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18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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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언택트 기획은 가능한가?

 

 

 

김미란(비즈니스북스 편집부장)

 

2021. 2.


 

 

2020년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빠트린 팬데믹이 일어났다. 이 사태가 언제 끝날 것인지 누구도 예단하지 못한 채 1년 넘게 이어져 오면서 우리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만나게 되었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하며 MS 팀즈로 화상 회의를 하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줌(ZOOM)으로 원격 수업을 한다. 일상 속에서는 온라인을 통해 친목 모임을 하고 ‘방구석’ 콘서트나 뮤지컬을 관람하며 외식 대신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는 등 이제는 언택트가 매우 일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출판기획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이전에는 좋은 원고의 생산이라는 공동 목표를 가지고 한 권의 책이 완성될 때까지 저자와 기획자가 수시로 만나 직접 의견을 나누고 소통해 왔다. 그러나 제1차, 제2차, 제3차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고 또 그 기간이 점차 길어지면서 대면 미팅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기획자는 선택의 여지 없이 이메일, SNS, 전화, 화상회의 등 비대면 소통 수단을 동원해 저자와 원고에 관해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저자와 기획자가 만나지 않고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능했다.

 

비즈니스북스에서 2020년 12월에 출간된 베스트셀러 『뉴욕주민의 진짜 미국식 투자』의 저자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월스트리트의 트레이더이며 유튜브 채널 ‘뉴욕주민’을 운영하고 있다. 만약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북 엑스포 아메리카(BEA)를 참관한 후 저자와 만나 원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하지만 BEA는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그 기회는 무산되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은 기획자에게 언택트 기획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안겨준 것이다.

 

 

 

언택트 기획이 가능한 유튜브 콘텐츠의 특수성

 

이미 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플랫폼이 된 유튜브가 1인당 이용 시간 1위 앱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다수의 유튜버는 구독자 수 50만 명, 100만 명을 보유한 새로운 인플루언서로 성장했고 『나는 무조건 합격하는 공부만 한다』, 『코로나 투자 전쟁』,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등 경제경영/자기계발 분야에서 유튜버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탄생했다.

 

저자를 섭외하는 플랫폼의 변화가 생긴 것은 팬데믹이 일어나기 훨씬 오래전의 일이다. 기존에는 베스트셀러 작가와 함께 신문이나 잡지, 콘텐츠 플랫폼에 글을 기고하거나 TV에 출연하는 전문가가 섭외 1순위였다면, 이제는 구독자가 많고 영상마다 몇백 개의 댓글이 달리는 충성도 높은 팬층을 보유한 유튜버가 섭외 1순위이다.

 

유튜버도 더 많은 대중에게 매력적으로 보여야 하는 콘텐츠 기획자의 관점에서 채널을 운영하고 콘텐츠를 만들기 때문에 출판 기획자가 책으로 기획할 때 수월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유튜버가 공부법, 주식, 부동산, 와인, 여행 등 자신의 주관심사를 하나 정해 그와 관련된 영상 콘텐츠를 정기적으로 올린다. 출판 기획자는 짧게는 5분, 길게는 15분 정도의 영상을 몇 편 보거나 썸네일만으로도 출간 기획 방향과 구성의 뼈대를 파악할 수 있다.

 

뉴욕주민의 책을 기획할 당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영상은 20개였다. 담당 기획자는 개인 주식 투자자들 사이에서 미국주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뉴욕주민의 미국 증시 콘텐츠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떤 부분을 궁금해 하는지, 어떤 콘텐츠에 반응이 좋은지 등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채널에 올라온 영상 콘텐츠를 분류해 차례를 잡아 꼼꼼하고 명료한 내용으로 기획안을 작성해 저자에게 보냈다. 자신의 영상 내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저자는 부수적인 설명 없이도 출판사의 기획 의도와 방향을 쉽게 이해했다. 차례를 확정하고 샘플원고를 확인하는 과정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이루어졌고 영상 콘티에 살을 붙인다는 생각으로 원고 집필에 들어갔다.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장점

 

뉴욕주민이 이메일로 초고를 보내왔다. 뉴욕과 한국의 열네 시간이라는 시차를 고려해 일을 진행 중이었던 담당 기획자는 몇 분 후 메일을 잘 받았다는 답장을 보냈다. 그는 뉴욕에 사는 저자와 이메일, SNS 등 기술의 도움을 받아(과거와 달리 이제는 인터넷 이용 환경의 수준 차이도 전혀 영향이 없다는 점도 유효했다) 원고를 주고받으면서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서 오는 제약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예비 저자 중에 외국에 거주하는 사람도 있는데, 언택트 기획이 활발해지면 저자 발굴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직접 경험했다. 굳이 대면 회의를 위해 먼 거리까지 출장 가는 수고를 덜게 된 것이다.

