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0 2022. 03.
[2021 국민독서실태조사가 말해주는 것]
이정수(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초빙교수)
2022. 3.
올 초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한 것인데, 지난 1년간 성인의 종합 독서율은 47.5%, 연간 종합 독서량은 4.5권으로 2019년에 비해 각각 8.2%p, 3권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이 대외활동을 줄이고, 재택근무나 재택학습을 하였기 때문에 독서 활동이 늘어났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조사 결과는 의외였다.
2020년 코로나19로 공공도서관이 휴관했을 때 무인대출반납시스템인 스마트도서관을 비롯하여 사서들이 워킹 스루, 택배 및 예약 대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출 서비스를 하였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한 2021년에는 종이책과 전자책의 대출이 모두 증가하였기 때문에 독서율이 증가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지난 1년간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성인이 두 명 중 한 명이 되지 않는 수치로, 성인 독서율이 50% 미만인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마침 작년에 조사한 〈코로나19와 읽기 생활 변화〉 보고서가 있어 읽어보았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국민의 읽기 활동은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증가한 것이 맞다. 청소년이나 대학생들의 디지털 매체 읽기가 증가하였고, 인터넷 서점 이용, 유튜브 등 책 관련 영상 이용, 인터넷 정보 및 오디오북, 전자책 이용, 온라인 독서 모임 등의 활동도 늘어났다. 그러나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평소에 독서 습관이 있었던 사람은 이전보다 더 많이 읽고, 읽지 않던 사람은 여전히 책을 멀리하는 독자와 비독자의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고 한다.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에게 코로나19는 읽기와 독서 활동을 더욱 위축시켰다. 예전에 농담처럼 앞으로 사람들은 읽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뉠 것이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된 것 같아 씁쓸하다.
정부, 출판이나 서점계, 도서관 현장 모두가 독서 인구를 늘리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독서대전을 펼치고, 기초 지방자치단체마다 책 축제가 열린다. 지역서점 인증제나 북페이북 제도를 실시하고, 공공도서관은 인문 독서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독서회 활동도 적극적이다. 또한 민간 차원의 독서운동도 수십 년간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독서율은 왜 하락하는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로 디지털 환경에서 책을 읽지 않아도 웬만한 정보는 얻을 수 있는가 하면, 먹고살기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어서라고 한다. 독서 진흥을 하는 사람들은 “유튜브 보는 것과 책 읽는 것은 정보의 신뢰나 깊이 측면에서 차원이 다르다”고 말하지만, 이미 넷플릭스나 유튜브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 그 말은 쇠귀에 경 읽기와 같다.
매번 독서실태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하락하는 독서율에 실망하며 지금까지의 독서운동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 되짚어 본다. 차라리 “책 읽지 말자”는 운동을 한다면 사람들이 청개구리처럼 책을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한다. 예로부터 우리는 책을 사랑하고, 세계기록문화유산과 같은 훌륭한 기록물을 남긴 우수한 민족이므로, 몸 안에 잠재된 ‘책 읽는 DNA’를 살짝만 건드리면 될 것 같은데 안타깝기만 하다.
책 읽는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질문을 던지기 전에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던져야 할 것 같다.
박태웅의 『눈 떠보니 선진국』은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사회가 어떻게 변신해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책이다. 작년 7월에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선진국이 되었다. 스위스 제네바 본부에서 열린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제68차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한 것이다. 1964년 유엔무역개발회의가 설립된 이후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것은 대한민국이 처음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의 폐허로 한때는 아프리카의 국가보다 더 가난했다. 그런 나라가 이제는 GDP 10위, 군사력 6위의 위상을 자랑하고 BTS를 비롯하여 국제무대를 휩쓰는 영화 등 한류 문화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선진국이 되었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것은 아마 급속한 경제 성장 이면에 우리 사회의 어두운 측면이 크게 느껴져서일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여러 조건과 개선할 점을 제안하는데, 그중 중산층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과 OECD의 실질문맹률에 근거하여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하자’가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읽기, 듣기도 잘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확인하며 대화하는 교육을 통해서 토론까지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토론이라고 하면 말싸움이 되고, 승패를 묻게 되는 것도 ‘듣기’ 교육의 부재 탓이라는 것이다.
