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6 2022. 09.
[따로, 또 같이: 출판사들의 협업]
박중혁(흐름출판 마케팅팀 과장)
2022. 9.
시작은 합정의 어느 어둑한 술집에서였다. ‘코로나’란 단어가 있기도 전, 알음알음 홍보 마케터 열댓 명이 모였다. 안면도 없는 사람들 다수가 모인 곳에서 안주는 자연스레 회사가 되었다. 책 이야기부터 회사 복지, 빌런의 유무, 새로운 마케팅 방식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맥주의 김이 빠진 줄도 모르게 이어졌다.
그러다 SNS 이야기가 나오자 활기를 띠었다. 홍보 마케터에게 SNS 성과는 곧 자신의 성과이기에 주된 관심사였다. 시도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나 트렌드 분석, 타 업계에서 인기를 끈 방식 등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출판사 공식 SNS에서 지루한 콘텐츠를 반복 생산하는 마케터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다들 눈이 반짝였고, 서로의 이야기에 살을 덧붙이고 있었다. 취기는 아이디어를 산으로 이끌었으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무궁무진한 기획을 옆에서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했다.
넘치는 의욕을 실현할 방법은 없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홍보 마케터에게는 SNS라는 공통 공간이 있고, 책이라는 콘텐츠도 동일하다. 서로 같은 조건에서 도서 홍보라는 목적하에 독자의 관심을 끌 방법을 궁리하다 문득 ‘다른 출판사 SNS에 우리 책이 나오면 어떨까?’라는 호기심이 들었다. 그렇게 모임 다음날, 연합 이벤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마케터들끼리 사장님 몰래 하는 이벤트 시리즈
마케터들끼리 사장님 몰래 하는 이벤트
기본적으로 독자 참여를 이끌 수 있는 이벤트 형식을 구상했다. 그리고 추가적인 것들을 보완해나갔다. 엄지 한 번에 쓰윽 넘겨지는 수많은 콘텐츠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눈에 띄어야 한다. 글이 재밌거나, 이미지가 웃기거나, 신선한 방식이 필요했다. 그렇게 ‘출판사 마케터들끼리 사장님 몰래 하는 이벤트’라는 솔깃한 문구를 달고, 마케터 캐릭터를 생성했다. 그리고 댓글을 통한 대결 구도를 넣었다.
첫 번째는 문학테라피와의 연합 이벤트였다. 도서의 결이 다르면 독자들이 이벤트 당위성에 의문을 느낄 수 있기에 신간 중 비슷한 내용(동물권, 미래 식량)의 도서를 선택했다. 같은 콘텐츠를 제작한 뒤 시간을 정해 흐름출판과 문학테라피의 SNS에 동시 발행했다. 그리고 댓글로 ‘문학테라피 도서보다 흐름출판의 도서가 재밌을 것 같은 이유’를 받았다(문학테라피 SNS에서는 반대로 진행). 플랫폼별 이용 독자를 고려해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동일하게 게시했다. 기존의 댓글 이벤트에서 경쟁 구도만 덧붙였는데 독자들의 엄청난 호응이 따라왔다. 그렇게 (실제로 사장님 몰래 진행한) 첫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두 번째부터는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첫 번째 이벤트가 우수 사례여서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출판사 섭외 과정도 없어졌다. 다른 출판사에서 먼저 제안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서의 결이 비슷하고, 카드뉴스 제작이 가능한 출판사라면 함께 진행했다. 여건이 어려웠는데도 마음의숲, 국일미디어, 비룡소, 에디트 등 모든 출판사 마케터들이 흔쾌히 캐릭터와 이미지를 제작해주었다.
