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23  2021.07.

게시물 상세

 

책이 있는 공간의 지금

 

 

 

박사(북칼럼니스트)

 

2021. 7.


 

오래된 이야기다. 한때 오만 군데 우후죽순 생겨나던 카페 체인점이 있었다. 커피가 맛있다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알록달록한 메뉴가 신기했고 늦게까지 하는 지점도 많아 종종 이용하곤 했다. 마침 동네에도 하나 들어왔는데 새벽 두 시까지 한다길래 책 한 권 담은 가방을 들고 슬리퍼를 끌고 갔다.

 

다른 카페도 마찬가지였다. 딱히 책을 전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카페에는 책장이 종종 있었다. 몇 권 안 되는 책에서는 카페 주인의 관심사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카페 창업에 관한 책 일색인 카페도 적지 않았다. 가장 최근까지 카페 주인이 갖고 있는 관심사일 테니, 책이란 어쩌면 이리도 거울 같을까, 생각하며 슬며시 웃기도 했다. 이 커피 체인점 지점은 심지어 콘셉트가 서재였다. 벽을 따라 책장이 둘러서 있었다. 음료를 주문하고 자리에 가방을 놓자마자 자연스럽게 책장에 눈이 갔다. 어떤 책들이 있는지, 볼만한 책이 있는지 살펴볼 요량이었다.

 

그곳의 책장은 경이로웠다. 이전에도 이후로도 그 정도의 책 목록을 본 기억이 없다. 이곳에 꽂을 책을 선택한 이가 얼마나 책에 관심이 없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듣도 보도 못한 낡고 얄팍한 책들이 드넓은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디선가 책을 킬로그램 단위로 사다가 채워 넣은 모양이었다. 서재를 콘셉트로 한 것은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싶어서였을 텐데, 그 책장에 꽂힌 책들은 정확히 반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해한다. 양질의 책으로 가득 채워 넣으려면 예산이 많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좀 더 예산이 덜 드는 인테리어를 선택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한동안 “인테리어의 완성은 책”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까마득한 옛날얘기다. 요즘은 “책이 많으면 인테리어를 할 수 없다”는 의견이 대세다. 미니멀리즘의 선두에 섰던 곤도 마리에도 몇 권 없는 책을 책장에 거꾸로 꽂아두지 않던가. 책을 인테리어의 한 요소로만 생각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나는 그 카페의 책장을 망연하게 쳐다보며 이런 곳에 꽂을 책을 골라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예산 문제로 고용될 수 없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큰 카페건 작은 책방이건 문화공간이건 소소한 소품을 파는 가게건 콘셉트가 있는 숙소건, 책을 몇 권이라도 비치한 곳을 둘러보면 거의 다 상당히 좋은 책을 갖추고 있다. 책을 고르는 사람도, 책이 놓인 공간을 찾는 사람도 책을 벽지 대용쯤으로 여기지 않는다. 책은 취향의 집합체다. 공간의 화룡점정을 맡는다. 출판업계는 시들어가고 책은 안 팔리고 독서인구도 줄어든다는데, 책이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분명하게 취향의 리트머스 역할을 한다는 게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또 한편으로는 당연하다 싶다. 기쁜 일이다.

 

책이 중심이 되는 공간들이 사랑받는 것도 좋은 일이다. ‘책만으로는 안 되겠다’와 ‘책이 있으면 더 좋겠다’라는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 두 가지 생각은 중간에서 만나 다채로운 변주를 이룬다. 이곳이 책방인지 공연장인지 카페인지 규정해보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책이 있는 공간”이라는 폭넓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 뿐.

 

 

 

출판사, 책을 확장시키다

 

책을 만들어내는 것 이외의 다양한 활동이 필요해지면서 출판사에서 자신만의 문화공간을 가질 이유도 많아졌다. 책을 상시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 신간이 나왔을 때 저자와의 대화 등 다양한 이벤트를 할 수 있는 공간, 출판사의 콘셉트를 분명히 보여주고 앞으로 같이 할 사람들을 좀 더 쉽게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공간. 책을 매개로 한 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

 

특히 카페는 소통 측면에서 장점이 많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카페를 자주 이용한다는 통계를 본 적은 없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경험상 카페에 오래 앉아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들여다보는 이들은 책도 좋아할 확률이 높다. 출판사에서도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출판사들이 만든 문화공간엔 유독 카페가 많다. 그러나 카페로 시작한 공간도 시간에 따라 성격이 변화해 왔다.

 

다산북스에서 만든 ‘다산북살롱’은 처음 만들었던 ‘다산북카페’의 진화형이다. 책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활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려면 카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출판사는 카페의 외연을 확대하는 의미에서 ‘살롱’이라는 이름을 가져왔다고 한다. 카페의 기능을 놓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교육, 강연, 프로그램을 더 많이 소화할 수 있도록 바꿨다.

