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5 2023. 07.
[책동네 ‘근무제’ 실험과 현주소]
서믿음(〈아시아경제〉 기자)
2023. 07.
직장인의 근무 형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19의 파장은 모든 업계에 크고 넓게 일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면서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시행했고, 상황이 나아지는 정도에 따라 탄력근무제를 병행했다. 출판사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편집자가 지식 제단의 최전선에 있다고 해도 코로나19가 사람 가려가며 오는 것은 아닐 터. 길다면 길었던 수년간의 엄혹한 코로나19 시기에 편집자들은 책 짓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 양태는 꽤 다양했다.
“동료를 그 정도도 못 믿고 어떻게 일을 합니까. 업무에 지장이 없다면 어디에 있든 상관없습니다.”
코로나19 시기였던 지난해 A출판사의 대표가 직원들과의 타운 홀 미팅(town hall meeting) 때 전한 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시행되던 당시 어느 직원이 해외로 나가 일과 휴식을 병행한 이른바 ‘워케이션(Work+Vacation, 휴양지에서 일하면서 휴식도 취하는 업무 방식)’을 감행한 상황을 두고 동료 직원은 대표에게 의견을 물었다. 해당 직원은 업무 태만이나 일탈로 간주하고 대표의 불호령을 예상했을지 모를 일이었지만 의외로 대표는 ‘그게 무슨 문제냐’는 식의 반응을 내놓았다. 업무 결과에 악영향이 없다면 근무 형태는 재량에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직원의 업무 능력이 특출나 대표가 두둔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대표는 평범한 직원의 평범하지 않은 시도를 평범으로 간주했다. 해외근무가 특수한 경우이긴 했지만, 그런 기조가 이제는 사내 문화로 자리 잡아 A출판사는 현재도 재택근무를 허용하고 있다.
직원 수가 적은 출판사의 경우 전 직원이 재택근무를 유지하기도 한다. 2020년부터 대표 포함 3명의 직원이 재택근무를 이어온 B출판사 대표는 “오프라인에 함께 있으면 일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출판사는 본래 그렇게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과하게 욕심내면 오프라인이라고 해도 안 될 것은 안 된다”며 “중요한 건 ‘우리는 어디까지만 하자’라는 내부 공감대 형성”이라고 말했다. 부가적으로 (임대료)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다소 도움이 된다고 귀띔했다. 다만 그렇다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월 3차례 대면 회의로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향후 그 비중이 커질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A출판사 대표는 “서로 호흡하고 말과 행동을 나누며 한데 어울려 배우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아쉬운 대목”이라며 “이후 신입 직원이라도 들어오면 적응이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이왕 그럴 바엔 아예 (전 직원 재택근무의) 정체성을 살려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을 뽑을까 싶기도 하다”고 웃으며 말했다.
엔데믹 이후 재택근무 지속 여부는 해당 근무 형태를 바라보는 관리직의 시선에 크게 좌우된다. 어쩔 수 없이 재택근무를 시행해야 했던 시기 일부 출판사에서는 시야에서 벗어난 직원들을 통제하기 위해 촘촘한 보고를 강요했다. 메신저 지각 응답은 ‘딴짓’으로 의심받았고, 그럴수록 생생한(?) 업무 보고를 강요받았다. 한 편집자는 “편집 업무라는 게 글로 풀어냈을 때 알맹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책 제목을 고심하느라 보낸 시간을 글자 그대로 적었을 때 관리자가 보기엔 시간 낭비로 생각할 수 있다. 보고를 위한 ‘글짓기’ 스트레스에 차라리 출근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토로했다.
재택근무는 엔데믹 이후 많이 줄었지만 대다수 출판사가 탄력근무는 지속하는 모양새다. 사실 탄력근무가 코로나19 이전에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여러 출판 관계자들을 만나 본 결과 코로나19 이전에도 다수 출판사에 탄력근무가 존재했다. 다만 임신, 양육 등 특수 상황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됐고, 대다수 직원도 그 예외를 본인의 상황에 확대 적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코로나19를 겪으면서 탄력근무가 업계 일반으로 자리매김했고, 엔데믹이 선언된 현재에도 많은 출판사가 탄력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 자율형 탄력근무제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매일의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완전 자율형보다는 ‘9 to 6’에서 앞뒤로 한두 시간씩 변화를 주고 이를 고정한 형태를 많이 이용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상대적으로 ‘8 to 5’와 ‘10 to 7’ 형태가 가장 많았고, 만족도도 높은 편이었다. 1시간의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10 to 7’을 선택한 어느 편집자는 “아침잠이 많은 편인데 한 시간 늦게 출근하면서 삶의 만족도가 많이 올라갔다. 출근 피크타임을 비껴가면서 출근 소요 시간도 크게 줄어들어 내 시간이 많아졌다. 퇴근이 늦어지긴 하지만 그전에도 칼퇴(정시 퇴근)한 경우가 많지 않아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편집자들은 “출퇴근 시간이 서로 달라 조금 부산해진 감이 없지 않다.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가 많다”고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업무량에 탄력근무제가 무용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고정적인 절대 업무량이 그대로인 상황에서는 유연 근무제가 있다고 해도 추가 근무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적잖은 편집자가 낮에는 전화나 미팅, 행정 업무 등을 진행하고, 집중력을 요하는 교열교정 작업 등은 퇴근 후 일거리를 가지고 집에 가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업무 형태는 업력이 오래될수록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한 편집자는 “페이퍼(서류)와 행정 작업, 회의에 참석하다 보면 낮 시간이 금방 간다. 연차가 쌓여 직책이 높아져도 실무를 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 본인 업무에 후배들이 들고 오는 일까지 봐줘야 한다. 결국 퇴근할 때 원고를 갖고 집에 가서 일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편집자는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만 보고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지켜진다고 생각하는 대표들이 일부 있다.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직원들이 흘리는 피와 땀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여러 편집자들을 접한 결과 장르별로 업무 특성 차이가 엿보였다. 자기계발서나 실용서의 경우 당시 사회가 내포한 화두에 시의성 있게 대응하다 보니 마감에 쫓기는 경우가 많았다. 통상 마감 일정은 편집자가 정하지만, 내부 사정에 따라 조정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에 따라 편집자 업무는 과중됐다. 시대의 화두에 따라 화제성 인물을 쫓다 보니 저자 필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저자와의 논의를 거쳐 고쳐 쓰기를 반복하지만, 경우에 따라 편집자가 저자를 대신해 다시 쓰다시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 편집자는 “어떤 책은 내게도 인세 지분이 있는 것 아닌가 싶은 경우도 있다”고 하기도 했다.
