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31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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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났다!
- 출판사는 왜 신인 작가를 위한 워크숍을 하는가?

 

 

 

이루리(작가,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북극곰 편집장)

 

2022. 4.


 

1. 인천콘텐츠진흥원 그림책 워크숍

 

제가 처음 진행한 워크숍은 2015년 인천콘텐츠진흥원에서 마련한 그림책 워크숍입니다. 12주 정도의 초단기 워크숍이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열 명 정도가 참여한 가운데 결과적으로 다섯 작품을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김성은 작가의 『너희 집은 어디니?』, 김성미 작가의 『돼지꿈』, 정희정 작가의 『킁킁』, 조승혜 작가의 『동동이와 원더마우스』 네 작품이 출간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함께 워크숍을 진행한 이경국 작가와 참여한 작가들 모두 아주 놀라워했습니다. 워크숍 역사상 이런 일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사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의 또 하나의 재능을 발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작가들의 창작을 도와서 꿈을 실현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김성미 작가의 『돼지꿈』


김성미 작가의 『돼지꿈』

 

 

 

2. 부평기적의도서관 그림책 워크숍

 

인천에서 부평으로 소문이 난 것일까요? 얼마 뒤 부평기적의도서관에서 그림책 워크숍을 진행해 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강좌 이름은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그림책 워크숍’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이번엔 10주짜리 초단기 워크숍이었습니다.

 

10주 만에 아마추어 작가가 창작 그림책을 완성한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제 사전에 불가능이란 단어는 없었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용감한 사람이니까요! 저는 그냥 도전했습니다.

 

결과는 10명의 도전에 3명의 계약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홍유경(홀링) 작가의 『줄무늬 미용실』과 김숙영 작가의 『무지개 수프』가 출간되었습니다.

 

홍유경(홀링) 작가의 『줄무늬 미용실』


홍유경(홀링) 작가의 『줄무늬 미용실』

 

당시 부평기적의도서관 관장님도 10주 만에 그림책을 만든다는 게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터라, 혹시나 그림책으로 출간되는 작품이 있으면 출간 기념회를 열어 주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언은 홍유경(홀링) 작가의 『줄무늬 미용실』 출간 기념회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출간 기념회는 워크숍에 참여한 작가들과 도서관 관계자 그리고 도서관 이용자 모두를 열광하게 만든 축제였습니다.

 

 

 

3. 두 번의 경험이 열어준 길

 

저는 작가이자 편집자입니다. 저는 작가로서 직접 이야기를 쓰고 편집자로서 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합니다. 또한 해외의 우수한 작품을 수입하기도 합니다. 더불어 우수한 창작물을 발굴하고 출판합니다. 특히 새로운 창작 그림책의 발굴은, 투고와 외부 워크숍 졸업 작품에 의존했습니다. 제가 직접 워크숍을 열기 전에는 말입니다.

 

그런데 투고를 받은 작품이나 외부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계약하고 수정해서 책으로 출간하는 데는, 보통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작가가 스스로 더미를 만드는 시간까지 합하면 2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경험해 보니, 창작 그림책을 만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제 취향에 맞는 작품을 발견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제 취향이란 그림에 관한 취향이 아닙니다. 저는 누군가의 그림은, 사람의 겉모습처럼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외모는 고유의 아름다움이고 나는 나라서 아름다운 것이니까요.

 

그림책에 관해서 제 취향은 그림책의 겉모습인 그림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제 취향은 그림책에 담긴 드라마에 관한 것입니다. 드라마야말로 인간의 영혼을 뒤흔드는 내적 예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웃기거나 찡한 드라마가 담긴 그림책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만의 워크숍을 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운이 좋게도, 이미 글 작가로서 꽤 이름난 장인이었습니다. 제가 쓴 북극곰 코다 시리즈는 유수의 해외도서전에서 우수 그림책으로 전시되며, 세계 11개 나라로 수출되어 사랑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독자를 웃길 줄도 알고 울릴 줄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그림책 작가들에게 자신만의 드라마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 줄 수 있었습니다.

 

 

 

4. 이루리 볼로냐 워크숍

 

그리고 마침내 ‘이루리 볼로냐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저만의 워크숍을 열었습니다. 워크숍을 하는 동안 저는 그림책 작가들이 창작하는 과정을 사심 없이 도왔습니다. 창작 그림책을 함께 만들고 함께 기뻐했습니다.

 

저는 그들과 함께 창작에 몰입하고, 함께 상상하고,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함께 에피소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든 ‘이루리 볼로냐 워크숍’은 기존의 워크숍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첫째, ‘이루리 볼로냐 워크숍’은 기간은 6개월이지만 저마다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졸업식이나 졸업작품전도 하지 않습니다. 워크숍 기간인 6개월이 지난 뒤에도,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이루리 볼로냐 워크숍’의 목적은 무엇보다 워크숍에 참여한 작가가 자기만의 스타일로 자기만의 작품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북극곰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볼로냐 국제도서전에서 자신의 그림책을 전시하고 홍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졸업전시회를 하거나 다른 출판사에 투고할 필요가 없습니다.

 

셋째, ‘이루리 볼로냐 워크숍’은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났다!’는 이루리 작가(저요!)의 신념을 증명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그림책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미대를 나오지 않아도, 그림을 처음 그려도, 나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성실하게 작품을 완성한 사람은 누구나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실제로 천재라는 말은 좋아하는 일을 성실하게 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찬사입니다.

