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30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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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이야기]
출판사 편집자는 참 많은 일을 합니다

 

 

 

이옥란(실용국어연구실 이다 대표)

 

2022. 3.


 

편집자는 참 많은 일을 합니다. 우선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미시적 공정으로 보면, 모든 단계에 그가 있습니다. 출판기획에서 편집제작, 홍보마케팅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편집자가 일하지 않는 단계가 없습니다. 일부 업무를 분담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편집자가 그 자신이 실무자인 동시에 프로덕션을 총괄하는 프로덕트 매니저이자 팀 오퍼레이터로 일하도록 요구받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게 작업해야 완결성을 갖춘 상품이 단기간에 제작될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에게는 이런 전제가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있는 듯합니다. 이에 비해 ‘편집’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약간 회의적입니다. ‘편집? 그거 교정 아닌가? 저자가 원고를 주면 조판해서 잘못된 부분을 얼른 교정 본 다음에 인쇄 넘기면 되는 일 아닌가?’ 아뇨!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하느라 이런 인식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니, 너무 급하게 일만 하고 있거나 편집이 무엇인가에 대해 별 생각을 하지 않고 있거나 혹은 잘 모르고 있는 건 아닌가요?

 

 

 

협의의 편집: 출판의 ‘최소 단위’에서

 

완성원고로 책을 만드는 과정은 ‘협의의 편집’으로 ‘책임편집’이라고 부릅니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상품으로 판매할 책이 만들어지죠. 그러니 출판의 최소 단위라고 부를 만합니다. 각 단행본에는 ‘책임편집자’라고 부르는 담당 편집자가 정해집니다. ‘출판사가 한 해에 몇 종의 책을 내는가?’라는 질문은 ‘책임편집자가 이 단위를 몇 번 반복하는가?’라는 질문과 다르지 않습니다. 책임편집자는 저자, 번역자 등의 저작권자, 디자이너, 조판 등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일련의 편집 작업 여러 건을 동시에 오퍼레이팅합니다. 여러 사람이 참여하되 일련의 작업에는 일관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작업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책임편집자에게는 각별한 주의 집중이 필요합니다. 원고가 손에 있을 때만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슈퍼바이저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죠. 1종을 완성하는 일련의 공정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편집기획 ― 판면 설계 ― 교정 ― 제목 결정 ― 표지 디자인 ― 제작 ― 보도자료/홍보

 

위의 과정에서 편집기획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짐작하듯이 완성 원고를 받았다고 해서 바로 교정을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책임편집을 맡게 되면 반드시 업무기획부터 해야 합니다. 이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기획을 ‘편집기획’이라 합니다. 자, 이제 원고를 전방위 관점으로 살펴 최종적으로 완성할 ‘책의 상(象, 이미지)’을 떠올려야 합니다. ‘이 원고를 어떤 책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궁리하는 것이죠. 형태와 물성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의 계획만이 아니라, 독자의 독서 이유, 시장 상황, 매출 목표까지 고려하는 질문입니다.

 

사실 책임편집을 맡으면 편집기획서를 작성할 시간이 넉넉하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업 기간은 ‘신간 발행예정일’이 정하는 것이다 보니, 매출에 기여하는 신간의 발행이 급한 상황에서 아우트라인만 정하고 바로 컴퓨터 교정이나 조판을 시작하는 예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책임편집자는 다음의 모든 항목을 점검해야 합니다. 디자인, 마케팅 등 다른 부서와의 협업이 필요할 때 명확한 커뮤니케이션 자료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편집방향을 정함으로써 이후의 교정, 판면 발주, 제목 및 표지 결정, 제작 방식, 출간 전 홍보 준비 등을 빠르고 일관성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을 ‘잘하는’ 것에 앞서,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야말로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하고 책임지는 바탕입니다.

 

아래의 숫자는 작성 순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원고를 검토한 후 시장 분석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각 항목은 서로 유기적으로 선후 관계가 바뀔 수 있고, 다른 항목을 쓴 뒤에 고쳐 쓸 수도 있습니다. 개요나 출판의의는 가장 나중에 완성합니다.

 

편집기획서 작성하기

① 도서 정보
가제목, 저작자 이름, 원고의 분량, 목차, 예상 판형, 인쇄 및 제본 방식, 출판 분야, 발행 예정일, 예상 책값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제시합니다.

