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 2020. 03.
≪구름빵≫ 2심 판결, 그 의미와 시사점
김기태(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2020. 03.
≪구름빵≫ 소송 개요와 의미
우리 출판계의 오랜 관행 중에 이른바 ‘매절(買切)’이라는 것이 있다. 흔히 번역물일 경우, 또는 여러 사람에 의한 공동저작물일 경우, 그리고 무명의 작가로부터 원고가 들어왔을 경우 한꺼번에 얼마간의 금액을 지불하고 이후에는 아무런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형태를 가리킨다. 문제는 이를 저작권 양도계약으로 해석하는 데 있다. 과거 저작권에 관한 인식이 희박하던 시절에는 누구나 이를 당연한 관행으로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상황은 그렇지가 않다. 예컨대, 저작물 이용에 따른 대가를 발행 부수 또는 판매 부수에 따라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일괄 지불하는 형태로써 이른바 ‘매절계약’은, 그것이 일반적인 인세를 훨씬 초과하는 고액이라는 등의 증거가 없는 한 이는 출판권설정계약 또는 독점적 출판허락계약이라고 봄이 타당하며, 출판권은 저작권법에 의하면 당사자 사이에 특별한 약정이 없는 한 3년간 존속하는 것이므로 계약일로부터 3년이 경과하면 출판권은 소멸되는 것이 명백하다는 판결(서울민사지방법원 제51부 1994.6.1. 판결, 94카합3724 가처분이의)만 보더라도 매절이 곧 저작권 양도라는 해석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구름빵≫ 표지와 본문 일부(출처: 인터넷 교보문고)
그렇다면 이른바 ≪구름빵≫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무엇일까? 최근 보도에 따르면, 작품이 큰 성공을 거뒀는데도 계약조건 때문에 제대로 저작권사용료를 받지 못하는 등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소송을 낸 그림동화 ≪구름빵≫ 작가가 출판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서울고법 민사4부는 ≪구름빵≫ 작가가 출판사 등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금지 소송에서 1심과 같이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실제로 ≪구름빵≫은 2004년 출간된 이후 다양한 형태로 가공됨으로써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3년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의 성공사례로 ≪구름빵≫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신인 작가였던 탓에 원고를 넘기면서 저작권을 일괄 양도하는 계약을 맺는 바람에 작가에게 돌아간 수입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와 출판사가 책을 출간하기로 하면서 맺은 계약조항 중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저작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한다.”는 부분이 있었다. 이 때문에 작가가 받은 금전은 850만 원에 불과했고 이후 받은 지원금을 모두 포함해도 2,000만 원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정이 알려지면서 출판계의 불공정 계약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법원에서는 작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먼저 작가는 일체의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하도록 한 계약서 조항이 불공정하고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 위배되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조항은 계약을 체결한 2003년 당시 작가가 신인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상업적 성공 가능성에 대한 위험을 적절히 분담하려는 측면도 있다.”며 “따라서 작가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불공정한 법률 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작가는 책의 저작권과 별도로 동화 속 인물에 대한 캐릭터 저작권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림책의 경우 어문저작물·미술저작물·캐릭터저작물이 결합한 것인데 앞선 계약서 조항에 따르면 출판사는 이들을 포함한 저작물 일체를 양도·양수하기로 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판단했다.
≪구름빵≫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설정이 바뀌고 새로운 캐릭터나 배경이 더해져 동일성유지권이 침해됐다는 작가의 주장도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새로운 캐릭터나 이야기가 추가된 부분은 이미 별개의 독립된 저작물이 돼 버린 것”이라며 “동일성유지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이미 2차적 저작물작성권이 양도된 만큼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변형이 동일성유지권 침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결국 재판부에서는 ≪구름빵≫ 출판계약을 매절계약이 아닌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으로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이번 소송에서의 패소에도 불구하고 ≪구름빵≫ 사건이 출판계에 몰고 온 파장은 새로운 계약환경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14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출판문화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공정한 생태계 조성을 위해 출판, 저작권, 작가 단체 등이 참여한 협의체에서 논의, 합의된 출판권설정계약서 등 7종의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를 제정, 발표한 바 있다. 바로 그 배경에 ≪구름빵≫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불공정 계약 관행으로 인한 작가의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다 보니 정부는 표준계약서 제정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2013년 10월부터 필자가 연구책임자를 맡아 본격적인 연구용역사업이 시작되었다. 여러 차례 공청회와 인터뷰를 거치는 동안 출판 관련 단체를 비롯한 저작권 및 작가 단체 등에서 각기 사용하고 있는 권장 계약서를 통일하는 한편, 공정한 출판산업 생태계 조성 차원의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표준계약서는 작가와 출판사가 각자의 상황에 따라 계약 유형을 세분화하여 선택 사용할 수 있도록 ‘단순 출판허락계약서’, ‘독점 출판허락계약서’, ‘출판권설정계약서’, ‘배타적 발행권설정계약서’, ‘출판권 및 배타적 발행권설정계약서’,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서’, ‘저작물이용허락계약서(해외용)’ 등 모두 7종으로 구성되었다.
