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39  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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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저작권 수출 정책,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김홍기(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본부장)

 

2022. 12.


 

대한민국이 K-문화 한류의 영향으로 소프트 파워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때, ‘K-출판’의 전 세계적 폭넓은 인기라는 당면 과제를 작가와 출판사, 정부 당국 그리고 국내 독자들을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자가 가장 관심을 두고 살펴봐야 할 순간이다. 영화와 드라마, 웹툰, 게임과 음식,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한류는 이미 각 영역에서 세계인의 머릿속에 각인된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 잡았고,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고 소통하는 문화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의미는 자기가 좋아하는 한류 스타를 더 가까이 추종한다는 의미도 있고, 그런 문화를 선도하는 한국인들의 최신 트렌드를 빨리 이해하고 동화되기 위한 움직임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중 그런 한국어의 보고이자 한국인의 사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한국의 문학 작품이나 논픽션,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의 책을 읽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은 몇이나 될까? BTS 때문에 한국어가 유창해진 외국인이 그다음 단계로 한국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들 확률은 얼마나 될까? 〈오징어 게임〉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출간된 베스트셀러라면 무엇이든 빨리 자국 언어로 번역되길 애타게 기다리는 해외의 잠재 독자들이 정말 무궁무진하게 많을까?

 

극단적인 예를 들기는 했지만, 최초의 상업적인 한국 출판 콘텐츠 수출의 성공과 지금까지의 그 발전 과정을 일관되게 지켜본 입장에서, 대다수의 한국 출판 관계자들은 여전히 잘못 생각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것들, 산적한 심각한 문제들이 있는데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도 효과 없는 ‘출산 정책’처럼 여전히 맥을 짚지 못하고 있는 각종 수출 지원 정책들의 한계를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분해해 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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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선진 출판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미/유럽에 번역 소개된 한국 출판물 중에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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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진출한 한국 작가 중에, 현지인들에게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만큼 그 이름을 인상 깊게 떠올리게 할 만한 작가나 작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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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유럽의 세계적인 문학상 중에 ‘외국어 부문’ 한정 경쟁이나 수상이 아닌, 본상의 후보에 올라 실질적으로 현지의 인기 작가들과 최종 경쟁을 해 본 한국 작품이 있는가?

 

 

 

수출 통계 이면의 현실들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공식적으로 해외에 수출된 한국 출판 저작물은 총 5,070건으로, 한 해 평균 약 1,700건이 수출되었다.1)

 

도서 저작권 수출 권역별 분포(2018~2020)

 

도서 저작권 수출 권역별 분포(2018~2020)

출처: 「2021 출판산업 실태조사(2020년 기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1)

 

최근 3년간 분야별 도서 저작권 수출 실적(2018~2020)

 

최근 3년간 분야별 도서 저작권 수출 실적(2018~2020)

출처: 「2021 출판산업 실태조사(2020년 기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1)

 

이 중, 아시아 지역으로의 수출이 전체의 약 90%에 이르며, 유럽은 약 8%, 세계 최대의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으로의 수출은 0.8%에 그쳤다.2) 분야별로는, 아동물이 45%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고, 문학이 16%, 언어와 학습물이 약 14% 그리고 만화가 9.4%를 차지했으며, 현재 한국 출판 시장의 베스트셀러 대다수를 이루는 논픽션은 그 분야를 다 합쳐도 수출 비중이 10%에 불과했다.3)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현지에 출간된 이후에 실질적으로 인세가 발생한 경우가 전체의 10% 남짓이고, 약 90%는 현지 번역판의 인세 미발생 혹은 현지 출판사의 판매 보고 미비, 연락 두절 등으로 인한 확인 불가로 나타났다는 점이다.4)

 

물론 최근 3년간의 통계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코로나19가 휩쓸었던 시기가 포함되어 있어서 수출 건수에서 드러나는 오류 또한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특정 수출 지역과 몇몇 분야 편중이라는 현실은 10년 전에도 지금도 특별히 변한 것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한류의 영향이 큰 아시아에서의 출판 저작권 수출의 약 60%가 중국과 대만이었으며, 똑같이 한류가 인기를 끌면서 우리보다 출판 시장이 큰 일본으로의 한국 출판물 수출은 3%에 불과하다는 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국에서 수입되어 번역되는 저작물은 매해 평균 일본에서 약 40%, 미국과 영국에서 약 50%, 유럽을 비롯한 기타 지역에서 10% 정도로 보고된다. 반면에 우리 작품이 수출되는 비중은 일본은 3%, 미국은 0.8%에 불과한 것이다!

