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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  20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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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문학 플랫폼의 탄생
〈주간 문학동네〉가 바라는 것

 

 

 

정영수(소설가, 문학동네 편집자)

 

2020. 04.


 

〈주간 문학동네〉를 오픈하고 처음 제출했던 기획안을 열어보았다. 2018년 9월 17일이라고 날짜가 적힌 기획안의 개요란엔 ‘장편소설과 산문을 연재하는 가벼운 모바일 전용 플랫폼’이라고 쓰여 있다. 가장 먼저 오는 단어가 ‘장편소설’이라는 것인데, 사실 기획자로서는 웹진이라는 서비스 형태보다 우선했던 것이 장편소설이라는 소설 형식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장편을 좀 더 보고 싶었다.

 

기획안을 제출한 것은 1년 반 전이지만 이러한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그보다 더 되었다. 출판 시장이 활황인 적은 없다고 하지만, 몇 해 전부터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커졌다는 것은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예전에 비해 젊은 작가들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다고 느꼈다. 전에는 등단을 한 뒤 어느 정도 작품을 발표하고 조금씩 인지도가 쌓여가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면, 요즘 들어서는 이제 첫 책을 낸 작가는 물론 아직 단행본도 출간하지 않은 작가가 뜨거운 관심을 받는 경우도 있어 새삼 놀라울 때가 많다. 아마 그들이 주로 젊은 층인 문학 독자들과 동시대를 살며 예민한 시대감각을 가지고 작품을 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SNS 사용자와 문학 독자들이 많은 부분 교집합을 이루고 있다는 점도(결국 텍스트를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주요한 듯하다.

 

젊은 작가들이 주목을 받게 된 또 하나의 요인으로는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문학동네 직원이 이렇게 말하면 객관성이 부족해 보일지 모르겠지만, 필자 또한 문학동네에 입사하기 전 순수한(?) 독자이던 때부터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을 만났다. 실제로 김금희, 최은영, 박상영 등 요즘 사랑받는 작가들 중에는 젊은작가상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경우가 많다. 애초 젊은작가상의 기획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작가들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도입된 제도가 특별보급가였다. 출간 후 1년간 적정가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에 판매해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이도록 한 것이다. 젊은작가상은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일종의 한국문학 샘플러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독자들은 문학동네가 (복잡다단한 선정 과정을 거쳐) 제안하는 젊은 작가들의 단편을 하나씩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작가가 생기면 다른 작품도 찾아보고, 단행본을 구입해서 읽어볼 수 있다. 최근에는 문학과지성사에서 ‘이 계절의 소설’로 선정된 단편들을 묶어 매 계절 3,500원이라는 낮은 가격에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소설 보다』라는 시리즈를 시작하기도 했는데, 이와 같은 시도들로 인해 좋은 작품을 쓰는 젊은 작가들이 대중에 소개되면서 전에 비해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늘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소설 보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소설 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국문학에 약간의 지형 변화가 생긴 듯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로 단편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대중에 소개되면서, 장편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편소설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올라간 것이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서 조사한 작가 및 출판인이 꼽은 ‘2019 올해의 책’에는 국내 소설집이 6권 오른 반면, 장편소설은 2권이었으며, 교보문고에서 조사한 ‘2019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도 역시 소설집은 6권이고 장편소설은 3권으로, 비교적 적은 종수였다. 문학동네에서 2019년 한 해 동안 출간된 한국소설의 비율도 장편소설에 비해 소설집이 두 배 이상 많았다. 장편소설이 주류를 이루던 1990년대나 2000년대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작가상과 같이 독자들에게 지금의 장편소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보다 긴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도 있을 테고, 분량에 관계없이 좀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치고 싶어 하는 작가도 있을 테니까. 작가들에게는 안정적인 원고료와 지면을 제공해 장편소설 집필을 지원하고, 독자들에게는 그들이 써내는 장편소설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을 생각해냈고, 그것이 〈주간 문학동네〉였다.

 

문학동네에게 이런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기존에는 문학 독자들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고 소설 이야기도 나누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장편소설과 산문을 연재했다.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 성석제 작가의 『왕은 안녕하시다』, 정용준 작가의 『프롬 토니오』, 김언수 작가의 『설계자들』과 김훈 작가의 에세이 『연필로 쓰기』,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 『소설가의 일』 등이 그곳에서 연재를 통해 먼저 소개되었다. 그런데 네이버 카페에서 작품을 연재하는 데에는 두 가지 단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 회원을 위한 닫힌 공간이었다는 것이다. 연재 작품은 카페에 꼭 가입하지 않아도 들어와서 읽을 수는 있었지만 게시 공간에 특정 포탈을 통해서만 접근할 수 있다는 한계점이 있었다. 두 번째는 그 공간이 작품에 몰입하기에 최적의 레이아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텍스트가 문학 작품을 감상하기에 적당하지 않은 서체로 표시되기도 했지만 화면 안에 텍스트 외에 노출되는 요소가 많아서 몰입을 저해했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한 요소는 딱 두 가지였다.