중산층 얘기를 하니 기억나는 것이 있다. 미국이나 영국 사람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기준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를 돕고,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불의에 대처하고, 정기적으로 비평지를 구독하는 것 등이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부채 없이 30평 규모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월 급여 5백만 원 이상을 받으며, 중형자동차를 소유하고, 예금 잔고는 1억 원 이상인 사람을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정신적인 풍요보다 물질을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이 삶의 목표가 될 것이다. 계층의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가 이런 인식을 갖게 했는지 모르겠다. 가치관이 이러하니 정신의 부자가 되는 독서는 뒷전이고, 문해력은 떨어지고, 남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고, 토론할 시간에 자기주장만 펼치며 타인을 조롱하는 경박한 행위마저 서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사회의 격을 올리고 품위를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꾸준히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사고하는 힘을 키우며, 지식 공동체를 경험함으로써 탐구하고, 협력하고 상생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책 읽는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평소 생각한 점들을 이야기해보겠다.
먼저 독서정책의 추진체계를 정비하는 것이다. 공공도서관은 소장 장서와 정보를 기반으로 시민에게 서비스하는 기관으로 출판·서점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문화체육관광부 조직도를 보면 미디어정책국 산하에 출판인쇄독서진흥과가 있고 문화예술정책실에 소속된 지역문화정책관 아래 도서관정책기획단이 있다. 공공조직에서 같은 실국이라도 과나 팀이 다르면 칸막이 행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처럼 실국이 다를 경우 정책의 지향성이나 통합성 등 최상의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서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서 출판인쇄독서진흥과는 도서관정책기획단과 실과 바늘처럼 한 조직에 소속되어야 한다.
서울시의 경우 서울도서관이 출판과 서점 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에 직원들의 불만이 없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도서관의 공공성과 출판과 서점의 상업성이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향점의 상충 문제보다 출판·서점과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지원책을 고민했으며 책문화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서울서점인대회를 개최하고, 서울형책방을 선정하여 지원하였으며 공공헌책방인 서울책보고를 운영하여 새로운 책문화공간을 조성하였다. 출판이나 서점 대표들이 공공도서관 관장이나 사서들과 자주 만남으로써 시민을 위한 좋은 독서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했다. 도서관과 서점, 저자와 독자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따라서 독서정책 조직도 재편되어야 할 것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리자면 저자-출판-서점·도서관-독자에 이르는 책문화생태계를 전담하는 조직, (가칭)지식문화청을 만들면 어떨까.
서울서점주간 포스터
서울책보고 입구
두 번째는 공공도서관 및 독서에 관련된 제도의 혁신이다. 장서 개발(Collection Development)은 공공도서관의 핵심 업무이다. 이는 당대의 모든 출판물을 수집하여 사람들이 이용하도록 하고, 후대를 위해 보존하기 위한 일이므로 보존과 이용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장서 구입 예산이 없어 인기도서조차 복본을 구입할 수 없으며, 지역 서점에서 도서를 공공구매하여도 매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한번 이용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책을 많이 읽으라면서 공공도서관에 가면 신간이 없거나 이미 대출되어 없다. 경제적 능력이 있다면 책을 사서 보겠지만 책값이 없어도 책을 읽고 싶은 기특한 이용자에게 책 읽을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중대형 공공도서관은 책의 보존 기능을 부여하고, 규모가 작은 생활밀착형 도서관은 이용자가 원하는 책을 복본으로 구입하게 하자. 그리고 일정 기간 후에는 자유롭게 폐기할 수 있어야 한다. 또 한 가지 문제로 도서 구입의 예산항목을 들 수 있다. 도서관 장서(종이책)는 예산항목이 자산취득비라서 재물이기 때문에 사서는 도서의 분실이나 연체를 관리해야 한다. 책의 폐기는 법에서 연간 7%로 제시하지만 폐기율이 높으면 불필요한 책을 샀다고 여기저기서 지적받는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관행대로 행하던 제도를 정비하여 독자들에게 책 읽는 경험을 더 제공하고, 공공도서관은 소장 도서의 관리 책임 및 서고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등 행정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제고할 때가 되었다.
