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2 2024. 03-04.
[청소년 독자가 출판 시장의 미래다]
박상률(청소년 문학가, 시인)
2024. 03-04.
요즘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발견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있다. 작은 스마트폰에 영화, 스포츠, 게임, 드라마, 음악 등등 없는 게 없는 세상인데 누가 책을 들고 다니겠는가. 신문과 문고본을 들고 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던 시대는 옛말이다. 스마트폰이 생겨나고 그에 맞춰 e-book이 나타나니 문고본은 진즉 사라져 버렸다. 영화와 TV가 나왔을 때만 해도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과 더 멀어질까 염려하곤 했다. 컴퓨터와 인터넷 세상이 열리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들이 모두 손안에 들어온 스마트폰이 나올 줄 알았다면 예전의 염려는 귀여운 수준이다. 책과 멀어질 이유가 점점 많아지는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한다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인간에게 책 읽기는 본능이 아니다. 학습하지 않고서는 저절로 자발적인 책 읽기에 이를 수 없다.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읽어주는 책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들을 수 있지만, 스스로 찾아 책을 읽는 것은 본능이 아닌 훈련과 연습을 통해 습관화해야만 가능하다. ‘언어’ 역시 본능적인 ‘말’이란 소리를 통해 학습하긴 하지만 ‘독서’라는 행위는 책에 대한 호기심 없이 습관화하기 힘들며 이는 부모가 억지로 심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책을 권한다고 책을 붙들고 있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 자발적인 독서를 기대하긴 더욱 어렵다.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책을 강요받기 시작하면 오히려 거부감을 느낀다. 자아와 여러 세상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청소년기에는 자기 성취 욕구와 개성이 강해지면서 본능적이고 습관적인 학습이 되어 있지 않은 책 읽기는 더욱 거부하기 쉽다.
청소년기의 특징은 또 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먼저 눈길이 간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금세 새로운 기기에 적응하고 환호작약한다. 특히 영상 분야의 새로운 기기들과 거기에 실린 내용물은 눈이 부시다 못해 눈알이 핑핑 돌 정도이다. 청소년은 특유의 습득력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매체에도 쉽게 적응한다. 청소년이 보고 듣는 영상은 현란하며, 입체적이고, 자극적이다. 특히 숏폼, 릴스처럼 길이가 짧은 영상은 어른들이 보기에 도저히 내용이 가늠이 안 되고 따라가기도 버겁지만, 청소년들은 이런 영상에 쉽게 눈을 빼앗긴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게임의 내용이나 화면을 보자. 가히 청소년이 빠져들 만하다. 재미있는 눈요깃거리들이 스마트폰이라는 휴대전화기에 다 들어가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몇 시간씩 놀 수 있는데, 이런 세상에서 책을 읽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책 읽는 일을 본능처럼 습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첫째, 어른들이 먼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좋은 독자가 되어야 한다.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습관화하려면 책을 읽으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우선 어른들부터 손에 있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청소년을 ‘위한’ 시혜적 독서가 아니라 청소년과 ‘함께’하는 공존의 관점에서 책을 읽어야 한다. 이 말은 집 안 벽에 책이 가득하다는 말이며, 책에 노출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독서 습관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집마다 거실에 책장을 설치했고 이를 빨리 채울 전집류가 많이 팔렸다.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어떤 백과사전 회사는 책 케이스와 표지만 팔아 책장을 가득 채우게 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책이 이처럼 장식용으로라도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지금보다 더 ‘부유’했기 때문이다.
둘째, 책과의 물리적 거리를 좁혀야 한다. 휴대성을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e-book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스마트폰 안에 있는 한, 책으로 가는 길에는 SNS 등 장애물이 너무 많다. 출판계는 책과 독자들이 가까워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책의 휴대성을 감안해야 한다. 휴대하기 좋았던 작은 책인 문고본이 사라진 게 아쉽다. 책과 관련해 나라가 해야 할 일, 독자가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출판계는 무엇보다도 청소년들의 손에 책을 많이 접하게 하면 좋겠다. 시장의 흐름과 수요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겠으나 청소년들이 휴대폰보다는 휴대책을 많이 접하게 한다면 더 ‘스마트’해질 수 있지 않을까.
