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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4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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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에이전시]
지금 바로 여기는 K-출판의 기로다
출판사의 역할, 어떻게 변화해야 하나

 

 

 

김성신(출판평론가)

 

2022. 7.


 

불황이라 부르지 맙시다

 

“한국 출판의 현황을 불황이라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출판인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서 종종 서두로 꺼내 드는 말이다.

 

“‘불황’이란 단어는 ‘호황’이라는 단어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황이라고 말하면, 호황이라는 단어도 자동 연상됩니다. 그런데 이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닥쳐온 이 불황을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호황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죠. 그런데 결코 호황으로 반전되지 않을 상황이라면, 그게 너무나 뻔하다면, 이를 불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부르는 게 마땅할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해결책을 원한다면, 정확한 명명부터 필요합니다. 지금 한국 출판이 처한 상황은 불황이 아니라, ‘산업 붕괴’입니다.”

 

돈벌이의 수단으로서만 출판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출판은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High risk, Low return)’ 산업이다. 좀 어이가 없지만 그렇다. 오랫동안 출판산업에 종사한 출판인의 대부분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기보단 책을 사랑하기 때문에 출판산업에 종사한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산업 붕괴’를 운운하고 있으니 분위기가 좋을 리 없다. 시선들이 싸늘해진다.

 

“하지만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굉장한 낙관론을 펼치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릴까요? 저는 앞으로 10년 이내에 한국의 출판산업의 규모가 최소 10배 이상 급성장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확신할 만한 근거들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희망을 이야기하기 위해 여기에 나왔습니다.”

 

인류 문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출판은 사라지지 않는다

 

출판산업이 다시 급성장할 것이라는 논리의 근원은 바로 ‘화전(火田)’이다. 화전은 미개간지를 새로이 경작할 때 불을 놓아 풀과 잡목을 모두 태워 농경에 이용하던 오래된 농법이다. 들판이 다 타버린다고 해도 재를 자양분 삼아 결국 생태계는 다시 만들어진다. 척박해져 더는 곡물이 잘 나오지 않는 땅을 어떻게 해야 할까? 마지막 한 톨의 곡물이라도 나오길 마냥 기다려야 할까?

 

당대의 인류가 생산한 지적 가치를 문자로 변환하고, 저장하여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책의 오래된 역할이었다. 이는 농사와도 같다. 그리고 이런 역할을 산업으로써 떠받치며 지속가능성을 부여한 것이 바로 출판이다. 즉 어렵다고 해서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류의 문명이 사라진다면 몰라도 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출판’과 ‘출판산업’을 분리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붕괴하고 있는 것은 ‘출판산업’이지, ‘출판’ 그 자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붕괴의 원인과 책임에 대한 부분이다. 지금의 상황은 출판인들이 게으르거나, 모자라거나, 부도덕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부지런했으며, 지적이었고, 충분히 도덕적이었다. 그렇다면 산업 붕괴를 거론해야 할 지경에 이른 지금 이 상황의 원인은 무엇이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오늘날 출판산업의 퇴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현대인이 생존과 풍요로운 삶을 위해 소비하는 정보와 지식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다시 책으로』의 저자 메이런 울프가 책에서 인용한 UCSD(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의 정보산업센터 조사에 따르면, 현대인이 하루 동안 소비하는 정보의 양은 약 34GB라고 한다. 이는 10만 개의 영어 단어에 가까운 양이다. 이 사실만 보아도 인류가 멸망하거나 문명이 붕괴하지 않는 한 정보와 지식과 서사를 부가가치로 순환시키는 지식생태계가 사라질 일은 없다. 그런데도 오늘날 출판산업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어디서나 힘들다며 아우성이다. 왜 그럴까?

 

놀랍게도 ‘제조업’인 출판산업

 

출판사를 업태로 구분하면 놀랍게도 ‘제조업’이다. 과거에 레코드판이나 테이프, CD 등을 만들어 판매하던 음반사도 역시 업태가 제조업이었다. 책이나 음반과 같은 물건을 제조하고 그것을 판매해서 수익을 만들어야 하는 산업 구조를 보면 제조업인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대중음악산업을 지탱하고 주도하는 것은 음반사가 아니다. 20여 년 전 음반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번 되돌아보자.

