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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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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에이전시]
한국 소설 작가 에이전시로서의 블러썸

 

 

 

이영경(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2022. 7.


 

2016년 블러썸크리에이티브(BLOSSOM CREATIVE)가 국내에서 최초로 ‘작가 에이전시’라고 선언했을 때, 이 말은 무척 낯설었다. 해외에는 작가 에이전시라는 개념이 널리 퍼져 있었지만 한국 출판·문학계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출판사와 직접 개별적인 계약을 맺고, 출판된 책에 관한 것은 대부분 해당 출판사를 통해 업무를 처리해온 관행 때문이다.

 

하지만 바야흐로 ‘원소스 멀티유즈’를 넘어선 ‘오리지널 콘텐츠’의 시대다.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일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이젠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영상업계에서는 잘 짜인 양질의 스토리를 더 많이 원하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의 수가 증가하면서 자체 ‘오리지널 콘텐츠’의 수요도 커졌다. 좋은 소설은 영상과 별개의 것이 아닌, 언제든 2차 저작물로 확대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콘텐츠의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고요한 자신만의 공간에서, 내면에 싹트고 있는 이야기와 상상력을 포착해 자판을 두드리며 소설을 완성해나가는 작가가 낯선 영상업계로 뛰어들어 영상화나 2차 저작권 문제를 혼자 처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가 2016년 문을 연 후 작가 수를 늘려나가며 순항하고 있는 것은 작가와 콘텐츠 시장의 이런 수요에 명민하게 반응한 결과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의 현재 소속 작가는 14명이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베스트셀러 소설가 김영하를 비롯해 편혜영, 김중혁, 김금희, 배명훈, 박상영, 김초엽, 장류진 등 대중적 인기와 문학성을 두루 인정받고 있는 작가들부터 소설가 조우리, 천선란, 설재인, 나푸름, 백온유, 권여름 등 신인 작가들까지 다양하게 소속돼 있다. 소설가뿐 아니라 이지은, 권정민, 최민지, 소복이, 김민지 등 그림책 작가 다섯 명도 소속돼 활동하고 있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가 문을 연 2016년 당시 소설가 김영하, 김연수, 김중혁, 편혜영, 배명훈, 김금희 등 작가 6명이 소속되어 있었던 것에 비해 6년 만에 몸집을 세 배 이상 불렸다. 드라마틱한 증가는 아니지만, 초기에 블러썸크리에이티브와 계약을 맺고 활동하던 작가 6명 가운데 소설가 김연수를 제외한 5명은 에이전시와 계약을 연장한 것을 본다면 작가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라 짐작할 수 있다.

 

“작품에만 전념하세요”, 2차 저작권 및 외부 일정은 대신 처리

 

블러썸크리에이티브는 “국내 최초의 크리에이터 에이전시”로 “크리에이터 개인의 활동과 IP(판권) 등을 널리 알려 창작자의 권익을 지키고 확대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밝히고 있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가 작가를 대신해 처리하거나 도움을 주는 업무는 2차 저작권 문제와 작가들의 외부 활동 및 일정을 관리해주는 ‘크리에이터 에이전시’ 업무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는 2차 저작권과 관련해 “크리에이터가 창작한 원작이 영상화, 해외 출판 등으로 활발히 이어지도록 기획, 제안 및 협의를 진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크리에이터 에이전시’ 업무에 관해서는 “다양한 분야와 매체에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는 크리에이터의 비즈니스 활동 전반을 담당한다. 크리에이터의 대외적인 활동 및 커뮤니케이션 창구로써 크리에이터가 온전히 창작 활동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제공을 지향한다”고 밝힌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소속 작가들은 대부분 2차 저작권, 외부 일정 관리와 조율 문제에서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작품에 집중할 시간을 늘려준다”는 것을 이점으로 꼽는다.

