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46  20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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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서점 알라딘의 전자책 유출 이슈 정리

 

 

 

이호재(〈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2023. 08.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전자책(e-book)이 해킹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유출본만 5,000종이다. 이로 인해 전자책 유통 플랫폼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지면서 출판계는 요동치고 있다. 국내 출판 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이고, 파장은 어떨지 짚어보자.

 

 

 

알라딘 전자책 5,000종 유출, SNS 통해 퍼져

 

올해 5월 16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텔레그램 채팅방에는 “알라딘에서 전자책 100만 권을 탈취했다”고 주장하는 한 해커의 글이 올라왔다. 해커는 알라딘 측에 35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요구하며 5,000여 종의 전자책 파일을 올렸다. 당시 채팅방엔 3,200명이 들어와 있었다.

 

알라딘의 전자책을 해킹했다고 주장하는 해커의 텔레그램 메시지

알라딘의 전자책을 해킹했다고 주장하는 해커의 텔레그램 메시지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이 사실이 알려졌고, 사건이 기사화됐다. 사태가 커지자 알라딘은 부랴부랴 이 소식을 독자와 출판사에 알렸다. 알라딘은 5월 20일 “출판사와 저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 알라딘 전자책 상품이 유출된 것으로 확인돼 정확한 경위와 피해 규모를 파악 중”이라고 했다. 또 이 사건이 전자책 상품의 불법적 탈취 행위이며 불법 파일의 복제 및 무단 배포 역시 출판 생태계를 망치는 중대 범죄라며 경찰청 사이버수사국과 한국저작권보호원에 신고했다고 했다. 대응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유출된 파일은 곧바로 일파만파 퍼졌다. 사태에 대한 대응이 뒤늦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이에 알라딘은 다음날인 5월 21일 다시 한번 공지사항을 내고 입장을 내놨다. 이번 사안의 문제점을 인식한 것이다. 알라딘은 “믿고 맡기신 전자책 상품을 탈취당한 데 대해 거듭 사과드린다. 알라딘이 할 수 있는 일은 무단 배포 등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활동”이라고 했다. 또한 알라딘은 사태 해결을 위한 기금을 편성했다고 알렸다. ‘전자책 무단 배포 관제센터’ 설립과 운영, 무단 배포된 불법 전자책 신고 시 포상금 지급, 무단 배포되는 전자책 이용의 불법성에 대한 캠페인 등에 이 기금을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전자책 무단 배포 관제센터는 전담팀을 이미 편성해서 활동을 개시했고, 전자책의 불법 배포와 다운로드를 세밀하게 모니터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5월 말 기자가 한국저작권보호원이 피해 출판사들에 보낸 파일을 확인한 결과, 유출 파일엔 이미 출판계 베스트셀러가 다수 포함돼 피해가 커지고 있다. 이민진의 장편소설 『파친코』(인플루엔셜, 2022), 정세랑의 장편소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 2015), 정유정의 장편소설 『내 심장을 쏴라』(은행나무, 2009) 등이 유출본에 포함돼 있었다. 파일을 분석한 결과 별다른 절차 없이 수백 쪽에 이르는 책 전문을 전자책 뷰어로 바로 읽을 수 있었다. 유출이 확인된 5,000여 종 전체 목록을 분석한 결과 문학동네와 민음사, 창비 등 국내 유명 출판사의 베스트셀러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 파일은 현재도 SNS를 중심으로 떠돌고 있다.

