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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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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달 특집]

국내외 그림책&어린이책상 어떤 게 있을까

 

 

 

최현경(프리랜서 편집 기획자)

 

2020. 05.


 

인간이 도모하는 온갖 일은 인정 욕구에서 비롯된다. 책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에 기반한 출판은 어떤 분야 못지않게 인정 욕구가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경연장이다. 출판에서 인정 욕구가 가장 만족스럽게 채워지는 순간은 베스트셀러 등극, 그리고 각종 시상 제도의 선정작으로 호명되는 일일 것이다.

 


린드그렌상 홈페이지에 나란히 걸린 백희나 작가와 린드그렌 작가의 ‘투샷’은 언제 보아도 흐뭇하다.(출처: alma.se)


린드그렌상 홈페이지에 나란히 걸린 백희나 작가와 린드그렌 작가의 ‘투샷’은 언제 보아도 흐뭇하다.(출처: alma.se)

 

최근 백희나 작가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은 비단 해당 작가와 출판사뿐만 아니라 어린이책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이들의 인정 욕구를 100% 이상 충족시켜 주었다. 백희나 작가는 매번 새 책이 출간될 때마다 곧장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고, 도서관 대출 순위에서도 늘 상위에 랭크되는 한국 최고의 인기 그림책 작가다. 하지만 작가의 작품이 단지 ‘많이 팔리는 책’을 넘어서서 문학적으로나 예술적으로 이룬 성취가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던 차에, 이번 수상으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된 일은 내가 칭찬받은 듯 기쁘다. 이번에 모인 관심이 그저 백희나 작가의 작품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그저 아이들이나 보는 책, 육아와 교육의 보조도구 정도로 치부되던 그림책에 얼마나 웅숭깊은 세계가 있는지 더 많은 이들이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그런 면에서 시상 제도는 단지 작가와 출판사의 인정 욕구를 채워 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권위 있는 상은 독서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전문가들의 엄정한 심사 과정을 거쳐 선정된 후보작과 최종 수상작 명단은 독자들 사이에 회자하며 독서의 폭을 넓히고 깊이도 더한다. 작가와 출판사들은 수상작에 들고자, 또는 높아진 독자들의 안목에 부응하고자 더 수준 높은 작품을 출간할 동기를 부여받는다. 한편 연구자들은 이 목록을 분석하여 최근의 작품 경향이나 독자 반응 등을 분석하여 내놓는 등, 독서 문화는 더욱 깊고 풍부해진다. 그런가 하면 권위 있는 수상 목록은 해외 독자나 출판계에 소개할 때도 좋은 기준이 된다. 이렇게 시상 제도는 출판문화에서 도로나 철도 같은 기간산업 구실을 한다고도 보겠다.

 

특히 어린이책 분야에서는 시상 제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다. 대체로 성인들이 자신이 보는 책의 분야에서는 비교적 자신의 취향을 발전시키면서도, 자녀를 위해 선택하는 책은 자신의 의지보다 입소문이나 권위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고 출판사의 마케팅에 휘둘리기 쉽기 때문이다. 성장기 어린이의 독서 취향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기에, 양질의 도서를 추천하는 일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어린이책 출판계에는 매년 한 해에 출간된 도서를 돌아보며 뛰어난 성과를 치하하고, 독자들도 그 권위를 인정하며 독서 활동에 참고할 만한 제도를 찾아보기 어렵다. 세종도서, 북스타트 같은 몇몇 기관의 광범위한 추천도서 목록이나 출판사들이 우수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시행하는 공모전 성격의 시상 제도만이 비교적 영향력을 갖고 있고, 이주홍, 방정환, 윤석중 같은 동화 작가의 이름을 딴 문학상 몇 가지가 운영되고는 있으나 예산 규모나 참여 인원의 한계 때문인지 유의미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는 못하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에 권위 있는 시상 제도가 어서 기획되고 정착되는 데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어린이책, 그림책 관련 시상 제도를 두루 살펴보고자 한다.