자기계발서나 실용서 등은 저자가 본업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아 일과시간 외 소통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본업을 마치고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집필을 하다가 편집자에게 의견을 구하거나 확인받는 일이 많아 편집자는 본의 아니게 추가 근무를 하게 되는 경우다. 이 역시 업력이 오래된 편집자들의 경우 대체로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일로 간주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편집자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반발도가 높았다. 한 고참 편집자는 “젊은 편집자 중에는 일과시간 외에 오는 저자 연락에 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회사 차원에서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라 난감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일정 규모를 갖춘 출판사의 경우 대체 휴무나 시간외근무수당이 존재하지만, 실사용에는 현실적 제약이 많다는 의견이 많았다.
문학 출판사의 경우에는 작품에 편집자의 개입도가 상대적으로 적어 관련한 스트레스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다만 문인들을 대하는 시간 할애와 정성적 에너지 소모는 다소 높은 모습을 보였다. 사실 편집자들을 통해 여러 사례를 수집하면서 문인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기에는 난해한 점이 많았다. 일단 업력에 따라 차이점이 엿보였다. 소위 출판사 매출에 지분이 큰 문학 작품 담당 편집자의 경우 작가 관리에 많은 공을 들였다. 이른바 ‘창작의 고통’을 다스리기 위한 만남과 저녁 술자리가 잦았다. 다수의 고참급 편집자들은 과거에 작가의 집안 경조사에 참가했던 일, 기획회의 날 외에도 수시로 술자리에 불려 나갔던 일 등을 전했다. 누군가는 편집자가 작가네 김장을 도왔다거나, 저자가 넌지시 내비친 필요에 관련 물건들을 사 들고 지방으로 달려갔던 출판계에 떠도는 전설(?)을 전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느껴질 법하지만 과거 저자와의 인간적인 유대가 중요했던 시대에는 그런 접점 형성이 편집자에게 무조건적인 ‘갑질’은 아니었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물론 문단 권력이라 불리는 이들에게 수시로 호출당하면서 술자리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다는 증언도 상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른바 젊은 작가들의 상황은 다르다. 취재한 바에 따르면 편집자에게 개인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 자체가 드물어졌다. 과거보다 훨씬 대등한 관계에서 업무 파트너로서 협업한다. 이런 경우 편집자들에겐 사람보다 행사가 추가 근무를 부르는 요인이 된다. 문학상을 진행하는 출판사의 경우 준비 과정에 공이 많이 들어갔고, 자신이 속한 출판사 외에 다른 출판사의 행사에도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 편집자는 “문학 특성상 출판사 소속 작가가 여타 출판사의 문학상을 받거나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경우 인사치레로 가는 경우가 많았다”며 “서울이든, 지방이든 한 달에 한 번 행사 다닌다는 말도 있었다”고 전한다. 다만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각종 행사 자체가 줄었고, 엔데믹 이후에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한 고참 편집자는 “출판업 특수성으로 인해 시행이 어려웠던 것들이 코로나19로 어부지리로 작용한 것 같다. 행사 자체가 줄었고, 있다고 해도 필수 인원만 참석한다. 친목 도모를 위한 술자리도 거의 없어졌다”며 “일과시간 외 북 토크나 사인회도 대체 휴무를 제공하고 있다. 다른 업종보다 노동 환경이 좋다고 할 수 없으나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출판업은 업계 표준화가 약해 경우 차이가 좀 심하다. 그래도 법적으로 하자고 해서 초과근무 강요는 예전보다 줄고 있는 것 같다”고 부언했다.
출판사의 한 마케터는 “출판이 마감이 있는 업종이라 어느 정도 업무 압박이 있고, 행사가 많거나 책이 몰리는 시즌에는 압박이 좀 더 세진다”며 “야근수당, 주말수당, 대체 휴무가 존재하긴 하지만 무엇보다 너무 낮은 연봉 수준이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목했다.
어느 주니어 편집자는 근무 형태보다는 그 외의 변화가 더 절실하다고 피력했다. 그는 “지식과 생각을 물성이 있는 책으로 만든다는 짜릿함이 있다. 여러 책을 작업하며 느껴지는 각기 다른 새로움이 좋다”면서도 “편집자가 고부가가치 노동자임에도 합당한 처우가 따르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 요즘은 좋은 기획보다 인플루언서 저자 섭외에 급급해하는 경우도 많고, 전반적으로 업계에 발을 들이는 사람이 줄어 물이 고이는 건 슬픈 일”이라고 토로했다.
서믿음 〈아시아경제〉 기자 2017년 기자 생활 시작부터 줄곧 ‘책’을 다루고 있다. 책을 쓰거나, 짓는 사람과 어울리며 ‘세상만사’ 듣기를 즐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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