사장님 몰래 하는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독자 참여도였다. 재밌는 콘텐츠라도 반복하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다. 다섯 번의 이벤트가 진행될 동안 독자 참여도를 떨어트리지 않는 게 관건이었다. 시리즈 특성상 큰 틀은 바꾸기 어려웠고, 그 이외의 것들을 조금씩 변형했다. 첫 이벤트 이후 택배비 몰아주기, SNS 1회 이용권, 책 두 배로 주기 등 리워드 방식을 바꿔가며 독자들의 관심을 이어 나갔다. 독자의 호기심을 끈 뒤 참여를 높여, 책을 한 번이라도 더 보도록 하는 게 이벤트의 목적이기에 독자 참여(좋아요+댓글) 추이를 지속해서 살폈다. 다행히 모든 이벤트가 독자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다섯 번의 이벤트 이후 여러 곳에서 제안이 왔지만, 더 진행하지 않았다. 스스로 지루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동일한 방식으로는 더 이상 신선함을 주기 어려웠다. 독자 참여도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머리를 싸매고 변주를 주기보다 과감히 포기하고 새로운 연합 이벤트를 기획하는 게 빠르다고 판단했다. 하나둘 다른 출판사에서도 동일한 형식의 이벤트를 진행하는 걸 보고 더 이상 독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출판 마케팅 어워즈 이벤트 콘텐츠
2020년 올해의 책, 출판 마케팅 어워즈
두 번째 연합 이벤트는 모종의 억울함에서 시작되었다. 서점에서는 연말이 되면 ‘올해의 도서’를 선정하는데, 나름 열심히 홍보했다고 생각한 도서가 후보에도 들어가 있지 않았다. 판매량 수치로 목록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 아쉬운 마음을 다른 마케터들 또한 가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서점이 아닌 자체 시상식인 “2020년 올해의 책, 출판 마케팅 어워즈”를 기획했다.
우선 시상식에 걸맞게 여러 후보가 필요했다. 슬프지만 서점의 올해의 책 후보에 들지 못한 출판사 중 좋은 책을 출간했다고 생각한 곳에 연락을 돌렸다. 대부분 흔쾌히 승낙했고, 마케터들의 빠른 일 처리 덕분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벤트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도서에 얽힌 마케터의 애정 어린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서점에서는 도서 내용밖에 볼 수 없지만, 이곳에서는 책이 독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저마다의 사연이 드러나길 바랐다. 다행히 마케터들 모두 애정 어린 코멘트를 적어주었고, 그걸 활용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었다.
마케터들이 적은 도서 비하인드 스토리
출판사 한 곳과 하는 연합 이벤트는 수월한 편이다. 그러나 여러 출판사가 모이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연합 이벤트라고는 하지만 다 같이 모여 의견을 나누기엔 무리가 있어, 이벤트 방식의 큰 틀을 미리 만들어놓고 제안해야 했다. 그 후 마케터들과 단체 채팅방을 통해 진행 기간 동안 세세한 방식을 수정해나갔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콘텐츠 레이아웃이었다. 이것 역시 각 출판사의 재량에 맡기면 편하지만, 통일성이 없어진다. 다섯 출판사가 같은 이벤트를 하고 있다는 통일감을 주기 위해서는 공통의 레이아웃이 필요했다. 따라서 이벤트 디자인 틀은 직접 제작했고, 그 안에 들어갈 정보들만 마케터들에게 전달받아 다섯 출판사의 SNS에 올라갈 최종 이미지를 완성했다.
공들인 만큼 홍보 효과는 탁월했다. 같은 시간, 총 다섯 개 출판사의 공식 SNS에 노출된 같은 콘텐츠는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북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대다수의 분들은 하나의 출판사만 팔로우하고 있지 않아 그 효과는 더 부각되었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뒷이야기를 알려준 점도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다. 더불어 출판사별 10권, 총 50권이란 상품도 좋은 홍보 요소가 되었다. 그만큼 도서를 받을 확률이 높기에 참여율도 높았다. 슬픈 계기로 시작했지만 백여 권의 ‘서점 올해의 책’ 리스트보다 눈에 띄는 다섯 권의 도서가 되었다.
스트릿 도서 파이터(스도파)
여성 스트릿 댄스 크루들이 나와서 경연을 펼치는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본 방송을 챙겨보면서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여러 출판사가 자신들의 특색 있는 마케팅 방식으로 홍보 경연을 펼쳐보면 어떨까? 독자의 입장에서 봐도 재밌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 업무가 과중되어 있던 터라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개인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만 아이디어 스케치를 올렸다. 그러자 글을 읽은 마케터들이 하나둘 도움과 참여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렇게 또 한번 빠르게 일곱 출판사가 모였다.
