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40  20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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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버는 책을 ‘리커버’하지 못한다

 

 

 

강양구(지식 큐레이터)

 

2023. 02.


 

시작은 농담이었다. 수년간 한 주간지에 쓴 수천 매 분량의 글 가운데 절반 정도만 추려서 읽을 만한 과학 책으로 만드는 일을 마무리하는 중이었다. 출판사도 의욕적으로 달려들었다. 사진가에게 의뢰해서 홍보용 사진을 새로 찍고 이를 저자 소개란에도 실었다. 이게 문제였다. 사진가의 감각과 능력이 출중한 탓이었을까. 사진이 잘 나와도 너무 잘 나왔다.

 

여러 사진 중에는 마치 ‘모나리자’처럼 어느 방향에서 봐도 나를 보면서 웃는 듯한 신기한 사진도 있었다. 그 얼굴 사진을 한창 표지를 작업하던 북 디자이너가 봤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그 유명한 디자이너가 “아예 이 얼굴 사진으로 표지를 만들면 어떨까요?”라며 편집자에게 농담처럼 제안했다. 앞으로도 수년간 놀림거리가 될 표지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었다.

 

2019년 12월 31일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세상에 등장한 『과학의 품격』(사이언스북스) 이야기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나는 반대했다. 서점 매대에 놓인 수많은 책 가운데 여자든 남자든 저자 사진을 내세운 표지를 보고서 책을 고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선남선녀 아이돌도 아니고 40대 아저씨 사진에 구매욕이 생길 리가 없다.

 

하지만 디자이너와 편집자의 강권에 지고 말았다. 그러고 나서, 수년째 책이 언급될 때마다 얼굴 표지를 둘러싼 사정부터 설명해야 했다. 고약한 지인 독자 몇몇은 “표지가 바뀌기 전까지 책을 구매하지 않겠다”라는 선언도 했다. 결국 고집불통 편집자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책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팔리거나, 개정판을 쓰면 표지를 바꿔주겠다고.

 

그러니까 편집자의 엄포대로 그 표지를 바꾸려면 둘 중 하나를 해야 했다. 책을 최소한 10만 부 이상 팔아서 유행하는 이른바 ‘리커버(re-cover)’ 판을 내거나, 아니면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표지를 바꾸는 것이다. 물론, 책이 나온 지 3년이 지나고 4년째가 된 지금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리커버의 등장

 

얼굴 표지를 둘러싼 개인적인 일화부터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흔히 ‘리커버’라 불리는 일의 정의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다. 초판의 내용을 수정, 보완해서 개정판을 내거나 혹은 같은 책이라도 계약이 만료되어서 출판사가 바뀌면 제목이 같더라도 표지를 바꾼다. 이런 일은 출판사에서 늘 해온 일이다.

 

이 자리에서 살펴볼 리커버는 ‘내용은 그대로 두면서 말 그대로 표지만 바꿔서 책을 펴내는 일’이다. 그래서 2016년쯤 이런 리커버 작업이 유행하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어나더 커버(another cover)’라는 용어를 병행해서 쓰기도 했었다. 내용이 같고 표지만 다른 책이 둘 이상 시장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물론, 때로는 원래의 표지는 사라지고 리커버만 시장에 남을 때도 있지만.

 

그렇다면 출판사는 왜 리커버를 할까? 당연히 출판사 입장에서 리커버는 추가 비용이 드는 일이다. 이미 적잖은 자원과 그에 따른 비용을 들여서 표지를 만든 다음에 책을 유통하고 있는데, 리커버를 하려면 기존의 것보다 참신한 디자인의 새 표지를 별도의 비용을 들여서 제작해야 한다. 그러니 출판사가 아무런 이유 없이 리커버를 할 리 없다.

 

일단, 어떤 상황에서 출판사가 리커버를 결심하는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하나는 『과학의 품격』 편집자가 직설적으로 나에게 요구했듯이 ‘뜻밖에’ 기대 이상으로 책이 많이 팔렸을 때이다. 안타깝게도 내 책은 아니었지만, 최근 2년간 과학 책으로 분류할 법한 책 두 권이 그렇게 표지를 다시 입었다.