 

② 개요(콘셉트)
간결하게 책의 성격을 정리합니다. 카피를 여러 개 써두어도 좋습니다. ‘책의 상(象)’을 구체적으로 표현해 봅니다.

 

③ 출판 의의
‘우리 출판사에서 이 책을 왜 지금 출판하는가.’ 출판 의의가 잘 정리되어야 잘 준비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고의 내적 맥락, 사회적 의의, 트렌드, 매출에서의 기대 등을 반영합니다.

 

④ 저작자 정보
기본 정보 및 특이점, 기 출간 도서 등. 발행 후 홍보와 관련된 요소이므로 가급적 세세하게 적어둡니다.

 

⑤ 구성안
목차 정리. 목차는 내용 지도. 장 제목, 소제목 등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정리합니다. 저자를 설득할 수 있다면 원고와는 다른 안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⑥ 편집 방향
원고의 장점과 약점을 정리하되, 장점을 강화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독자 판단을 근거로 교정의 수준과 방향도 설정할 수 있습니다.

 

⑦ 책의 체재(안)
판형, 용지, 제책 방법, 쪽수

 

⑧ 시장 분석
기 출간 유사 도서를 분석합니다. 기획 방향, 독자의 평가, 장정 등을 분석하여, 차별화 요소를 구상합니다. 판매지수, 발행일 등 수치를 사용합니다.

 

⑨ 핵심독자 설정 및 독자 프로파일링핵심독자, 확산독자로 구분하여 정리합니다. 특히 핵심독자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정합니다. ‘이 독자는 누구인가’, 신문 기사나 통계 자료 등을 제시합니다. 소구할 독자층이 확실할수록 책의 콘셉트도 명확하게 할 수 있습니다.

 

⑩ SWOT 분석과 포지셔닝마케팅 전략. 원고가 아니라 ‘책의 상(象)’을 근거로 작성합니다. 강점(Strength)과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 요인과 위협(Threat) 요인을 시장조사 자료를 분석하여 정리하고, 신간의 시장에서의 지위를 판단합니다.

 

⑪ 판매 목표
연간 예상 판매부수, 초판 발행부수, 손익분기, 예상 가격

 

⑫ 편집 일정
발행일을 중심으로 고려하되 예비 시간을 두어 조정합니다. 전체 공정에 투여될 자원의 종류와 양, 투입 시점 등을 각 책임자와 논의하여 미리 공유합니다.

 

⑬ 홍보 마케팅 방안
판매 목표와 출간 전후 기본적인 마케팅 프로모션 계획을 유관 부서와 미리 협의하고 공유합니다.

 

 

혼자서 데이터 없이 작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사내 데이터가 풍부히 공유되고 편집팀의 데이터가 쌓이고 관계자들과 긴밀히 접촉할수록 좋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더라도 접근 가능한 기반 데이터를 찾아서 스스로 완성하면 됩니다. 편집기획서를 잘 준비하면 작업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편집기획서는 판단의 근거가 되어줍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일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가늠하며 일할 수 있게 되죠. 자기 작업에 대해 세상에 말할 수 있습니다.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작자 외 디자이너, 마케터, 교정자를, 또한 해야 할 일을 책임편집자가 관점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대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감정 노동도 줄일 수 있습니다. 상세한 편집기획서는 편집자 자신의 실무에서도 교정원칙을 세울 때, 제목을 정할 때, 제작사양을 정할 때, 특히 보도자료를 작성할 때 매우 도움이 됩니다.

 

 

 

출판기획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

 

출판의 최소 단위, 협의의 편집 단계에서 편집자가 하는 일을 밝히기 위해 편집기획서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책임편집자는 참 많은 것을 알고 참 많은 일을 합니다. 그러기에 책임편집자는 하나의 신간을 하나의 팀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관리자로서 슈퍼바이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업무 경험이 적은 신입이 해내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초년부터 훈련하여 3년 차 이상이 되면 감각을 갖출 수 있도록 한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 자, 그런데 과연 편집자의 업무가 여기, 출판의 ‘최소 단위’에서 그칠까요?

 

우선 출판하기로 된 원고가 있어야 이 ‘최소 단위’가 수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책임편집에 앞서 ‘원고’ 만드는 일이 수행되어야 합니다. 바로 출판에 적합한 원고가 입고되기까지 저자를 발굴하고 출판 가능성이 있는 콘텐츠를 찾는 일, 원고를 현시점 출판에 적합하도록 저자와 함께 만드는 일로서 ‘출판기획’입니다. 이 역시 신입 연차에게 쉽지 않은 일이지만 현장에서는 연차를 가리지 않고 수행되는 것 같습니다. 초년시절부터 훈련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고요. 편집기획을 잘할 수 있으면 출판기획도 잘할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책임편집 단계의 일을 모르면 출판기획이 쉽지 않습니다.

