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37  2022. 10.

게시물 상세

 

학술지 출판 시스템, 이대로 괜찮은가?

 

 

 

윤진혁(숭실대학교 교수)

 

2022. 10.


 

작가는 글로 독자와 소통한다. 글이 작가의 손을 떠나 출판물이 되어 독자에게 읽히게 되고, 독자들의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과학자도 일종의 작가이다. 과학자들은 논문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글로 자신이 한 일을 세상에 알리고 소통한다. 아이작 뉴턴이 사용하여 유명해진 문구인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이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처럼, 독자에게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다른 연구의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

 

논문을 출판하는 잡지를 우리는 보통 학술지(Journal)라고 부른다. 학술지의 역사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학술지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보통은 1665년 1월 5일에 프랑스에서 출판된 〈Journal des sçavans〉을 지목한다. 이 잡지는 유럽의 역사와 전근대 문학에 대해 다루는 전문 학술지의 역할과 함께 유명인의 부고와 같은 소식도 전하는 신문의 역할도 겸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 3월에 영국 왕립학회(The Royal Society of London for the Improvement of National Knowledge)에서 학회 회원의 연구를 알리기 위해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를 창간했다. 〈Journal des sçavans〉과는 다르게 이 학술지는 신문의 성격이 아닌 오롯이 과학적 발견을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는 대부분의 현대 학술지가 가지는 기본적인 규칙을 만들어내고 도입하였다. 예를 들면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그 기여자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논문의 저자 이름과 함께 출판 날짜를 명시하였고, 이러한 사실을 책자로 기록하였으며, 왕립학회 평의회 회원들이 논문들을 검토하고 게재 여부를 심사할 수 있게 하여 ‘동료평가(Peer-review)’라고 불리는 현재 출판 시스템의 핵심 기능의 기반을 닦았다. 영국 왕립학회가 16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을 생각하면 당시 기준으로는 매우 선진적인 시스템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강산이 수십 번 변할 시간이지만 왕립학회는 여전히 이 학술지를 출판하고 있다.

 

논문이 게재되기 위해서는 학술지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일반적으로는 출판사와 편집진이 일방적으로 논문의 게재 여부를 심사하지 않고, 주로 다른 과학자에게 심사를 보내 심사평을 받는 동료평가를 하게 되는데 학술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두 명 이상의 동료 과학자가 논문을 읽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시기의 동료평가는 논문이 게재될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역할만 수행했고, 일부 학술지가 동료평가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학술지 대부분은 2차 세계대전 때까지 동료평가를 도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기에 다양한 신기술로 만들어진 무기를 경험하며 다양한 국가가 과학기술에 큰 투자를 시작하게 되었다. 1950년대 이후에는 출판되는 연구의 수가 늘어나 한정된 학술지의 지면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점점 치열해졌고, 동료평가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다.

 

사실 동료평가가 발전하지 못한 데에는 기술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복사와 물류 기술이 떨어져서 평가를 위한 자료를 발송하고 다시 받는 과정 자체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18세기에 습식 복사기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원본의 훼손 위험이 컸고, 오랜 시간 용지를 물에 적셔서 다른 종이에 압착 롤러로 잉크를 옮겨 찍는 방식의 특성상 한 장을 복사하는 데에 수 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이후 1959년에 제록스라 불리는 최초의 건식 복사기가 만들어져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동료평가를 받는 것이 정상적인 학술지의 기본 요건으로 인지될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동료평가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그리고 이에 따라 출판 자체가 상당히 느려질 수 있어서 학술 출판에서 가장 큰 병목을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 단계의 동료평가는 짧게는 몇 주부터 몇 달, 몇 년까지 소요되는데 이조차 한 번에 끝나는 경우는 드물다. 논문의 게재 여부만 평가하던 근대의 동료평가에 비해 현재는 논문에서 개선할 점을 제시하게 되어 있고, 이를 기반으로 논문을 수정(revise)하여 다시 심사받는 과정을 몇 단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을 마무리하게 되면 수개월에서 수년이 지나 있다. 그뿐 아니라 요즘은 인터넷이나 이메일로 평가할 논문을 빠르게 전송할 수 있어서 물리적인 한계는 많이 극복했지만, 논문을 검토할 수 있는 전문가의 수가 제한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평가자는 논문을 이해하는 기본적인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논문의 저자와 이해충돌이 없어야 한다. 논문을 제출한 사실을 사전에 알아서는 안 되고, 저자 중 누구와도 최근 협업한 경험이 없어야 하며, 저자와 같은 소속 기관의 사람들도 배제해야만 한다. 문제는 논문의 연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많은 수가 저 조건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초청된 평가자가 모두 평가하는 것을 수락하지도 않는다. 보통 업무 시간 일부를 할애하여 동료의 논문을 평가해야 하는데 이러한 동료평가에 들어간 수고는 주로 무시되곤 한다. 본인이 출판한 논문은 과학자의 명성에 도움을 주지만, 어떤 논문을 심사했는지는 대부분 알려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금전적인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학술지는 평가자에게 심사 비용을 주지 않는다. 때로는 이력서에 어떤 학술지를 심사했는지 기록을 남기기도 하지만 본인이 출판한 논문에 비해서 경력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논문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젊은 학자들이 본인의 전문성을 보이기 위해 택하는 차선책에 가깝다.

