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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6  20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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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출판사들의 협업]
어딘가에는 출판사가 있고 독자가 있다

 

 

 

박대우(온다프레스 대표)

 

2022. 9.


 

지역에서 책을 만든다는 것

 

지역에서 책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강원도 고성으로 이주한 지 이제 만 5년째, 그에 대한 답변은 아직 아리송하다. 지역을 주제로 한 단행본을 이미 3종(『온다 씨의 강원도』, 『동쪽의 밥상』, 『어딘가에는 아마추어 인쇄공이 있다』)이나 출간했지만 여전히 ‘이것이 지역 출판이다’라는 명제가 단번에 잡히진 않는다.

 

2년 전 이맘때에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에게 전화를 받았다. 그때 나는 『동쪽의 밥상』이라는 책을 만들고 있었는데 저자인 엄경선 작가의 글 솜씨도 좋았고, 본문의 사진이나 표지 일러스트가 내 마음에 쏙 들게 착착 작업되던 터였다. 왠지 책이 잘 나갈 것 같다는 기대도 품어보았다. 아니, 이 책은 잘 나가야 했다. 그전에 냈던 책들의 판매가 수월하지 않아서 출판사 명의의 통장 잔고가 갈수록 줄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름 기대작이었던 『동쪽의 밥상』은 초판 1쇄를 아직 팔지 못했다. 그리고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깨달았는데, 우리 출판사의 출간작들 중에서 초판 1쇄를 소진하지 못한 책은 『온다 씨의 강원도』와 이 책뿐이라는 점이었다. 두 책 모두 강원도 영동 지역을 주제로 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지역을 주제로 한 책은 판매가 쉽지 않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정은영 대표와도 당시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보다 먼저 지역으로 이주하여 일찌감치 지역을 주제로 한 책들을 펴냈던 분이었기에 그이의 말은 귀에 쏙 들어왔다. 정 대표 또한 지역을 주제로 한 책들이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말을 정리하자면, 일단 지역 책을 내면 홍보가 쉽지 않다. 보통의 대중서를 출간하고 나면 중앙 일간지에서 운 좋게 기사화해줄 경우 전국 서점에서 적은 부수라도 입고 요청을 한다. 하지만 지역 주제 도서의 경우에는 널리 알릴 방법이 많지 않다. 홍보가 제한적이니 판매도 제한된다. 타 지역 서점들은 본인들 동네 이야기가 아니니 관심을 적게 갖는다. 내가 사는 지역의 서점들은 어떤가. 다행히 지역 출판사를 아껴주고 우리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여러 권을 주문해 주지만 판매 부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야기 끝에 정은영 대표가 ‘지역 출판사 몇몇이 모여서 공동의 시리즈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했다. 선뜻 ‘한번 해볼까요.’라고 긍정적으로 답해버렸다. ‘지역 출판으로는 더는 안 되겠다.’라고 서로 실컷 이야기해놓은 다음에 곧바로 나눈 대화치고는 겸연쩍은 전개였다. 그렇게 이 시리즈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짧지 않은 여정: 줌 회의, 시리즈 제목 고르기, 디자이너 정하기

 

함께하기로 한 곳은 다섯 곳. 경상남도 통영의 남해의봄날, 전라남도 순천의 열매하나, 충청북도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그리고 강원도 고성의 우리까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최고치를 경신하던 때여서 오프라인 만남은 뒤로 미루고 일단 줌 회의를 열었다. 그 뒤로 우리가 만난 게 2년이 지난 2022년 6월이었으니… 그 와중에 줌 회의만 40여 차례 치렀는데 한번 회의를 하면 두 시간을 꽉꽉 채웠고, 회의를 마치면 개별적으로 전화 통화만 이삼십 분을 추가로 해야 했으니 우리가 만난 시간은 얼추 100시간이 된다.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며 인사를 나눈 적이 없는 사람들끼리 100시간쯤 온라인상에서 만나고 나니 어느 정도 서로 성격이 파악되었지만, 새삼 매번 느꼈던 것은 우리가 각자 개성이 또렷한 1인 출판사의 대표라는 점이다(남해의봄날은 1인 출판사로 시작하여 지금은 3인이 운영하는 중소출판사로 자리매김했다.). 회의 안건이 매번 굵직했기에(시리즈 제목 구상, 디자이너 선정, 마케팅 방식 논의 등 지금 돌이켜봐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우리가 각자 개성을 드러내며 자기 의사를 고집하는 순간, 회의는 연신 도돌이표를 그렸다. 회사를 다닐 때 회의에서 느낀 긴장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동등한 위치에서 각자 할 말을 하며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내게는 무척 신선했고 두루 배울 만한 점이 많았다.

