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Vol.5  2019.07.

게시물 상세

 

일본 출판계엔 있지만 우리에겐 없는 것

 

 

 

박찬수(책문화콘텐츠연구소 대표)

 

2019. 07.


 

 

 

일본출판인프라센터를 다시 찾은 이유

 

일본출판인프라센터(JPO)가 새 건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지난해 늦가을쯤이었다. 함께 출판정책연구 관련 공부를 해오던 김OO 선생을 통해 이야기를 듣고 무척이나 궁금했다. 2016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글로벌 출판 전문 인력 양성〉 지원 사업으로 일본의 츠타야, 키노쿠니아, 북앤베드 서점, 고단샤와 함께 JPO도 방문했을 때 인상이 깊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가서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상세히 듣고 싶었다. 마침 한국출판인회의의 해외연수 프로그램 연수생으로 선발된 최OO 선생이 올여름 일본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할 수 있는 지인 10여 명을 모아 다녀오게 되었다.

 


출판클럽빌딩



출판클럽빌딩 로비


출판클럽빌딩(왼쪽), 출판클럽빌딩 로비(오른쪽)

 


출판클럽빌딩 입구



출판클럽빌딩 입주사


출판클럽빌딩 입구(왼쪽), 출판클럽빌딩 입주사(오른쪽)

 

진보초(神保町)에 있는 출판클럽빌딩은 1922년에 설립된 쇼가쿠칸(일본어 : 株式会社 小学館)의 소유로 돼 있는데 건축설계와 공사는 코단샤가 시행했다고 한다. 이 건물에는 일본잡지협회, 일본국제아동도서평의회(JBBY), 일본서적출판협회, 일본출판클럽, 일본잡지광고협회, 일본출판유통(토리츠기)협회, 독서추진운동협의회, 일본아동도서출판협회, 일본출판인프라센터, 출판자저작권관리기구, 유네스코 아시아 문화센터, 출판기업연금기금, 일본출판산업기업연금기금, 문화산업신용조합 등이 들어와 있다.

 

이번에 가서 만난 JPO는 2002년 4월 12일 사단법인으로 설립됐다. 출판계에서는 웬만큼 알려진 사실이지만, 독자들을 위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JPO는 일본서적출판협회와 일본잡지협회, 일본출판중개협회, 일본서점상업조합연합회, 일본도서관협회가 중심인 단체다. 주로 종이책의 서지정보를 수집해 「근간 정보센터」와 「상품 기본정보센터」 등을 펴내왔는데, 2015년 1월에 시행된 「개정저작권법」에 대응하여 종이와 전자 서지정보와 출판권정보 등록과 조회, 판매촉진정보의 수집 및 발신 기능을 추가한 업계 시스템 구축을 위해 2014년 12월부터 「출판정보등록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출판정보등록센터」는 경제산업성에서 9억5천만 엔, 출판사에서 8억7천만 엔 등 총 18억 엔을 들여 서지정보를 등록하는 일을 맡고 있다. 출판정보 등록에는 출판사인 코단샤(講談社), 쇼가쿠칸(小学館), 카도가와(角川書店), 슈에이샤(集英社)와 유통사인 아마존 재팬, 기노쿠니야(紀伊國屋書店), 라쿠텐(楽天), 마루젠(丸善) 등 총 8개 사가 참여해 함께 도서정보 등록을 논의하는데 여기에서 오닉스 표준 메타데이터 형태로 적용할 것을 결정하고 있다.

 

 

 

문제는 같은데 대응은 달라

 

필자는 《출판문화》 2016년 6월호에 ‘출판 산업을 바로 세우고, 독자를 만나러 가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이 때 ‘출판 불황’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내부 요인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독자들의 독서 패턴, 소비 패턴, 라이프스타일 등이 미디어의 영향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출판 산업의 폐쇄성과 보수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이와 함께 다른 산업에 몰입되어 있는 독자들의 관심을 출판 산업으로 다시 유입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동시에 지금은 분산되어 있는 출판 관련 단체들의 통폐합과 전문성을 강화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1998년 2월 국내 최대 출판 도매업체인 보문당이 부도를 낸 데 이어 2017년 2월 출판 도매업체 2위인 송인서적이 부도를 냈을 때도 변화와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외쳤지만 아직도 아무런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그 책임을 밖으로만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은 해외 출판 산업의 노력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외국 역시 출판 산업의 위축, 다양한 문화콘텐츠의 경쟁 등으로 기본 독자가 감소하고 있지만, 이를 미리 파악하고 독자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 출판계 역시 이미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데다, 뉴미디어의 빠른 확장으로 텍스트를 읽는 독자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의 심각성을 체감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만화산업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대응이다. 상황의 심각성을 안 일본 출판계는 출판 정보를 중요시해 이를 하나로 묶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국내 출판계는 어떤가?