 

더불어 잘못된 동료평가를 했을 때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논문들이 항상 올바른 결과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므로 잘못된 실험이나 해석이 있는 경우 출판사 혹은 원저자가 논문을 철회하는 경우가 있다. 실수인 경우도 있지만 고의인 경우도 있다. 독일 출신 물리학자인 얀 헨드릭 쇤(Jan Hendrik Schön)은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1998년부터 2002년까지 100개에 가까운 논문을 썼으며, 그중 10개가 넘는 수가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학술지인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게재되었다. 이러한 업적으로 그는 학계의 떠오르는 스타가 되었으나, 그와 동시에 수일에 한 번씩 나오는 높은 수준의 연구에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도 생겨났다. 학계에서 몇몇 과학자들이 쇤의 연구 결과가 부정확하거나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였고, 이어 시작된 조사에서 대부분의 연구가 조작된 데이터에 기반을 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2000년부터 2001년까지 그의 대부분의 연구가 철회되었고 박사학위도 박탈되었는데, 이 사건을 “쇤 사건”이라 부른다.

 

이 사건으로 논문 평가자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란과 비판이 생겨났다.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명망이 있는 학술지에서 조작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평가자들은 의도적인 사기를 밝혀내기보다는 논문 내의 논리적 오류를 찾는 것이 주된 역할이므로 또 다른 피해자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사건으로부터 20년이 지난 2022년 9월 26일에 〈네이처〉는 ‘상온 초전도체 관련 논문’을 철회한다고 발표하였는데, 이는 〈사이언스〉의 2020년 10대 과학 성과에 선정될 정도로 보고 당시에는 획기적인 연구로 평가를 받았었다.

 

동료평가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학술지에서는 이러한 동료평가를 모아서 편집자(editor)가 최종적인 게재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네이처〉와 같은 극소수의 학술지는 전담 편집자를 고용하지만, 학술지 대부분은 명망이 있는 학자들을 모아 편집자와 편집위원회(editorial board)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명망이 있는 학술지의 편집위원이나 편집자로 선정되는 것은 학계 종사자에게는 명예와 경력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단순한 평가자를 넘어 편집위원이 된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명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반대로 명망 있는 편집위원을 모은 학술지는 더 큰 권위를 가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편집위원들의 활동도 기본적으로는 아무런 대가를 받지 않는다.

 

그럼 논문의 저자들은 대가를 받고 있을까? 보통 책이 팔리면 저자들이 인세를 받지만, 논문이 더 많이 읽힌다고 인세를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저자들은 일반적으로 출판이 될 때 게재료(Article Processing Charge; APC)라 부르는 비용을 낸다. 학술 출판 모델은 크게 구독 기반(Subscription based model)과 오픈 액세스(Open Access) 두 가지로 나뉜다. 구독 기반 모델의 경우 학술지를 보기 위해서는 독자가 돈을 내야 한다. 학술지의 구독료는 개인이 부담하기에는 매우 비싸다. 보통 학술지 한 개가 연간 개인 구독료로 수십만 원을 요구하는데, 한 분야의 연구자가 관심을 가지는 학술지는 수십에서 수백 종에 이른다. 그러므로 주로 연구기관이나 도서관 등에서 소속 연구자들을 위해서 공동구매 형식으로 구매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구독 기반 모델로 출판하는 경우 대부분 저자들이 출판사에 저작권을 완전히 넘겨주는 계약을 하게 된다. 만약 후속 연구에 예전 연구에 사용했던 그림을 다시 사용하려면 저작권이 저자에게 없으므로 출판사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저작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는 오픈 액세스 출판을 하면 된다. 오픈 액세스 출판을 하면 일반적으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등의 공개 라이선스로 출판하게 되는데, 이 경우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저작물을 읽을 수 있다. 또한 라이선스 범위에 따라 비영리적 사용의 경우는 자유롭게 재가공해 쓸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오픈 액세스 출판 모델은 게재료가 매우 비싸다는 것이다. 보통 한 편의 오픈 액세스 논문을 게재하는 데 수백만 원의 게재료를 요구하는데, 이는 연구자에게 큰 부담이 된다. 구독 모델에서도 게재료를 받는 학술지가 있었지만, 같은 학술지라도 오픈 액세스를 선택하면 훨씬 더 많은 게재료를 요구한다. 구독 모델에서는 보통 출판사와 연구기관이 계약하므로 구독료에 대한 협상이 가능하지만, 오픈 액세스는 개인과 출판사가 계약하므로 구독료 협상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 이런 오픈 액세스 출판에 들어가는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까? 개인 연구자에게 논문 한 편에 수백만 원은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를 통해 이런 게재료를 내게 된다. 10여 년 전에는 이러한 오픈 액세스 출판이 드문 경우라 연구비에서 게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오픈 액세스 출판이 대중화되며 연구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게재료 수익을 노린 약탈적 출판사와 학술지가 나타나고 있다.

