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44  2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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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1번지 마포에서 벌어지는 일

 

 

 

김송이(〈경향신문〉 기자)

 

2023. 06.


 

서울 마포구는 늘 출판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작가, 출판사,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인쇄소 등 책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과 시설은 마포 일대에 집약돼 있다. 수많은 사람을 거쳐 세상에 나온 책들이 널리 읽힐 수 있는 동네책방과 도서관이 잘 조성된 곳도 바로 마포이다. 마포가 가꿔온 문화 자본, 책의 생태계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 그 생태계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책의 보금자리인 도서관에서도, 책을 만드는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에서도. 시민들은 공통적으로 마포구의 일방적 행정이 책을 겨냥하고 있다고 말한다.

 

>민음사가 키이스와 협업하여 리커버한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자기만의 방』

지난 5월 18일 마포구청 앞에서 열린 플랫폼P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조현익 플랫폼피입주사협의회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플랫폼피입주사협의회 제공)

 

 

 

작은도서관 폐관·축소 논란

 

균열은 지난해 작은도서관을 둘러싸고 시작됐다. 지난해 10월 27일 마포구는 서강도서관과 작은도서관 8곳의 수탁기관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열흘 뒤인 11월 7일에는 앞선 결과를 거스르는 일이 진행된다. 박강수 마포구청장의 지시에 따라 ‘효율적 운영 및 예산 절감’을 위해 작은도서관을 동문고에 카페형 독서실 시설을 접목한 공간으로 직영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이다. 이에 작은도서관이 폐관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마포구청 홈페이지 내 민원 코너에는 항의 글이 이어졌다.

 

논란이 일자 마포구청은 다음날 작은도서관 폐관 방침이나 독서실 전환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냈다. 작은도서관의 운영 효율성과 주민 편의를 높이기 위한 ‘기능 재설계’라고 했다. 보도 자료에 따르면 구청은 “도서 열람·대출 등 작은도서관의 기능은 유지하되 스터디카페 같은 공간을 추가하고 야간 시간대에도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장소도 함께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작은도서관의 이용자 수가 적어 예산 사용의 효율성이 떨어지니 기능을 재설계하여 세금을 효율적으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구청의 해명에도 시민들의 걱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효율을 앞세워 작은도서관에 스터디카페 기능을 더하겠다는 발상이 문제였다. 시민들은 새로운 기능이 작은도서관 고유의 기능을 해칠까 우려했다.

 

작은도서관은 약 10평 이상 규모에 1,000종 이상의 장서와 6석 이상의 열람석으로 이뤄진다. 직접 신발을 벗고 작은도서관에 발을 내디디면 이곳이 단순히 조용히 책 읽는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들를 수 있는 곳. 의자나 마룻바닥에 앉아 편히 쉬어가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서로 책을 추천할 수도 있는 곳. 작은도서관은 한 마디로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한다. 작은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이야기방’이나 어린이를 위한 창작 작업실 ‘모야’ 같은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작은도서관을 취재하며 만났던 마포구민들은 “작은도서관이야말로 책을 매개로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만나는 곳”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공공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단순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와 다르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숙한 분위기에서 공부하는 스터디카페의 목적과 기능이 작은도서관이라는 사랑방을 위축시키리라 생각한 것이다. 도서관과 학습 공간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은 채 합쳐버리는 ‘기능 재설계’는 폐관에 버금가는 가치 축소를 의미했다.

 

 

 

마포중앙도서관장 파면

 

일단락되는 듯 보였던 작은도서관 폐관·축소 논란은 최근 마포중앙도서관장 파면 사건으로 다시 불거졌다. 지난 4월 7일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이 갑작스레 직위 해제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곧이어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3일 송경진 마포중앙도서관장의 징계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파면이었다. 파면은 공무원이 받을 수 있는 징계 중 가장 높은 수위에 달한다. 징계 이유는 성실·복종·품위 유지의 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송 관장은 지난해 11월 4일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구청의 도서관 예산 삭감과 작은도서관 운영 방침 변경을 비판하는 글을 게시했다. “예산 30%를 삭감하라는 지시도 이해할 수 없지만 위·수탁 협약 체결이 다 끝난 작은도서관들을 독서실로 전환해서 동문고에서 운영하라는 지시는 더 이해가 안 간다”는 내용과 ‘2023년도 세출예산 요구 현황’ 자료를 함께 올렸다.

