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9 2023. 11.
대구의 11년 차 독립출판서점, 더폴락 이야기
김인혜(독립출판물 서점 더폴락 운영자)
2023. 11.
독립출판서점 더폴락의 외부(좌)와 내부(우) 모습
유니크한 독립출판물을 파는 동네책방, 더폴락
“서점이 얼마나 됐나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처음 더폴락의 문을 함께 열었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학교를 보내고, 둘째 아이도 학교에 보낸 정도의 시간. 오늘은 함께 서점을 열었던 친구가 더폴락이 기획 운영한 북마켓에 아이들과 함께 놀러와 책을 사가기도 했다. 11년 차,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책방의 시간은 그리 달라진 것이 없다. 새로 나온 독립출판물과 재입고해야 할 책을 추려 입고 메일을 보내면, 이어서 속속 도서들이 도착하고, 포장이 안 된 것들은 포장을 하고, 가격이 안 붙은 책은 가격을 붙여서 신간이 있는 둥근 테이블에 올린다. 입고된 책의 소개 글을 SNS에 올리고, 새로 들어온 책이 주인을 찾아가길 기다린다.
여전한 시간이지만 서점은 세 번의 이사를 해 네 번째 공간에 자리 잡았고, 새롭게 출간한 책도 많지는 않지만 한 종씩 쌓였다. 매년 개최하고 있는 독립출판축제 “아마도 생산적 활동”도 올해로 9년 차를 맞이한다. 이번에 있었던 아쉬운 점이나 실수를 다음에는 고쳐서 적용하고, 이렇게 저렇게 조금씩 바꾸고 필요한 것은 새롭게 시작하며 매해 보냈다. 100년 된 유서 깊은 서점이나 지역과 함께하며 40여 년 이상 운영해 온 서점들에 비하면 턱도 없지만, 하루하루 꼬박꼬박 서점을 열고 닫은 시간이 이만큼 쌓였다니, 새삼 신기하기도 하다. 오늘은 우연히 갓 문을 연 서점을 방문하게 돼 책방 주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인장의 또렷하고 초롱초롱한 눈빛에 묻은 설렘과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나무 책장을 보다가, 일을 마치고 매일 저녁 다섯 명의 친구들이 모여 뚱땅거리며 함께 꾸렸던 책방의 시작이 떠오르기도 했다.
독립출판축제 “아마도 생산적 활동”(2017년)
“대형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유니크한 독립출판물을 동네책방, 더폴락에서 만나보세요.”
문구를 적은 포스터를 만들어 문 밖에 세워뒀더니, “독립출판물이 뭐예요?”라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처음 문을 연 2012년은 매일이 독립출판물이 무엇인지 대답하는 날이었고, 또 대답을 준비하며 독립출판의 정의를 찾아보기도 하고, 스스로 독립출판을 규정해나가며 자문하고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던 것 같다. 이는 독립출판물을 주로 소개하는 서점의 숙명으로, 지금도 여전히 같은 질문을 받지만 그때에 비하면 매우 드물어졌다. 지금은 그만큼 독립출판 신(scene)이 넓어졌고, 작가도 출판사도 독자도 많아졌다. 한국 독립출판은 2008년, 2009년을 시작으로 보는데, 작가, 예술가, 디자이너가 스스로 만들어 유통하며 시작되어 현재는 그야말로 수많은 작품과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있다. 독립출판물은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다. 대안적 삶, 소수자의 이야기 등 주류에서 벗어난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작품들이 매력을 발하고, 우리가 흔히 만나는 책이라는 형태와 형식을 벗어나 다채로운 책의 형태로 놀라움을 주기도 하며, 책 한 권이 그야말로 하나의 작품이 되는 아름다운 아트북들도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인디음악, 독립·예술영화를 좋아해 클럽헤비(1995년도에 오픈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는 대구의 대표 라이브 클럽)에 공연을 보러 가고, 동성아트홀(당시 대구 예술영화전용상영관)에 신작을 함께 보러가기도 하며, 모이면 재밌는 걸 기획해보자며 실행할 수 있을지 모를 여러 기획 아이디어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랬으니, 독립출판물을 좋아했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서울에서 몇몇 독립출판물을 만나고 이 재밌는 걸 대구에는 소개하는 곳이 없으니 우리가 소개하면 좋겠다 싶었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을 이 공간에서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취미가 비슷한 대학 동기 다섯 명이 함께 재밌는 문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이 더폴락이 됐다. 그렇게 대구 ‘첫’ 독립출판물 서점이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이후로 지금까지 변화를 거쳐 현재 더폴락은 처음 시작했던 다섯 명 중 둘 김인혜, 최성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12년 더폴락 오픈 파티(좌), 현재 더폴락 운영자 최성·김인혜(우)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여전히 인디와 독립문화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게 많았던 만큼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소개하는 것을 즐겼고, 특히 우리가 만난 독립출판의 매력을 소개하는 게 꽤 즐거웠던 것 같다. 독립출판물은 우리가 흔히 ‘책’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형태를 벗어나기도 하고, 책으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주제들을 다루기도 하며, 인쇄 방식도 달리해 낯선 색감과 디자인 표지만으로도 우리가 흔히 보던 책과 달랐다. 독립출판을 모르는 것 같은 손님이 들어오면 속으로 ‘재밌는 걸 보여줘야지.’ 하고 책을 소개하고, 손님들은 ‘이런 것도 책이 될 수 있나요? 이런 내용으로도 책을 만들 수 있나요?’ 하며 신기해한다. 그런데 그것은 11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라 독립출판을 처음 접하는 분들은 여전히 신기해하며 재밌어한다.