 

특히 종이책으로 펴내지 않은 전자책의 경우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 웹소설을 전자책으로 펴내거나, 전자책만 펴내는 BL소설은 온라인으로 불법 유통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 전자책 출판사 대표는 “많게는 수천만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재앙”… 출판계 불안

 

이번 사건에 대해 알라딘은 “불법 파일의 무단 배포 등 2차 피해를 막아야 하는 의무를 깊이 통감하고, 이를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출판사들은 무한 복제가 가능한 전자책 특성상 이번 사건으로 출판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성명을 내고 “무한 복제가 가능하고, 시공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자책 파일 유출은 종이책을 도둑맞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약 탈취된 파일이 추가로 유출된다면 출판계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재앙이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출판계와 독자들의 신뢰로 성장한 알라딘이 그 신뢰에 답해야 하지만 알라딘은 지금도 전자책 보안 상태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알라딘이 사운을 걸고 이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들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한 소설가는 통화에서 “알라딘의 대응이 뜨뜻미지근하다. 내 소설이 어떻게 유통될지 몰라 불안하다”고 했다. 다른 소설가는 “어차피 책을 안 읽는 시대에 피해가 더 있을지 알지도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이번 사건은 범인을 잡는 것보다 목숨 값이 더 중요한 사안이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관계자는 알라딘에 “어린이 ‘유괴 사건’을 수사하는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해커가 5,000여 종의 파일을 인질로 삼고 35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요구하는 모습이 유괴 사건과 똑 닮았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인 검거보다 인질(전자책)이 중요하다”며 “인질의 목숨(불법 유포)이 걱정돼 범인 검거와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이들은 전자책을 무단으로 다운로드한 이들이다. 유출된 전자책을 한 권이라도 무단으로 다운로드하거나, 복제, 배포, 대여할 경우 저작권법 제136조에 의거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또 무단 유출이 상시화된 웹소설, 웹툰 사례에 비춰보면 전자책을 무단으로 받은 이들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출판계에선 소송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피해 출판사로부터 법률 대응 위임장을 받고 있다. 추후 알라딘을 상대로 보상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제2의 알라딘 사건 언제든 터져”

 

출판계에선 “과연 다른 서점은 안전한가”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알라딘의 보안 시스템 구축 방식이 다른 서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 출판사 대표는 “온라인 3대 서점 중 하나인 알라딘이 해킹됐다면, 교보문고나 예스24는 뚫리지 않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보안 장치인 ‘디지털 저작권 관리(Digital Rights Management, DRM)’ 기술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자책은 종이책과 달리 파일로 유통되기 때문에 보안이 뚫리면 걷잡을 수 없이 피해가 커진다. 특히 서점마다 다른 DRM을 쓰고 있다는 점은 이번 사건의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된다. 정부와 출판계가 2010, 2014년 두 차례 출판계 ‘표준 DRM’을 구축하려 했으나 서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성사되지 않았다. 알라딘 DRM 보안이 취약한 것이 이번 사건의 원인이라면 ‘표준 DRM’ 구축 무산이 문제점으로 지목될 수 있다.

 

그러나 DRM에 대한 출판계 내의 논의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출판계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6월 7일 ‘전자책 유통 플랫폼 보안 상황 점검을 위한 설명회’를 개최하려 했다. 설명회에서는 전자책 플랫폼의 보안 실태 현황을 듣고 이를 점검할 예정이었다. 또한 참석자의 질의응답을 통해 현재 전자책 유통사들의 보안 상황을 점검하고, 알라딘 전자책 유출 사건과 유사한 상황의 재발을 방지하는 방안을 모색하려 했다. 교보문고, 예스24 등 주요 전자책 플랫폼의 보안 업무 책임자가 참석할 예정이었지만 설명회는 개최 직전 취소됐다. 서점 측이 참석에 난색을 표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특히 알라딘 관계자가 참가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밝힌 게 설명회 취소의 주요 원인”이라고 했다.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DRM 대응에 대한 논의 없이는 제2의 알라딘 사건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전자책 불법유출 피해출판사 대책위원회’가 설립되면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6월 21일엔 ‘전자책 불법유출 피해출판사 간담회’가 개최됐다. 최우경 알라딘 대표가 공식 사과 및 피해 보상을 약속했다. 사후 보안 조치 및 전자책 무단 배포 관제센터 활동 경과도 보고했다. 이어 한국저작권보호원을 비롯한 출판사 및 서점 등이 참여하는 공동대책위원회 수립을 제안했다. 6월 27일엔 전자책 불법유출 피해출판사 대책위원회 1차 회의가 개최됐다. 현재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공동대책위원회 구성 제안이 들어간 상태다.

