈던 곳이다. 지금의 규모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건 그곳에서 청춘을 보낸 이들의 노고 덕분이기도 하지만, 시대를 잘 타고난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은 출판시장 전체가 커지지 않으니 ‘대표’라고 해서 별수 있겠는가. 자기 뱃속만 불리는 악덕업주도 있겠지만, 살아남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는 대표들이 더 많다.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고 욕하던 이들도 막상 사직서를 던지고 출판사를 차리면 그 쥐꼬리만 한 월급도 주기 어려워 1인 출판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용이 없으니 실업자와 프리랜서만 늘고, 이들은 또 어쩔 수 없이 한 줄기의 희망을 품고 1인출판사를 차린다. 악순환이다. 창업률로 따지면 치킨집 다음이 출판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프리랜서나 1인출판사가 모두 밀려나듯 그 길을 택한 것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프리랜서를 택한 이들도 많다. 이전 세대에게는 한 직장에 오래 일하면서 승진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다. 그래서 프리랜서라고 하면 걱정스러운 눈빛부터 보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일찍 프리랜서를 선언한 동료를 부러워하는 2030 출판인들이 많다.

 

실제로 직장에서 인정받는 능력자임에도 자진 퇴사를 결행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어차피 정규직으로 취직해도 미래가 불안하다면 한 살이라도 어리고 열정이 남아 있을 때 자기 일을 시작해보자는 것이다. 딱히 연봉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면서 야근과 온갖 잡무가 웬 말인가. 이들은 ‘워라밸(워크라이프 밸런스)’을 이룰 수 없다면, 돈을 덜 벌더라도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기를 선호하는 세대다.

 

출판사들 역시 고정비용을 줄이려고 정규직을 최소화하고 프리랜서와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려는 게 요즘 추세이기도 하다. 조직 생활에 거부감이 있는 2030세대는 평생직장보다는 언제 어디서든 노트북만 있으면 일할 수 있는 디지털 노마드를 꿈꾼다. 단기간 일에 집중하고 일이 끝나면 쉬다가 또다시 새로운 프로젝트를 받아 진행하는 프리랜서. 발음도 아름답다. 프, 리, 랜, 서! 유음 ‘ㄹ’이 랄랄라 하고 “나 자유로워요” 하고 흘러가는 것만 같다. 하지만 현실도 그런가.

 

 

 

2030이 출판에 등을 돌리는 이유

 

얼마 전 내가 운영하는 〈퍼블리랜서(publilancer.com)〉의 오프라인 모임을 준비하면서 신청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신청자는 대부분 2030 편집자들이었는데, ‘출판 일을 하면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시나요?’라고 물어봤다. 7년 차 미만 편집자들의 답변이 무척이나 참담했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롤 모델이 없어요.”
“사람을 갈아 넣는 노동구조, 상사 및 저자의 감정 쓰레기통, 적은 페이.”
“점점 축소되는 출판 시장, 다른 분들은 플랜B를 생각하고 계시진 않은지.”
“다니고 싶은 출판사를 찾기 힘듭니다.”

 

10년 차 이상 편집자들의 답변은 좀 달랐다. “점점 좁아지는 저자 풀이 고민”, “한정된 시간을 쪼개어 책을 잘 만드는 방법”, “팀장의 역할은 어디까지일까”, “출판 일은 왜 달인이 되기 어려울까” 등등. 높은 연차의 편집자라고 사양 산업일지도 모르는 출판시장에 몸담고 있는 것이 왜 불안하지 않겠는가. 다만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이들은 현실과 타협했을 가능성이 높다. 10년 이상 해왔던 일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일을 도전하기란 쉽지 않으니, 그간의 경험과 연륜을 활용해 어떻게 출판계에서 살아남을지 고민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2030이 출판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것은 비단 독자가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판에서는 젊은 세대가 미래를 꿈꾸기 어렵기 때문 아닐까. 출판계의 다양한 사람과 일을 연결하는 플랫폼인 〈퍼블리랜서〉를 굳이 만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로운 인재들이 출판에서 새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기존 의 유능한 인력의 이탈도 막을 수 있다.

 

2030세대에게 출판계를 떠나는 이유를 물으면 무엇보다 일이 재미없어서라고 토로한다. 오해하지 말자. 책을 만들고 독자에게 전하는 일이 재미없다는 게 아니다. 자신의 업을 둘러싼 현실의 일상이 지루하다는 말이다. ‘재미’라는 게 반드시 연봉, 일의 양, 적성 등에만 좌우되는 건 아니다. 그들이 재미없다고 하는 건, 그 일을 지속적으로 해나갔을 때 그려지는 미래 모습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뜻이다.

 

물론 좋은 책 만들면서 돈도 제법 벌고 즐겁게 명예로운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 동료나 가까운 선배라기보다 대부분 출판이 호황이었던 시절에 이 일을 시작하여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대표급 인사들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출판사를 차린다고 해서 그들처럼 자기에게도 성공의 기회가 올 것 같지 않다. ‘출판의 미래’나 ‘출판 트렌드’ 등을 아무리 이야기한들, 더 늦기 전에 이 판을 떠야 하나 고민하는 2030 출판인들에게는 다 남의 이야기 같다.