 

‘카페꼼마’는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만들었다. 이곳은 문학동네의 책을 비치하고, 문학동네에서 책을 낸 저자들의 북토크를 진행하고, 책을 읽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면서 지점을 확대해 왔다. 음료와 빵도 맛있어서 딱히 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매력 있는 장소이다.

 

최근 ‘카페꼼마’는 한 단계 더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는 더 이상 문학동네의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다른 출판사의 책도 다루기 때문이다. 특히 인천 송도 지점은 대형서점이 없는 지역의 서점 역할을 맡고 있다. ‘카페꼼마’의 최근 모습은 책 콘텐츠의 활용보다는 책 자체의 확산에 방점을 둔 느낌을 준다.

 

큰 출판사가 만든 공간이 큰 규모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면, 작은 규모의 출판사가 할 수 있는 일도 분명 있을 것이다. ‘다크룸’을 운영하는 닻프레스는 사진책 전문 출판사다. 커피는 팔지 않지만, 책뿐 아니라 아티스트 다큐멘터리 DVD 등을 볼 수 있는 아카이브 룸이 있다. 이곳에서도 책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아티스트 토크, 워크숍, 강연 등이 열린다. 전문 출판사가 가진 힘으로 좁지만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책 한 권 한 권이 지식이 담긴 그릇 역할을 한다면, 오랜 시간 책을 출간하며 자신만의 성격을 만들어온 출판사는 지식의 레스토랑에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 출판사에서 낸 카페의 가장 큰 장점은 그곳에서 낸 책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에게도 좋은 일이다. 한 권의 책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웠던 가지와 뿌리를 한자리에서 보면 그만큼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 든다. 그런 면에서 적지 않은 출판사 카페가 문을 닫은 건 참 아쉽다.

 

 

 

작은 책방의 다양한 가능성

 

동네 책방은 책이 있는 작은 보석 같다. 동네 책방이 있어서 좋은 점을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동네 사람들이 멀리 나가지 않고도 책을 쉽게 바로 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 테고, 그만큼 좋은 점은 좋은 책을 골라준다는 것이다. 매장은 책을 잘 아는 책방 주인이 엄선한 책으로 가득 차 있고, 주인에게 추천을 부탁하기도 비교적 쉽다. 사실 다양한 책이 구비되어 있는 대형서점이 책을 고르기에 더 좋을 것 같지만 경우의 수가 많을수록 선택은 더 어려워지는 법이다. 더구나 책 추천이 마음에 들어 단골이 된다면, 집 근처에 단단한 취향공동체를 가지게 되는 셈이다.

 

내가 우리 동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런 동네 책방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고요서사’를 지나 신흥시장 아래로 내려가면 ‘스토리지 북앤필름’이 있고, 더 내려가면 ‘책방남산’이 있다. 반대로 녹사평 쪽으로 내려가면 ‘별책부록’이 있다. 자주 가지는 못 하지만 종종 밤늦은 귀갓길에 ‘고요서사’ 안에 모인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이 동네가 더 좋아진다.

 

해방촌 ‘고요서사’


해방촌 ‘고요서사’

 

작은 서점도 강의, 북토크,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다양한 형태로 책을 향유할 수 있다. 괴산의 ‘숲속 작은 책방’의 경우는 숙박도 가능하다. 서점에서의 하룻밤은 쉽게 가지기 어려운 경험이다. 1층 서가에서 판매하는 책 사이를 산책하는 것도 좋고, 숙박하는 방에 비치된 책을 읽는 것도 좋다. 책과 그만큼 더 가까워진다.

 

‘서점 리스본’은 작은 서점 중에서도 활발하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로 유명하다. 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하는 듯하다. 그날이 생일인 작가의 책만 따로 담아 ‘생일책’으로 내놓기도 하고, 귀여운 소품과 매칭해서 세트 상품으로 팔기도 한다. 매달 제목을 가린 ‘비밀책’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은 꽤 역사가 쌓였다. 밤의 독서실, 달리기 모임, 다른 서점을 소개하는 유튜브 등. 동시에 다른 서점들과 마찬가지로 강의, 워크숍, 독서모임 등도 상시로 연다.

 

한 가지 주제로 책을 모은 서점은 작은 공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카페 겸 서점 ‘일일호일’은 건강에 관한 책만 모았다. 직접적인 건강 관련 서적 외에도 사회나 동물, 환경 등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건강’ 개념에 기반한 곳이다. 물론 그곳에서 파는 음료와 음식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역사책방’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를 다룬 책을 중심으로 큐레이팅한다. 마침 역사적인 장소인 고궁에서 멀지 않으니 ‘역덕(역사덕후)’들에게는 은혜로운 곳일 듯하다.