 

 

 

국제 어린이책&그림책상

 

국내에서 ‘어린이책의 노벨 문학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시상 제도가 몇 가지 있다. 어떻게든 책을 홍보하려는 마음으로 자격이 충분치 못한 상에도 이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일반적으로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과 이번에 백희나 작가가 수상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이 노벨 문학상에 해당하는 격을 갖추었다고 보고 있다. 전 세계 생존 작가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 아닌 전체 작품세계와 세상에 끼친 영향력을 평가하여 선정하며, 세계 각국 전문 추천 기관의 엄정한 추천과 심사 절차를 거쳐 선정되기 때문이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 Hans Christian Andersen Awards)’

 

먼저 가장 유서 깊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 Hans Christian Andersen Awards)’부터 살펴보자. 이 상은 어린이 문학의 원류라 할 안데르센을 기리며 1956년 I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서 제정한 상이다. 이 상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옐라 레프만’이라는 독일 출신 유대인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에 상처받은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뮌헨에 국제어린이도서관을 설립하고 전 세계 19개 나라에서 어린이책을 지원받은 일이 씨앗이 되어, 1953년에 어린이책 관련인들의 국제 연대 조직인 IBBY가 설립되고, 이어 1956년에 비로소 안데르센상이 탄생한 것이다. 어린이책을 통해 세계 평화와 화합을 도모하고자 한 옐라 레프만의 정신이 이 상에 깃들어 있다고 하겠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ibby.org)

 

안데르센의 나라인 덴마크 여왕 마르그레테 2세가 수여권자이고, 2009년부터 한국의 남이섬이 공식 후원을 맡아 왔다. 2년에 한 번, 전 세계의 IBBY 지부(한국은 KBBY)에서 후보를 추천받아서, 글작가와 그림작가 두 분야에서 각각 수상자를 한 명씩 결정한다. 지금까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토베 얀손,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모리스 센닥, 앤서니 브라운 등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글작가 33명, 그림작가 27명이 선정되었다. 시상하는 해의 1월에 최종 후보 4~6명을 발표하고, 볼로냐아동도서전 현장에서 최종 수상자를 발표하는데, 올해 수상자는 코로나19로 도서전이 취소되며 미뤄져서 5월 4일에 발표될 예정이라 한다. 한국의 이수지 그림책 작가가 2016년에 처음으로 최종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ALMA; Astrid Lindgren Mstrongorial Award)’

 

다음으로는 바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ALMA; Astrid Lindgren Mstrongorial Award)’이다. 백희나 작가의 수상 소식을 전하는 모 기사에서 ‘역사도 짧고 라가치상이나 안데르센상의 권위에는 못 미치나 상금이 500만 크로나(약 6억 원)에 달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라는 표현을 써서 어린이책 관계자들의 빈축을 산 바가 있는데, 매년 12억 이상의 세금을 기꺼이 들여 상을 운영하는 스웨덴인들이 들으면 꽤 섭섭해할 듯하다. 린드그렌상은 작가 사후인 2003년부터 시작되었기에 역사가 짧은 것도 사실이고, 또 필자조차 의아해할 만큼 상금 액수가 세계 어린이 문학상 중 최고 수준으로 높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시상 제도를 들여다보면 단지 높은 상금만으로 권위를 확보한 것은 아니다.

 

린드그렌상은 스웨덴인들의 작가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에서 비롯되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우리나라에 오래된 텔레비전 드라마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 정도로 알려졌지만, 원작인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뿐만 아니라 『사자왕 형제의 모험』, 『미오, 나의 미오』 등 수많은 작품이 전에 없던 독립적인 주인공을 내세우고 어린이 문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어 전 세계 어린이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다. 또한 스웨덴 국민에게는, 어린이를 비롯한 소외된 이들의 인권을 옹호하고 환경 문제 해결에도 앞장서는 등, 스웨덴을 세계에서 으뜸가는 복지 국가로 만드는 데 일조한 정신적 기둥이기도 하다. 어린이 문학을 통해 예술적 성취를 이루고 어린이의 권리를 옹호한 이들을 발굴하여 큰 상금과 함께 격려하는 것이, 전 세계에 린드그렌 작가의 정신을 퍼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공식적으로 ‘스웨덴 국민이 세상에 주는 상’이라고 표현된 홈페이지의 문구가 무척 인상 깊다.