 

기존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가 해당 작품에 한정해 ‘매니저’ 역할을 맡아주기는 했지만, 책을 편집·출판하는 일이 본업인 출판사와 편집자가 2차 저작권 등의 문제를 전문적으로 처리해주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는 신작 홍보 기간이 끝나고 출판사에서 다른 신간 소설이 나올 경우 새로운 신간 홍보와 관련된 업무를 우선으로 하게 돼 한 작가의 작품만 집중해서 관리할 수가 없다. 또 작가들이 하나의 출판사에서만 책을 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내기에 소설과 관련된 2차 저작권, 외부 행사 문제를 종합해서 체계적으로 처리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출범 당시부터 현재까지 함께하고 있는 소설가 배명훈은 이렇게 말한다. “행사든 강연이든 외부에서 섭외가 들어오면 작가가 직접 답변하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가 많이 들어갑니다. 작가가 직접 교섭하려면 힘들어요. 아는 사람을 통해 우회적으로 요청이 올 경우 출연료가 얼마인지 물어보기도 어려운 경우가 있고요. 창작 이외의 일로 시간을 쓰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에이전시가 대신 처리해주면 창작에 집중할 시간이 늘어서 도움이 돼요. 저는 에이전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영상화 등 2차 저작권 문제에 있어서는 출판사보다는 에이전시의 도움이 더 요긴하다. 배명훈은 “영상업계와 대화를 시작해서 계약까지 가는 과정은 지난하다. 문의하는 쪽은 많은데 실제로 계약까지 가서 사인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 과정을 작가가 직접 하고 있으면 소설에 전념하기가 어렵다”며 “에이전시에 일임하면 협상력도 더 올라가고, 믿을 수 있는 업체와 함께 계약을 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연작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이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예비 후보에 올라가면서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은 소설가 박상영은 올해 들어 블러썸크리에이티브와 함께하게 됐다. 박상영은 KBS 〈역사저널 그날〉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왔다. 박상영은 “외부에서 연락이 오는 규모가 너무 커지고,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 등 다양한 곳에서 연락이 많이 오기 시작해 혼자서 처리하기가 어려웠다”며 “외부 업무를 에이전시에 위임하고 글을 쓸 시간을 확보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계약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어떤 날은 쏟아지는 메일에 답변만 하다가 끝나는 날도 많다. 거절하거나 수락하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글 쓸 시간이 더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작품이 대중적으로 성공하면 방송이나 외부 강연 등의 일정이 늘어나 스케줄을 관리해야 할 필요도 생긴다. 박상영은 “행사나 방송 스케줄도 많은 편이어서 에이전시에서 일정과 출연료 등을 조율해주면 편할 것 같았다. 하나씩 하면 큰 일이 아니지만 쌓이면 큰 일이 되어서 대신 처리해줄 분들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박상영의 소설 역시 2차 저작물로 영상화가 진행 중이다. 박상영은 “출판보다 영상화 등 2차 저작권 문제에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라스트 러브』,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을 펴낸 소설가 조우리도 지난 3월부터 블러썸크리에이티브와 계약을 맺었다. 조우리 역시 “강연, 행사 등의 요청이 오는 경우 일일이 대응하기가 어려운데, 에이전시에서 대신 응대해주는 점이 많은 도움이 된다”며 “2차 판권이나 해외 출판 같은 경우도 여러 출판사에서 작품을 내다보면 작가가 놓치게 되는 부분이 많은데 한 번에 관리를 해주니 좋다”고 말했다. 또 “계약서 등의 서류를 검토할 때도 함께 도움을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덧붙였다.

 

과거 tvN의 〈알쓸신잡〉에 출연하면서 유명세를 더한 소설가 김영하의 경우 블러썸크리에이티브를 통해 외부 일정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에이전시가 나서서 영상화 확장, 작가들 활동 영역 넓힌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는 작가들의 2차 저작권 문제나 외부 일정 등을 대신해 처리해주는 것뿐 아니라 콘텐츠의 활용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CJ ENM과 블러썸크리에이티브는 함께 손을 잡고 소설 기획 단계에서부터 영상화를 전제로 한 ‘언톨드 오리지널스(Untold Originals)’ 시리즈를 최근 런칭했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소속 작가들의 작품을 CJ ENM과 함께 기획해 책으로 출간하는 동시에 CJ ENM에서 우선적으로 영상화를 검토하는 것이다. 첫 번째 프로젝트로 소설가 배명훈의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이 지난 5월 출간됐다. 이 책은 블러썸크리에이티브의 문학 출판 브랜드 자이언트북스에서 출판했으며, 이후 CJ ENM 내부에서 영상화 여부를 검토하게 된다. 배명훈에 이어 에이전시에 소속된 소설가 김중혁, 김초엽, 천선란 등의 소설이 ‘언톨드 오리지널스’로 출간을 앞두고 있다.