 

더불어 아시아를 제외한 영미/유럽 지역에 수출된 저작물 중에 추가 인세가 발생하는 경우는 평균 1%에도 못 미치며, 재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계약이 종료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추정된다. 인세가 발생하지 못하거나 재계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는 해당 한국 작품이나 작가가 영미/유럽 현지의 독자들에게 결국 외면받았고 경쟁력 확보에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더군다나 지난 20년간 영미 출판사에 계약된 한국 작품들 대다수가 현지 독립 출판사나 중소형 출판사들을 통해 출간되었다. 자본에 바탕을 둔, 실질적인 부가가치를 기대할 만한 미국의 펭귄-랜덤하우스나 아셰트 북그룹 같은 굴지의 대형 출판사들 본사에 계약되거나, 그중에서도 최고의 작가들을 다루었던 수석 편집자들의 손을 거친 한국 작품들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찾아보기 힘들다.

 

 

 

해외 진출의 목적

 

통계가 말해주듯, 우리가 그럴싸하게 포장해왔던 ‘한국 문학의 세계화’, 또는 한국 출판 콘텐츠의 수출 과정과 그 결과는 한마디로 양적인 성장에만 집중한 나머지, 질적인 면에서는 오류투성이의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해외 진출을 생각하는 작가와 한국 출판사(작가와 출판 계약을 맺고 직접적인 대리인 관계를 맺은 통칭 저작권사)들에 으레 던지는 질문이 있다. “수출의 목적이 무엇인가?”

 

수출의 최종 목적이 현지 출간인지, 현지 출간을 통한 이윤 추구인지를 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저작권사(작가와 한국 출판사)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하지만, 앞의 통계가 말해주듯 현실적으로 그렇게 성공한 사례는 손에 꼽힌다. 현지 출간만을 목표로 한다면 선인세를 받고 저작권을 파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 금전적 지원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도 출간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존재한다. 현지 수출로 인기와 수익을 얻는 것은 현재 한류의 영향 범위인 아시아와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빅마켓이라 할 수 있는 영미/유럽의 선진 시장에서 인정받고 이윤을 보장받기란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이미 영미/유럽 시장에 진출한 한국 작가들도 현지의 일부 ‘아시아 문학’ 전문가들에게만 그 이름이 알려져 있을 뿐, K-POP의 BTS나 블랙핑크처럼 세계적 대세로 자리를 잡아 막대한 수익을 발생시킨 경우는 드물다.

 

그동안 정부와 관계 기관의 수출 정책의 가장 큰 허점은 이런 일선 업체들의 상업적 니즈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보다 시장이 크고 파급력이 높은 영미/유럽의 선진 출판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정보’이다. 세계 출판 시장에서 자리 잡고 성공하기 위해 통용되는 정보와 네트워크는 분명 따로 존재한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오랫동안 해외의 대형 출판사들이나 메이저 에이전시들과 외서 저작권 수입을 통해 일해 왔던 일부 한국의 저작권 에이전시들에 이런 정보와 인맥, 노하우가 축적된 예도 있다. 하지만 현재의 공식적인 수출 지원책은 출판 콘텐츠를 직접 제작한 한국 출판사 위주로만 편성되어 있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현지에 출간되는 한국 작품의 건수를 높이는 것만이 최종 목적이라면, 이럴 것이 아니라 그냥 현지 나라별로 몇몇 출판사를 지정하여 모든 직접적인 지원을 다 해주고 한국 작가의 작품을 내도록 추진하고 공표하는 것이 가장 가성비 높은 방법이다.