셋째, 스스로 좋은 책을 구분하도록 기다려 주어야 한다. 어릴 적 독서하는 습관이 만들어졌다면 다음으로는 나쁜 책, 좋은 책에 대한 기준을 정해 주지 않는 것이다. 어떤 책이든 읽다 보면 독자 스스로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나쁜 책이라 해도 반면교사 역할을 할 테니 아이들이 스스로 판단할 때까지 지켜보면 그만이다. 책을 통해 읽는 근육이 단단해졌을 때, 교차 점검하고 의문을 가지고 여러 정보를 꿰뚫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더 나아가 생각의 수준과 깊이가 확장된다.
이와 관련한 예로 미국의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러셀 셔먼(Russell Sherman) 교수의 교육법이 있다. 그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책을 통한 상상력 근육을 키워냈다. 학생들에게 책, 잡지 등 다양한 책을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고른 단어를 활용해 문장까지 만들도록 한 것이다. 피아노 연주를 위해서는 현란한 손가락 기능만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다르게 해석하여 연주하는 것, 상상력을 연주에 불어넣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으면 글을 쓸 수가 없다. 또 글쓰기의 바탕인 책 읽기가 없다면 가치 지향은커녕 몰가치적으로 살아가게 된다. 책은 자신과 세계를 발견하게 해준다. 자신의 세계를 발견해 나가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책 읽기가 무엇보다 강조되는 이유다. 그러기에 나는 “나쁜 책은 없다.”고 말하며, “사람만이 책을 읽는다.”고 말한다.
인간은 성장을 멈추는 순간 늙는다. 그래서 인간은 죽기 전까지 성장해야 한다. 근육이 자란다고 성장하는 게 아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며 판단을 할 수 있어야 남에게 함부로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 자기 생각과 세계를 갖추어야 한다. 인간은 자기만의 세계를 언어로 구성하고 이를 확장시키며 성장한다. 언어는 책에 쓰여 있다. 여러 상황을 하나로 꿸 수 있는 능력은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의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잠자고 있는 뇌의 세포들을 깨우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청소년이 억지 성장, 계몽과 교훈의 강박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책’이라는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게임을 비롯한 각종 영상물은 극단적인 소재나 자극적인 화면을 제공하면서 인간을 더욱 ‘무감각’하게 한다. 인간은 감성과 지성이 균형 있게 발전했을 때 제대로 서게 된다. 감성적 측면에서 ‘무덤덤’한 인간은 자칫 바닥으로 쳐져 매사에 흥미를 잃어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느리게라도 한 줄 한 줄 읽으면서 영상이 제공하지 못하고, 게임이 보여주지 못하는 복잡한 감정선을 스스로 따라가게 하는 게 중요하다. 책 읽기의 묘미를 터득해야 책이 손에 쥐어진다. 다른 매체가 주지 못하는 책만의 고유한 장점을 맛본 이만이 다시 책을 찾는다. 인간은 단순히 의사소통만 하며 살지 않는다.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박상률 청소년 문학가, 시인 시집 『국가 공인 미남』(실천문학사, 2016), 『길에서 개손자를 만나다』(천년의시작, 2020), 소설 『봄바람』(사계절, 2017), 『개님전』(시공사, 2021), 수필집 『쓴다,,, 또 쓴다』(특별한 서재, 2020), 『꽃잎 떨어지는 소리 눈물 떨어지는 소리』(해냄출판사, 2021), 동화 『도마 이발소의 생선들』(시공주니어, 2010),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시공주니어, 2022) 외 다수의 책을 출간했다. 소설 『봄바람』은 우리나라 청소년 문학의 물꼬를 튼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2018년 아름다운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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