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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2  2022.05.

게시물 상세

 

한국 그림책의 국제화 노정(路程)
이수지 그림책 작가의 2022HCAA 수상 그리고 이후의 과제

 

 

 

심향분(전 KBBY 회장,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2022. 05.


 

지난 2022년 3월 21일 한국 시간으로 늦은 밤 11시에 이탈리아의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 현장으로부터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IBBY(The 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The Hans Christian Andersen Award, HCAA) 수상자를 발표하였다. HCAA는 1956년부터 지금까지 격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전 세계 어린이문학계가 주목하는 권위 있는 국제상이다. 2022HCAA 심사위원장인 준코 요코타는 2022년 후보자 경선에 대한 경과보고와 함께 올해 수상작가의 작품세계를 간단히 소개한 후 수상자로 한국의 그림책 작가인 ‘이수지’의 이름을 호명하였다. 실시간 온라인으로 결과 발표를 보던 많은 사람들은 늦은 밤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환호성을 지르고 서로 기쁨을 나누었다. 너무나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2020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ALMA) 수상자로 백희나 작가가 선정된 지 2년 만에 또 한 번 전해진 그림책계의 커다란 쾌거이다.

 

권위 있는 국제상을 수상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는 세계 어린이문학의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에 한국 그림책이 당당히 함께 자리하고 교류되고 있으며 현대 그림책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며 세계 어린이문학의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체감적으로 확인되는 물리적 현상으로는 저작권 수출이 급증하며 번역 수출이 활발해지고 국내외적으로 수상작가의 작품에 대한 유통 판매의 급격한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국제상에 작가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수상자와 그의 작품들에 대해 이목이 집중되기 때문에 예측되는 현상이다.

 

또한 수상 작가에 대한 관심이 책이라는 매체에 국한되지 않고 그림책과 관련된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될 것이다. 결과 발표 이후 지난 한 달 동안 인터넷, SNS, 유튜브 등에서 이수지 작가와 관련된 자료가 급증한 것을 보더라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현재 해외 연구지 등에서도 이수지 작가에 관한 연구 의뢰, 인터뷰 의뢰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관련 연구 자료들 또한 출간을 앞두고 있다. 세계 각지의 그림책 연구자들이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을 탐구하고 있기에 앞으로 연구물의 급증도 예측할 수 있다. 전문가들에 의해 작가의 그림책이 언급되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일반 독자들에게로 자연스럽게 확산되며 더 많은 독자들이 수상자의 그림책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세계 여러 나라 출판인들은 이수지 작가의 작품에 주목할 것이고, 번역 수출로 이어진 그림책은 해외의 도서관 서가로 들어가 일상적인 공간에서 해외 독자들의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상의 수상은 도서의 국제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제상은 한국 그림책의 우수성을 세계에 직접적으로 알리며 활동 반경을 확장시킬 수 있는 강력한 채널이다.

 


2022HCAA 수상자 발표 기자회견


2022HCAA 수상자 발표 기자회견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 IBBY 부스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 IBBY 부스

 

그림책계 국제상은 여럿 있다. 볼로냐 라가치상과 같이 최근 신작에 대한 개인의 응모에 의해 운영되는 상들이 다수이다. 이는 국제도서전 참가자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출판인과 작가는 작품을 알리기 위하여 국제도서전에 참가하고, 출품된 작품이 라가치상에 선정이 된다면 작품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다. 최근 10년 동안의 수상 내역을 보면 한국 그림책은 매년 선정작에 여러 작품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처럼 한국 그림책의 우수성은 탄탄하며,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2022년에도 『여름이 온다』(이수지 글/그림, 비룡소, 2021)와 『커다란 손』(최덕규 글/그림, 윤에디션, 2020)이 볼로냐 라가치상에 선정되었다.

 