 

세계 무대의 비대칭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할 수 없다면 BTS 급의 세계적인 한국의 대형 작가를 만들어내기가 앞으로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국내 출판계에 그런 포괄적인 노하우를 지닌 전문가나 회사는 거의 없다. ‘무역’과 ‘출판’의 개념과 ‘저작권법’에 기반을 둔 상업적인 콘텐츠 기획과 국제 감각을 동시에 지닌 진짜 전문가를 발굴하고 선정하여 일관되게 파격적인 지원을 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 텐데, 아직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출판물의 세계화가 까다로운 기술적 이유

 

한국 문학뿐만 아니라 한국 출판 콘텐츠의 세계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태도는 선택과 집중이다. 많은 한국 출판사(저작권사)들이 자사의 작가와 작품을 당위적으로 해외 무대에 데뷔시키고 싶어 하지만, 앞에 언급한 것처럼 극소수만이 살아남는다. 그 수많은 뛰어난 한국 작품 중에서 ‘애국심’이나 ‘한국적 특수성’을 배제하고 세계 시장의 트렌드에 부합하는 보편성과 세련된 완성도,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동시에 갖춘 작가를 발굴하는 것이 수출의 성공을 위해 선행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미 위에서 논한 것처럼, 그런 수준의 선구안과 정보를 지닌 탁월한 전문가가 현재 한국에는 별로 없다. 만약에 그런 세련된 해외 영업을 진행할 수 있는 진짜 전문가가 있었다면, 미국 시장에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를 하거나 밀리언셀러로 기록된 한국의 단행본 작가가 이미 등장했어야 했다!

 

또 다른 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작업은 ‘번역’이다. 수출을 진행하는 한국의 저작권 관계자들이 가장 흔하게 겪게 되는 장벽이기도 하다. 이미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페인과 중남미, 독일 등의 국가에서는 시즌별로 중요한 자국 작가들을 소개할 때, 전체 영문 원고와 현지 언어로 된 원고를 동시에 보내준다.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다고 할지라도, 외국의 에이전트나 출판사로부터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영어’로 마련된 자료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한국문학번역원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의 기관에서도 이미 수출을 위해 주요 언어로 사전 번역을 하는 것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소개를 위해 최소한 필요한 번역 원고와 최종적인 현지 출간을 위한 번역 수준의 질적인 차이가 분명 존재하며, 그것은 번역 비용에 비례하고 때로 그 비용이 막대하기도 하다. 문제는 현지 출간 계약이 될 때, 그 번역 비용을 어떻게 분담하는지가 관건이 되기도 한다. 우리가 해외 저작물을 수입할 때는 보통 한국의 출판사가 번역비를 전액 부담하지만, 수출 상황에서 때때로 해외 출판사들이 대놓고 한국문학번역원과 같은 한국 정부 기관이 번역비 전액을 부담하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현실적인 차원에서, 세계적인 대형 한국 작가를 만들기 위해 가장 빠른 방법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영어권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작업이 영문 번역이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영문 번역의 비용도 문제이지만, 현지 편집자와 전문가들이 보고 반할 만한 질 높은 영어 번역을 할 수 있는 한영 번역 인재풀이 생각보다 허약하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물론, 한류 등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고자 하는 내국인과 외국인 번역자들이 늘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언론에서는 해외 문학상을 받거나 영미 출판사에 출판되면서 시선을 끄는 작품과 그 번역가를 ‘애국심’의 차원에서 다루곤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미국과 영국 현지의 인기 베스트셀러 작가가 직접 영어로 쓴 작품과 비교해서, 외국 문학으로서의 예우가 아닌 실전 주류 무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한영 번역가 혹은 한국 출판 번역물이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다.

