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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6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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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어린이책 불온시비는 시대의 퇴행

 

 

 

김대유(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2020. 11.


 

 

반복된 불온서적 시비

 

성교육에 대한 불온서적 시비는 극우성향 기독교 단체 등에서 제기하는 단골 메뉴다. 어린이·청소년 성교육이 선정성을 조장하고 국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주장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지난 8월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기독자유통일당을 지지했던 세력을 중심으로 분학연(나쁜교육에분노한학부모연합), 반동성애기독시민단체, 안티페미협회, 바성연(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 우리아이지킴이학부모연대 등은 공동조사를 통해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어린이책 일곱 종에 대해 ‘성관계, 동성애 묘사, 선정성 등’을 문제 삼아 정부에 폐지를 청원했다. 8월에 시작된 청원이 9월 2일에 7만 2천 명에 이르렀지만 통상 청와대 게시판의 성격을 감안하면 그리 많은 수가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독교 계열의 〈크리스천 투데이〉와 〈펜앤드마이크 TV〉가 “여가부, 동성애 주장하고 성관계 외설적으로 묘사하는 동화책 대거 초등학교에 비치해 물의”(8월 12일)라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8월 25일 국회 교육상임위의 김병욱(국민의 힘, 당시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 기사를 토대로 한 듯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등의 나다움 어린이책에 대해 “조기성애화 우려가 담긴 민망한 그림이 있다”며 선정성 시비를 제기하였고, 여가부는 26일 하루 만에 나다움 책이 배포된 초등학교 다섯 곳에서 관련 서적을 회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보수정당과 기독교 세력의 연합전선이 아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셈이다.

 

청와대의 간급한 압력이 있었는지 교육부와 여가부는 김병욱 의원의 지적에 꼬리를 너무 빨리 내렸다. 문제로 지적된 책을 회수하겠다며 백기 항복을 했다. 정부의 태도에 대해 언론과 현장 분위기는 비판적이었다. 정부의 무책임한 관련 책 회수 방침은 지난 세월, 의식 있는 여성운동가 및 여성단체 등이 눈물겹게 쌓아 온 어린이·청소년 성교육의 공든 탑을 무너트렸다. 또한 정부는 그로 인한 피해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극우종교단체는 어린이 성교육책에 대해 “아빠와 엄마의 성행위 장면을 뽀뽀, 고추, 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선정성을 불러일으키고, 성관계를 외설적으로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원색적인 비난은 이번만이 아니었다. 일부 보수종교단체는 지난 10여 년간 보건교사가 국가교육과정에 의거하여 집필하고 정부가 승인한 보건교과서의 성교육을 후퇴시킨 전력이 있다. “교과서에 그려진 성기 삽화를 삭제하라”, “콘돔과 피임이라는 말을 쓰지 마라”, “엄마, 아빠가 이불을 덮고 있는 모습이 선정적이다”, “아예 성교육 단원을 삭제하라”며 출판사와 저자에게 압력을 가했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저자의 요청을 외면하고 아예 보건교과서 불매운동까지 전개했다. 충남의 한 지역에서는 모든 학교에 보건교과서를 사용하지 말라는 공문을 유포하고 수시로 출판사를 방문하여 성교육을 약화, 폐지하라고 협박하는 일도 발생했다.

 

출판사와 저자의 피해 구제 호소에 교육청은 “학교와 당사자가 알아서 해결하라”며 책임을 회피하기 일쑤였다. 국회의원 문제제기 하루 만에 나다움 어린이책을 회수하겠다는 중앙정부 입장에 비추어 보면 그저 방관하는 교육청의 처세가 그래도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결국 오십보백보다. 이러한 여가부와 교육부의 방관적 태도는 국민을 버리는 직무유기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마당이다. 보수단체의 마녀사냥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어린이·청소년의 성교육이 나아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선정성을 둘러싼 진위공방

 

