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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6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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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과학하기

 

 

 

이명현(과학책방 ‘갈다’ 대표)

 

2020. 11.


 

 

과학책방 ‘갈다’ 외관

 

몇 년 전부터 작은 책방과 동네 서점이 유행이다. 특정한 주제나 분야만 다루는 전문 서점도 많이 보인다. 제한적이나마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이런 시도가 가능해졌다고 생각한다. 도서정가제 문제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어서 이런 책방들이 조마조마해 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사람들의 취향이 다양해진 것도 이런 다양한 책방의 탄생을 도왔을 것이다. 삼청동에 있는 과학책방 ‘갈다’는 그런 분위기에서 생긴 교양과학책을 파는 서점이다. 작은 서점이라고 말하기에는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규모가 좀 있다. 동네 서점이라 하기에는, 삼청동에는 책방을 구심으로 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만한 동네 주민이 거의 없다. 과학책을 다루는 교양과학 전문 서점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과학뿐 아니라 문화를 내세우고 있어서 ‘과학문화 책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다.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 과학저술가 그리고 과학문화 활동을 하거나 이들과 함께 어울려 온 1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서 주식회사를 만들었으니, 작은 책방이라고 말하기에는 어색하다. 그래서 나는 과학콘텐츠 그룹 갈다의 첫 오프라인 프로젝트가 ‘과학책방 갈다’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래서 과학책방 갈다는 통상적으로는 작은 책방이고 동네 서점이고 전문 서점이지만 좀 독특한 위치에 있다고 하겠다. 교양과학책을 파는 서점 본연의 업무보다 과학문화 콘텐츠를 바탕으로 하는 작업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과학책방 갈다는 책을 파는 서점보다는 과학문화를 파는 문화공간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곤 한다.

 

처음부터 교양과학책을 파는 책방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삼청동에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먼저 생겼다. 제주도로 출장을 가던 중, 현재 책방이 있는 삼청동의 공간을 과학문화 활동을 위해 활용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들었다. 동행하던 생명철학자 장대익 교수와 제주도 출장 내내 그 공간에서 어떤 일을 할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했었다.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서울로 돌아온 장 교수와 나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과학자와 과학문화 활동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의견을 다른 매체를 통해 전달하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열 명쯤 모여서 식사를 하면서 그동안 나온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어떤 작업을 할 것인지 정하기로 했다. 한 명 두 명씩 자신의 어린 시절 꿈이 책방 주인이었다는 말을 했다. 은퇴하면 책방에서 책도 읽고 책도 파는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다. 첫 사업은 교양과학책을 파는 서점을 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누가 책방 주인을 할 것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현재 소속된 곳 있어서 당장 그 꿈을 실현하기는 어려웠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던 내가 대표를 맡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갈다’라는 책방 이름도 정했다. 갈릴레이와 다윈에서 한 자씩을 따와 ‘갈다’라는 이름을 지었다. ‘갈다’가 원래 바꾸다라는 의미도 있고 경작하다는 의미도 있어서 과학정신과도 나름 잘 어울린다는 장대익 교수의 제안이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거의 백 명 정도 참여한 문자 투표에서 ‘갈다’가 선정되었다. 과학책방 갈다는 그렇게 태어났다.

 

삼청동의 오래된 건물의 공사를 마치고 과학책방 갈다가 문을 연 것은 2018년 5월 말쯤이었다. 이제 2년하고 몇 달이 지났다. 처음부터 큰 방향성이나 로드맵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과학문화 활동을 하거나 이들과 어울리는 사람들(그리고 모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과학문화 활동도 하고 일반인들에게 과학 이야기도 들려주고 좋은 교양과학책도 알리자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과학책방 갈다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책방의 모습을 갖추는 데까지도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반인을 위한 교양과학책을 큐레이션해서 제공하는 것이 목적인데 뜻밖의 문제가 있었다. 과학책을 많이 읽는 마니아들에게 과학책방 갈다는 서점 자체로서의 매력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과학책이 나오면 재빨리 인터넷 서점에서 미리 예약을 해 구매하는 경향이 있었다. 새 책을 빨리 보고 싶은 것이었다. 정가제로 책을 팔고 배송도 상대적으로 느린 과학책방 갈다를 기다려 주기에는 책 자체에 대한 욕망이 더 큰 것 같았다. 과학책방 갈다에서 준비해서 판매하고 있는 예전에 나온 책들은 이미 그들의 서가에 꽂혀 있었다. 과학을 잘 모르거나 거의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위해 가독성이 높은 책들 위주로 큐레이션해 전시하고 판매를 하자니 초보자들이 과학의 문턱을 넘기에는 이런 책들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과학은 여전이 큰 벽 뒤쪽에 위치한 무언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교양과학 책방의 딜레마다.

 


과학책방 ‘갈다’ 내부

 