 

 

 

‘한국적’이라는 수사에 대한 집착

 

전 세계 모든 나라에 수만에서 수십만, 백만 부 이상의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책들이 항상 존재해왔고, 한국의 단행본 시장에도 매 시즌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품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많은 베스트셀러가 항상 세계 무대에 데뷔하거나 성공하지는 못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의 베스트셀러는 한국의 정서와 시장 환경에 맞춰서 제작되어 성공한 것인데, 우리의 지나친 애국적 감수성은 한국 최고의 작품이라면 마땅히 전 세계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동남아 어느 국가에서 성공을 거둔 밀리언셀러 작품이라고 해서 한국의 출판사와 편집자들은 편견 없이 기꺼이 높은 제작비를 들여 출간하고, 한국의 독자들은 깊은 관심을 두고 열린 마음으로 기꺼이 구매해서 읽을까? 한국 베스트셀러 역사에서 과연 그런 사례가 있었던가? 한국보다 물리적인 출판 규모가 크다고 할 수 있는 일본, 심지어 독일이나 스페인, 프랑스 같은 유럽 국가들에서도 미국 시장 출간을 위해 우리보다 훨씬 앞서 오랫동안 막대한 투자를 해오고 있지만, 눈에 띄게 확실히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출판이라는 산업과 출판 콘텐츠라는 특성을 고려했을 때, 여타의 음악과 영상 콘텐츠 등과 같은 범주에서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책’이라는 콘텐츠는 물리적으로 이해해서 음미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말초적으로 직관적인 감동을 즉시 일으킬 수 있는 성질을 갖고 있지 않다. 이는 ‘K-출판’이라는 개념을 K-POP이나 영화/드라마 한류의 성공 전략에 맞추려고 하는 지금의 정책들이 빗나가는 이유이다. 이것은 마치 예전에 일본 게임 산업의 대표적 성공 사례인 ‘닌텐도’를 보고 한국에서도 자본과 시간을 투입하면 얼마든지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 수 있으리라 믿었던 착각과도 같다.

 

한국 작가의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세계 시장에서의 니즈와 트렌드는 ‘한국적 멜로’나 ‘한국적 추리’ 같은 특수성을 갖고 경쟁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분명 우리가 간과하거나 파악하지 못했던 세계 시장의 규칙과 그들만이 인정하는 트렌드, 감수성이 따로 존재한다. 이미 영화계나 음악 산업계에서는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를 기획 단계에서부터 큐레이팅하여 내수와 수출을 아우르는 상품들을 만들어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출판계의 기획 수준에서 그런 과정으로 작가를 발굴하여 국제적으로도 균형 잡힌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철저하게 ‘한국어’에 기반을 둔 보수적이고 안전한, 진입 장벽이 높은 산업의 특성에 기대어 안주하고 있다가, 한류라는 급작스러운 자극에 한국식 ‘닌텐도’를 서둘러 만들기 위해 부산했던 그런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국식 출판 기획 관행에서 파생된 구조적 핸디캡

 

보통 영미/유럽 현지의 작가들은 특정 에이전시와 특정 출판사와 독점을 맺고 평생을 함께하는 경우가 흔하다. 따라서 작가를 대리하는 현지의 에이전시는 긴 호흡에서 전문성을 확보하여 대형화되고, 일관성을 갖고 신선한 콘텐츠를 꾸준히 발굴하여 공급할 수 있다. 현지 출판사들도 소속된 ‘간판 작가’들을 꾸준히 홍보하면서 독자들의 충성도와 부가가치의 시너지를 계속 낼 수 있는 안정적인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가 익히 알듯이 ‘출판 기획’이라는 개념은 기획과 편집, 마케팅, 수출과 무역 등이 모두 상호 작용해야 하는, 지적이고 전문적인 노동이 요구되는 일이다. 그런데 장기적인 기술적 관점에서 봤을 때, 현재의 한국 출판 환경에서는 그런 저작권의 수출과 무역의 선순환을 마련하기가 힘들어 보인다.

