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5 2022. 08.
2022년 오늘, 대필 작가와 그 세계
임재균(한국대필작가협회 회장)
2022. 8.
“어쩌다 대필 작가가 되었습니까?”
대필 작가가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나는 신이 난다. 회사 입사 지원 동기를 묻는 것과 같은 이 질문에 식상한 답변보다는 대필 작가의 대단한 역사적 사명을 들어 온갖 미사여구로 입문 동기를 포장하고 싶은 욕구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대필 작가를 선택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의 직업으로 돈을 벌기 위함이라는 답변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고 규정했다. 빵집 주인이 빵을 굽는 이유는 이타적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설명했듯이 대필 작가가 남을 위해 책을 쓰는 이유 역시 빵집 사장의 목적과 같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게 정직한 답변이다. 신입사원의 회사 지원 동기가 회사 오너와 회사를 위해 뼈를 묻는 멸사봉공의 자세로 한 몸 바쳐 회사를 부흥케 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돌아올 카드 값과 월세를 내기 위한 월급을 받기 위함과 같다. 빵집 사장이 인류의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하여 빵을 만들려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뭔가 좀 부족하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인사 담당자와 기자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MSG’라고 부를 무엇인가가 필요해 보인다. 단순히 ‘돈 벌기 위해서 대필 작가를 시작했다’라는 답변은 후추가 빠진 곰국처럼, ‘소고기 다시다’가 빠진 미역국처럼 싱겁다.
그러니 답변을 좀 더 추가하자. 그래! 대필 작가가 된 이유는 빈곤에 처한 가족의 생계와 4차 산업혁명에도 존재하는 직업에 대하여 몇 날 며칠 식음을 전폐하며 고민하다가 “유레카!”를 외치며 ‘대필 작가’를 직업화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스파이크 존즈 감독과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그녀(Her)〉라는 영화도 나와 있지 않느냐고 답변해준다. 기자들의 눈이 반짝인다. 그래도 뭔가 좀 부족하다. 살을 좀 붙이자. 대필 작가가 된 이유에 대하여 ‘음성적으로 일하는 대필 작가의 직업적 양성화와 함께 대필 작가의 권익 보호를 위한 기관을 만들고 있다’라고 말이다. 이제 좀 그럴싸해 보이는 답변이 되었다.
대필은 불법이 아니냐는 공격적인 질문에 대항할 논리도 나름 세워졌다. 현대미술의 거장 앤디 워홀과 제프 쿤스도 작품을 창작할 때 개념만 설명하면 조수들이 그 개념대로 그들의 그림을 그려줬고, 그 그림은 앤디 워홀과 제프 쿤스의 이름으로 고가에 팔려나갔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영남 씨가 그런 미술 작업을 하다가 대작 작가에게 고소를 당했다. 1심 유죄, 2심 무죄, 대법원 무죄 판결 기사를 보니, 대필 작가 역시 원저자의 핵심 개념을 듣고 열심히 대필을 해줘도 그것은 범죄나 불법이 아니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대필은 무죄다. 이제 논리도 확실해졌다.
자, 그럼 대필 작가가 된 이유에 대한 명확한 답변이 세워졌다. 그럼 이제부터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열심히 일을 해도 돈이 안 들어온다. 이런저런 이유로 원고료를 안 준다. 대필을 의뢰한 저자는 돈 대신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이 내게 줄 원고료보다 비싼 거니 오히려 감사히 받으라고 한다. 다른 저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돈을 대신할 암호화폐를 줄 테니 감사히 받으란다. 언젠가 부자가 될 기회를 준 것이란 설명과 함께. 그 그림은 집 창고에서 먼지가 쌓여가고 있으며, 받은 암호화폐는 폭락장 속에 상장폐지가 되거나 관리회사 오너의 USB에 담겨 도주 물품 속에 들어가 버렸고 블록체인 시스템 어딘가에 비밀번호와 함께 도주자의 은닉 재산이 되어 둥둥 떠다니고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신나지 않는다.
“작가라는 선천적 사명, 대필 작가라는 후천적 소명”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하지만, 대필 작가라는 후천적인 소명에 대해서는 여전히 대중에게 미지의 존재일 수밖에 없다. 단단한 캔 뚜껑 속의 음식이 맛있어도 뚜껑을 열어 그 맛이 기가 막히다고 자랑할 수 없는 존재가 대필 작가다. 설령 출판기념회에 대필 작가 명의로 화환이라도 보낸다면 그 출판기념회는 의혹투성이 쑥대밭이 되기 마련이다. 대필 작가는 그야말로 그런 ‘숨어야 할’, ‘숨겨야 할’, ‘지워져야 될’ 이름이자 아마존 오지의 원주민처럼 낯선 대상이었다.
이런 대필 작가라는 직업 세계의 금기에 도끼를 들었다. 대필 작가로 얼굴을 드러내며 ‘대밍아웃(대필 작가+커밍아웃)’을 시도한 지 벌써 7년째다. 내 직업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다. 양복 명장이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양복을 만드는 것을, 유명 요리사가 요리를 비밀리에 만드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이 대필 작가로 활동하며 생각해보니 대필 작가가 음지에서 곰팡이 같이 글 꽃을 피워낼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어차피 출판의 60%가 대필 작가의 손을 거친다면, 출판 분야 60%는 대필 작가가 활동할 수 있는 시장이므로, 나는 이 시장에서 주인이 되면 될 일이다. 한국대필작가협회(이하 ‘대필작가협회’)를 설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필 시장이 커질수록 대필 작가로 점점 유명세를 탈 것이라는 생각은 적중했다.