반면 1966년부터 슬로바키아의 블라티슬라바에서 격년으로 이루어지는 국제적인 그림책 비엔날레인 BIB(Biennial of Illustration Bratislava)는 개인의 응모가 아니라 국가마다 지정된 추천 기관(nominee body)을 통해 추천된다. BIB는 그림의 예술성에 주목하여 아름다운 그림책을 뽑는 국제상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역시 한국 그림책은 처음 출품되기 시작한 2012년부터 지금까지 매번 수상작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해마다 수많은 신간들이 쏟아져 출간되고 있다. 독자들은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지 어려움을 가질 정도이다. 그래서 국제상은 자연스럽게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작품의 국제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품상이 아닌 작가상은 대개 BIB처럼 국가마다 지정 추천 기관을 통해 추천된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CAA)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ALMA)이 대표적이다. 이수지 작가가 수상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은 IBBY 주최로 1956년에 시작되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는 역사성이 있는 국제상으로서, 문학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 활동을 하며 전 세계 어린이문학계에 영향력이 있는 작가에게 수여하는 영예롭고 권위 있는 상이다. 도서 한 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 작품 활동 전반을 평가하여 작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그래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Little Nobel Prize)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쓰기도 한다. 생존 작가를 대상으로 하며 전 생애적인 작품 활동과 업적을 고려하고 수여하는 상이기에 수상자가 되는 순간 작가의 모든 작품들은 조명을 받는다. 수상 작가의 작품은 우선적으로 세계 여러 언어권에서 번역 출간하고, 여러 국가의 거점 도서관으로 들어가 어린이들에게 읽힐 것이며, 연구자들은 작가에 대해 연구할 것이다. 그래서 세계 어린이문학계에 작가의 이름은 더 널리 알려지게 되며 그의 작품은 전 세계 독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읽혀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국제상들은 각기 다른 심사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들 국제상에 작가를 추천하기 위해서는 먼저 심사기준을 고려하여 후보 작가를 선정한다. 그리고 기준에 부합되는 작품 활동을 근본으로 작가의 전 생애 작품 세계를 소개하는 포트폴리오를 준비한다. 기본적으로 포트폴리오에 담아야 하는 요청 내용에 부합되는 정보들을 수합한다. 특히 대표 도서 5편을 선정하여 작가의 작품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가, 작가와 작품이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가, 그래서 작품들이 얼마나 여러 언어로 번역 수출되었는지도 중요한 고려사항 중 하나이다. 2년에 한 번밖에 없는 자리이고,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한 명만 추천한다는 면에서 작가 추천에 신중을 기하고 심혈을 기울인다. 어떤 작가를 추천할 것인가, 그리고 그 작가를 심사위원들에게 어떻게 보이게 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을 한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경우 다음과 같은 심사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작품의 글과 그림이 충분히 문학적으로 예술적인가. 둘째, 어린이들의 호기심과 창의적인 상상력을 북돋우며 동시에 어린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관점을 지니고 있는가. 셋째, 예술적 표현에서 다양성을 지니고 있는가, 그리고 작가의 창작 활동 기간 동안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새롭고 혁신적으로 발전하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작품의 성과와 더불어 앞으로의 창작 활동이 계속 공헌할 수 있는지 가능성까지 가늠한다.

 

작가를 추천하는 각 국가 기관들은 이러한 심사 기준을 고려하여 작가를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심사 자료를 준비한다. IBBY의 한국위원회인 KBBY는 BIB, HCAA, ALMA 등 국제상에 한국 작가를 추천하는 지정된 추천 기관이다. KBBY는 오랜 시간 공들여 국제상 플랫폼에 한국 후보자를 추천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제출되는 자료는 작가를 소개하는 포트폴리오와 대표 작품 5종이다. 이러한 제출 자료를 성실히 준비하기 위해 가장 먼저 작가에 관한 데이터 구축을 목적으로 광범위하게 자료를 수집하며 작가를 연구한다. 작가의 생애를 정리하고, 지금까지 출간된 도서 정보, 수출 이력, 대표 도서 5종의 선정 그리고 특징적인 작품 세계 등을 골격으로 자료를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국제상에 추천할 작가를 선정하면 미리 구축해놓은 자료를 기반으로 작가 포트폴리오 준비에 돌입한다.

 

작가의 작품 활동을 전략적으로 소개하기 위한 포트폴리오와 그의 작품을 심사위원들이 검토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한다. 수출 실적은 없지만 작품성의 측면에서 절대 뒤지지 않고 우리 그림책계를 대표할 만한 작가라고 판단되어 후보 작가로 추천을 준비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또한 심사위원들에게 작가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모든 자료를 영문화해야 하기에 큰 에너지가 소요된다. 후보자로 추천된 작가에 관한 자료는 최소한 심사위원들이 읽고 검토할 수 있도록 영문화하는 것이 기본이다. 작품의 영어본을 마련하는 것은 더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따라서 향후 국제상 플랫폼에 한국 작가를 지속적으로 추천하기 위해서는 심사용 작품들에 대한 번역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채널이 필요한 실정이다.

 

추천 자료 준비 이외에 세심하게 추가 활동이 요구되는 것도 현실이다. KBBY는 2020년 10월에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의 한국 후보로 이수지 작가를 등록하였다. 이후 이수지 작가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여 포트폴리오를 마련하였으며 2021년 1월 준비된 모든 자료들은 IBBY 본부인 스위스 바젤로 보내졌다. 추천 과정이 끝난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일반 독자들에게 작가 알리기에 돌입하였다. 다양한 국가에서 국제교류 프로젝트 기회를 만들어 여러 국가의 현지 독자들에게 이수지 작가를 소개하고 그녀의 작품을 소개하였다. 또한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 사회는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는 만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작가의 정보에 접근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썼다. 대표적인 예로 위키피디아와 유튜브 등 온라인 플랫폼에 작가를 소개하는 영어 자료를 탑재함으로써 세계 독자들이 이수지 작가와 작품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활동을 겸하였다.