 

출판계에는 정말 롤 모델이 없고 미래가 없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많은 롤 모델이 존재하고, 얼마든지 콘텐츠업을 이끌어나갈 주역으로서 책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과 즐겁게 미래를 그릴 수 있다고 본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한번 이야기해보려 한다.

 


퍼블리랜서


 

 

 

 

나는 왜 출판이 재미있었나

 

나는 한 출판전문지의 편집자였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출판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이 무슨 생각으로 자기 일을 하고 있는지, 또 책을 중심으로 어떤 재밌는 일을 벌이고 있는지 들을 기회가 많았다. 내가 접한 개개인 모두가 롤 모델이 될 수는 없었으나, 그들의 모든 경험은 롤 모델로 삼기에 충분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돈을 더 버는 것도 아니었고 일상도 더 없이 바빴지만, 출판을 둘러싼 그 일에는 분명히 ‘재미’가 있었다.

 

그 뒤에는, 책 만드는 건 해봤으니 이번엔 책을 재미나게 팔아보자 싶어 독립서점 창업에도 도전했다. 책과 함께 50여 종의 세계맥주를 큐레이션했고, 북&베드(book & bed)도 국내에선 처음으로 시도해봤다. 자연스럽게 북콘서트 기획과 진행도 같이 맡아서 했다. 201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리랜서로 활동했다. ‘BOOK쎄니’라는 개인 브랜드를 쌓아가며 각종 출판 프로젝트 기획은 물론 행사 진행도 맡아 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았다. 프리랜서는 결코 프리하지 않으며, 직장 동료가 없으니 상의할 사람도 마땅치 않아 치열하게 외롭다는 사실! 이런 고민만 해도 그나마 배부른 소리다. 주변엔 불안정한 수입에 고생하는 이들은 물론, 작업의 대가조차 제대로 받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프리랜서들이 많았다. 인맥이 없으면 실력이 좋아도 손가락을 빨고 있어야 하는가 하면, 작업비를 떼이고도 노동청에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외주 계약 위반에 대해서는 민사소송을 진행해야 하는데 소송비용을 생각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크기 때문이다. 심지어 계약서도 없어서 일로 주고받은 문자 캡처가 증거 능력이 되는지 알아보느라 반나절을 보내기도 한다.

 

경험이 적은 2030 프리랜서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 절박하다. 현실을 모르니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다. 회사는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고, 근로자는 두 사람 몫의 일을 혼자 하느라 영혼이 사라져갔고, 프리랜서는 일이 없어 죽어간다.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까.

 

 

 

작은 연결로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세대의 출판

 

〈퍼블리랜서〉 커뮤니티는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일단 작은 연결부터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2018년 9월 첫 모임이 열렸다. 매회 주제를 달리해, 연차 상관없이 자기 업에서 뭔가를 이뤄가는 실무자를 섭외해 발제를 부탁했다.

 


퍼블리랜서 모임


 

 

우리는 커다란 담론보다는 작은 서사를 만들어가길 기대한다. ‘저 사람은 나와 연차가 비슷한데 저런 생각과 시도를 하면서 일하고 있구나’ 하고 건강한 자극도 받았으면 한다. 내가 그랬듯, 누군가는 그러한 시간을 통해 자기가 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고 새로운 출판 모델을 만들어 나갈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출판의 미래를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궁극적으로 출판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직원의 능력이 향상되고 유명해지면 회사를 나갈까 봐 걱정하는 대표들이 있다. 그래서 일과 관련된 행사나 기고가 아니면 참여를 제한하는 곳도 종종 있다. 2030 출판인들은 그런 회사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딴 짓을 장려하는 문화가 훨씬 효과적이다. 2030들은 인정욕구가 강한 세대 아니던가. 유명해질수록 자기 이름에 걸맞게 일도 제대로 잘하고 싶어 할 것이다. 그들의 딴 짓이 알려질수록, 그리고 그들이 즐겁게 일할수록 세상은 그러한 인재를 키워낸 회사를 눈여겨볼 것이다. 채용공고를 내지 않더라도 또 다른 인재가 모여드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 한 출판사의 채용에 관해 취업준비생들의 문의가 빗발친 적이 있다. 그들에게 그 출판사의 연봉이나 근무조건 등은 그리 중요한 사안이 아니었다. 그 출판사에는 딴 짓도 종종 저지르며 일도 놀이처럼 즐기고 있는 다른 직원들이 있었다. 그게 그 출판사의 강력한 무기이고 자산이었다. 그런 그들이 회사를 나가 멋진 프리랜서로 도약한다면, 그 역시 얼마나 보람되고 기쁜 일인가. 다른 형태로 회사와 관계를 맺고 파트너로서 새롭게 일하면 되는 것이다.

 

외주 시장이 커질수록 양극화는 심해진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려 개인 브랜딩에 성공한 프리랜서는 고급 프로젝트를 골라가며 일할 테고, 그렇지 못한 프리랜서는 극심해진 경쟁에서 밀려나 지금보다 더 헐값에 일을 구하는 처지가 될 것이다. 지금의 2030 출판인들이 자기가 하는 일의 레퍼런스를 만들어가며 더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려야 하는 이유다. 그들의 커리어 인생을 평생 책임져줄 수 없다면, 매년 만족할만한 연봉 협상을 해줄 수 없다면, 부디 그들이 마음껏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지지해 달라. 2030세대의 애사심은 거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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