 

‘어딘가에는’ 시리즈 참여 출판사 대표들

‘어딘가에는’ 시리즈 참여 출판사 대표들(왼쪽부터 남해의봄날 정은영, 이유출판 유정미, 온다프레스 박대우, 포도밭출판사 최진규, 열매하나 천소희)

 

 

본래 우리 줌 회의의 명칭은 ‘강호의 고수를 찾아서’였다. 결성 초반에 우리가 생각한 시리즈의 콘셉트가 딱 이랬다. 각 지역에 ‘숨어 있는, 하지만 솜씨 있는 장인’을 찾아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 같은 고수 찾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고수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꼭 책으로 내야 하나’라는 질문이 우리 모두에게 들었던 것이다. 설사 시리즈 첫 번째 도서를 고수 찾기로 하더라도 앞으로도 무한정 고수를 주제로 할 순 없을 것이었다.

 

결국에는 사람 중심의 콘셉트를 좀 더 넓혀 지역의 개념으로 확장하기로 했고 시리즈 제목 또한 ‘어딘가에는 ○○이 있다’라고 정할 수 있었다. 짓고 나니 이름이 참 마음에 들었다. (참고로 당시 내가 제안한 제목은 ‘산 넘고 물 건너’였다. 다들 재미로 던진 제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진지했다.) 그다음에는 시리즈 전반의 통일성을 위한 디자인을 논의했다. 우리에겐 ‘어딘가에는 ○○이 있다’라는 공통의 틀이 정해져 있었고 이는 표지와 본문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논의 끝에 안삼열 디자이너에게 연락을 드려보기로 했다. 그래픽 디자인 중에서도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분으로, 우리 시리즈가 가진 여러 제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의 작업물을 내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안삼열 디자이너의 작업은 상당히 거침없었다. 처음 시안을 받아보았을 때에는 꽤 오래 편집일을 하면서 디자인을 보아온 나도 약간 움찔했을 정도였다. 각 출판사별로 그 개성을 살려 컬러와 서체를 반영했는데 그 각각의 튀는 멋을 하나로 모아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개별 도서가 아니라 한꺼번에 동시 출간하는 시리즈이니 그 정도의 수고를 들여야 했다.

 

그리하여 아래 사진과 같이 현재의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지역 출판사의 표지라면 흔히들 지역색을 강조할 것이라 지레짐작했을 텐데 우리 시리즈의 표지는 타이포그래피로만 간결하게 꾸몄고 그것이 특이성보다 보편성을 강조한 콘셉트로서 좋은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에는’ 시리즈 도서 다섯 권의 출판사별 표지들

‘어딘가에는’ 시리즈 도서 다섯 권의 출판사별 표지들

 

 

 

작가를 만난 사연

 

시리즈 제목, 디자인 등 중요한 것이 많았지만 가장 주된 작업은 역시 작가 섭외가 아니었을까. 어떤 주제를 담고 어떤 작가를 섭외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내가 떠올린 이는 강원도 태백의 ‘어느한장면’이라는 레터프레스 작가 집단이다. 작가 집단이라고 적었지만 그 두 사람은 부부다. 2019년 초 무척 추운 날, 당시에는 연인 사이였던 두 사람을 처음 만났다. 얼마 뒤에 출간하기로 한 책의 사은품을 제작해달라고 했더니 그들은 꼭 대면 미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로선 딱히 내키지 않는 만남이었는데, 본래도 대면 만남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데다 서울까지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귀찮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가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은 내 책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업무상 누군가를 만나면 흔히 접할 수 없는 태도였다. 다들 일의 A, B, C를 묻고 바삐 볼일을 보러 가지, 이 사람들처럼 본인들이 그림을 그리고 찍어낼 작품을 위해 그 기반이 되는 텍스트에 대해 이모저모 묻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난 그들의 관심이 반가웠고 오랜만에 출판 편집자로서 뿌듯함을 느꼈다.

 

그 뒤로 두어 차례 사은품 제작을 요청하고 작품에 대해 논의할 때마다 그들이 가진 진지한 태도에 비슷한 반가움을 느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언젠가는 저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 봐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딘가에는’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을 구상할 때 그들의 이름이 떠오른 것은 그러니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들은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실제로 집필 작업에 들어간 뒤로는 마감 일정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성실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단 한 번 마감을 어긴 적이 있는데, 바로 작가 이동행 씨가 말벌에 쏘였을 때였다. 머리에 쏘여서 상당히 아픈 상태였는데 그걸 내색하지도 않고 다음번 일정에 맞춰 원고를 보내주었다.) 그리하여 탈고했을 때에는 다른 출판사들은 절반도 채 원고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괜히 내 어깨가 올라갔다.