이런 근원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오프라인 과학책방이 갖는 미덕이 있기에 조금씩 열매를 맺어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과학책방 갈다에서는 책을 파는 것에 머물지 않고 적극적으로 책을 중심으로 한 과학문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책방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시작한 것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책을 읽는 ‘칼 세이건 쌀롱’이었다. 제일 먼저 칼 세이건의 대표작이고 인지도가 높은 『코스모스』를 읽기 시작했다. 천문학자인 내가 책읽기 가이드로 나섰다. 이 책을 한 번에 두 시간씩 여섯 번에 걸쳐 나눠서 읽는 독서 강좌다. 이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전문가의 가이드를 받으며 책을 끝까지 읽어 보자는 취지였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칼 세이건의 책들을 읽는 작업은 계속 이어졌다. 이제 막 출간된 『브로카의 뇌』를 제외한 출간된 모든 책들을 다루었다. 『브로카의 뇌』 읽기는 올해 12월에 예정되어 있다. 칼 세이건의 책을 여러 차례에 나눠서 전문가들과 함께 읽는 강좌를 확장해서 스티븐 호킹의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나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같은 과학의 고전들도 전문가의 가이드와 함께 읽기 강좌를 진행했다. 국내 저자가 쓴 책도 같은 방식으로 읽는 강좌를 운영했다.
가이드와 함께 한 권의 책을 여러 차례 나눠서 자세히 읽는 강좌는 과학책방 갈다의 책읽기 방식으로 자리를 잡아 가는 것 같다. 칼 세이건 쌀롱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한 사람이 생겼다.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갈다에 모여서 과학책을 읽는 자생적인 과학책 읽기 모임이 생기기도 했다. 이런 갈다식 책읽기 강좌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이런 방식으로 다른 곳에서 독서 모임을 진행하고 싶다는 요청도 생겼다. 자연스럽게 과학책을 읽는 방법에 대한 강좌도 마련되었다. 교사를 위한 갈다식 독서 지도법 강좌도 운영했다. 과학책 읽기 진행을 위한 모더레이터를 양성하는 과정을 만들기 위한 예비 강좌가 진행 중이다.
내년부터는 그동안 단편적으로 운영하던 과학책 읽기 강좌를, 체계를 세워서 좀 더 규격화된 ‘갈다 독서 아카데미’로 만들려 한다. 과학책을 중심으로 과학을 일반인들에게 전하는 작업이 과학책방 갈다의 핵심적인 활동이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서점에서 과학이 어떻게 일반인들과 효과적으로 만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다. 코로나19 사태로 주춤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곳에서 과학 강연이 이어졌고 TV 같은 고전적인 매체나 유튜브 같은 새로운 매체에서 과학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율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과학책방 갈다는 이런 매체환경 속에서 책이라고 하는 고전적인 매체가 일반인들에게 과학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 한 가지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과학책방 갈다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중 하나는, 갈다가 주목하는 신간을 매달 발표하는 것이다. 다섯 명의 신간 선정위원이 활동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씩 8~9권 정도의 신간을 뽑는다. 간단한 평을 붙이고 몇 가지 구분을 해 별점도 단다. 과학책을 고르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가이드인 셈이다. 좋은 교양과학책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쏟아져 나오는 책들 중에서 함량 미달이거나 유해한 책을 걸러내는 것도 갈다가 하려고 하는 중요한 역할이다. 이렇게 해서 쌓인 신간 목록이 이제 제법 된다. 최근에 나온 책들 중 가독성이 높고 배울 것이 있는 책을 찾는다면 이 책들부터 읽기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갈다의 북큐레이션 위원회에서 선정한 책을 정기적으로 구독하는 서비스도 있다. 아주 기초적인 과학책을 읽고 그 책을 쓴 저자나 그 분야의 전문가 강의를 같이 듣는, 책과 강의 구독 서비스이다. 과학의 문턱을 넘는 데 도움을 주려는 시도다. 갈다가 선정하는 책을 정기적으로 배송하고 갈다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구독 서비스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모두, 잘 큐레이션된 책읽기 프로그램이다. 일반인들이 과학을 접하는 좋은 방식의 하나로 정착시키고 싶은 욕심이 있다. 책과 보충 강의를 통한 과학으로의 여행을 일반인들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디지만 이런 취지에 공감하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이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스스로 과학책을 고르고 평하고 모임을 갖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큰 보람이 됐다. 책방에서 과학을 한다는 것이 이런 것인 것 같다.

 

과학책방 갈다가 책과 관련해서 진행하고 있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 북토크다. 신간이 나오면 출판사와 협력해서든, 갈다가 독자적으로 기획해서든 북토크를 진행한다. 주로 국내 저자가 낸 신간을 골라 저자가 직접 참여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특별한 경우에는 번역된 책을 그 분야의 전문가가 해설하는 북토크를 하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 진행하는 북토크와 별다를 것 없는 프로그램이다. 과학책 출간 규모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보니 이름이 좀 알려진 저자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북토크를 할 기회가 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책방 갈다에서는 과학책을 처음 출간한 초보 저자들의 북토크를 적극적으로 열고 있다. 갈다에서 북토크가 열리고 나면 다른 곳에서 그 저자에 대한 문의를 종종 해 오곤 한다. 인연이 잘 이어져서 여러 곳에서 북토크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교양과학책 전문 서점이라고 하는 제약이 오히려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최적의 공간이 된 셈이다.
다른 모든 작은 서점, 동네 서점, 전문 서점과 마찬가지로 과학책방 갈다도 책만 파는 곳은 아니다. 과학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이다. 책이라고 하는 매체를 통해 과학문화를 같이 호흡하고 향유하는 공간인 것이다. 거창한 목적을 갖고 출발한 것은 아니지만 과학책방 갈다는 책을 통해 과학을 문화로 만들어 가는 큰 궤도에 올라탄 것 같다. 그 궤도로 일반인들을 안내하고 그 궤도를 같이 돌면서 과학책을 읽고 과학을 배우고 이 시대를 향유하는 과학문화 시대를 열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이 문화로 스며들어 그 경계가 없어지는 날까지 과학책방 갈다는 책과 더불어 사람들과 더불어 과학문화 열차를 타고 그 궤도를 계속 돌 것이다. 과학이 문화가 되는 그날까지!

 

 


과학책방 ‘갈다’ 기념사진

이명현(과학책방 ‘갈다’ 대표)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교 천문학 박사, 현재 과학책방 갈다 대표, 현재 METI International 자문위원저서: 『이명현의 별 헤는 밤』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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