 

1990년대까지는 음반제작사는 대중음악이라는 문화 생태계 내에서 절대적 지위를 누렸다. 가수가 되려면 음반사가 음반을 내주어야만 했다. 작가로서 인정받고 활동하고 싶으면 출판사가 책을 내주어야 하는 것과 같은 구조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존재를 대중 앞에 드러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하며 가장 유력한 수단이 음반이었고, 대중들이 대중음악을 접할 수 있는 접점도 대부분 음반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MP3가 등장하며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MP3의 등장은 대중들에겐 환호할 만한 일이었지만, 공룡과도 같던 음반사로선 대멸종을 불러온 혜성 충돌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무한 복제되며 퍼져나가는 음원에 관한 문제에 근본적인 대책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공짜로 내려 받을 수 있는 디지털 음원들이 널려 있는데, 누가 비싼 가격의 음반을 사겠는가. 새롭게 등장한 MP3 산업을 음반사가 자신들의 자본으로 주도한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저작권 개념으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의 음반사는 어이가 없을 정도의 무방비 상태였다. 대중음악산업은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그 긴박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대응 논리는 고작 ‘우리가 망하면,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사라질 것이다’라고 읍소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시장은 냉혹했고 음반사들의 그 정도 읍소에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아무도 거대한 시대적 조류를 멈출 수 없었다.

 

이전과 다른 차원의 출판 기획

 

새롭게 변한 환경을 주도하지도 적응하지도 못한 음반제작사의 대중음악 시장에서의 역할은 과거에 비해 그 역할과 비중이 매우 작아졌다. 과거 음반제작사들이 움켜쥐고 있던 대중음악 시장의 권력은 이제 연예기획사 혹은 매니지먼트사가 가져갔다. 오늘날 출판산업은 20세기 말의 음반사와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출판은 ‘책’이라는 유형의 상품 제작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책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즉, 무형의 ‘지적 가치’를 훨씬 더 다양한 형태로 상품화하고 원활하게 유통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도 다양한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작가 에이전트, 저술가 매니지먼트, 작가 브랜딩, 저작권 기획과 관리… 등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출판 시스템을 수용할 경우 출판으로부터 시작되는 엄청난 규모의 2차 저작권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출판산업의 규모가 지금과는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거대해질 수 있다. 지금은 출판산업의 수익 구조가 거의 전적으로 책의 판매에 의존하고 있지만, 출판기업이 2차 저작권 시장을 직접 기획하고 관리하는 수준까지 이르면 매우 다양하고 규모도 큰 2차 저작권 수입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리사의 책을 기획하고 출간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존의 출판 시스템으로서는 유명 요리사에게 찾아가 출판권설정계약을 하고 책을 펴낸 후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이 출판사가 추진하는 업무의 거의 전부다. 하지만 출판사가 작가 에이전트, 저술가 매니지먼트, 작가 브랜딩, 저작권 기획과 관리 등의 방식으로 운영하면, 저술 출간으로 인해 발생하는 저자의 대중적 인지도를 책 판매 외에도 활용하여 다양한 부분에서 비즈니스를 새롭게 기획할 수 있다. 요리사의 이름을 주방용품 기업에 저작권 판매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며, 그 요리사의 이름을 브랜드화하여 전면에 내세운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사업을 출판사가 주도하거나 사업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이것은 책으로부터 시작되는 다양한 2차 저작권 시장에서 출판산업이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제 출판산업이 제조업을 벗어나야 하는 때라는 것이다. 이전과 다른 차원의 출판 기획을 해야 하며 이를 위한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작가 에이전시의 가능성을 보여준 그린북 에이전시의 역할

 

그린북 에이전시는 비록 업계 내에서 비교적 그 규모는 작지만, 한국 출판산업에 중요한 의미를 만들었다. 그린북 에이전시는 ‘한국 SF 장르 콘텐츠 작가 에이전시’를 표방하며 이미 수년 전부터 공을 들여왔다. 이러한 선견지명은 『저주토끼』로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그린북 에이전시는 부커상 최종 수상자 발표 한 달 전에 『저주토끼』의 판권이 15개국에 판매되었다는 보도 자료를 언론사에 릴리즈했다. 이어서 정보라 작가의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는데, 수상자가 발표되기 전에 진행된 기자회견은 이례적인 경우다. 즉 수상 여부와 관계없이 정보라 작가를 브랜딩하는 프로그램이 추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사례는 작가 에이전시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것과 동시에 앞으로 작가 에이전시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다양하고 빠르게 진화할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출판저작권 수입을 전문으로 하는 에이전시로 출발한 그린북은 현재 17개국에 수출된 『저주토끼』 외에도 김보영, 듀나 등 국내 SF 작가들의 작품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형 출판사인 하퍼콜린스, PRH 그룹에 수출했다. 그린북은 작가 지원 업무를 크게 ‘저작권 관리’, ‘2차 콘텐츠와 해외 수출 영업’, ‘작가 매니지먼트’로 분류하고 있다. 작품의 초고를 읽고 의견을 준다거나, 작가가 쓰고 싶어 하는 기획을 구체화하여 출판사에 영업한다거나, 인터뷰와 강연, 행사에 동행하거나 관련 사항을 조율하기도 하면서 작가들의 다양한 요구에 모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시스템을 갖추어 가고 있다.