 

하나는 (나도 처음에 추천사를 써서 판매에 분명히 이바지했다고 자위하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애초 훌륭한 책이었지만, 소설가 김영하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추천하면서 정말 눈에 띄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출판사는 원래 디자인에 표지의 색만 세 가지로 변주한 리커버를 펴냈다.

 

다른 사례는 2022년에 많은 독자, 특히 과학 책과 그다지 친화력이 없는 것으로 인식되던 20대, 30대 여성에게 사랑받았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이다. 대형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서 출판사는 연말에 원서 표지를 그대로 가져온 리커버를 펴냈다. (사실, 뜬금없이 여성 인어가 등장하는 한국어판 표지는 책 판매와 표지 디자인의 관계를 회의적으로 볼 만한 연구 사례다.)

 

이렇게 뜻밖에 많이 팔린 책이라면, 출판사 입장에서 리커버는 매력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소량의 한정판 리커버를 펴내서 기존 독자나 읽을지 말지 망설이는 신규 독자의 새로운 구매욕을 자극할 수 있다. 또, 특정 서점과 함께 리커버 물량이 소진되는 시점까지 이벤트 광고도 진행할 수 있으니 해볼 만한 시도다.

 

오랫동안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책의 리커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른바 고전의 반열에 든 책도 다양한 계기를 통해서 리커버 마케팅의 대상이 된다. 당장, 내가 가지고 있는 『반지의 제왕』 원서 보급판의 표지는 영화 〈반지의 제왕〉 포스터와 다를 게 없다. 2000년대 초반 영화가 화제가 되면서 출판사에서 『반지의 제왕』 표지를 동명의 영화 포스터로 리커버한 것이다.

 

이처럼 고전을 리커버하여 독자에게 마케팅 차원에서 부각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얼른 기억나는 사례는 리커버 유행 초기인 2017년에 나온 『셜록 홈즈』 130주년 특별판 리커버다. 2002년에 『셜록 홈즈』 전집을 펴내서 인기를 끌었던 출판사가 2017년에 다시 130주년 특별판을 펴냈다. 1887년 『주홍색 연구』로 처음 세상에 나온 홈즈 탄생 130주년을 기념해서 내놓은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민음사) 출간 30주년을 기념한 리커버도 이즈음에 나왔다. 일본에서 나온 1987년 원서 초판을 염두에 두고서 제작한 이 리커버는 시장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평소 리커버에 혹하지 않았던 나도 허호가 옮기고 열림원에서 1997년에 나온 『노르웨이의 숲』 옆에 나란히 이 ‘양억관이 옮긴 30주년 기념 리커버 책’을 꽂아두었다.

 

리커버가 아이돌의 굿즈처럼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지금 한 인터넷 서점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면 주식 투자하는 이들에게 ‘구루’로 통하는 한 투자 전문가 책의 리커버 광고를 볼 수 있다. 역시, 팬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문학 평론가가 펴낸 에세이의 리커버도 눈에 띈다. 모두 그들의 팬덤을 염두에 둔 출판사의 마케팅이다.

 

 

 

리커버의 한계

 

그렇다면, 출판사의 마케팅 수단으로 2016년부터 등장해서 수년째 유행하고 있는 리커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먼저, 긍정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책의 내용에는 변화가 없는 리커버가 독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구매욕을 자극하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디자인이 필수다. 책의 제작에서 표지 디자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해서 커지는 분위기 속에서 리커버는 북 디자이너가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수 있다.

 

출판 산업과 다른 산업의 협업이 리커버를 통해서 가능할 수도 있다. 책의 고유한 콘텐츠가 영화, 드라마 같은 2차 콘텐츠로 확장되는 일이 드물지 않을뿐더러 패션 산업 등에 영감을 주는 일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마치 『반지의 제왕』 표지를 영화 포스터로 리커버하듯이, 책의 표지를 패션 광고로 리커버하는 협업 사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다. 전통의 ‘세계 문학 전집’ 강자 민음사에서 2017년에 영국 전통 패션 브랜드 키이스(KEITH)와 협업해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의 리커버를 내놓았다. 키이스의 패션 포스터로 리커버한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자기만의 방』이라니! 결과도 좋았다. 석 달 동안 1만 3,000부!

