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34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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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명품 출판사는 왜 Bar를 만들었을까?

 

 

 

한영아(애술린 코리아 대표)

 

2022. 7.


 

1994년 세워진 프랑스 출판사 애술린(Assouline)은 다양하게 제작하는 여러 가지 아트북들을 통해 이 시대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고자 하는 컬처 브랜드이다. “문화와 생활양식을 다루는 최초의 고급 서적 브랜드”라는 방향성 안에서 다양한 아트북을 출판하고 있으며, 샤넬·루이비통·크리스챤 디올·까르띠에·롤렉스 등 많은 명품 브랜드에서 자신들을 소개하는 책을 낼 때 애술린을 가장 먼저 찾는다.

 

애술린 매장 내부

애술린 매장 내부

 

 

애술린은 영화 속 마법사들이 한 장 한 장 넘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커다란 책을 ‘얼티밋 시리즈(Ultimate series)’라는 이름으로 만들고 있다. 책 이름에서 보이듯 애술린에서의 책 제작이란 마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것 같은 궁극의 목표점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 중세시대에는 책의 가격이 매우 비싸 거의 작은 집 한 채의 가격과 맞먹었다고 하고,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에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인구가 전체의 2~3%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러니 책은 이전 시대의 부귀영화의 한 부분이기도 했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지성인과 귀족을 중심으로 내려오던 희소성의 가치를 지닌 것이기도 했다. 애술린은 이렇게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던 초창기 책의 역사를 반추하면서, 디지털 홍수로 모든 환경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현 시대를 거꾸로 해석하여 느림의 미학을 제안하고 있다.

 

애술린의 최고급 책 제작 기술에 대한 오마주인 ‘얼티밋 컬렉션(Ultimate Collection)’은 30년 동안 한 곳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책을 제작해온 장인들에 의해 한 땀 한 땀 바느질되어 만들어지며, 각 페이지에 장인의 독특한 각인이 새겨져 있다. 섬세한 리넨으로 만든 단단한 북 커버 ‘리넨 클램셸 케이스(linen clamshell presentation case)’는 정성들여 제작된 책들과 함께 아름답게 진열되어 북 케이스 자체로도 예술의 한 부분이라는 말을 듣는다. 책이 초기에 희소성의 가치를 가졌던 것처럼 애술린의 얼티밋 시리즈는 수집 품목으로써 대부분 한정판으로 제작된다.

 

ROLEX ULTIMATE

ROLEX ULTIMATE

 

WINE ULTIMATE

WINE ULTIMATE

 

책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애술린의 부띠끄에서 ‘스완즈 바(Swans bar)’를 함께 운영하는 것은 중세 유럽의 궁정에서 시작해 17세기 초 프랑스에서 꽃을 피웠던 살롱(Salon) 문화와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다. 당시 프랑스의 ‘살롱’은,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지성인들이 모여 토론하면서 예술을 논하고, 소규모의 음악회를 열거나 그림을 감상하며 함께 교류하는 문화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살롱의 주재자는 저술가나 출판업자들에게서 희귀본 책자들을 구해 살롱에 온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며 지적 수준을 높이고, 계몽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살롱은 지식인들과 훌륭한 연주가와 작곡가 그리고 미술가들을 서로 이어주는 문화 교류의 장이기도 했고, 이를 통해 예술가들을 후원함으로써 실제로 문예 진흥을 위한 문화적 교두보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스완즈 바는 이러한 맥락에서 애술린을 사랑하는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애술린 매장에서 더 활발하게 교류하고 새로운 문화적 흐름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아름답고 정교하게 인쇄된 그림과 사진이 담긴 애술린 책들을 접하며 문화적 향취가 더 깊어질 것이다. 이국적인 정취를 보여주는 다양한 책들은 애술린 매장에서 혼자만의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해주며, 그 여행길을 함께하는 친구로는 차가운 샴페인이 자리한다. 책에서 만나게 되는 미지의 아름다움과, 설렘으로 가득한 애술린으로의 여행은 샴페인 한 잔을 통해 자신만의 작은 사치를 누리게 해준다.

 

스완즈 바에서 만날 수 있는 에스프레소 마티니와 샴페인 칵테일

스완즈 바에서 만날 수 있는 에스프레소 마티니와 샴페인 칵테일

 

 

스완즈 바에서는 샴페인과 함께함으로써 애술린 책자의 아름다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제안한다. 이로써 애술린은 책의 외형과 내용, 책을 만드는 작업 면에서만 ‘명품 서적’이 아니라 실제로 문화적 향기가 가득하고 애술린의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이 자신만의 향기를 가득 머금고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공간으로의 진화를 꿈꾼다. 누군가 말하길, ‘샴페인 잔 아래에서 올라오는 잔잔한 거품은 끊임없는 행복이고, 거품이 올라오는 미세한 소리는 천사의 박수’라고 했다. 프랑스 귀족과 유럽 왕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샴페인을 많은 예술가들 역시 사랑했다. 특히 세계적인 디자이너 코코 샤넬은 ‘사랑에 빠졌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모두 샴페인을 마신다.’라고 하면서 샴페인 사랑을 알리기도 했다. 그녀 외에도 패션 디자이너와 작가, 음악가, 시인들처럼 시대를 이끄는 섬세한 감성을 지닌 예술가들이 유독 사랑했던 샴페인은 스완즈 바의 인기 주류 중 하나이다.

 

문화(Culture)라는 말은 라틴어의 ‘Cultus’에서 유래되었고, 밭을 경작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애술린은 컬처 브랜드로서 감성이 풍부한 책들을 제작하고, 그 책들을 보여주는 애술린 부띠끄를 통해 다양한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고 그 생각을 나누도록 장소를 제공한다. 앞으로도 애술린을 통해 새로운 문화의 흐름이 경작되기를 바란다.

 

애술린은 개장 10주년을 맞아 서울 매장에 특별한 공간을 마련했다. 멋들어진 책과 사진에 둘러싸여 여유롭게 샴페인과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스완즈 바(Swans Bar)’다. 백조(Swans)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인 미국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가 아름답고 세련된 부유한 여성 친구들을 부르는 말이었다. 요즘 말로 ‘잇 걸(It Girls)’인 셈인데 1950~70년대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할 만큼 특권을 누린 상류층 집단을 일컫는 ‘제트 소사이어티(Jet Society)’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한영아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책 생태계 연구자

전 MCM(가방 및 액세서리 브랜드) 미주 총괄 매니징 디렉터 및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였으며, 2012년부터 현재까지 애술린 코리아 대표직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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