 

 

 

5. 새로운 기회, 그림책 공모전

 

한편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등 여러 해외도서전을 다니면서 저는 공모전과 문학상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는 볼로냐 라가치상,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 안데르센상 수상작을 발표합니다.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는 독일청소년문학상을 발표하지요. 도서전은 판권을 수출하고 수입하는 무역전시회이기에 수상작이 무엇인가는 초미의 관심사가 됩니다.

 


2018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참가 사진


2018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참가 사진
『까만 코다』의 이탈리아어판을 출간한 바바리브리 출판사의
프란체스카 아르킨토 대표(가운데), 그림 작가인 엠마누엘레 베르토시(왼쪽),
글 작가인 이루리(오른쪽)


2019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참가 사진


2019년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참가 사진
이루리 작가(왼쪽), 이순영 작가(오른쪽)
 
 

 

더불어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은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상이나 ‘일러스트레이터즈 월’을 통해 신인 작가가 자신의 작품과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판문화의 증진을 위해 국내 여러 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국제아동도서전이나 그림책 공모전의 주최를 제안하고 다녔습니다. 물론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6. ‘상상만발 책그림전’

 

마침내 제 꿈을 실현해준 곳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와우북페스티벌을 주관하는 와우책예술센터입니다. 와우책예술센터의 이현진 대표는 흔쾌히 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네이버 그라폴리오와 함께 ‘상상만발 책그림전’을 개최했고 올해로 제8회를 맞았습니다.

 

지난 7회까지 해마다 400여 편 이상의 작품이 참가했고, 해마다 5편에서 10편의 당선작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당선작뿐만 아니라 다수의 참가작까지 출판사와 연결되어 그림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상상만발 책그림전’은 그야말로 모두에게 열린 공모전으로서 수많은 신인 작가를 배출한 최고의 그림책 공모전이 된 것입니다.

 

저 역시 공모전의 기획자이자 심사위원으로서 우수한 작품들을 발굴했습니다. 더불어 북극곰 출판사의 편집장으로서 기꺼이 당선작들을 출간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선작들은 국내외에서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북극곰에서 출간된 ‘상상만발 책그림전’ 당선작


북극곰에서 출간된 ‘상상만발 책그림전’ 당선작

 

 

 

7. 처음엔 누구나 신인 작가였다

 

『프레드릭』을 만든 레오 리오니도 『지각대장 존』의 존 버닝햄도 처음엔 아무도 모르는 신인 작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처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신인 작가가 데뷔를 하고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통은 출판사와 소비자 모두 유명한 작가와 유명한 작품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적인 도서전이 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의 성공 비결은, 신인 작가와 작품에 문을 활짝 열어두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자신의 작품을 출간하지 못한 작가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내서 도전할 수 있는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부문과 누구나 자신의 그림과 연락처를 붙여 놓을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즈 월’이 바로 그 주역입니다. 더불어 그해 출간된 모든 그림책을 출품할 수 있는 ‘볼로냐 라가치상’ 역시 세계에서 가장 열린 그림책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신인 작가를 위해 노력하는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도 신인 작가의 더미를 검토해주는 출판사는 많지 않습니다. 4일이라는 도서전 기간은 새로 출간된 그림책을 검토하기에도 너무나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8. 출판사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일에 뜻있는 출판사들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모든 생명이 생로병사를 겪듯이 모든 문화계에도 새로운 작가와 작품이 탄생하고, 자라고, 성숙하고, 다시 새로운 작가와 작품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합니다. 문화도 하나의 생명체고 생명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함께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은 기나긴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투자됩니다. 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편집자와 디자이너와 마케터와 제작자는 나이를 먹고 생을 마감합니다.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은 다른 모든 일과 같이 자신의 생명과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당장은 별다른 경제적 보상도 따르지 않습니다.

 

 

 

9.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났다

 

물론 출판사는 기업입니다. 작가도 작품으로 인세를 받고 살아가는 생활인입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 디자이너, 마케터는 모두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작가들은 말할 것도 없지요. 그리고 우리는 모두 예술가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모방하고 추구합니다. 직업이 무엇이든 우리는 예술 작품을 좋아하고 보고 즐기며 살아갑니다. 예술이 우리의 영혼을 먹여 살리는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출판사 직원들과 작가들은 그저 좋아서 책을 만듭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데도, 몇 년의 시간이 걸려도, 우리는 책을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드는 책이 우리의 영혼을 구하고, 우리가 만든 책을 본 누군가의 영혼을 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더 나은 곳으로 변해갈 것입니다.

이루리

 

이루리(작가,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북극곰 편집장)

작가, 세종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북극곰 코다, 까만 코』, 『북극곰 코다, 호』, 『까만 코다』, 『언제나 네 곁에』 등 북극곰 코다 시리즈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11개 국가로 수출되어 아동문학계의 한류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밖에 지은 책으로는 『천사 안젤라』,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아빠와 함께 그림책 여행 2』, 『지구인에게』, 『삶은 달걀』, 『펑』, 『지각 대장 샘』, 『내게 행복을 주는 그림책』, 『아기 곰 ABC』, 『고릴라와 너구리』 등이 있습니다. 편집자로서 250여 종의 책을 만들었고, 국내외를 넘나들며 저술과 강연을 통해 그림책의 행복을 널리 전하고 있습니다.
bookgoodcome@gmail.com
https://www.facebook.com/yonghoo.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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