 

한국에서는 한 작가가 한 출판사와만 일하는 경우가 드물다. 더군다나 에이전트가 아닌 한국 출판사들이 대리인의 역할을 겸하기 때문에, 여러 작품을 서로 다른 출판사에서 발표한 작가는 작품별로 다른 대리인을 두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한국 출판사들은 수출에 있어서 하나의 저작권 에이전시에 해당 작가를 독점시키기 보다는 경쟁 입찰을 선호하기 때문에, 작가는 한 명이지만, 작품별로 여러 한국 출판사와 여러 한국 에이전시들이 뒤섞이면서 혼란한 경우가 자주 생긴다. 영미/유럽의 선진 시장에서는 한 작가를 한 곳에서만 관리하는 원칙이 존재한다. 때문에 해당 한국 작가의 어떤 작품을 계약했다고 할지라도 전작이나 앞으로 나올 작품을 또 다른 한국 출판사, 혹은 또 다른 한국 에이전트와 개별적으로 다시 협상해야 하는 등의 까다로운 상황이 생긴다면, 결국, 해외 시장 관계자들이 이렇게 복잡하고 일관적이지 못한 한국적 환경을 이해하면서까지 해당 한국 작가와 계속 협업하려 들지 의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행정적 핸디캡은 한국 작가의 경쟁력을 치명적으로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에이전트가 한 작품을 자본과 시간을 들여서 열심히 소개하고 소기의 성과를 냈는데, 그 작가의 차기작이 다른 한국 출판사에서 출간되며 다른 에이전트가 관리한다고 한다면?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이런 복잡한 사례들은 결국 수출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저작권 전문가들이 사명을 갖고 열심히 업무를 수행할 동기를 가로막는다. ‘수출’이라는 비즈니스가 큰 부가가치를 만들지도 못하고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수 없다면, 여기에 기꺼이 시간과 자본을 투자할 회사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고, 결국 해외 시장을 잘 파악하는 수출 전문가도 육성되기 힘들 것이다. 현대식 출판 산업 시스템이 정착된 지 100년이 넘은 서구의 선진 출판 시장에서, 시행착오와 불만을 겪으면서도 왜 이토록 독점적 파트너십을 일관되게 고수하는지에 대해 한국 출판 관계자들은 숙고할 필요가 있다.

 

 

 

발상의 대전환을 위하여

 

 

‘K-출판’, 혹은 문학 한류의 전 세계적 인기를 기반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형 한국 작가를 탄생시키기 위해 알아야 할 첫 번째 전제는, 현재 한국 출판계 내부에는 세계 주류 시장을 정말로 이해하고 수행할 능력이 되는 진짜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물론 출판 콘텐츠 수출 전문가에 대한 정의는 상황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영화나 음악에서처럼 범세계적 성공을 거두고 압도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한 그런 출판 수출 사례가 지금까지 없었고, 이런 측면에서 적절한 전문가가 없었다는 의미이다. 현재 오랫동안 사업을 해온 한국의 대형 저작권 에이전시들은 여전히 매출의 90% 이상을 해외 저작물 수입을 통해서 창출한다. 오랜 경험으로 해외 인맥과 국제 인프라가 갖춰진 이런 업체들이 지금처럼 ‘한류’가 정점에 달았는데도 불구하고 매출 구조를 수출로 대전환하지 않는 이유를 관계 당국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간 회사가 수출을 위해 자본과 노력을 투입하기에는 위에 언급한 기존의 산적한 문제들이 발목을 잡는다. 지속적인 대형 수출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 국내 인프라와 전문가를 어떻게 정의하고 선정하여 논의를 시작할지를 관계 기관들은 되도록 빨리 결정해야 한다.

 

두 번째 전제는, 정부나 한국문학번역원 등이 주도적으로 이 질적인 성장을 위한 수출 프로젝트를 이끌 수 없다는 점이다. 다시 언급하지만, 해외 현지에서 출간되는 한국 작품의 양적인 성과만 필요하다면, 번역을 포함해서 현지에 모두 직접 지원하면 간단할 일이다. 세계 최대의 출판 행사인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이 올해로 74년째 개최되고 있다. 세계 주류 출판 시장은 70년이 넘게 그들만의 리그와 규칙을 만들어서 발전시켜 왔는데, 여기에 진입하기 위한 정밀한 인프라와 네트워크, 정보와 트렌드는 단시간의 막대한 투자만으로 살 수 없다. 관계 기관들은, 이런 주류 시장의 논리를 해석하고 우리 작품들에 적용할 전문가를 찾고 육성하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현지 빅마켓 엔트리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끈기 있게 축적의 시간을 지원하고 그들이 활동 영역을 질적으로 넓힐 수 있도록 다양한 측면에서 후원하는 일관성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번역에 관해서도 다차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한국 베스트셀러 시장의 다수는 논픽션 에세이와 다양한 인문/교양서들이다. 하지만 현재 문학 번역에만 치우친 정책 때문에, 오히려 더 쉽게 해외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공감하고 받아들일 만한 수많은 한국의 논픽션 명작들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정책으로는 수출을 위해서 이런 논픽션 번역 지원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문학 소설 분야에 비해 무척 어렵다.