 

 

 

부러움은 고민으로 이어지고

 

일본의 JPO는 출판계의 정보인프라를 정리하고 운용하는 데 핵심인 ISBN과 잡지 코드 관리, 일본 국내 서점정보 관리, 책의 서지정보(타이틀명, 저자명, 발행일 등) 관리 등을 맡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출판계 정보인프라를 정리하고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정보 관리에 있어서는 출판계, 서점계, 도서관계가 따로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 서비스를 위해 모두 하나가 되어 출판 관련 정보를 모두 수집하고, 정리하고, 관리하고,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ISBN의 경우 일본도서코드관리센터에서 출판사 기호 발급과 운영, 보급 촉진에 힘쓰고 있으며, 이러한 서지정보는 유통, 도서 매출, 수주 및 발주 등에 활용되고 있다.

 

일본은 출판사 등록기호가 다른데, 2019년 4월 기준으로 보면, 2자리 출판사는 20개사, 3자리 출판사는 263개사, 4자리 출판사는 922개사, 5자리 출판사는 3,269개사, 6자리 출판사는 15,394개사, 7자리 출판사는 11,265개사, 싱글 코드는 142개사이다. 특히 출판물 뒤표지에 인쇄되어 있는 바코드가 2단으로 되어 있는 것은 유통시스템개발센터에 등록되어 있는 도서 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한다. 서점마스터관리센터 역시 출판사의 영업 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전국의 약 16,000여개의 서점에 고유의 ID를 발급해, 신규 서점의 개점, 장부, 변경, 폐점과 같은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서점마스터’를 제공하고 있다.

 

출판정보등록센터(JPRO)는 서지 정보의 효율적인 관리, 도서 판매의 발주에 이용하는 정보센터로 도서명, ISBN, 가격, 저자, 내용 소개, 책의 형태, 마케팅 활용 등의 정보를 출판사에서 수집해, 업계 각 회사에 제공ㆍ배포하고 있다. 이 정보들은 도서의 존재를 명시하는 동시에 판매를 위해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현재 서점에서 근간 예약을 할 때나 도매 유통 정보의 기초로서 물류 계획 등에서 이용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출판정보등록센터에 참가하고 있는 출판사 수를 보면, ISBN 2자리 출판사는 17개사(20개사), ISBN 3자리 출판사는 158개사(263개사), ISBN 4자리 출판사는 284개사(921개사), ISBN 5자리 출판사는 298개사(3,260개사), ISBN 6자리 출판사는 403개사(15,206개사), ISBN 7자리 출판사는 105개사(10,843개사)로 괄호 안은 ISBN 출판자 기호 등록 업체 수이다.

 

이렇게 운영될 수 있는 가장 큰 비결은 규모가 큰 출판사들의 협조이다. 큰 출판사들 입장에서는 출판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원활하게 운영됨으로써 정보 공유와 활용을 통해 연관 산업이 활성화되어야 자사의 경영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 출판계도 이런 시스템과 관련된 정보를 일본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사례들로부터 아주 오래전에 접하고 필요성도 인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태껏 출판계에는 스스로 필요로 하는 정보가 없고, 이를 필요로 하는 타 산업에도 제공할 정보가 부족하다. 출판 산업의 확장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인프라가 또 있을까?

 

 

 

우리는 왜 안 될까

 

먹을 것이 많아야 모여든다. 단순한 이 논리는 출판계에도 적용되는 엄연한 현실이다. 출판계 스스로는 콘텐츠가 많다고 자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마저 여기저기 널려있다. 독자가 알아서 찾아야 하는 분산 데이터가 아니라, 집약된 데이터, 정확한 분석지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발행부수, 출판 등록 수, 서점 수 등 어느 것 하나 동일 지표로 정확하게 제시되는 것이 없다. 지금 국내 출판계의 상황은 개별 출판사가 나름의 다양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출판사가 확보한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출판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데이터는 체계적으로 조직되어 있어야 하고, 공유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을 기반으로 각자 더 많은 독자를 형성하고 더 나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

 

현실은 어떤가. 국내 최대 도매업체라 할 수 있는 곳을 매각한다는 뉴스가 뜨고, 3PL 물류회사를 매각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일본에서 볼 수 있었던, 출판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대형 출판사들의 협조, 이런 공존과 확장을 위한 공동체의 모습들이 국내 출판계에는 보이지 않는다. 서점계가 힘들다고 할 때 최대 인쇄업체에서 대형서점을 인수하면서 “서점이 없어지면 인쇄업도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했던 일본출판계의 전략도 국내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전(全) 국가적, 전(全) 출판 산업계적 비전과 방향은 차치하고라도 출판계에 바라는 그저 아주 작은 소망이 있다. 출판물이 독자에게 주는 것이 정보라고 할 때 우리 출판계도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표준안이 만들어지면 이유 불문하고 참여해서 함께했으면 좋겠다. 출판단체들은 하나 된 힘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이 문제에 관한 한, 학회는 물론이고 각종 소모임까지도 하나 된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 아주 작은 양보가 거대한 산을 만들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그 산을 이용할 것이다. 입산을 통제하지 말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커버스토리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