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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9  202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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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성우가 생각하는 오디오북 시장

 

 

 

서혜정(성우, ‘서혜정 낭독연구소’ 대표)

 

2022. 02.


 

2002년 우리나라에서 월드컵 축구 경기가 열렸을 때, 성우 데뷔 20주년을 맞이하여 야심찬 마음으로 『한국단편소설 100선』 오디오북 제작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은 오디오북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오디오북 시장도 강의 테이프가 대부분이던 상황에서 열정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아파트 한 채가 날아갔고… 그 후로 20년이 흘렀다. 어느 신문사에서는 오디오북 시장이 열리고 있는 현실을 기사화하며 필자를 ‘오디오북의 시조새’라 소개하기도 했다. 실패한 시조새가 되어 살짝 부끄럽기도 했었다.

 

몇 해 전부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한 도서에 한하여 각 출판사에 오디오북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대형 출판사는 제작비를 들여 오디오북을 만들어내고 있다. 또 ‘윌라’나 ‘밀리의서재’와 같은 오디오북 플랫폼이 탄생했고, ‘윌라’의 경우 오디오북 자체 제작도 하고 있다. 이제 드디어 오디오북 세상이 열린 것이다.

 

성우는 목소리 연기자다.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 내레이션을 비롯해, 기업체의 홍보 내레이션 등을 녹음하다 보니 오디오북을 녹음하는 데 커다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오디오북은 말 그대로 듣는 책이어서, 목소리에 의존하여 책의 내용을 이해해야 한다. 정확한 발음과 듣기 좋은 발성은 필수 사항이고, 문장을 이해하며 글의 표면적인 뜻과 이면의 의미까지도 전달해야 한다. 프로 성우는 그런 부분에서 특화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떤 오디오북은 성우가 아닌 배우나, 처음 들어보는데 너무나 신선해서 귀를 꽉 잡고 놓지 않는 목소리로 제작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성우로써 얼굴이 붉어지기도 한다. 프로 성우들은 입을 여는 순간 프로 냄새가 풀풀 나기 때문에 참신하고 풋풋한 정서를 전달하는 책은 잘 맞지 않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책이 오디오북으로 제작되고 있고, 그 많은 책들은 각각 다양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어떤 책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책은 감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소설에서도 장르가 나뉘어 달달한 로맨스가 있는가 하면 가슴을 졸이게 하는 추리소설도 있다. 무협 판타지를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웹소설이 해외 수출로도 이어지고 있다. 배역이 많이 나와 인물마다 목소리를 구분하며 흥미진진하게 낭독해야 하는 소설의 경우, 프로 성우가 녹음하면 청자들은 다 듣고 난 후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연령을 초월하여 풋풋한 감성이 녹아나는 책일 경우는 성우나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이 낭독했을 때 그 정서가 그대로 살아나 감동을 주기도 한다. 낭독이 살짝 서툴러서 책의 느낌을 더 잘 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작가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는 책은 작가가 직접 낭독했을 때 느낌이 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일반인이든, 작가든 낭독을 잘했을 경우이다. 발음도 비교적 들을 만하고 발성도 깨끗해야 한다. 몇 해 전 어느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낭독해, 성우가 녹음한 오디오북보다 훨씬 더 좋은 반응을 일으킨 적도 있다.

 

