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9 2022. 12.
‘저작권 인식 개선’이라는 시대맞이
이융희(작가 겸 문화연구자)
2022. 12.
웅진북센의 저작권 위반 사례 발생
지난 8월, 출판 물류 회사인 웅진북센은 2010년 인수한 ‘북토피아’의 콘텐츠 1만 5,933종에서 6억 2,271만 7,166개 어절을 2019년 국립국어원이 진행하는 ‘말뭉치 사업’ 중 ‘문어 말뭉치 사업’에 무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한국출판인회의는 문제 해결을 위해 8월 23일 간담회를 개최하였고, 웅진북센은 북토피아 콘텐츠 제공업체와 저작권 사용료 정산을 진행 중이며 정산 기준을 전자책 정가의 70%의 3copy로 책정했다고 알린 후, 이것은 정산일 뿐 피해보상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이 사태는 지난 10월 19일 국정감사로까지 이어졌다. 김윤덕 의원은 국립국어원의 장소원 원장과 웅진의 이수영 대표를 대상으로 질의하였고, 그곳에서 이수영 대표는 “2010년 OPMS라는 회사가 북토피아의 법정 파산 과정에서 콘텐츠를 인수했고, 자산을 양수하는 과정에서 전체 권한을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 웅진은 IT 회사일 뿐, 출판업이나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얕다고 방어적으로 대답하였다. 당시 현장에서 김윤덕 의원은 출판사가 저작권 인식이 가장 예민한 업종이 아니냐고 질의한 후, 저작권 인식이 얕은 웅진북센의 태도가 무책임하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윤덕 의원의 이야기처럼 출판계에서 저작권 문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심각하게 다루어지는 사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작권은 단순히 출판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예술 창작 노동과 출판권 사이에서 개인 사업자인 작가들이 어떡하면 자신의 권리와 작품을 지키고 보호받을 수 있는지 꾸준히 고심하고 투쟁해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출판계에서 이번 저작권 이슈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존재한다. 최근 이러한 저작권을 비롯한 ‘권리’ 문제에서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최근 출판계 소비의 주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MZ세대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의 향방과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우리는 MZ세대의 권리 인식과, 저작권 문제 해결을 위한 출판계의 노력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차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MZ세대의 권리 인식
마케팅 시장에서 젊은 소비층을 MZ세대로 명명한 이후 다양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출판계 역시 적극적으로 MZ세대를 탐색하고 마케팅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의 소비 형태는 근대적 소비의 형태와 달리 무척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MZ세대들의 출판 소비 형태 중 도드라진 특징은 ‘정치적 올바름’에 따른 소비였다. 그들은 출판 저작물 내용의 좋고 나쁨을 통해 구매를 결정하는 것 이외에도 작가, 출판사, 유통망, 플랫폼 등 출판물을 둘러싼 예술계 전반의 윤리적 책무와 도덕성 등 다양한 사회 문화적 형태와 연관 지어 그들의 구매를 결정했고, 그들은 ‘돈쭐내러 왔다’라는 구매 운동과 ‘OO기업 제품 불매합니다.’라는 불매 운동의 양방향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라는 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대학을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20~30대 창작자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그들이 집중하는 건 정언명령에 가까운 윤리나 도덕이 아니다. 그보다 그들이 집중하는 건 ‘권리’라는 개념에 가깝다. ‘나’라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 어떤 권리를 갖는지 이해하고 나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받고 싶어 한다. 나의 권리가 보장받기 위해선 타인의 권리 역시 보호되어야 하고, 이러한 권리 보호들이 중첩되어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가 갖춰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이들의 권리는 오로지 윤리와 도덕만을 추구하진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가치나 권리는 사회와 함께 끊임없이 분절된다. 그들은 선택적으로 자기들의 권리가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찾아갈 뿐이다.
최근 다양한 창구에서 출판과 관련된 권리를 제대로 알고 지켜야 한다는 교육이 이루어진 덕분일까, 학생들이 계약을 상담해오는 경우가 무척 많아졌다. 그런 학생들과 계약서를 함께 보며 저작권자의 권리 유형에 대해 살피고 이를 이해하도록 설명해준다. 출판권, 전송권, 배급권, 저작권 등 출판은 저작물에 대한 권리가 아주 상세하게 나누어져 있으며, 학생들은 이러한 권리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존의 출판 업계에서 사용되던 관례나 관습이 바깥의 대중의 인식과 충돌하는 부분도 이러한 지점이다. 저작권 매절 문제부터 출판권 설정, 독점 기한, 그리고 계약금과 선인세에 관련된 부분까지 말이다.
