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33  2022.06.

게시물 상세

 

띠지 논쟁 - 도서 콘텐츠 일부인가, 마케팅 보조 수단인가

 

 

 

박태근(위즈덤하우스 출판사 편집본부장)

 

2022. 06.


 

띠지를 둘러싼 논쟁은 잊을 만하면 돌아온다. 만드는 쪽에서는 띠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선을 끄는 새로운 시도가 주목을 받기도 한다. 사서 읽는 입장에서는 쓸모도 없고 보관도 번거로운 띠지를 왜 굳이 돈을 들여 만드는지 묻기도 하고, 반갑게도 띠지 문구에 이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는 고백이 왕왕 들려오기도 한다. 이전에는 관련 논쟁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지만 별다른 결론도 특별한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상황에 이른 듯하다.

 

이러던 차에 한 저자가 오프라인 대형 서점에서 띠지가 없는 자신의 도서를 발견하고 훼손과 관리 문제를 제기하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의견을 올린 사례가 오랜만에 눈길을 끌었다. 상황은 이렇다. 서점에서 자신의 도서를 찾던 저자는 띠지가 없는 채로 판매되고 있는 책을 발견하고는, 띠지가 훼손된 불완전한 상품을 별도의 조치 없이 판매하고 있는 서점에 이유를 물었다. 띠지는 소모품에 가깝기 때문에 띠지 훼손을 이유로 출판사에 반품을 하거나 판매를 멈추기는 어렵다는 서점 측의 답변을 받았으나, 띠지에 포함된 내용과 띠지의 경제적 가치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는 상황은 납득할 수 없다며 저자가 공론화를 시도한 것이다.

 

물론 눈길을 끌었을 따름이지 이에 대한 다음 논의는 찾기 어렵다.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띠지에 대해 마땅한 의견이 없다. 지금 일하는 출판사에서는 지난해부터 띠지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이미 업계의 보편 문법으로 자리 잡은 표현의 양식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쉽지 않다. 또 띠지를 사용하면 너무나 쉽게 해결되는 여러 과제들을 띠지 없이 풀어내기에는 고민의 과정도 결과도 난항이다.

 

띠지는 책이 처음 나올 때 둘렀다가 나중에 빠지기도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 화제를 모으거나 수상을 하거나 추천을 받는 등의 이슈를 반영해 없던 띠지가 생기기도 하고, 있던 띠지가 다른 띠지로 바뀌기도 한다. 이럴 때 출판사는 온라인 서점 등 웹에서 공개하는 이미지를 변경된 띠지를 반영한 새로운 이미지로 교체한다. 기존의 재고를 완전히 회수하지 못한 채 표지 이미지만 바뀌는 상황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보고 책을 구매한 독자가 왜 자신이 본 책과 받은 책이 다르냐며 항의를 하는 경우가 벌어지곤 한다. 이런 경우 기존 재고를 반품하고, 새로운 띠지가 반영된 실물 도서가 입고된 시점에 표지 이미지를 바꾸는 게 원칙이 되기도 했다.

 

어떤 독자에게는 띠지가 책에서 분리될 수 있는, 때로는 분리될 수밖에 없는 요소겠지만, 어떤 독자에게는 띠지 자체가 책을 구매하고 향유하는 데에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띠지를 적극 사용하는 현재의 상황이 후자의 이해를 만드는 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다수의 실물 도서를 만날 수 있는 오프라인 대형 서점의 베스트셀러와 신간 매대에는 띠지가 없는 책보다 띠지를 두른 책이 더 많고, 온라인 서점의 책 소개 페이지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다 보니, 띠지가 있는 책이 일반적이어서 띠지가 책에 포함된 부속물이라 생각하게 되는 과정이 어색하거나 엉뚱하지는 않은 듯하다. 본래 책에는 띠지가 있고 특별한 책에만 띠지가 없다는 상상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겠다.

 

만드는 사람도 같은 상황이 아닐까 싶다. 표지의 모습을 떠올리고 그곳에 담을 문구를 정리할 때, 띠지가 없는 경우를 전제하기보다 띠지가 있는 경우를 기본으로 하여 생각을 풀어가는 데 익숙한 이들이 적지 않을 듯하다. 이쯤 되면 띠지는 책의 기본이라 할 수 있겠고, 그렇다면 이것이 훼손되어 띠지가 없는 책을 구매해야 하는 독자가 항의를 하는 상황이 수긍이 되는 것이다. 출판사와 서점이 띠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사용하는지를 제대로 모르고 펼치는 과도한 주장이라 하기에는 그간 만들어온 띠지 문화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처럼 상상을 넘어선 현실을 또 어떤 상상으로 넘어설 수 있을까. 띠지 활용에 지친 편집자들이 출판사별로 띠지 사용 비율을 제한하는 ‘띠지 총량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주고받는 농담은 그야말로 농담에 그칠 것이다. 하지만 띠지 어딘가에 “이 띠지는 책에 포함된 부속물로 훼손 시 구매한 곳에서 교환이 가능합니다.” 같은 문구를 넣는다거나, (실제로 정가에 적극 반영되지는 않지만) 띠지를 원하지 않는 경우 띠지의 값을 제외한 금액을, 띠지를 원하는 경우에는 기본 책값에 추가 비용을 낸다면, 오프라인 서점의 경우 전자의 결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여분의 띠지가 생기니 필요할 때 사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물론 이 경우 띠지 관리가 새로운 문제로 떠오를 테니 현재로서는 대책 없는 상상에 불과하다.). 온라인 서점에서는 굿즈를 받는 방식을 적용해 띠지를 독자가 선택하게 하고 여기에 독자 부담을 붙일 수도 있겠다. 생각을 이어가보면 도서 정보의 이미지에도 띠지가 있는 쪽과 없는 쪽을 구분해 보여주고 책등, 앞날개, 뒷날개처럼 띠지만 따로 볼 수 있는 방식이 필요하겠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띠지를 쓰느니 마느니 따지며 나아갈 수 있는 여지에 비한다면 이쪽이 오히려 현실성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띠지가 있는 걸 기본으로 생각할 때 필요한 일과 가능한 일을 떠올려 그간 당연하게 활용하면서도 충분히 설명하거나 전달하지 못한 부분을 채우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활용을 찾아내는 쪽이 모두에게, 특히 독자에게 이롭지 않을까. 더불어 굳이 띠지를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하지 않으려 애쓰는 노력도 더욱 빛이 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러니 이제 (영원히 오지 않을) 띠지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 말고, (어쩌면 이미 와 있을) 띠지가 기본인 세상을 떠올리자. 때로 세상은 거꾸로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좀 더 빨리 돌아 도착한 제자리에서 다음 방향을 가늠할 수도 있을 테니까.

박태근

 

박태근(위즈덤하우스 출판사 편집본부장)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인문MD로 일했습니다.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 연구원으로 출판계에 필요한 이야기를 나누며, 여러 매체에서 책을 전하는 목소리를 냅니다.
yesoo21@gmail.com
http://www.facebook.com/bookeditor

 

출판계 이모저모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