저작재산권 양도의 법적 효력과 시사점
앞서 살핀 것처럼 만일 이번 사건의 단초가 된 출판계약이 단순한 매절계약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저작재산권은 저작권자에게 주어진 재산적 권리이므로 일정한 요건에 따라 그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행사할 수 있으며, 아울러 시간적 제한에 따라 소멸되기도 한다. 현행 저작권법 제45조에서는 ‘저작재산권의 양도’와 관련하여 “저작재산권은 전부 또는 일부를 양도할 수 있다.”,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양도하는 경우에 특약이 없는 때에는 2차적 저작물을 작성하여 이용할 권리는 포함되지 아니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양도(讓渡, assignment)란 법적으로 “자기 재산이나 물건을 남에게 넘겨줌”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전부 또는 일부를 양도할 수 있다.”는 표현이다. 일반적인 소유권의 경우 그것의 전부가 아닌 일부를 양도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지만, 저작재산권의 경우에는 저작물을 이용하는 방법에 따라 그 권리 또한 분리하여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매우 많다. 저작권법에서는 저작재산권으로서의 복제권, 공연권, 공중송신권, 전시권, 배포권, 대여권, 2차적 저작물작성권 등이 각각 별개의 권리임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권리자는 당연히 이용형태에 따라 권리를 분할해서 양도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이러한 별개의 재산적 권리조차도 쪼갤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복제권 하나만 살펴보더라도, 저작재산권자는 인쇄의 방법으로 저작물을 복제하려는 출판사업자와 녹음의 방법으로 저작물을 복제하려는 음반사업자, 또는 녹화의 방법으로 저작물을 복제하려는 영상사업자 등에게 복제권을 각각 별도로 양도할 수 있다. 즉, 어떤 방법으로 복제하느냐에 따라 같은 복제권이라도 완전한 별개의 권리로 쪼개질 수 있다는 가분적인 특성이 저작재산권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저작재산권자는 하나의 저작물에 대해 종이책의 형태로 출판사에 출판권을 부여하는 동시에 배타적 발행권을 발휘하여 또 다른 업체 혹은 개인에게 전송방식에 의한 ‘전자책(e-Book)’을 만들도록 허락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는 2차적 저작물작성권과 관련한 재산권의 분할을 생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장편소설의 저작자가 있다면 그는 그것을 원작으로 하는 번역은 물론 각색하여 공연에 이용하거나 영상 제작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각각 별도로 그 부분에 대한 권리를 양도할 수 있다.
또한 시간적․공간적 제한에 의한 저작재산권의 분할 및 양도를 생각할 수도 있다. 먼저 시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저작재산권자는 자신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함에 있어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즉 ‘3년’ 또는 ‘5년’이라는 기간을 정할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그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저작재산권은 원래의 권리자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공간적 측면에서 본다면, 번역에 의해 저작물을 출판함에 있어 그것을 ‘한국 내에서만’ 또는 ‘미국 내에서만’ 하는 식으로 제한해서 양도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배포권의 성질에 비추어 보더라도 지역이 바뀔 때마다 각각 별개의 권리가 작용할 수 있다.
또 주의해야 할 점은 저작재산권을 전부 양도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특약이 없을 때에는 2차적 저작물작성권까지 포함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부분이다. 저작재산권 전부를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함에 있어서 “2차적 저작물작성권까지도 포함한 전부를 양도한다.”는 권리자의 명백한 의사가 나타나 있지 않다면 2차적 저작물작성권은 포함되지 않고 양도하는 사람에게 유보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규정은 이번 사건의 핵심이기도 한 ‘저작재산권자의 장래이익’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작재산권을 양도해야 하는 상황은 대개가 저작재산권자로서는 매우 불리한 경우가 많을 것이며, 그렇다면 저작재산권을 양도받으려는 측의 일방적인 계약 내용으로 마무리되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가난한 소설가가 한 순간의 경제적 궁핍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그동안 써 놓은 어떤 작품의 저작재산권 전부를 양도할 경우에 상당액의 금전적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소설가는 앞뒤 가릴 겨를 없이 계약을 체결할 것이고, 그랬을 때 저작재산권 전부에 2차적 저작물작성권까지도 포함되어 있다면 이후로 소설가는 그 작품에 대한 아무런 재산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일방적인 계약이 아니라 대등한 상황에서의 계약에 있어서 저작재산권자가 2차적 저작물작성권이 포함되는 계약임을 잘 알고 있거나 금전적 대가가 그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막대한 금액이라면 여기서의 추정규정은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추정’이란 언제든지 확실한 증거에 의해 번복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도하는 사람이 충분히 알 수 있는 정도로 2차적 저작물작성권까지도 포함되는 양도임을 특약으로 분명히 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단지 ‘저작재산권의 전부’ 또는 ‘일체의 재산적 권리’라는 표현만으로 양도계약이 이루어졌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구름빵≫의 출판계약은 이와 같은 저작권법상의 저작재산권 양도계약이 유효한 계약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직접 계약서를 확인한 것이 아니므로 확언하기는 어려우나 보도에 등장하는 것처럼 “저작인격권을 제외한 저작재산권 등 일체의 권리를 출판사에 양도한다.”는 표현이 2차적 저작물작성권까지 포함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2심 판결에 불복한 작가 측에서 상고를 했다고 하니 대법원의 판단을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당사자끼리 합의에 따라 작성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분쟁이 발생했을 때 유일한 입증 자료라는 점에서 관련 법률에 입각한 계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김기태(세명대학교 디지털콘텐츠창작학과 교수) 삼성출판사, 지학사, 삼진기획 등에서 출판편집자로 일하다가 2001년부터 세명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 및 연구윤리 분야의 연구와 강의를 주로 맡고 있으며, 한국전자출판학회 명예회장과 한국연구재단 연구윤리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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