더폴락의 일이자 많은 독립출판서점의 일이기도 한
그 이후로 첫 책을 발간하고, 첫 공연을 기획해 진행하고, 작지만 첫 축제를 만들고, 서점이 위치한 대명동을 들여다보다 대명동 잡지를 만들기도 하고, 단체로 찾아오는 학생들을 맞이해 강의나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렇게 먼 미래의 계획보다는 한 해 한 해 주어진 일을 하고, 우리를 찾아오는 동료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연스럽게 조금씩 영역이 늘어나고 자리를 잡았다. 참고로 독립출판 영역에는 작가(예술가), 출판사 운영인, 서점 운영인 등 다양한 주체가 있다. 더폴락은 규모가 작지만 세 가지 모두를 하고 있어, 각기 다를 테지만 큰 틀에서는 유사할 듯하다. 독립출판사이면서 동시에 서점을 운영하는 경우 일의 범위는 달라도 하는 일은 비슷하고, 서점을 운영하지 않는 독립출판사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일부만 겹칠 듯하다. 지금 더폴락의 일을 정리하면 크게 아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1. 서점의 일(책 입출고, 음료 제조, 공간 운영, 커뮤니티 운영)
서점은 주 6일 문을 여니, 그야말로 일상이다. 공간을 청소하고, 책을 주문하고, 도착한 책들을 진열하고, 새로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업로드하고, 서점에 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음료도 함께 판매하고 있어 재료를 준비하고, 음료를 만드는 등의 일까지. 그 밖에도 요청이 있는 곳에 책을 선정해서 납품하기도 한다. 꾸준히 새로운 책들이 발간되고 들어오는 것을 살피고, 서점을 찾는 이들에게 소개하며 책을 유통하는 것이 일상이다. 또, 대부분의 서점에서는 다양한 모임을 진행하고 있는데, 책 읽기 모임, 영화 감상 모임, 글쓰기 모임 등 꾸준히 커뮤니티를 진행하는 것도 서점의 일 중 하나이다.
독립서점들은 각 서점 운영자의 시선에 따라 선정한 책들을 소개하므로 모든 독립서점의 책이 동일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 서점을 찾는 이들에게 근처에 있는 다른 독립서점에도 가보라고 추천하기도 하고, 때로는 추천하고 나서 그 서점에 연락해주기도 한다. 대구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동료들과 함께 자리를 마련하거나, 공동기획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혹은 일 때문이 아닌 그저 만나 책 이야기나 서점의 이야기, 독립출판 신의 흐름이나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더폴락은 일 년에 1~2권 정도로 적게 책을 발간하고 있다. 특징이라면 주로 지역 콘텐츠를 주제로 출판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더폴락이 위치하고 있는 대구 북성로는 번성했던 1960년대 이후 개발이 비껴가 젊은 시절을 추억하는 어르신들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그 때문에 어르신들이 자주 가는 밥집, 옷가게, 카바레, 술집, 다방 등이 모여 있다. 한편 그 안에 젊은 문화 기반 단체들이 속속 활동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점이 북성로에 터를 잡은 지 9년 차다. 자연스럽게 이곳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고 들여다보게 되어 북성로에 관련된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좁은 골목이 매력적인 이 공간을 걸어 다니며 매력을 발견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조명해보았던 『반드시 느리게 걸을 것』, 화려한 패션 멋진 패션의 어르신들을 주목한 어르신 스트릿패션 사진집 『북성로 맵시』, 오래된 다방 6군데를 독립출판 작가 6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탐방하듯 다녀와 쓴 『다방 소파에 기대어』 등…. 이 밖에도 대구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짧은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 대구 엽서북 『대구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대구를 살아가는 10명의 사람들이 함께 쓴 『늦은 밤이면 술렁이는 바람들이 긴 글이 되어 전해졌다』 등을 출간했다. 또한 대구의 인디 신을 다루는 웹진 〈빅나인고고클럽〉과 함께 작업한 『인디덕질보고서』 등도 출간했다.