 

약탈 학술지는 동료평가가 없거나 형식적이고 논문의 게재가 빠르다. 동료평가가 학술 출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병목 지점이므로, 이는 실적이 급한 과학자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약탈적 출판사의 점유율이 점점 올라가고 있다. 약탈 학술지와 정상 학술지의 경계에서 의심받는 대형 출판사들도 몇몇 존재한다. 아직은 이러한 저널을 출판할지는 개개인의 판단에 달려있지만, 선제적으로 막으려고 하는 연구기관도 소수 존재한다. 게재료를 보통 세금에서 지원되는 연구비로 내므로 제한된 자원 안에서 이러한 부정 사용을 지속적으로 용납하기도 어렵다.

 

학술 출판 업계의 연 매출은 수십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학계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주체는 과학자이고, 연구의 동료평가도 과학자가 수행한다. 그리고 그 동료평가를 모아 심사를 결정하는 주체 또한 편집자로 선정된 소수의 과학자이다. 최종적으로 출판된 논문을 읽게 되는 소비자 또한 과학자이다. 학술지는 이런 과학자들이 서로 소통하는 장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의 출판 과정에 표준화된 시스템을 도입해서 신뢰할 만한 평가를 할 수 있게 해 주고, 과학자 사이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 주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학술 생태계의 상당 부분이 과학자의 무보수 노동과 상호 신뢰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직 적은 수지만 일부 학자들이 이런 무보수 심사 시스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보이콧을 선언했다. 그러나 아직은 학계에서 이런 시스템에 대해 관행을 바꾸기보다 옹호하는 곳이 더 많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일한 평가자가 학술지 논문이 아닌 서적이나 다른 문서를 평가할 때는 소정의 보수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학술지만 예외적으로 그런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학술 출판에 들어가는 심사 비용과 논문의 게재료가 더 올라갈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선의에만 기반하고 있는 현재의 학술 출판 시스템이 언제까지 유지될까? 지금은 생소한 말이지만 유료 동료평가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는 미래가 올 수도 있다. 혹은 이러한 동료평가 시스템 자체가 약탈 학술지 등의 외부적 요인에 의해 완전히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과학자들은 수백 년간 투명한 과학적 소통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고 유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동료평가가 유료냐 무료냐의 문제보다는 현재의 체계가 영속 가능한지, 그리고 얼마나 실효성이 있고 공정한지를 바라보는 것이다. 〈네이처〉의 일부 자매지에서는 논문이 출판될 때 논문에 평가자와 평가자의 평가 내용을 같이 출판해준다. 혹은 게시판에 댓글을 다는 것 같이 평가를 상시 주고받을 수 있는 공개 평가 시스템을 도입한 전산학 분야 학회들도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이 현재의 출판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이며, 학계를 유지하기 위한 시도이다. 하지만 약탈 학술지가 먼저 동료평가에 대한 비용을 주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학술지 평가에 대한 명예만을 얻게 되는 현재의 평가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학계는 일견 공고해 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과학자 사이의 신뢰에 기반하고 있다. 작은 붕괴가 전체의 시스템을 무너트릴 수 있다.

 

윤진혁

윤진혁 숭실대학교 교수

카이스트(KAIST)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복잡계 네트워크 및 데이터과학으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통계물리 및 네트워크 방법론과 데이터 과학을 결합하여 대용량 데이터에서 사회의 보편적 패턴과 편향성에 대한 연구를 주로 수행중이며, 특히나 물리학적 관점에서 AI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네이버 데이터사이언티스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 숭실대학교 AI융학학부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jinhyuk.yun@ssu.ac.kr

 

출판계 이모저모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