 

출판산업은 제조업을 벗어나고 있다

 

출판은 생태계다. 즉 콘텐츠 생산의 영구 지속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은 다양한 콘텐츠 생산의 형태 중에서 가장 지배적인 위치에 놓여 있는 산업이다. 왜냐면 출판은 한 사회가 생산하는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와 서사가 문자로 저장되어 가장 방대한 규모로 유통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출판산업의 오랜 전통 속에서 지식사회를 지탱해온 거의 모든 인적 구성원들이 상호 유기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출판은 그 속성상 콘텐츠 생산이 영구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는 일종의 생태계라는 것이다. 콘텐츠인 ‘음악’ 혹은, ‘음악인’에 집중하기보다는, 제조물인 ‘음반’에 집중함으로서 변화를 주도할 기회를 잃은 음반제작사의 전철을 한국의 출판산업은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이제 출판산업계 내부에서도 연예계의 매니지먼트사나 기획사처럼 콘텐츠와 콘텐츠 생산자에 집중하며, 책 그 자체보다는 작가 브랜딩 등의 방식으로 ‘저술가 자체를 총체적으로 기획하고 관리하는 내용’으로 업무를 혁신할 수 있다. 벌써 발 빠른 대응을 해가는 출판기업들도 생겨나고 있다. 출판사 편집자가 소셜 커뮤니티의 셀럽으로 종종 등장하고 있는 현상도 이러한 출판산업의 구조적 혁신과 변화의 중요한 징조다. 일선 출판편집인들의 업무 내용과 역할도 점차 달라지고 있다. 여기엔 책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 정보, 서사를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로 유연하게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전환이 아직은 초보적 수준이기는 하다. 하지만 신뢰할 만한 성공 사례나 패러다임이 제공될 경우 매우 빠른 속도로 혁신하고 적응하는 출판산업의 특성상 그리 오래지 않아 양질전화 차원의 대변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즉 출판산업이 지난 수백 년간 지켜오던 제조업을 벗어나 ‘저술가 기획’, 혹은 ‘저술가 매니지먼트’라는, 차원이 다른 산업 형태로 도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즉 출판산업이 지금까지처럼 책 출간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수단’으로 삼아, 그 책을 쓴 저술가의 사회적 위상(유명세, 지명도 등)을 최대치로 확대하는 형태로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로써 발생하는 모든 부가가치를 상호 계약에 의해 저술가와 출판기업이 함께 추구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지금의 연예기획사와 거의 같은 구조인데, 연예인뿐만 아니라 출판을 기반으로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모든 전문가와 지식인들을 포괄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마치는 말

 

한국의 다양한 출판 저작물들의 해외 수출 물량은 불과 십여 년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문화의 속성은 마치 물과 같다. 항상 더 높은 곳에서 조금이라도 낮은 곳으로 흘러내린다는 면에서 그렇다. 한국 문화의 위상이 높아졌기에 우리로부터 문화가 전 세계로 흘러가는 것이다. 출판을 둘러싼 이러한 변화는 출판산업을 향해 분명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구조적 변화를 넘어, 진화의 수준까지 요구하고 있다. 사업의 본질이 바뀔 수 있는 거대한 변화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이토록 큰 변화에는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읽고 누구보다 앞서 혁신을 이루어낼 수만 있다면, 실로 엄청난 기회로 반전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바로 여기는 K-출판의 기로다.

 

 

김성신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부회장, 파주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조선일보 서평 코너 ‘재밌다 이 책’ 주간 연재, KBS1라디오 라디오매거진위크앤드 ‘일요일은 책과 함께’ 코너 고정 출연 등 집필과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foucault6134@naver.com
페이스북: seoungsheen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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