2019년 나다움 어린이책 추천도서는 어린이가 신체의 성장과 변화를 바라보는 이해도를 높이고, 가족 구성원의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지 않고 존중하자는 취지에서 아동청소년 문학평론가, 초등교사, 교수, 작가 등 전문가 자문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선정했다. 나다움 어린이책 토론회를 담당했던 씽투제작소 남윤정 대표는 “성교육 도서의 경우 학교 수업에서 사용하는 교재가 아니라 교사 또는 사서 지도하에 참고자료로 활용하고 있으며, 2019년 다섯 개 초등학교의 경우 양성평등과 성교육 등 나다움 어린이책 담당 교사 지도하에 활용하도록 협의하고 지원되었다”며 합리적인 선정과 지도, 관리체제를 갖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에 대한 극우단체의 비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부부 성관계를 외설적으로 묘사하였고,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에는 성관계를 외설적으로 묘사하고 체외수정 시술까지 소개하였으며, 『걸 스토크』에서는 여성 성기, 콘돔 사용을 표현했고, 『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는 이종(異種) 간 결합 등 성소수자를 미화하며, 『여자 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는 성별 정체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주입(흰동가리, 도화돔 등 성별 구분이 바뀌는 사례를 지적)하고,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에서는 동성애를 정상으로 묘사하는 듯한 그림이 있으며, 『우리가족 엄마, 아빠, 딸 인권선언』에서도 동성애를 묘사하는 그림이 있다는 등 부작용 사례를 지적하였다. 비난의 초점은 대체로 그림이나 삽화, 비유가 선정성과 동성애 미화를 유도한다는 것이었다. 동물 비유를 이종 간 교배로 몰아갈 정도로 상식적이지도 않다. 이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성인지감수성 교육이나 성인권 교육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여가부는 나다움 어린이책 선정기준에 대해 2019년 1월부터 4월까지 전문가 연구 과정을 거쳤고, 선행연구와 각계 전문가 자문을 통해 성인지감수성이 높은 책을 선별하는 기준으로 ‘자기 긍정’(주체성, 몸의 이해, 일의 세계), ‘다양성’(가족, 사회적 약자), ‘공존’(사회적 안전과 연대)의 세 가지 가치체계를 확정하여 선정했다는 입장이다. 심사 기간도 4월에서 6월까지 충분히 두었고, 선정위원과 출판사별로 추천을 받고, 전문가 세미나를 통해 2010년에서 2019년까지 출간한 1,200여 종의 작품을 폭넓게 사전검토하고, 도서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된 134종을 2019년 7월 3일에 발표하였다. 여가부는 2020년 이 사업으로 열 개 초등학교와 열두 개 공공도서관을 지원하기로 예정한 바 있다. 여가부는 극우종교단체 등이 문제 삼았던 일곱 종의 책에 대해 그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1971년 덴마크에서 출간되어 유아성교육자료로 쓰였으며, 우리나라 초등사회교과모임의 공동대표가 추천할 정도로 유익한 책이고, 『아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놀랍고도 진실한 이야기』는 CBCA(오스트레일리아 어린이 도서위원회) 올해의 어린이책 최종후보에 오른 어린이 성교육서이며, 『걸 스토크』는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추천도서로 주요 구매자인 40대 여성 양육자 리뷰도 긍정적이고, 『엄마는 토끼 아빠는 펭귄 나는 토펭이』는 다문화 문제를 비유적 상상을 통해 말하는 그림책이며, 『여자 남자 할 일이 따로 정해져 있을까요』는 일본 유명작가 나카야마 치나츠의 작품으로 문화상을 받은 책이고, 『자꾸 마음이 끌린다면』의 저자 페르닐라 스틸텔트는 ‘처음 철학그림책’으로 세계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아동문학상인 스웨덴 정부 이스트린드 린드그텐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우리가족 엄마, 아빠, 딸 인권선언』은 국제 엠네스티 프랑스 한국지부의 추천도서다. 즉 관련 서적은 모두 국제적으로 공인되거나 전문가가 추천한 아동 성교육책에 속한다. 그런데 왜 이리 난리가 났었을까? 난리의 배경에 정치적 목적과 특수한 이익 추구의 욕망이 내포되어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따져볼 일이다.