 

작가에게 수여하는 국제상은 작가의 작품이 얼마나 세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는가, 그래서 세계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고려의 대상이 된다. 즉, 작품들은 먼저 수출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수출이 되었다고 현지 독자들에게 바로 읽히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 어느 구석에 놓여 있다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 절판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도 해외 독자이다. 연구자와 도서관 사서가 심사위원의 중심 구성원을 이룬다. 심사용으로 제출하는 자료를 통해 처음 만나는 작가라면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작가들을 검토해야 하는 심사 과정상 심사위원들이 추천된 모든 작가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들이 해외 현지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어 심사위원들이 한 번쯤 작품을 접해보았는가는 심사에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다. 이는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 후보에 오른 6인의 작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탈리아의 베아트리체 알레마냐(Beatrice Alemagna), 일본의 아라이 료지(Ryoji Arai), 폴란드의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Iwona Chmielewska), 아르헨티나의 구스티(Gusti), 캐나다의 시드니 스미스(Sydney Smith)는 이미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작가들이다. 여러 작품들이 이미 한국에 번역 출간되어 있으며, 전시와 작가와의 만남 등의 기회를 통해 국내 독자들과 여러 번 만난 바 있다.

 

이수지 작가 역시 그녀의 작품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되어 잘 알려져 있었다. 그녀의 작품은 유럽의 어느 갤러리를 방문하더라도 그곳의 책방에서 어렵지 않게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수지 작가는 다양한 전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해외 현지 독자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갖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이수지 작가는 5명의 작가들과의 경합에서 절대 뒤지지 않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국제적인 작가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후 국제상에 지속적으로 추천되며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작품들의 수출은 기본이고 연구자, 사서, 교사, 어린이 등 현지 독자들이 작가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적극적으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책방, 도서관, 갤러리 등 어린이들이 머무는 곳에 책이 놓이고 현지 독자들이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때마다 책은 더 많은 독자들에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작가와 작품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국제교류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용이한 환경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교류 활동을 기획하고도 그것을 실행하기 위한 지원금 마련에서부터 어려움에 봉착한다. 수출이 되었든 안 되었든 현지 독자들이 우리의 책을 만나볼 수 있는 다양한 국제교류의 기회 마련에 시급함을 느낀다. 특히 도서관은 책과 만날 수 있는 일상 속 중요한 거점 시설이다. 현지 독자들이 도서관과 같은 일상적인 장소에서 우리의 책을 쉽게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KBBY는 2019년부터 도서관을 통해 그림책과 작가를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어려움은 많다. 그러나 소개되었을 때 현지의 반응은 뜨겁다.

 

예를 들어 2021년 주함부르크 대한민국 총영사관과 공동주관으로 독일의 함부르크시립도서관과 괴팅헨 대학교 국립도서관에서 옛이야기 그림책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옛이야기 그림책은 한국 특유의 시각예술을 보여주는 장르이다. 옛이야기 그림책을 현지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번역 글을 삽입하여 도서관에 기증하였으며, 도서 전시와 더불어 현지 스토리텔러를 통해 이야기를 들려주는 행사를 진행하였다. 어린이, 부모, 사서, 교사들은 이야기의 즐거움뿐 아니라 시각적으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한국의 옛이야기 그림책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한국 그림책의 우수성은 이미 국제상 플랫폼에서 성과를 내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현지 독자들에게 가까이 가지는 못한 상황이다. 일반 독자들과 만나는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그림책을 적극적으로 소개한다면 이는 수출의 가능성으로도 연결될 것이다. 한국 그림책과 어린이문학의 국제화를 위해서는 국제 아카이빙에 한국의 작가와 작품이 지속적으로 오르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동시에 위키피디아와 유튜브 등 일반 독자들의 접속이 높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는 환경 조성은 필수적이다.

 

괴팅헨 문화센터에서 옛이야기 그림책 영상 상영과 옛이야기 스토리텔링


괴팅헨 문화센터에서 옛이야기 그림책 영상 상영과 옛이야기 스토리텔링

심향분

 

심향분(전 KBBY 회장,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그림책 연구자이며, KBBY를 통해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의 국제화를 위한 국제교류 활동의 확장에 힘을 모으고 있다.
shim1324@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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