 

린드그렌상 시상은 매년 이루어지며, 생존해 있는 글작가, 그림작가, 스토리텔러, 독서운동가 중에서 1명만 선정하여 시상한다. 한국에서는 KBBY(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 위원회)와 한국문학번역원, 어린이문화연대가 후보 추천 기관으로 등록되어 있다. 모리스 센닥, 필립 풀먼 등 전 세계에서 이미 명성을 얻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아직 문화적 장벽을 넘지 못하여 여러 나라에 널리 소개되지 못한 작가들의 작품까지 꼼꼼하게 장기적으로 검토하여 시상함으로써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볼로냐 라가치상(BRAW; BolognaRagazzi Award)’

 


볼로냐 라가치상 (bookfair.bolognafiere.it)


볼로냐 라가치상 (bookfair.bolognafiere.it)

 

앞의 두 상과 성격은 좀 다르지만 권위 면에서는 뒤지지 않는 상이 바로 ‘볼로냐 라가치상(BRAW; BolognaRagazzi Award)’이다. 1966년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과 함께 시작된 상으로, 심미적 가치를 중시하는 이탈리아답게 어린이책에서 시각적 요소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며 아름다운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표현된 어린이책을 중심으로 시상한다. 픽션, 논픽션, 오페라 프리마(신인 작가 데뷔작), 그 밖에도 생태, 예술, 영화 등 특별 주제를 정하여 대상과 우수상 몇 편을 선정한다. 올해에는 ‘코믹스’ 부문이 신설되어 만화나 그래픽노블 등을 그림책/어린이책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시도가 기대되었으나, 도서전 취소로 다소 빛이 바랬다.

 

우리나라의 여러 그림책이 새롭고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뛰어난 디자인 및 장정으로 라가치상에서 두각을 나타내 왔다. 2005년 윤미숙 작가의 『팥죽할멈과 호랑이』(웅진, 2003)와 신동준 작가의 『지하철은 달려온다』(초방책방, 2003)가 처음으로 각각 픽션, 논픽션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2009년부터는 거의 매년 수상 작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해에는 안재선 작가의 『삼거리 양복점』(웅진, 2019)이 오페라 프리마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라가치상은 십여 년 전부터 볼로냐도서전에 부스 참가 신청을 하여 공식 카탈로그에 기재된 출판사의 도서만을 대상으로 심사하게 되었다. 온라인 저작권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도서전 부스 참가가 줄어들자 도서전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심 끝에 마련한 장치일 것이나, 이 규정 때문에 경제적 여건상 도서전에 부스를 내지 못하는 소규모 독립 출판사의 알찬 책들이 배제되는 점은 아쉽기만 하다.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Biennial of illustration Batislava)’

 

그다음으로 BIB와 나미 콩쿠르 같은 일러스트레이션 중심 국제 그림책상이 있다. 먼저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 Biennial of illustration Batislava)’는 1967년 제정된, 그림책 작가에게 수여하는 국제상이다. 슬로바키아 수도인 브라티슬라바에서 2년에 한 번 개최되며, 유네스코, IBBY, 슬로바키아 문화부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IBBY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BIB 설립자 듀상 롤이 그림책을 비롯한 일러스트레이션 예술을 통해 세계의 어린이들에게 범세계적인 시각을 열어 주고자 시작했다고 한다. 각국의 BIB 위원회에서 출품한 그림책과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이 비엔날레 기간에 전시되고, 그중 십여 편을 뽑아 대상, 황금사과상, 어린이 심사위원상 등을 시상한다. 2011년 조은영 작가의 『달려 토토』(보림, 2011)가 대상을 받았고, 2019년에는 명수정 작가의 『세상 끝까지 펼쳐지는 치마』(글로연, 2019)가 황금사과상을 받았다.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iana.sk)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bibiana.sk)



나미 콩쿠르(namiconcours.com)


나미 콩쿠르(namiconcours.com)

 


‘나미 콩쿠르(Nami Concours)’

 