 

>민음사가 키이스와 협업하여 리커버한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자기만의 방』

민음사가 키이스와 협업하여 리커버한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자기만의 방』(출처: 민음사)

 

 

인터넷, 소셜 미디어, 전자책 등의 등장으로 종이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리커버로 책이 수집품이 되는 상황을 준비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출판 산업이 지속되려면 일단은 책을 읽는 사람보다 사는 사람이 중요하니까. 실제로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 가운데 몇몇은 전자책으로 이미 읽은 책을 표지 디자인 때문에 구매해서 소장한다.

 

비유하자면, 지금의 음반 시장과 비슷하다. 다양한 음원 서비스를 통해서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는 일이야 어디서나 가능하다. 하지만, 특정 가수의 팬덤은 음원 서비스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도 굳이 음반을 따로 구매한다. 어쩌면 리커버는 종이책 시장이 이렇게 변모되리라는, 미래를 예고하는 일일 수도 있다.

 

이제 리커버의 부정적인 측면을 말하기 전에 다시 개인적인 일화. 이사할 때마다 집 곳곳에 꽂혀 있거나 쌓여(!) 있는 책을 선별해서 버리곤 한다. 그때마다 이리저리 뒤적이는 곰팡내 나는 헌책이 있다. 학교 앞의 서점에서 샀던 25년도 더 된 책이다. 그 책은 하나 같이 서점 이름이 새겨진 파란색 포장지로 겉표지가 싸여 있어서 제목을 확인하려면 굳이 속지를 봐야 한다.

 

나는 원래 책을 깨끗이 다루는 편이어서, 또 한때는 그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남는 시간마다 연습 삼아 이 책 저 책을 겉표지로 감쌌다. 그 덕분에 대학 때 수년간 구매한 책은 대개가 이렇게 원래 표지가 겉표지로 감춰져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랬다. 그때도 눈길을 끄는 표지가 있긴 했다. 하지만, 대다수 책의 투박한 디자인의 표지는 포장지로 감싸도 무방했다.

 

이 대목에서 생각해볼 만한 역설이 발생한다. 지금보다 책의 힘이 훨씬 강했던, 그래서 출판 산업의 여건이 지금보다는 나았던 1980~90년대에 역설적으로 책의 표지 디자인이 소박하고 촌스러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전히 출판 산업의 규모만 놓고 보면 한국과 비교가 안 되는 일본의 표지가 한국처럼 요란하지 않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결국, 결론은 이렇다. 답답한 꼰대 같은 얘기를 늘어놓자면, 아무리 눈길을 끄는 감각적인 표지로 치장하더라도 결국 책의 본질은 텍스트(내용)에 있다. 앞에서 리커버의 예로 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노르웨이의 숲』,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자기만의 방』 모두 애초 콘텐츠의 힘이 강력했다.

 

리커버(re-cover)는 책과 출판 산업을 리커버(to recover)하지 못한다. 리커버나 혹은 책을 잘 포장하는 일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겠지만, 결코 출판 산업의 본류가 될 수는 없다. 수많은 독자, 저자, 편집자 등이 좋은 콘텐츠로 어우러져 ‘느슨한 독서 공동체’로 묶이고 그것을 확장하는 일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에는 리커버하고 싶어도 할 만한 책이 없는 상황이 되리라.

 

그래서 답답하다. 7년째 청취자의 후원만으로 운영하는 북 토크 팟캐스트 프로그램 ‘YG와 JYP의 책걸상’ 진행자로서 쓴소리를 하자면, 출판 산업의 중요한 행위자 특히 출판사와 서점이 리커버 같은 마케팅과 이벤트에 쓰는 자원의 절반이라도 독서 공동체를 확장하는 데에 공을 들이면 좋겠다. 당장 매출이 오르진 않겠지만, 출판 산업의 지속에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강양구

강양구 지식 큐레이터

기자 혹은 지식 큐레이터. 『과학의 품격』, 『강양구의 강한 과학』, 『수상한 질문, 위험한 생각들』 같은 책을 썼다. 북 토크 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을 7년째 진행하고 있다.
imtyio@gmail.com
www.facebook.com/yanggu.kang.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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