 

 

 

불온서적 시비는 마녀사냥

 

나다움 어린이책에 대해 불온서적 시비를 불러일으킨 극우종교단체 등은 성교육을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성교육을 강조하는, 즉 성교육 자체에 대해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많지 않다. 무슨 말일까? 이들 중 주요 단체는 2015년 박근혜 정권의 교육부(황우여 장관)가 만든 ‘국가성교육표준안’ 자문그룹에 속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단체의 도움을 받아서 보수적인 국가성교육표준안을 만들었고 순결교육에 준하는 내용의 학생 성교육을 강조하였다.

 

성교육표준안은 종교편향적이고 가부장적인 요소가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아빠와 엄마의 성고정적인 역할’을 강조하여 오히려 성역할을 잘못 인식시키고, ‘성폭행의 개념을 남성 성기 중심으로 해석’하여 성폭력법의 범위를 축소했으며, ‘성폭력의 문제를 여성의 책임으로 전가(성과 관련된 거절 의사 표현을 분명히 하지 않았을 때 성폭력, 임신, 성병 등 성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하는 경향성을 노출시키고, ‘청소년 성행위 원천 불인정’ 즉 결혼만을 성행위 출구로 단정하여 종교적 편향성 드러내고 있다. 성행위는 결혼할 때까지 자제하라는 문구가 그것이다. ‘친구들끼리 여행가지 않는다’는 상식 이하의 주장도 있다, ‘임신과 태아 건강을 여자에게만 책임지게 하는 듯’한 내용도 있다. 건강하고 총명한 아기를 원한다면 자궁 관리를 하라는 내용이 그것이다. ‘여성은 특정 남성에게만 성적 반응, 남자는 다수의 여성에게 반응’한다고 하여 오히려 성차별을 조장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의 성에 대한 뇌 구조가 다르다고 하여 생물학적 의문을 야기하고 있다. ‘남성우월주의적인 남성, 술을 마신 후 행동이 형편없어지는 남성과 데이트 하지 말라’고 규정하여 남성관을 혼란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내용에 동성애, 자위 등 기존 보건교과서 등에 수록된 주제조차 누락시키거나 가르치지 말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전문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국회 토론회에서 박혜자 국회의원은 “박근혜 정권 교육부에서 만든 성교육표준안의 획일적·경직적 사고는 연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결정과 더불어 결국 학생의 교육을 받을 권리를 위태롭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극우보수종교단체가 지난 10여 년간 유네스코 성교육 가이드 라인을 따르는 정규 보건교과서의 성 단원을 지속적으로 공격하고, 여가부의 지원을 받는 여성청소년단체의 청소년 성교육을 부정해온 진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자기존재기반을 공고히 하고 순결교육에 준하는 보수적인 학교성교육을 주도하면서 물밑으로는 여성청소년단체가 운영하는 청소년성교육 등을 가져가기 위함은 아니었을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이들 단체는 이번 사건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 승리로 인해 어린이·청소년 성교육의 앞날은 갈수록 순탄치 못할 전망이다.

 

성교육은 특수한 이익 도모나 보수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변질될 성격이 아니다. 몇 가지 표현을 트집 잡아 선정성으로 억울하게 매도된 불온서적 시비는 지금이라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학교에 배포된 나다움 어린이책 선정도서 회수 조치는 마땅히 취소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교육부와 여가부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관련 서적을 다시 학교에 배포하고 사업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언론과 전문가의 지적에 호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은 국가교육과정에 의해 학교에서 성교육을 학습하고 학교 밖에서도 청소년은 관련법에 의해 성교육을 받는다. 성교육은 무엇보다 헌법 제10조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 기반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대유(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교육학박사)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전문위원회 위원(2015~2019), 국가청소년위원회 정책자문위원, UN아동권리협약 옴부즈퍼슨, 교육부 교육과정심의회 위원 등 역임 / 논문으로 「국가성교육표준안의 쟁점과 과제」, 「학생 성교육의 법률적 고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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