오디오북 한 권을 만들려면 적어도 몇 백만 원의 비용이 든다. 각 출판사마다 수십 권에서 수백, 수천 권 이상은 만들어 놓아야 오디오북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TTS(Text-To-Speech: 문자음성 자동 변환)로도 많이 제작되고, 요즘은 AI 목소리로도 소개하고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 오히려 사람이 직접 읽은 오디오북보다 TTS가 더 좋다는 사람들도 있다. 프로 성우로써 반성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글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 있기에 목소리 연기자인 성우는 낭독을 하는 순간 자동적으로 감정이 이입되어 듣는 사람의 감성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개인의 감성은 각자의 DNA와 같은 것이어서 같은 글이어도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를 수 있는데, 낭독자의 감정이 이입되었을 경우 청자의 감성과 부딪힐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TTS로 들을 때 글의 느낌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받아들이며 즐기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글의 내용과 함께 낭독자의 감성까지도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다. 목소리가 듣기 좋아 책을 들으며 목소리까지 즐기는 경우이다. 그런 경우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낭독자가 녹음한 오디오북만을 찾아 듣기도 한다. 이렇게 취향이 다르다 보니 오디오북 시장에서 TTS, AI, 프로 성우, 일반인, 작가 등 다양한 내레이터들이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반인의 경우 한 권의 책을 장시간 지속하여 녹음하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책 한 권을 300쪽 기준으로 볼 때, 책 내용에 따라 호흡이 달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완성 파일의 재생 시간은 7시간에서 9시간 이상까지 되기도 한다. 1시간의 완성 파일이 만들어지기까지 프로 성우의 경우 녹음 시간이 2시간 이상 소요되기도 하며, 일반인의 경우는 3시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편집까지 완성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제작되어 받는 수고료가 프로 성우의 경우 완성 시간 1시간에 20만 원정도이며 그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고, 현재 북 내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일반인의 경우는 10만 원 전후로 알고 있다. 목소리는 컨디션과 직결된다. 항상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며 1시간 정도 녹음하면 휴식을 취해야 하고 그런 식으로 3시간 정도를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해야 완성 파일이 1시간 정도 나온다. 스튜디오에 오가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1시간의 완성 파일을 만들기 위해 예독(豫讀)하는 시간까지 하루가 소요된다. 아무리 부지런해도 한 달에 한두 권 이상은 녹음을 할 수가 없다.

 

오디오북을 납품하기 전 파일의 상태를 체크하는 기준이 있다.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받아주지를 않는다. 그래서 스튜디오에 가서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디오북은 대부분 휴대폰이나 차 안에서 듣는다. 물론 음질이 깨끗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외부 소음이 없고 기계 소음이 방해되지 않는다면 휴대폰으로 녹음해도 듣는 데 아무 지장이 없으며 필자는 차 안에서도 휴대폰으로 녹음해 유튜브 방송용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완성된 유튜브 방송을 들어보면 아무 이상이 없다. 차 안이야말로 녹음하기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집에서 녹음하면 오히려 공간의 울림이 있기도 한데, 차 안은 적당한 공간이 스튜디오 역할을 하는 것이다. 조용한 환경에 차를 주차하고 차 안에서 휴대폰으로 녹음하면 짬짬이 얼마든지 녹음할 수 있다. 또 각자의 집에 홈 레코딩 시스템을 갖추고 녹음과 편집까지 완성해 직접 오디오북을 만들 수도 있다.

 

오디오북 녹음중인 모습과 녹음 스튜디오


오디오북 녹음중인 모습과 녹음 스튜디오

 

오디오북 시장이 열렸다. 산업으로 안정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오디오북의 꽃은 내레이터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있어야 하고 프로 성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제는 전문 오디오북 내레이터가 양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해 전부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북 내레이터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단발성으로 끝나는 안타까움이 있다. 필자 또한 강사로 출강하였으나 내레이터는 지식만으로 만들어질 수가 없다. 방법만 가르쳐서는 혼자서 완성하기에 어려움이 무척 많은 것이다. 프로는 하루아침에 될 수 없다. 재능으로 되는 일도 아니며 목소리만 좋다고 되지도 않는다. 북 내레이터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 책을 좋아해야 하고 목소리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발음을 배우고 발성을 배우며 문장을 이해하고 객관적인 감성으로 책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여 전달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적어도 1년 이상의 훈련 기간이 필요하다.