더폴락의 출간 도서 『다방 소파에 기대어』
기획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디자인 후 인쇄하고, 북페어에 참여해 신간을 소개하며 독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하고, 서점들에 입고도 한다. 이 같은 과정은 대부분 유사하지만, 다양한 영역의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대구에도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독립출판 작가들이 있다. 에세이스트 김인철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류은지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기탁 작가, 이준식 사진작가, 만화가 근하 작가 등…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이런 책을 내보자고 의기투합하기도 한다. 물론 머릿속에서만 만들어졌다가 빛을 보지 못한 책이 더 많다. 더폴락 이름으로 출간하는 책 이외의 디자인, 책 제작 외주 작업도 하고 있다.
다음은 다양한 기획 일이다. 더폴락은 매년 독립출판 북페어 “아마도 생산적 활동”을 열고 있어 타지의 제작자들을 대구로 불러 모으기도 한다. 그 밖에도 북토크, 공연, 전시, 독립영화 관련 기획 등 서점 이외의 다양한 방식으로 책과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주목하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고, 우리가 처음 서점 문을 열기 전에 모여 나눴던 재미난 기획을 지금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지원 사업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또 의뢰를 받아 진행하기도 하면서 좋은 기획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독립문화·책문화 관련 행사를 기획해 진행하기도 한다. 또 다른 공간을 운영하거나 서점으로 변신시키는 일도 하는데, 지난해부터는 여러 청년단체가 함께 시범사업을 진행했던 무영당(대구의 근대 건축 유산이자 우리 민족 자본 최초의 백화점) 공간을 새롭게 선보이기 위해 준비 중이다. 마지막으로는 독립출판과 독립서점 관련 강의나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기획일에 수창맨숀에서 진행한 연말대책(좌), 더폴락 기획 공연 “폴락이다 - 김사월 편”(우)
10주년 기념 음반 “작은 책방을 위한 노래”, 해결하지 못한 숙제
서점이 지난해 10주년을 맞았고, 이를 기념해 지난 10년 동안 진행했던 토크콘서트 “폴락이다”로 인연을 맺은 천용성, 김빛옥민, 신승은, 단편선 등 대구 내외의 인디뮤지션 8팀께 작은 책방을 위한 창작곡을 만들어주시기를 요청했다. 그리고 우리가 좋아하고 자주 작업을 함께했던 키미, 타바코북스, 임진아 작가님 등 독립출판 시각예술가 8분께 음악을 보내드리고 각 곡에서 받은 영감으로 일러스트 포스터 그림을 부탁드렸다. 그렇게 8곡의 작은 서점을 위한 노래와 8점의 작은 서점을 위한 그림이 만들어졌다. 노래와 그림에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메시지를 담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10주년 기념 음반 “작은 책방을 위한 노래”에서는 시와 소설에서 영감을 받은 곡부터 책에서 비롯한 다양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가사들을 들을 수 있다. ‘오늘도 무사히’는 은희경 작가의 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문학동네, 1988)에서 발췌한 가사로 “사실 나는”을 만들었다. ‘신승은’의 “우리 서점에는 오지 마세요”는 ‘뒷동산을 보고 젖가슴을 생각했나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곡으로 한국 문학을 위트 있게 꼬집는 곡이다. ‘단편선’의 “독립”은 강렬한 사운드와 가사로 음악이나 출판 등 다양한 ‘독립’을 선택한 많은 이들에게 힘을 주는 곡이다. ‘천용성’의 “어디서 왔나”는 종이가 오는 곳으로부터 시작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노래로, ‘커다란 나무 지나. 곰과 호랑이가 사는 곳’이라는 가사 등 책이 만들어지기 위해 종이가 오는 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김빛옥민’의 “유연한 흔적”은 서점에서 책장을 넘기는 순간의 상념들을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책 속을 유영하는 물고기로 빗대며 신비한 사운드로 표현한 곡이다.
이처럼 “작은 책방을 위한 노래” 음반은 작은 책방에 보내는 응원이다. 우리 서점이 이제 10주년을 맞이했듯 많은 서점과 문화공간들의 10주년, 다음 20주년을 응원하고, 독립·인디 영역의 동료에게, 그리고 작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이에게 보내는 응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책방을 위한 노래” LP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일희일비하고, 운영에 대해 고민이 많다. 지난 10월 22일부터 23일에는 독립출판축제 “아마도 생산적 활동”이 열렸다. 올해는 음반페어도 함께 진행했다. 이 행사도 내년이면 10주년이 되지만 매년 운영해도 매회 어렵다. 그래도 이렇게 진행했던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것을 보면서 더 나아가면 더 단단해지겠지 생각한다. ‘첫’이라는 타이틀을 가졌다면 먼저 시작한 사람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잘 수행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조금씩 나아가리라 생각한다. 작은 서점에 응원을 보낸다. 김인혜 독립출판물 서점 더폴락 운영자 궁금한 게 생기거나 외로울 때 자주 책을 폈고, 화나거나 슬플 때 일기를 썼다. 언젠가 책방을 운영하게 될 줄은 알았지만, 기대보다 빨리 시작해 서점을 운영한 지 11년이 되었다. 최근에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산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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