 

이동행 작가(그리고 그의 아내이자 어느한장면의 대표인 이문영 씨)는 글만 써준 것이 아니다. 그 두 사람은 우리 시리즈의 대표 사은품을 제작해주기도 했다. 지역 출판사들의 시리즈 도서라는 점을 감안해 각 출판사별 주제를 담은 레터프레스 엽서, 그리고 시리즈를 대표하는 단 한 장의 엽서,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엽서를 직접 디자인하고 한 장 한 장 찍어주었다. 그들이 찍어준 엽서는 무려 총 1,700장. 그들의 공정이 얼마나 세심한 절차의 연속인지를 모르는 바가 아니므로 그 작업 결과물을 받고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어느한장면이 제작한 사은품 엽서들은 동네책방에 한정 배포하였다.

어느한장면이 제작한 사은품 엽서들은 동네책방에 한정 배포하였다.

 

 

 

이 좋은 책들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책이 나온 뒤 ‘어떻게 이 책을 알릴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였다.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는 우리 시리즈가 출간되면 동네책방들에 가장 먼저 알려야 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지역 출판사들의 첫 번째 작업물을 지역의 오프라인 서점에서 지역 사람들이 먼저 볼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말이다. 줌 회의를 통해 홍보 방안을 논의할 때에 온라인 서점, 그것도 3개사에 치중된 마케팅을 먼저 떠올린 내게는 이 같은 동네책방 위주의 마케팅이 어떤 파급 효과를 낼지 궁금증이 일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동네책방을 중심으로 마케팅 계획을 짠 것은 상당히 중요했다. 전국의 동네책방들은 우리 시리즈에 관심을 보여주면서 마치 자신과 가까운 누군가가 펴낸 책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열심을 다해서 각자의 SNS로 출간 소식을 알려주었다. 우리는 이로써 각 지역의 대표서점들에 우리 책을 소개할 수 있었고, 각 동네책방들은 단독 사은품(어느한장면의 레터프레스 엽서)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런 마케팅의 순서(동네책방이 가장 먼저!)는 가급적 지킬 예정이다. (전국 동네책방 책 발송 작업을 남해의봄날 식구들이 전담해주었는데, 이 방법 말고는 당장에는 떠오르는 안이 없다. 이후에 비슷한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배송해야 할지에 대해 지혜를 모아봐야겠다.)

 

출간 직후 전국의 주요 일간지에서부터 지역의 작은 신문까지 골고루 우리 시리즈를 소개해준 덕택에 온라인 홍보 또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A사의 경우 우리 시리즈의 출간 방향에 공감해주면서 해당 서점 웹페이지의 주요 코너에서 소개해주었다. 이번에 시리즈를 내면서 공동의 비용을 토대로 온라인 서점에 광고를 올렸던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본래 우리 출판사 단독으로는 광고 비용을 댈 엄두를 내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다섯이 모이니 그 부담이 많이 줄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다시, 지역에서 책을 만든다는 것

 

얼마 전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모 지역 문화기관의 의뢰로 해당 지역의 노인들을 취재하여 책으로 엮어낼 일이 있었다. 내가 사는 곳에서 거리가 떨어진 곳이어서 선뜻 내키진 않았지만, 그 기관에 갓 부임한 사무국장의 열의에 감동해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고는 정식으로 계약까지 마치고 처음으로 단체장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그 단체장이 내게 던진 첫 번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이 친구, 말 참 안 듣게 생겼구먼.”

 

지역의 문화기관들이 출판사를, 아니 출판사가 아니라 보통의 협업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다. 아마도 원청으로서 하청업체를 대하는 마음 그 이상은 아닐 것이다. 다만 행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벗어던지고 지역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청취하고자 한다면, 지금과는 다른 자세로 출판사에 의뢰해야 할 것이다. 출판사와 기관 간의 건강한 관계가 정립되길 꿈꿔본다.

 

나 또한 내 주변을 돌아보며 자기반성을 한다. 갈 길은 멀지만, 다행히 내게는 동행이 있다. 그들로부터 위로받고 지지받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교정을 받는 일이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 다음 책을 내기 위해 다시 기획과 작가 섭외 단계에 들어가야 한다. 그 지난한 공정을 되풀이하려니 약간 겁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힘내서 해보려 한다. 이로써 지역의 문화가 아주 살짝이라도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길 바라며.

박대우

박대우 온다프레스 대표

2006년부터 황해문화, 개마고원, 창비 등에서 주로 인문서를 만들어왔다. 2017년 10월 강원도 고성에서 온다프레스라는 1인 출판사를 열고 현재까지 총 11종의 책을 냈다.
onda.ayajin@gmail.com
www.instagram.com/onda_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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