 

‘낭독’은 사전적 의미로는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다. 북 내레이터가 되려면 낭독을 잘해야 하는데, 북 내레이터의 낭독은 단순히 책을 소리 내어 읽어 녹음하는 것이 아니다. 책 내용을 분석하여 작가의 글을 이해하고, 책의 정서와 맞는 객관적인 감성으로 끊어 읽기와 억양, 악센트 등을 조화롭게 함으로써 책 속의 내용을 고스란히 잘 전달해주는 이야기꾼이다. 그러한 북 내레이터가 많이 양성되어야 건강한 오디오북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내레이터 외에도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하겠지만 오디오북의 꽃인 북 내레이터가 다양해지지 않는다면 오디오북 시장은 발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디오북의 시조새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받은 필자는 그래서 ‘서혜정 낭독연구소’를 만들어 우리나라 최초로 북 내레이터를 양성하고 있다(세계 최초일지도 모르지만 확인이 되지 않았음). 녹음부터 편집까지 전 과정을 거쳐 완성된 오디오북을 만드는 전문 북 내레이터를 양성하는 곳이다. 현재 오디오북은 대부분 서울에서 제작되고, 스튜디오를 통해 녹음하고 있다. ‘서혜정 낭독연구소’는 온라인으로 강의를 하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브라질 등 외국에 거주하는 교포들도 참여하고 있다. 모두 책을 사랑하고 목소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낭독연구소에서는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전문 성우들이 강의를 하고 있으며, 강사 중에는 오디오북 박사도 있고 석사도 있다. 2022년 1월부터는 겨울방학동안 초등학생, 중학생도 참여해 교과서로 낭독 훈련을 하고 있다. 성인의 경우 20대부터 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아파트 한 채 만큼의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한 경험으로 자본을 들이지 않고 시작했는데, 참여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소명감까지 생겼다(이번에 느낀 건데 소명감은 내가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또 참여하는 사람들의 직업은 퇴직한 도서관 관계 공무원을 비롯해 학교 교사도 있고, 전업주부, 무직자, 대학생, 현직 도서관 관계자, 국어학원 원장, 출판사 대표 등 매우 다양하다.

 

필자는 북 내레이터 직업군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전문 북 내레이터가 속속 배출되어 오디오북 산업 일꾼으로 많은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물론 프로 성우가 필요한 분야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배우의 목소리가 더 잘 어울리는 책이 있고, 작가가 직접 낭독하여 그 책의 정수를 느낄 수도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낭독하면 참 좋은 책들도 있다. 연령과 세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계층에서 북 내레이터가 배출된다면 대한민국의 오디오북 시장은 매우 건강하게 산업화될 것이다.

 

책을 읽기에 너무나 바쁜 현대인들에게 오디오북은 짬짬이 차 안이나 지하철에서 들을 수 있고, 잠자리에서 이어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커다란 변화의 물결 속에서 이제는 독서 방법도 변화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우리나라가 오디오북이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10~20년 전에는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웹소설의 인기와 더불어 오디오 콘텐츠가 부상하는 흐름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만의 오디오북 세상이 열릴 것으로 전망한다. K-콘텐츠의 인기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의 청소년들이 많아진다는 소식도 긍정적인 신호다.

 

오디오북은 사람의 감성까지도 매만져 준다. 목소리는 영혼의 울림이기 때문이다. 잘 다듬어진 목소리로 낭독한 오디오북 한 권을 들으면 마음의 위안이 될뿐더러 치유까지도 될 수 있다. 목소리는 에너지여서, 발화하는 말 속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요즘, 따뜻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책 한 권을 들으며 휴식할 수 있다면 하루하루가 즐겁고 편안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대한민국의 오디오북 산업이 우뚝 솟아올라 일자리 또한 많이 생겨나기를 바라며……

서혜정

 

서혜정(성우, ‘서혜정 낭독연구소’ 대표)

1982년 KBS 17기 성우 공채 입사로 성우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는 한국성우협회 소속 성우이자 한국예술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아름다운 목소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듭니다.”라는 모토로 ‘서혜정 낭독연구소’를 만들었다. ‘X파일 스컬리’, ‘롤러코스터’ 목소리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저서로는 『나에게, 낭독(공저)』, 『성우(공저)』, 『인생에서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공저)』, 『속상해 하지 마세요』가 있다.
heajung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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