 

해외뿐 아니라 이번 팬데믹처럼 대면 미팅이 어려운 특수한 상황에서 국내 저자를 섭외할 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팀원이 서울대 교수님께 기획안을 보냈는데 “줌으로 미팅을 하자”는 회신을 받았다. 2020년 화상 강의 및 온라인 교육 시스템으로 대대적인 전환이 이뤄진 상황이 가져온 한 장면이었다. 화상 미팅을 하는 동안 가끔 소리가 끊길 뿐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오히려 PC 화면 공유 기능을 통해 필요한 자료나 논의가 필요한 내용을 그 자리에서 바로 쉽게 공유하며 공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온라인 환경은 불필요한 제스처나 시간이 소요될 만한 요소가 없고 장시간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필요한 용건만 효율적으로 나눌 수 있어 서로 시간도 절약하고 피로감도 덜했다고 한다. 팬데믹 전에는 미팅 시간을 내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으로 “바쁘다”, “당장은 어렵고 다음에 만날 시간이 되면 연락하겠다”는 거절 답변을 주고받았던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화상 회의가 확산되면서 시간적, 물리적으로 큰 소요 없이 저자에게 기획안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비대면 소통의 한계는 분명 있다

 

물론 언택트 방식에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대면 미팅을 통해 저자와 첫 만남을 갖고 원고에 관해 논의하는 시간을 일부러 마련했던 것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뉴욕주민의 진짜 미국식 투자』의 사례로 돌아가 이야기하면, 뉴욕과 시차가 적지 않다 보니 화상 회의나 통화는 쉽지 않아 저자와의 주 소통 수단은 이메일이었다. 글(텍스트)로 소통을 하다 보니,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면 5분도 안 걸리는 일인데도 설명이 장황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책을 제작하는 동안 100통이 넘는 메일이 오갔고 추가적인 설명은 메신저로 보완해서 소통했다.

 

이를 대면 미팅으로 진행하는 경우 미팅 당일 저자와 기획자 모두 서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하고 수정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바로바로 피드백하면서 정리할 수 있다. 앉은 자리에서 상호 간에 확실한 내용 확인 및 합의를 마무리할 수 있다. 그러나 비대면 상황에서는, 특히 이메일을 통한 진행에서는 궁금한 점이나 확인 사항에 대해 보내온 답변 메일에서 충분한 설명이 담겨 있지 않으면 재차 메일을 보내서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이 경우 대개 온라인 환경에서 풀어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이거나 저자와 기획자 간의 의견 차이가 있는 상황일 때가 많기 때문에 비대면 소통으로는 의견 조율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인간의 소통은 결코 언어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비언어가 커뮤니케이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본질적으로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이기도 한 출판기획을 하는 기획자라면 누구나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이다. 언어가 사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효과적인 반면, 비언어는 감정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데 보다 효과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메일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저자의 상태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저자의 표정이나 몸짓을 통해 기획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이 되고 있는지, 어떤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지 등을 비언어적인 메시지로 포착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부분을 놓치기 쉽다. 그래서 담당 기획자는 메일을 쓰면서도 문장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웠고 전달하는 내용에 오해의 소지는 없는지 항상 염려스러웠다고 한다.

 

 

 

기획자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언택트 기획에서는 무엇보다 저자의 성향 파악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월스트리트에서 트레이더로 일하는 뉴욕주민은 평소 업무환경 자체가 비대면 방식에 익숙한 저자였다. 전자파일(PDF)로 원고를 수정하거나 메신저로 주요 사항을 논의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즉 직접 만나는 것보다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모든 저자가 그와 같지는 않다. 자신의 책이 나오는 출판사를 방문해보고 기획자와 직접 만나 생각을 주고받으며 책을 숙성시키는 작업을 원하는 저자가 아직은 더 많다고 생각한다. 화상 미팅이나 메일로 이뤄지는 비대면 진행 방식에 부담을 느끼는 저자도 있다.

 

비즈니스북스 편집부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팀별로 화상 회의를 진행해봤다. 회의 방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고, 초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소프트웨어 사용법이 서툴러 어려움이 있었다. 몇십 분을 헤매다 드디어 모두 접속에 성공했다. 하지만 몇몇은 화면에 얼굴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쑥스럽고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상대방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되물어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비대면 소통이 불편한 저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언택트 기획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해도 저자에게 이 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비대면 소통의 필요가 줄어든다고 보지 않는다. 만약 저자가 대면 방식을 선호한다면 그에 보조를 맞춰야 저자가 편하게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전할 수 있고 기획자나 출판사의 의도나 계획에 보다 열린 마음으로 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비대면이든 대면이든 저자가 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게끔 두 가지 방식을 적절히 혼합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책은 저자와 기획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고로 기획자의 역량과 태도는 책을 만드는 데 있어서 무척 중요한 사항이다. 기획자를 통해 좋은 책이 태어나기도 하지만 소리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책에 대한 책임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책은 정보 전달을 넘어서 우리의 지성과 감성을 충족시켜주는 수단이다. 엉성하고 부실한 기획으로 책의 콘셉트가 중심을 잃고 흔들리면 저자에게, 나아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대면 기획이냐, 비대면 기획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획자로서 책의 본질에 대해 얼마나 충실한가이다.

김미란(비즈니스북스 편집부장)

출판 편집자로 22년간 130여 권의 책을 열렬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저자와 독자를 만나면 희열을 느끼며, 체력과 센스가 버티는 한 편집자로 남고 싶은 바람을 갖고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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