 

6월 21일 열린 전자책 불법유출 피해출판사 간담회에서 알라딘의 전자책 유출 경위 관련 브리핑과 토의가 이뤄졌다. 피해 보상과 활동 방향과 관련한 논의도 이뤄졌다.

6월 21일 열린 전자책 불법유출 피해출판사 간담회에서 알라딘의 전자책 유출 경위 관련 브리핑과 이후 피해 보상과 활동 방향에 관련한 논의도 이뤄졌다.(출처: 한국출판인회의)

 

 

전자책 신뢰도 끝없이 추락

 

출판계에선 이번 사건으로 과거 ‘북토피아’의 실패가 떠오른다는 지적도 나온다. 1999년 약 120개 출판사가 자본금을 모아 설립한 전자책 유통업체인 북토피아는 2010년 파산했다. 파산 과정에서 수천 개의 전자책 파일이 파일 공유(Peer to Peer, P2P) 프로그램을 통해 불법으로 유통됐다. 북토피아의 사례는 해킹이 아닌 파산으로 인한 것이지만 전자책 불법 유통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선 알라딘 전자책 해킹 사건을 보는 듯하다.

 

지난해 8월 출판유통전문기업 웅진북센이 국립국어원의 ‘말뭉치’ 구축 사업에 참여하면서 약 1만 6,000종의 전자책 저작권을 무단으로 사용하여 전자책의 저작권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2021년엔 『90년생이 온다』(웨일북, 2018)의 임홍택 작가가 전자책 인세 누락 문제로 출판사와 소송을 벌였을 정도로 인세 정산 역시 불투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알라딘 전자책 해킹 사건을 계기로 보안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전자책에 대한 신뢰도는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최근 교육부의 전자책 무료 구독 서비스인 ‘e-북드림’을 7월 1일부터 확대하는 정책도 논란에 오르고 있다. ‘e-북드림’ 서비스는 1만 4,000여 종의 주요 단행본 전자책 등을 약정 기간 내 무제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교육부의 정책으로 최대 5권까지만 대여할 수 있었던 기존 서비스를 구독 수 제한 없이 모든 학생이 이용하게 되는데, 전자책 무료 구독 서비스가 무분별하게 확대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한국출판인회의 관계자는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출판사나 저작권자와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는 것도 큰 문제”라며 “출판사와 저작권자의 우려를 담은 ‘e-북드림’ 사업 중단 촉구 공문을 교육부와 예스24에 발송했다”고 했다.

 

 

 

독자 경각심, 정부 지원 필요

 

최근 출판계엔 흉흉한 소식이 많이 들려온다. 지난 5월에는 서울시 마포구가 운영하는 출판 창작자 지원 공간 ‘플랫폼P(Platform-P,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가 논란에 올랐다. 마포구가 플랫폼P의 운영을 무력화하고, 작은도서관 축소 및 폐관, 경의선책거리 폐지 등 출판문화산업의 인프라를 없애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알라딘 해킹 사건도 출판계엔 악재다. 물론 알라딘 해킹 사건의 문제는 해커가 일으켰다. 수사를 통해 범인이 밝혀지고, 불법 다운로드한 사용자도 처벌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안타까운 문제는 여러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후속 조치 논의가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출판계 양대 단체인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가 관심의 불씨를 키우려고 하고 있지만, 독자와 정부의 관심은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 작가는 “책이 대량으로 유출되든 말든 ‘도서관에서 읽으면 되지 않느냐’는 반응이 나오니 기운이 빠진다”고 했다. 다른 출판사 대표는 “출판계 시장이 자본적으로 줄어드니 논란도 크게 다뤄지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알라딘 해킹 사건을 계기로 DRM 개선 논의가 이뤄지려면, 불법 다운로드에 대한 독자의 경각심과 작가의 저작권 보호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이호재

이호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동아일보〉에서 문화부 기자로 일하며 출판, 문학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틈틈이 소설을 쓴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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