 

이를 두고 징계를 결정한 인사위원회는 송 관장이 “사실 관계와 다른 내용을 게시하여 보도케 함으로써 불특정 다수의 주민 및 국민들로부터 마포구청장의 작은도서관 운영 검토 방향에 대해 불신과 오해가 생기도록 했고 (중략) 마포구 행정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켰다”라고 판단했다. 송 관장이 지적한 ‘예산 30% 삭감 지시’는 타부서와 중복 사업이 있어 예산 조정을 지시한 것이고, 작은도서관 운영 방침도 확정 사실이 아닌 내부 검토 사안에 불과한데 이를 송 관장이 대외적으로 공개했다는 것이다.

 

이에 비판 의견을 SNS에 올린다고 징계를 내릴 수 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구청과 주민들 간 오해는 송 관장의 페이스북 게시 글에서 비롯된 것이었을까. 송 관장이 인사위원회에 회부됐다는 소식이 나온 직후 지난해 작은도서관 논란 당시 꾸려졌던 ‘마포구립 작은도서관을 지키는 사람들’은 징계 반대 연서명과 함께 성명서를 낸 바 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구청장은 마포구립 작은도서관의 동문고·독서실 전환을 시도했고, 플랫폼P를 일자리 센터로 전환하려 하고, 작년 작은도서관과 관련된 사실을 SNS에 언급했다는 이유로 송 관장을 직위 해제했다”면서 “구민 의사에 반하는 도서관과 출판문화 정책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폐관이 아니더라도 동문고에 스터디카페를 더한 기능을 검토했다는 사실 자체를 일방적 행정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작은도서관이 왜 필요한지,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지를 구청에서 물어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예산 삭감을 우려한 배경도 당선 전부터 도서관 예산에 비판적이던 박강수 구청장의 행보에 있었다. 박 구청장은 지난해 2월 당선 전 〈마포땡큐뉴스〉 등 본인이 창간한 매체에 “구민 혈세 도서관 만든 마포구청장, 구민에게 사과해야”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마포중앙도서관이 애초 예상보다 큰 적자 폭을 기록하고 있으며, 매년 수십억 원씩 적자가 가중됨에도 당시 마포구청장이 적자 감소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주민들은 ‘예산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내부 검토가 실현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플랫폼P 용도 변경 논란

 

균열은 출판 공간으로도 옮겨갔다. 2020년 홍대입구역 경의선 책거리에 자리 잡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의 향후 운영 방향이 출범 3년 만에 불투명해졌다. 플랫폼P는 이제 막 창업을 시작한 출판사와 소규모 창작인들을 지원해 온 공간이었다. 선발한 입주사를 대상으로 저렴한 임대료에 공유 사무실 공간을 대여해주고 전문적인 교육을 제공했다. 출판인, 편집자, 작가, 디자이너, 사진작가 등 출판의 한 축을 담당하는 다양한 직종이 모여 있어 자연스러운 네트워킹이 가능했고 시너지가 났다. 옆 사람과 언제든 협업이 가능하고 성공담이든 실패담이든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플랫폼P가 단순 공유 오피스가 아니라 출판인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는 이유다.