‘나미 콩쿠르(Nami Concours)’는 한국의 남이섬에서 2013년부터 시작한 국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션 시상 제도이다. 남이섬을 세계적인 명소로 만든 강우현 대표는 한때 그림책 작가로 활약하기도 했고, 남이섬을 동화 나라로 꾸미며 세계 책나라 축제를 운영하고 안데르센상과 유니세프 등을 후원해 왔다. 그 연속선상에서 어린이책 작가들에게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이 상을 만든 것이다. 원화를 출품하는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Bologna Illustrator’s Exhibition)’나 BIB에 비해 간편한 디지털 출품으로 세계적 호응이 이어져,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션의 흐름을 선도하는 여러 나라 작가들이 수상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 밖에 2013년부터 시작된 상하이국제아동도서전에서도 볼로냐 라가치상에 해당하는 ‘천보추이 국제아동문학상’,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에 해당하는 ‘황금바람개비 젊은 일러스트레이터상’을 시상하고 있다. 한편 2009년에 한국에서 ‘CJ 국제 그림책상’이 신설되어 국내외에서 열렬한 호응을 얻었으나, 기업 내부 문제로 단 3회에 그친 바가 있어, 현재 한국에서 만든 어린이책 관련 국제상은 나미 콩쿠르가 유일하다.

 

 

 

해외 각국의 국내용 어린이책&그림책상

 

이번에는 국제상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매년 출간된 자국의 도서를 시상하는 제도를 알아보기로 하자. 먼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미국에서 해마다 출간된 그림책의 예술성과 문학성을 평가하는 '칼데콧상(The Randolph Caldecott Medal, 1937년 제정)'과 그림책을 비롯한 모든 어린이 문학 작품의 문학적 성과를 평가하는 '뉴베리상(The John Newbery Medal, 1922년 제정)'이다. 이 두 상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아동문학상으로, 미국도서관협회의 어린이책 분과인 미국어린이도서관협회(ALSC)에서 주관한다. 해마다 1월에 칼데콧상과 뉴베리상, 그리고 테오도르 수스 가젤상을 비롯한 대여섯 개의 상이 함께 시상되는데, 수상작품이 발표되면 미국 전역의 서점과 도서관마다 해당 도서를 비치하며 교사들도 수업에 활용하고, 저자들은 텔레비전 인터뷰 등을 진행하고, 여러 연구 논문이 이 수상작을 기준으로 쓰인다. 한국에서도 수상 소식이 발표된 바로 다음 날 저작권 에이전시의 레터가 출판사로 배포되어, 아직 계약되지 않은 책은 여러 출판사의 경합을 통해 높은 선인세로 거래되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곤 한다. 원서 판매량 또한 엄청나다. 이렇게 어쩌면 한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상이지만, 두 상은 철저하게 미국 시민이나 상당 기간 거주자가 만든 영어 작품에만 수상 자격이 부여되는 상이다.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상을 두고 ‘로컬 상’이라 말한 것처럼 그 이상이다. 외국 작가가 미국 출판사와 협업하여 출간한 작품, 해외 도서를 번역 출간한 작품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어, 미국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칼데콧상(ala.org/alsc)


칼데콧상(ala.org/alsc)

 

‘미국’과 ‘영어’의 힘을 등에 업고 지나치게 세계적인 영향력을 떨친다는 점에서 곱지 않은 시선이 가긴 하지만, 권위 있는 심사위원회의 엄정한 심사 과정과 꼼꼼한 매뉴얼,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운영 방식과 발표 및 홍보 방식 등에서 배울 점이 많다. 최근 수상작들을 보면 다문화 사회의 이슈를 다룬 것으로 보이는 작품이 자주 눈에 띄는데, 사회의 첨예한 논쟁을 어린이책에도 중요하게 다루며 더 많은 창작을 독려한다는 점도 인상 깊다.

 


카네기상, 케이트 그리너웨이상


카네기상, 케이트 그리너웨이상
(carnegiegreenaway.org.uk)

 

미국에 칼데콧상과 뉴베리상에 나란히 대응되는 영국의 상이 바로 '케이트 그리너웨이상(The CILIP Kate Greenaway Medal)'과 '카네기상(The CILIP Carnegie Medal)'이다. 카네기상은 1936년부터, 케이트 그리너웨이상은 1955년부터 시행되었으며, 영국에서 국가적으로 시행되는 ‘즐거움을 위한 독서’ 캠페인의 일환으로, 두 상의 최종 후보 작품들을 수천 명의 어린이 청소년들이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영국에서는 이 두 상이나 맨부커상 등을 시상할 때, 일정 기간 ‘longlist’와 ‘shortlist’를 발표하여 서점이나 도서관 등에 진열하도록 하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점점 고조시킨 다음, 최종 수상작을 발표하는 식으로 운영하는 특징이 있다. 여러 서점의 쇼윈도에 진열된 후보 작품들을 자꾸 접하다 보면 어쩐지 그 책은 꼭 읽어야만 할 것 같고, 그러면서 나만의 최종 수상작도 뽑아 보며 자연스럽게 시상 제도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그림책상