 

카페 겸 서점 ‘일일호일’


카페 겸 서점 ‘일일호일’

 

주제를 한정하는 데서 더 나아가 단 한 권의 책만 다루는 ‘한권의 서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 권의 책을 선정하고 그 책과 어울리는 제품을 함께 비치하는 방식으로 판매하는데, 서촌에서 몇몇 한옥스테이를 대여하는 ‘스테이폴리오’에서 운영한다. 한옥스테이에도 책을 두어 독자와 만나는 면적을 늘리고, 저자의 강의뿐 아니라 선정한 책과 관련된 음악의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등 책이 주는 경험을 확대한다.

 

작은 서점의 다양한 모색은 향유하는 입장에서는 좋지만, 그만큼 책 판매량이 유지할 수준에 못 미치는 것인가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하다. 특히 관광지라 할 법한 동네의 작은 서점들은 매출과 상관없이 주말에 몸살을 앓곤 한다. 한때 한 매체에 “공짜로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되어 작은 서점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작은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고 주문은 인터넷 서점에서 한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하다. 서점 주인이 고심하여 고른 노동의 덕만 쏙 빼먹는 셈이다.

 

 

 

도서관, 얼굴을 갖다

 

도서관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적인 도서관도 이미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독자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려 애써 왔는데, 코로나19 시대에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을 궁리하는 모습이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코로나19 상황이 지나가면 어떤 모습이 될지 기대된다.

 

기관의 특성을 잘 살린 전문도서관도 찾아보면 많다. 서울식물원에 있는 ‘식물전문도서관’은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내에 자리 잡은 도서관은 종교 분야뿐 아니라 역사, 예술, 인문, 문학 그리고 아동도서를 갖추고 일반 시민에게 문을 연다. 국가인권위원회에는 ‘인권전문도서관’이 있어 인권 관련 책뿐 아니라 인권영화를 관람하거나 각종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책 읽는 도시를 지향하는 의정부에는 과학도서관, 음악도서관, 정보도서관 등 특화된 도서관들이 있는데, 그중 미술도서관이 눈길을 끈다. 미술관과 도서관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시도로 만들어진 이곳에는 미술 전문 서가와 전시장, 예비 작가를 위한 오픈스튜디오 등이 한 건물 안에 어우러져 있다. 미술 장르 중에서도 신사실파는 섹션을 따로 구성하여 희귀자료를 갖추었다. 전문 장르 안에 또 전문 분야를 꾸린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같은 대형미술관 한편에 작은 서점이나 도서관이 마련된 경우는 많지만, 미술과 책이 이토록 대대적으로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케이스다.

 

좀 더 좋은 독서 경험을 조성하려는 시도도 활발하다. ‘소전서림’은 유료 도서관이다. 적지 않은 금액의 일일권이나 회원권을 구입하면 문학과 문화예술 관련 책을 명품의자에 앉아서 볼 수 있다. 다양한 강의와 프로그램은 덤이다.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것보다 문학을 중심으로 한 좀 더 단단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곳이라고 한다.

 

책을 담은 개성 있는 공간이 많아지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 기쁜 일이다.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잊지 못할 한 권의 책을 만난다는 것도 큰 행운이지만, 책이 확장되는 자리의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더구나 ‘책듣는밤’이라는 낭독행사를 오래 해 온 나로서는 이런 공간이 없었다면 누릴 수 없었던 기회를 요긴하게 얻었다. 지금은 없어진 곳을 포함하여, 많은 공간에서 책을 낭독할 수 있었다. ‘고요서사’, ‘우주소년’, ‘길담서원’, ‘북촌마을서재’, ‘카페꼼마’, ‘서점 리스본’, ‘손목서가’, ‘책방모모’, ‘사진책방 고래’, ‘카페홈즈’, ‘퇴근길책한잔’, ‘강철개나리’, ‘종이배문고’, ‘책책’ 등등.

 

경의선 책거리


경의선 책거리

 

책이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로 주목받고 새로운 시도의 중심이 서게 된 역사는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상당히 길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책이 있는 공간이 변화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수많은 이들의 궁리가 정교해지는 것을 본다. 책은 무척 정적인 오브제로 보이지만 사실 꽤 역동적이다. 우리 모두를 변화시키니까.

박사

 

박사(북칼럼니스트)

북칼럼니스트. 〈법보신문〉, 〈더네이버〉, 〈우먼센스〉, 〈조선일보〉에 서평 연재 중. KBS ‘김태훈의 프리웨이’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치킨에 다리가 하나여도 웃을 수 있다면』, 『은하철도999_너의 별에 데려다줄게』,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빈칸책』, 『가꾼다는 것』 등이 있다.
catwings@gmail.com

 

출판계 이모저모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