 

문제는 마포구가 지난해 플랫폼P의 위탁 운영 계약을 정식으로 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기존 위탁 운영사와의 계약은 지난해 연말에 만료 예정이었지만 마포구는 기존 업체와도, 새로운 업체와도 정식 계약을 맺지 않았다. 다만 기존 운영사와 계약을 3개월 연장하고, 이후 다시 올해 연말까지 9개월 단위 계약을 맺었다. 오는 7월이면 계약 기간을 마치는 1기 입주사들의 자리가 비워지는데도 새로운 입주사 모집 준비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나아가 입주 자격도 갑작스레 ‘마포구에 1년 이상 거주한 주민’으로 제한되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입주 자격 제한의 근거는 ‘구비로 운영되기 때문에 구민이 혜택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구청장은 지난 3월 마포구의회 본회의에서 “입주 구성원 중 마포구민은 26%에 불과한 센터에 국비와 시비의 지원은 전혀 없이 연간 10억 원이 넘는 운영비가 구비로 투입되고 있다”면서 “출판 분야에 한정해 운영하기에는 효율성과 형평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플랫폼P 입주사들은 “마포구민과 전국의 출판 창작자를 갈라치기 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사업자 대표가 마포구민이 아니더라도 입주사들은 마포구에 사업자 등록을 내고 마포구청에 센터 임대료와 세금을 내왔다. 이들의 활동 반경 또한 플랫폼P를 중심으로 그려진다. 업계 사람들과의 미팅도, 교육 세미나도 플랫폼P가 위치한 홍대입구역 근방에서 진행되고, 그렇기에 이들은 전국의 출판인을 마포구로 유입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플랫폼P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목표로 했던 것도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당시 마포구는 “출판·디자인 산업의 회복을 위한 지렛대 역할 강화”를 목표로 삼았다. 서울시가 2010년 마포 일대를 ‘디자인·출판 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했던 것을 봐도 플랫폼P는 출판 진흥을 위해 장기간 준비된 디딤돌이란 것을 알 수 있다.

 

1기 입주사들은 이제 곧 플랫폼P를 떠나 이곳에서 그린 비전을 각자의 방식으로 펼쳐나갈 것이다. 이들의 영향력이 보다 커지고, 그 덕에 후배 입주사들도 빛을 볼 수 있도록 마포구가 앞장서 스케일 업을 지원할 적기이다. 그러나 마포구는 3년 만에 계획을 선회해 조만간 공간을 개편하겠다는 입장이다. 플랫폼P의 탁월한 위치성을 더 많은 구민들이 공유하겠다는 것이다. 별도의 논의 없이 구청의 청년일자리사업 참가자 15명이 플랫폼P 공유 공간에 입주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플랫폼P에 창업지원센터 기능이 추가될까 짐작할 뿐 구체적인 개편 방향과 시점은 입주사들과 공유되지 않고 있다.

 

논란의 양상은 매번 비슷했다. 구청은 효율화라는 핑계로 본 기능에 다른 기능을 추가하는 것을 검토한 뒤 반발에 부딪히면 ‘폐관이나 용도 변경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물론 작은도서관이든, 플랫폼P든 발전을 위해서라면 내부 검토가 이뤄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세 가지 사건을 겪은 시민들은 그 검토가 일방적이란 점을 지적한다. 작은도서관과 플랫폼P를 실제로 이용해 온 이들은 어떤 기능을 더한다고 해서 반드시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때로는 ‘일석이조’가 독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민들은 효율을 떠나 본래의 가치를 이해해달라고 말한다. 공적 사랑방으로서 작은도서관이 갖는 의미를, 출판 둥지로서 플랫폼P가 갖는 의미를 이해하면 효율이라는 잣대로 잴 수 없는 가치가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책이 만들어지고 읽히고 또 그것이 반복되는 생태계는 단순 이용자 수나 예산 같은 숫자로는 드러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쌓여 공유되는 것이 문화다. 시민들은 책과 문화의 중심지로 손꼽히는 마포의 명성이 머지않은 미래에도 이어지길 바라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송이 〈경향신문〉 기자

〈경향신문〉 사회부 사건팀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사람들이 제각각 살아가는 모습을 찾아 듣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songyi@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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