특히 젊은 작가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저작권이다. 부업과 개인 사업, 예술 창작 노동의 개념이 활발해지면서 작가들은 자기가 쓴 글이 시장에서 제대로 된 권리를 보장받길 원한다. 웹소설과 전자책 출판 등 저작권과 전송권을 뚜렷하게 분리한 후 모든 정산의 과정이 디지털화되어 있는 출판 문화가 보급되었고 2차 창작을 바탕으로 미디어 간 결합되는 과정에서 원천 IP가 가진 힘이 얼마나 큰지 이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96년 서비스 설립 이후 꾸준히 출판 물류 유통 분야의 업무를 진행하며 출판사와 활발하게 거래 중인 웅진북센이 이러한 개념을 몰랐다는 것은 신뢰하기 힘들다. 실제로 웅진북센은 사업 진행 과정 중 1,226개 출판사에서 출간한 2만 53종의 저작물을 사용하였는데, 북토피아의 1만 5,933종을 제외한 나머지 4,060종에 대해서는 저작권 대리인을 통해서 해당 종을 출간한 출판사와 저작권 계약을 체결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저작물은 출판사가 저작권의 권리 주체가 아니라 작가가 저작권을 가지며, 출판사는 이러한 저작물에 대해 전송권을 갖는다. 국립국어원 사업에서 나머지 4,060종에 대해 해당 출판사가 웅진북센과 저작권 계약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이는 이전에 작품을 발행하면서 작가의 계약을 대리하는 주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웅진북센이 저작물들에 대한 저작권 계약을 출판사와 체결한 것 또한 문제가 된다. 출판사는 저작권 권리 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출판사는 저작권을 행사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계약을 체결하여 이득을 편취한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고려함에도 불구하고 웅진북센의 주장처럼 그들이 출판 저작권 관련 개념 지식이 부족했다는 걸 굳이 믿어보자. 그럼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 말인즉 1조 원 규모의 거대한 출판 물류 시장조차도 젊은 구매층과 반목할 여러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소리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 어떤 시장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발탄을 품에 안은 채 사업을 진행하지는 않는다. 그럼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런 저작권 침해 문제에 대해 출판계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다.
‘출판’이라는 신뢰 회복
웅진북센의 저작권 문제는 단순히 ‘1만 종 이상의 작품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로 정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러한 사태의 중심축에 북토피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토피아는 초기 출판 시장에서 전자책 제작 사업 및 유통 사업을 진행했던 거대한 유통업체였으나 출판사 미지급 저작권료 58억 원, 부채 95억 원으로 내홍을 앓았다. 후속 합류한 경영진과 구 경영진 간의 싸움도 어수선함에 한몫을 보탰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건 북토피아가 공격적으로 전자책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한 탓이었다. 12만여 권의 전자책 중 저작권 문제 및 기타 사유로 겨우 50%만 매장에 진열되었으며, 그중 한 권이라도 팔린 책은 20%에 불과했다. 북토피아의 몰락은 예견된 셈이었다.
북토피아의 몰락은 당시 출판사와 대중에게 전자책 사업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부정적 의견들을 심어주었다. 시쳇말로 북토피아가 한국의 전자책 전환 시기를 몇 년 이상 늦췄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따라서 시장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았다. 결국 북토피아란 이름은 인쇄 매체 중심의 출판 시장이 전자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이름 그 자체인 셈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북토피아의 소유 저작물들에 대해 제대로 된 관리가 이루어질 리 만무했다. 심지어 북토피아의 출판물 중에선 작가의 전송권 계약 없이 출판사가 임의로 제작한 전자책 파일들 역시 섞여 있었다. 실제로 몇몇 작가는 직접 북토피아에 전자책 전송권을 회수하고 파일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서류를 받은 저작물이 웅진북센의 저작권 도용 사례에 존재한다고 성토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본 건 출판사뿐만 아니라 저작권을 가진 주체, 즉 아주 작은 파편의 작가들이었다.
자료에 따르면 웅진북센은 문제가 된 1만 5,993종 가운데 30%가량인 6,194종에 대해서는 정식 계약을 맺은 출판사에 지불한 수준으로 저작권료 정산을 완료했다고 하나, 5,299종에 대해서는 협의를 진행하지 못했다고 한다(2022년 8월 기준). 그리고 나머지 4,500종은 출판사의 폐업 등으로 정산이 아예 진행되지 않는다고 하며, 이에 대해 웅진그룹은 관련 법에 근거해 공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까지 몇몇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무단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이러한 피해 사례를 처리하는 데에는 난항이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출판계는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국립국어원 문어 말뭉치 구축사업 피해출판사 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뒤 웅진북센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및 형사 고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것은 단순히 출판사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변화해가는 출판 시장에서 ‘출판’ 주체들이 직접 나서 출판이라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걸음인 동시에, 출판 시장에서 전자책을 자연스럽게 수용함으로써 비로소 올바르고 공정한 출판 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내 주변에선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이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한 다리만 건너도 웅진북센과 엮인 장르 작가가 존재했고, 이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장르계를 이끌며 노력해온 사람들이다. 초기 장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노력한 개척자부터, 현재 후배 작가들을 이끌기 위해 노력한 선생님, 또는 선배들도 가득하다. 근 몇 년간 젊은 작가와 ‘출판계’ 사이에선 도서정가제와 표준계약서 등 출판과 작가들의 권리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가득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출판계가 작가의 ‘저작권’을 제대로 수호하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이며 출판계 내부에서 곪아버린 근대적 인식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한 개의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젊은 세대가 출판계를 바라보는 인식을 전환하고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되리라.
이융희 작가 겸 문화연구자 한양대학교 국문과에서 『한국 판타지 소설의 역사와 의미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2006년 『마왕성 앞 무기점』 출간 이후 장르 작가로 데뷔한 이래 소설과 비평, 칼럼 등 다양한 저술 작업을 하였으며, 장르와 관련된 연구, 교육 영역에서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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