 

이때는 출판콘텐츠로서 저작물의 시장성에 대한 판단과 더불어, 법적 용어로서 ‘저작물’에 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출판사는 저작자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저작물의 이용허락을 얻어야 출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재산권의 범위 등을 정해 저작권 계약을 해야 합니다. 저자, 번역자, 삽화가, 사진가, 지도제작자 등 저작자 또는 저작재산권자는 저작권법이 정한 재산권을 행사합니다. 상품이 서적이면 배타적 발행권으로서 ‘출판권’을 설정 받습니다. 추가로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을 만들고자 하면 전송권 등 ‘공중송신권’에 대한 약정이 필요하고, 영화화한다든지 캐릭터를 만든다든지 할 때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협의해야 합니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 『구름빵』 계약 관계가 법정에 올라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작가 패소), 넷플릭스에서 선풍을 일으켰던 “오징어게임”의 계약 방식(선계약 후공급)으로 한국의 제작자와 배우 등이 흥행 인센티브를 받지 못한 예 등 수익 규모가 큰 저작물에 관한 사례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출판사는 2차 콘텐츠 기획에서 수익 예측과 저작권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밖에 없습니다. 독일 등 여러 나라가 저작권의 양도계약에 법적 규정을 두어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저작자의 ‘추가보상청구권’을 인정하자는 취지의 법 개정안이 논의 중입니다. IT 기술의 발전과 매체 다변화로 출판사가 재산권자와 협의하여 다양한 2차 저작물의 권리를 보유하려면 계약실무자가 저작권법상의 권리나 계약서의 약정 내용을 잘 알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요구는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편집자는 참 많은 일을 해야 합니다.

 

 

 

편집자, 출판 프로듀서

 

단행본 출판의 전체 공정은 ‘출판의 최소 단위’를 포함하여 다음과 같이 이루어집니다. 물류와 판매, 영업을 제외한 전반에 ‘편집’이 있습니다.

 

출판기획 및 저자 발굴 ― 저작권 계약 ― 집필 관리 ― 원고 확정 ― 편집기획 ― 판면 설계 ― 교정 ― 제목 결정 ― 표지 디자인 ― 제작 ― 보도자료/홍보 ― 유통

 

이런 과정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무엇이 뒷받침되어야 할까요? 우선 편집자 자신이 학습을 통해 축적한 교양과 안목, 판단력, 데이터베이스, 지식세계에 대한 이해가 근간이 될 것이며, 다년간 참 많은 일을 해낸 경력 편집자의 빛나는 얼굴은 그것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다음은 그런 편집자를 일하게 하는 시스템과 인프라입니다. 출판은 사람과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죠. 그들이 구축할 세계의 토대가 되어줄 인프라에 관한 얘기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어보겠습니다.

 

여러 서점에 신간을 내보내고 계신, 고전 중인 출판시장을 배경으로 고전하고 계실 편집자님들께 저의 경의를 드립니다.

이옥란

 

이옥란(실용국어연구실 이다 대표)

19년간 편집자로 일한 뒤, 서울북인스티튜트의 서울출판예비학교에서 편집자 과정 책임교수로 일해왔다. 매년 6개월간 진행되는 이 직무 훈련 과정을, 예비 편집자 한 사람이 단행본의 책임편집자로 일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하여, 본인의 역량을 알고, 기획에 대한 감각을 깨우고, 출판물의 조형성을 이해하고, 원고 내적인 맥락을 장악하고, 독자와 시장을 이해하고, 출판의 사회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자기 비전을 가진 신입 편집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현재까지 총 10개 기수, 240명을 전담하여 학생 선발부터 교육과 취업까지 교육과정 전반을 맡아, 현직 편집자 등 강사를 초치하여 교육과정 전반을 편성하고 다양한 워크숍과 강의, 협업, 견학을 기획하고 진행하였으며, 편집기획, 어문규범과 문법, 저작권 등의 강의를 담당하였다. 저서로 『편집자 되는 법: 책 읽기 어려운 시대에 책 만드는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2019, 유유)가 있다.
nahn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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