 

한편, 문학 번역 지원과 관련해서도 세계 트렌드를 읽는 전문적 기준에 입각한 선택과 집중이 요구된다. 번역의 우선순위가 권력을 지닌 한국의 대문호이거나 한국적 문학의 가치를 드높인 순으로 선정되어서는 곤란하다. 세계 주류 시장에서만 통용되는 보편적 정서는 따로 있고, 일정 시즌을 주기로 새로운 트렌드로 교체된다. 그래서 오히려 ‘한류’라는 이점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예측을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선행해서 신선한 트렌드를 만들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현행의 번역 기획 과정에도 학술적, 기술적 차원이 아닌 다방면의 경험이 풍부한 실전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는 대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한국 작가들의 경쟁력을 확보할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한국 시장에서 외면받는 작품이 해외 시장에서 선전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작품의 완성도를 바탕으로 한 국내 시장에서의 판매량과 작가 브랜드 포지셔닝 전략도 중요하다. 작가의 브랜드는 TV나 SNS 등 대중 매체에 자주 노출되어서 형성된 것이 아닌 오로지 작품만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은 후에야 세계 시장에 당당하게 진입할 여지가 생긴다. 작가는 집필에 집중하고, 국내 출판사는 작품을 잘 팔아서 작가를 널리 알리고, 저작권 전문가(Literary Agent)는 적절한 해외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각자의 전문적인 분야의 업무에만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과 같이 한 작가를 지속해서 관리하고 집중하기 어려운 국내의 구조적 관행의 한계는 풀어야 할 큰 숙제이기 때문에, 관계 당국 또한 함께 연구하고 노련한 정책적 비전을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 전 세계에서 한류가 폭발하는 이 시점에,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그동안 중점적으로 추진되었던 “한국 문학의 세계화”라는 정책을 과감하게 창조적으로 파기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그간 우리의 수출 패러다임은 우리가 세계 문화의 중심이 아닌 변방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양적으로 계속 시도하여 한 작품이라도 더 세계 시장에 많이 계약될 기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양적인 성장이 작가를 비롯한 수출 이해관계자들을 충분히 만족시켜왔던가? 이제는 몇 개국에 계약되었는지의 성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어떤 조건으로’ 계약을 맺어 출판되었는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현지의 어떤 출판사의 어느 편집자의 손을 거쳤는지, 출판되고 난 뒤의 반응은 어떤지, 현지 사후 관리가 잘 되고 있는지 등의 질적인 정보들을 지속해서 체크하고 수정하여 세련된 전략을 수립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어야 한다. 언어를 매개로 한 보수적인 출판 산업의 특성상, 출판 콘텐츠의 무역 수출과 해외 영업은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빅마켓을 선점할 수만 있다면, 다른 어떤 콘텐츠보다도 그 부가가치와 파급력이 강력하고 지속적이기 때문에 그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1)
「2021 출판산업 실태조사(2020년 기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1)
2)
「2021 출판산업 실태조사(2020년 기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1)
3)
「2021 출판산업 실태조사(2020년 기준)」(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1)
4)
「출판 수출 현황 조사연구」(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0)

 

김홍기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본부장

5만 권이 넘는 원고와 기획서를 서가와 하드 디스크에 보관 중이며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 출판되어 빛을 본 원고들도 있고, 여전히 잠자는 원고들도 있다. 더 많은 원고를 세상에 공개하여 독자들이 마주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terrykim@imprim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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