그렇다. 적중은 했다. 그런데 안 좋은 쪽으로 적중했다. 초창기에 만연했던, 대필이 불법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쪽으로 유명세를 탔다. 숙제나 논문 대필을 하는 협회라고 말이다. 툭하면 걸려 오는 기자들과의 전화 인터뷰는 다음 날 음성 변조로 뉴스에 실리거나 주부들이 보는 아침 방송에 가십성으로 보도되어 유명해졌다. 교도소 수감자들이 책 좀 써달라고 편지도 보내왔다. 일간지에 대서특필된 사건의 주인공 같은 분들도 책을 쓰자고 연락이 왔다. ‘대필’이라는 직업적 문구 때문에 억울한 고발을 당하고 무혐의로 끝나거나, 경찰 조사도 받았다. 3년 전 일이다. 그 처참한 심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찌 되었든 유명해졌으니까 받는 고난이라 생각한다. 조사관 앞에서 영문도 모른 채 내 일의 3년 치 집필 내역과 계좌를 털어내야 했던 불명예스러운 조사는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연세가 많은 정통 문단의 작가님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하셨다. 대필 작가가 얼굴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금기가 깨졌으니 말이다. 우리와 다르게 미국에서는 대필 작가가 직업의 한 분류이며 대필 작가는 책 쓰기 전문가 1급 작가로 분류된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문 대필 작가 존 파브로가 있었고, 트럼프 대통령의 대필 작가 토니 슈워츠가 있었으며, 힐러리 클린턴 여사의 회고록을 써준 대필 작가는 3명이나 있었고 모두 권당 50만 불 이상 받는 작가들이었다. 유령작가이지만 모두 얼굴을 드러내고 다닌다. 이런 논리를 앞세워 대필작가협회를 설립했다. 하청 일용직 노동자 취급을 받던 대필 작가는 이제 서서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대필작가협회 설립 이후 억대 연봉을 받는 대필 작가도 탄생했다. 너나없이 대필 앞에서 평등해지며 대동단결을 이뤄낸다. 대중들이 여전히 모르는 내용들이다.
전에 없던 직업이라서 오히려 할 만하다
앞서 신나지 않다고 말했다. 그것은 돈 때문이다. 그럼에도 신나는 대필 작가들이 더 많다. 물론 종종 원고료가 정산이 안 될 때는 신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나지 않던 일들은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표준화된 계약서, 표준화된 계약 체결, 대필 작가의 수준 향상, 대필 작가들의 단결 그리고 여러 매체들의 관련 기사 보도로 원고료 미지급 같은 행태는 조금씩 사라지는 중이다. 글 대신 빵을 팔았다면 벌써 부자가 되었겠지만 대필 작가는 빵을 만드는 빵집 주인이 아니라 책을 쓰는 대필 작가다. 의뢰자들의 책은 줄기차게 팔렸다. 유명해졌다. 가끔씩 떼인 원고료만 생각하면 속이 쓰린 것 빼고는 괜찮다. 모든 의뢰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계약서대로 원고료를 지급하고 기대 이상의 보너스와 떡값까지 챙겨주는 분들도 있다. 대필 작가를 존중하는 업체, 출판사들도 많다. 이런 분들의 책과 원고는 더 신경이 쓰인다.
대필작가협회는 대필 작가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힘써 주는 의뢰인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과장을 조금 섞어 말하자면 조만간 선거판, 정치판의 중요한 아이템인 자서전과 회고록은 대필 작가의 협력 없이는 선거기획사에서 더 이상 아름답게 쓸 수 없을 것이다.
대필 작가는 전에 없던 직업이라서 오히려 할 만한 일이다. 이미 있는 직업이라면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게 힘들었을 것인데, 길이 없으니 그냥 험난한 들판을 지나가며 길을 만들면 된다. 내친김에 인터넷 예능에도 불러주는 대로 뛰어다니고 있다. 대필 작가를 음지의 곰팡이처럼 어둡게 여기는 인식을 바꾸고 싶다. 이제 7년 차, 걸음마를 시작한 대필작가협회의 역할에 대하여 빨간 띠를 두른 강성 노조 같은 모습 대신 어디에나 존재하는 대필 작가의 명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특히 대필 작가들 중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 문제로 고민하던 분들이 관련 예능을 보고 직업적 정체성을 찾았다는 응원과 연락을 많이 받고 있다.
대필 작가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직업이다. 출판시장에서 오로지 실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직업으로 수명도, 평판도, 시장에 달려 있다. 따라서 빨간 띠를 둘러매고 투쟁하고자 하지 않는다. 대신 책 쓰기로, 출판으로 의뢰자를 빛나게 해주는 역할로 소명을 다할 뿐이다. 요리사가 요리를 잘하면 되듯이, 양복장이가 양복을 잘 만들면 되듯이. 대필 작가는 책 쓰기로 말하면 된다. 2022년부터는 더 이상 가면과 음지 뒤에 숨지 말자. 시대가 바뀌었다. 먼저 숨으면 지는 거다.
임재균 한국대필작가협회 회장 다시 태어나도 대필 작가를 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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