일본그림책상(dokusyokansoubun.jp/ehon)

 

일본에는 '일본그림책상(日本絵本賞)'이 있다. 전국학교도서관협의회와 마이니치 신문사가 공동 주관하고 있으며, 대상 1편과 그림책상 2편, 해외 그림책에 주는 번역상과 독자 투표로 결정되는 독자상이 있다. 한국 작품은 조은영 작가의 『달려 토토』(보림, 2011)와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책읽는곰, 2017)이 번역상을 받았는데, 특히 『알사탕』은 독자상까지 함께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Deutsche Jugendliteraturpreis)'은 엄격해 보이는 이름과 달리, 국내서와 번역서를 구별하지 않고 독일어로 출간된 모든 도서를 대상으로 시상한다. 독일 연방 가족・노인・여성・아동청소년부에서 설립하였고, 그림책, 아동문학, 청소년문학, 논픽션 등 각 분야에서 수상작을 시상한다. 특히 독일 내 6개의 어린이·청소년 북클럽을 2년마다 선정하여, 이들이 직접 선정한 어린이 심사위원상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아동청소년문학상 (jugendliteratur.org)


CBCA 올해의 책 (cbca.org.au)


CBCA 올해의 책 (cbca.org.au)

 

호주 'CBCA 올해의 책(CBCA; Children's Book of the Year Award)'은 1946년부터 시상했는데, 초기에는 수상자가 여성이면 동백꽃을 선물하고, 남성이면 악수를 나누는 것으로 축하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재단을 설립하여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매년 8월 셋째 주 금요일에 수상작을 발표하는데, 발표 직후 일주일 동안 ‘CBCA Book Week’라는 책 축제를 운영한다. 학교, 도서관, 서점,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어린이들이 함께 호주 어린이 문학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를 벌이는 것이다.

 

프랑스의 '마녀상(소시에르 상; Le prix Sorcières)'은 어린이책 전문 서점 운영자들과 사서들이 공동으로 시상하는 것이 특징이다. 1986년 설립 당시 ‘다 함께 책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법입니다!’라는 슬로건이 프랑스 어린이책 전문 서점에 널리 퍼졌고, 이들은 스스로를 ‘마법의 서점’으로 칭했으며, 여기서 ‘마녀상’이라는 이름이 파생했다고 한다.

 

스위스의 '프티 몸 상(Prix P’tits Mômes; 꼬마상)'은 세계에서 가장 어린 심사위원이 선정하는 상이다. 제네바시의 사서와 유치원 교사들이 선정한 4권의 도서 가운데서 2~4세 어린이 1,800여 명이 선택하여 수여하는,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문학상으로, 2006년부터 시행한 이래 총 14회 가운데 한국 작가가 2회나 수상했다. 바로 강혜숙 작가의 『꼬리야? 꼬리야!』(상출판사, 2006)과 노인경 작가의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문학동네, 2012)이다.

 


프티 몸 상(institutions.ville-geneve.ch/fr/bm/agenda/vos-rendez-vous-de-lannee/prix-ptits-momes)


프티 몸 상(institutions.ville-geneve.ch/fr/bm/agenda/vos-rendez-vous-de-lannee/prix-ptits-momes)

 

 

 

국내 어린이책&그림책상 현황

 

그럼 이번에는 국내에 어떤 어린이 도서상, 그림책상, 문학상이 있는지 알아보겠다.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출판상은 '한국출판문화상'으로, 1960년에 한국일보사가 제정하여 2019년에 60회를 맞이했다. ‘백상출판문화상’으로 시작하여 명칭도 시상 방식도 변화해 왔는데, 최근에는 저술(학술), 저술(교양), 번역, 편집, 어린이·청소년의 다섯 개 분야에서 한 작품씩 시상하고 있다. 어린이 청소년 도서의 그 다양한 범주에서 단 한 권만 선정해서 시상한다는 아쉬움이 있으나, 척박한 한국의 출판 환경에서 오랜 세월 꾸준히 상을 운영해 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우러날 뿐이다. 2020년부터는 대한출판문화협회와 공동 주최하기로 협의했다 하니, 상의 운영이 더 제대로 자리 잡히고 권위가 확대되기를 바란다.