스트릿 도서 파이터 이벤트 표지, 심사 방식, 최종 우승 이미지
스트릿 도서 파이터 이벤트(이하 스도파)는 최대한 스우파 프로그램의 원형 그대로 이어 나가고자 했다. 출판사 이벤트를 넘어 스우파를 본 시청자들의 참여까지 이끌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연합 이벤트 방식에서 많은 부분을 바꿨다.
첫 번째, 댓글 수로 한정되었던 기존 배점 방식을 응원 댓글 수, 좋아요 수 그리고 심사위원 채점 점수로 세분화하여 점수를 매겼다. 심사위원으로는 알라딘 MD, 채널예스 에디터, 인플루언서를 섭외해 공정한 콘텐츠 평가를 요청했다. 기존에는 확률적으로 팔로워가 많은 쪽이 우승에 유리했는데, 배점 방식을 바꿔 그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다. 심사위원들의 재치 있는 심사평도 볼거리로 작용했다.
두 번째, 모든 출판사의 현황을 볼 수 있고 공식적으로 투표할 수 있는 제3의 공간(박대리 인스타그램)을 마련했다. 독자들이 팔로우한 출판사 콘텐츠만 보고 투표하는 게 아니라, 일곱 출판사의 정성 어린 콘텐츠를 다 봐주길 바랐다. 더불어 공식적인 투표 공간에서 실시간으로 다른 독자들의 댓글을 읽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세 번째, 포스팅 방식 또한 변화를 줬다. 모든 포스팅을 같은 시간에 올리는 건 동일했지만 좀 더 세부적으로 나눴다. 이벤트 이틀 전 D-2 포스팅으로 궁금증을 유발했고, 본 경연 포스팅에는 각 출판사가 자유 콘셉트로 콘텐츠를 선보였다(첫 이미지는 동일하게 만들어 통일감을 주었다.). 마지막 결과 발표 포스팅 또한 모두 자유롭게 제작해 게시했다. 출판사별로 3개 포스팅, 총 21개의 포스팅이 스도파 이벤트를 통해 진행된 것이다.
스도파 본 경연 첫 이미지와 끝 이미지
의도했던 대로 출판사마다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북 트레일러부터 릴스(Reels)를 이용한 콘텐츠, 영화 클립, 일러스트까지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도서를 홍보했다. 기존에는 판매와 직결된 정보 관련 콘텐츠가 중심이었다면, 이번 이벤트를 통해서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 흥미 위주의 콘텐츠가 두드러졌다. 독자를 위해 일곱 출판사가 만들어낸 콘텐츠는 여러모로 큰 의미가 있었다.
결과를 수치로 따져보면 아래와 같다.
1차) D-2 예고 포스팅: 총 좋아요 1,321개/댓글 152개
평균적으로 포스팅 1개당 좋아요 207개, 댓글은 46개가 달렸다. 평소 게시하던 출판사 콘텐츠와 비교해보면 상당히 높은 독자 참여율이다. 경연 투표가 아닌 예고, 발표 포스팅에도 댓글이 많이 달린 부분은 상당히 고무적인 결과다.
연합 이벤트를 통해
독자들은 결국 정보가 아닌 재미에 반응한다는 걸 다시금 느낀다. 출판사별 콘텐츠를 비교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특색 있는 모습을 기억한다. 이벤트 과정을 지켜보고 참여한 독자들은 다음에도 좋아요와 댓글을 남겨준다. 독자뿐만 아니다. 출판사는 이벤트를 통해 책이 아닌 회사를 부각할 수 있고 신규 팔로워 유입, 충성 독자를 만들 수 있다. 도서가 재조명받기도 한다.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보다 ‘책’이라는 소재로 마케팅을 다양하게 시도해본다면, 또 다른 가치를 만들 수 있다. 시선을 끌고 나면 홍보는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좁은 시장, 사양 산업이라는 우려스러운 전망 속에서 출판사는 서로를 경쟁 상대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모든 업계가 그렇듯이 파이 나눠 먹기 구조라는 인식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로 시너지를 일으킬 방법은 충분히 존재한다. 어떠한 방식이든 출판사들끼리 연합하면 더 큰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믿는다. 교집합이 아닌, 서로의 장점이 고루 펼쳐질 합집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연합 이벤트는 서점과 연계해 진행해보고 싶다. 홍보 마케터들의 뛰어난 콘텐츠가 판매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함께 할 마케터들, 언제든지 대환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