 

작가들로서는 소설 기획 단계에서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쓰다 보니 영상화에 적합한 이야기와 작법을 구사하게 되고, 영상화를 위해 여러 업체와 의견을 주고받아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CJ ENM에서 영상화를 우선 검토하게 되니 훨씬 편리해진 셈이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 관계자는 “원작 출판 후 2차 저작물을 제안하고 검토하는 기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CJ ENM 관계자는 “이들 소설의 영상화를 우선적으로 검토하게 된다. 아직 구체적인 영상화 계획은 잡히지 않았지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작품 청탁과 출판 등 업무는 작가 개인이, 작가별 ‘맞춤 서비스’

 

블러썸크리에이티브가 작가가 기존에 하던 작품 청탁이나 출판 업무까지 전담하는 것은 아니다. 문학 잡지와 출판사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작품 청탁과 소설 출간 등의 업무는 작가들이 기존에 하던 대로 출판사와 직접 처리하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출간되었고, 현재는 일본 출간을 앞둔 『타워』의 저자 배명훈은 책 출판과 관련된 일은 예전대로 자신이 직접 처리하고 있다. 배명훈은 “출판과 관련해서는 국내 출간이나 번역 출간 등의 업무를 직접 처리하고 있다”며 “SF 소설의 경우 해외에서 바로 섭외가 들어오는 경우가 많은데, 직접 처리하는 게 더 효율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박상영 또한 2차 저작권과 외부 일정을 제외한 소설 청탁과 출판 등의 업무는 기존대로 출판사와 직접 처리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별로 도움을 얻는 부분은 저마다 필요에 따라 다르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는 작가와 계약을 맺을 때 작가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조율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소설가 조우리는 “소설이 해외에서 번역돼 출간되는 경우, 이전에는 출판사에서 개별적으로 해외 에이전시와 이야기를 해서 알려주었다. 저 같은 경우 여러 출판사에서 작품을 출간하다 보니 각각의 출판사, 각각의 에이전시와 일하게 되니까 계약 조건 등을 검토하는 것이 복잡하다”며 “에이전시에서 종합적으로 관리를 해주면 편리할 것 같다”고 말했다. 조우리도 작품 청탁이나 발표, 출판사 출간 계약 등은 직접 처리하고 있다. 조우리는 “작가들마다 계약 조건이나 도움 받는 부분이 다르다. 에이전시에 맡기고 싶은 부분을 협의해서 계약을 진행한다”고 말했다.

 

블러썸크리에이티브 출범 이후 ‘SF 장르 콘텐츠 작가 에이전시’를 표방하는 그린북에이전시가 문을 열며 작가 에이전시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저주토끼』의 정보라 작가, 한국 SF계의 ‘대모’와 같은 김보영 작가 등이 그린북에이전시에 소속돼 있다. 장르문학의 경우 영상화에 더 적합해 2차 저작물로의 확장이 더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또 정보라의 『저주토끼』와 함께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이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예비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해외에서 한국 문학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와 더불어 작가들의 외부 활동이 증가하고, 2차 저작물로 확장되는 경우도 늘고 있어 작가들에게도 에이전시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 소설이 ‘콘텐츠 융합’의 시대를 맞아 ‘출판’의 영역을 넘어 경계를 허물고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되는 길에 작가들의 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도움을 주는 작가 에이전시가 등장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로 보인다.

 

 

이영경

이영경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

경향신문 문화부에서 문학을 담당하고 있다.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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