 

최근에는 롯데장학재단에서 '롯데출판문화대상'을 신설했다. 어린이책상은 아니지만 어린이책도 시상 대상에 포함되어 있으니 함께 거론하고자 한다. 대상 1종과 본상 7종을 선정하고, 소규모 단행본 출판사를 격려하기 위해 매출 50억 원 미만 사업자에게 가산점을 부여한다. 아직 초창기라 운영 방식이 세련되게 자리 잡힌 느낌은 아니지만, 모쪼록 중간에 멈추지 말고 지속적으로 운영 방식을 발전시켜 한국 출판계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길 바란다.

 

한편 창원시에서는 2011년부터 세계아동문학축전을 개최하면서 '창원아동문학상'을 제정하였다. 초기에 동화・동시의 한 분야에서 시상하다, 최근에는 동화・그림책 부문과 동시・평론 부문으로 확대 시행하기 시작했으며, 신인 작가의 발굴과 지원을 목표로 하여 등단 15년 이내 작가의 작품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 밖에 출간된 동화에 상을 주는 아동문학상으로 이주홍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윤석중문학상(구 새싹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 등이 있고, 공모전 성격의 상으로는 한국안데르센상, 비룡소 황금도깨비상,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웅진주니어 그림책 공모전, 미래엔 어린이책 공모전, 현북스 앤서니 브라운&한나 바르톨린 그림책 공모전, 사계절 그림책상 등이 있다.

 

언급을 빠뜨린 상도 있겠지만, 국내에서 어린이책에 주는 이렇다 할 만한 상은 위에 기술한 정도로 알고 있다. 한때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주관하는 ‘한국어린이도서상’이 매년 시행되고 문화관광부장관상이 수여된 적도 있었는데, 2000년대에 ‘한국출판문화대상’ 또는 ‘대한민국출판문화상’ 등으로 통폐합 논의가 오가다 흐지부지되며 결국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한 해에 어떤 다양한 책이 출간되었는지 돌아보고, 뛰어난 작품성을 지닌 책과 작가, 독자들에게 인기를 얻은 책, 신인 작가의 패기 넘치는 시도,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는 작품 등 다채로운 시상 제도를 마련하여 어린이책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의 축제의 장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추천 및 심사 과정에도 소수의 연구자뿐만 아니라, 작가, 출판기획자, 도서관 사서, 서점 운영자, 부모, 교사, 그리고 어린이책의 주인공인 어린이까지, 관계된 모든 이들이 두루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영국의 경우처럼 롱리스트와 최종 후보작을 순차적으로 발표하며 전국적인 관심을 이어갈 수 있다면? 해마다 쌓인 후보작 목록이 해외에 소개되고, 연구자들의 연구 기준이 되고, 작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작품을 기획한다면?

 

그러나 현실은 아무리 아름답고 뛰어난 책을 만들어 관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돌거나 해외에서 이런저런 상을 받아도, 우리만의 리그를 벗어나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는 척박한 출판 환경에서 각자도생하지 말고, 백희나 작가의 수상을 계기로 모두의 목소리를 모아 좋은 시상 제도를 마련하는 데 뜻을 모아 보자! 김연아 선수 덕에 피겨스케이트의 세계를, 김연경 선수 덕에 여자 배구의 매력을 접하고 팬들이 늘어났듯이,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하면 그림책과 어린이책 문화의 저변 확대가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이번에 국내외 그림책상, 어린이책상을 조사하며 주변에 자문을 구할 때마다, 권위 있는 시상 제도에 대한 ‘타는 목마름’을 느낄 수 있었다. 상의 권위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상금도 무시할 순 없지만 결국은 심사의 공정성에서 권위가 이루어지며, 공정한 심사를 위해서는 짜임새 있는 운영 방식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결국은 다시 넉넉한 예산이 필요하다. 모쪼록 이 부족한 원고가 우리나라에 권위 있는 어린이책상이 마련되는 데 작은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최현경(프리랜서 편집 기획자)

2001년부터 지금까지 어린이책 편집자로 일해 왔다. 삼성출판사, 보림출판사, 책읽는곰을 거치며 주로 그림책을 만들었고, 저작권 수출입 업무도 병행했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어린이책 기획, 편집, 번역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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