세 번째 제안은 북스타트 독서운동을 통한 보편적 독서복지의 실현이다. 북스타트 독서운동의 주 대상은 영·유아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은 양육자와 책놀이 활동가까지 전 연령층이다. 따라서 북스타트는 모든 이를 위한 독서운동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전국에서 북스타트에 참여하는 취학 전 어린이는 약 12만 명에 불과하다. 이를 전국 모든 지역에서 실시하여 보편적 독서복지를 이루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는 습관을 키우면 읽기, 듣기, 말하기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사고력, 지구력, 창의력이 좋아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도서관 현장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거의 매일 도서관에 오는 젊은 엄마들이 종종 눈에 띈다. 아이를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고 도서관에서 매일 책을 보며 오전 시간을 보내는 분들도 계시다. 그런 분들을 유아열람실에서 자주 만나다 보면 아이들과 엄마들은 어느새 친구가 된다. 핵가족 시대에 조부모를 자주 만나지 못하는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할머니는 조부모 역할을 하고 젊은 엄마들의 멘토가 되기도 한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의 생애 첫 독서공동체, 엄마들의 육아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이는 어느새 한글을 깨치게 되고, 예의를 배우며 도서관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이 아이들이 계속 책 읽는 습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북스타트 독서운동의 대상 연령을 확대해야 한다. 유치원, 초등학교에 가도 도서관 독서회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기주도 학습이 몸에 배어 있다. 엄마들은 또 어떤가. 아이들 ‘때문에’ 공공도서관을 찾았지만, 아이들 ‘덕분에’ 책을 읽게 되고, 동아리 활동을 한다. 책 읽는 엄마는 아이들의 양육 태도도 다르다. 초등학교 3, 4학년만 되어도 학원에 가야 한다고 독서회 활동을 중단하는 경우가 꽤 있지만, ‘책 읽는 엄마’들은 사교육을 많이 시키지 않는다. 대신 책을 더 많이 읽히고,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하게 한다. 도서관에서 꾸준하게 독서회 활동을 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인문 영재로 뽑히고, 수시 논술을 훌륭하게 치러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사례도 많이 보았다. 또한 엄마들도 성장한다. 매주 인문학 강의를 듣고 토론하면서 인문학 강사가 되기도 하고, 청소년 지도사로 활동하기도 한다. 이들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다 보니 삶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런 사례가 더 많이 나와야 책 읽는 사회가 될 것이다.
북스타트 책 읽어주기(출처: 북스타트코리아 https://bookstart.org:8000)
또한 가정에서의 독서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사람들의 실질 문해력은 세계 꼴찌이다. 요즘에는 코로나19로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고 디지털과 인터넷에 익숙해져 문해력이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2021년 12월에 공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학업성취도 평가(PISA)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의 읽기 영역 평균 학업성취도는 2009년 639.29점에서 2018년 515.72점으로 무려 123.57점이 하락했다. 학생들이 독서를 하지 않기 때문에 복합적 텍스트 읽기와 문제 해결적 읽기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책 읽는 가족’ 독서운동 캠페인을 더 적극적으로 펼치고, 대중매체를 통해 홍보하고 참여를 독려해야 한다.
최근에 대한출판문화협회 건물에 커다란 현수막이 등장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고 절절하게 호소하는 것 같다. 대통령이 되어서 책을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책의 가치를 알고 책을 읽어 온 훌륭한 대통령이 좋은 독서정책을 추진하기를 희망한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책 읽고, 토론하는 사회가 선진국이다. 사회지도층이 읽은 책을 사람들과 수시로 이야기하고, 함께 책 읽기를 권해야 한다. 책 읽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고, ‘책 읽는 사회’를 통해 성숙하고 단단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책 읽는 사회’를 만드는 것, 구호가 아니라 실행이다.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현수막
이정수(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초빙교수) 한국경제신문 기자, 서대문구립도서관 관장, 서울도서관 관장, 숙명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동국대학교 미래융합교육원 초빙교수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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