 

 첫째,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둘째,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없을 것

 

웹진 〈주간 문학동네〉를 만들면서 생각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주간 문학동네〉를 통해 선보일 작가는 활발히 작품활동을 해왔지만 아직 장편소설을 선보이지는 않은 작가, 좋은 장편소설을 써왔지만 젊은 독자들에게 비교적 덜 알려진 작가, 그리고 우리가 자신 있게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가들이다.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접근해 편안하게 작품을 읽고, 그 소설이 마음에 들었다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거나 후에 출간될 단행본을 구입하면 된다. 이렇게 독자들이 보다 긴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고 다양한 작품들을 찾아 읽고, 또 그러한 수요가 작가들의 창작으로 이어지면서 한국문학이 조금 더 다양하고 풍요로워진다면 그것이 문학동네가 바라는 일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런 플랫폼을 기획했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원고 확보였다. 플랫폼의 형태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작품이 담겨 있지 않다면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다. 이를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우선 현실적인 원고료다. 웹진에 게재되는 원고에는 〈계간 문학동네〉에 수록되는 원고와 동일한 원고료가 지급된다. 200자 원고지 1매당 15,000원으로 이는 국내 장편소설 연재 고료로는 최고 수준이다. 그리고 양질의 원고를 확보하고, 집필 속도와 독자들이 연재를 따라 읽을 수 있는 적정 속도를 맞추기 위해 작가들이 연재 전 일정 분량을 선집필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서는 연재 시작 전에 입고되는 원고에 대해서는 즉시 원고료를 지급하는 방안을 택했다. 작가들이 너무 큰 압박을 느끼지는 않으면서 원고를 미리 집필하는 데 의욕이 생기도록 하기 위한 작은 조치였다. 기획안이 통과된 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작가를 섭외하고 원고를 수급하는 일에 오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이후에 그다음으로 중요한 플랫폼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다. 디자인에 들어가기에 앞서 여기에도 필자 나름대로 우선적인 원칙을 몇 가지 정했는데 그건 다음과 같았다.

 

 첫째, 보기에 아름다울 것
 둘째, 읽기에 편안할 것
 셋째, 간결할 것

 

처음에는 해외 유명 온라인 매거진을 참고했다. 많은 해외 웹진들을 참고했는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좀 더 심플한 형태였다. 그런데 국내에 훌륭한 레퍼런스가 있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웹진 〈비유〉가 간결하고 가독성이 좋았다. 우리는 〈비유〉 담당자에게 문의해 디자이너를 찾아냈고, 그에게 우리의 장편소설 연재 플랫폼 디자인을 의뢰했다. 그렇게 서체 전문 디자인 회사인 포뮬라의 신건모 디자이너와 처음 미팅을 하고 작업을 맡기로 결정했을 때 그가 인상적인 질문을 했다. “문학동네는 어떤 출판사인가요?” 우리의 정체성을 페이지에 담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하며 잠시 고민한 뒤 “보편적인 출판사”라고 대답했다. ‘보편적’이라는 말은 ‘대중적’ 혹은 ‘상업적’이라는 말과 조금은 다른 뜻이라는 생각이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어쨌거나 ‘문학’동네니까) 누구나 쉽게 접근해 폭넓은 작품들 사이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곳이라는 의미였는데, 그러한 점이 결국 디자인에 잘 반영이 되었을까? 그건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주간 문학동네> 메인 페이지


〈주간 문학동네〉 메인 페이지

 

그렇게 완성된 〈주간 문학동네〉의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은 조회수를 확인하거나 댓글을 달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요즘 같은 소통의 시대에 이게 웬 말?이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나 이것은 작품을 써나가는 작가는 물론이고 그 과정에 동참하는 독자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고민의 결과이다. 〈주간 문학동네〉는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독자들이 함께 지켜보는 공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직접적으로 독자들의 평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고자 했다. 적어도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는 조회수나 댓글을 의식해 불필요한 경쟁을 하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오히려 소통의 시대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독자들은 SNS를 통해서 충분히 할 수 있으리란 생각도 있었다. 적어도 이 공간에서는 말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오히려 한 작품이 쓰여지는 과정을 온전히 지켜보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예상이 어느 정도는 맞았는지, 다행히 오픈 후 SNS상에서 〈주간 문학동네〉를 소개하고, 연재되는 작품에 대해 활발히 이야기를 나누는 독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SNS를 통해 가장 많이 회자된 것이 아직 한 권의 책도 펴낸 적 없는 천문학자 심채경의 산문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라는 점에서 나름의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앞으로도 〈주간 문학동네〉에서는 폭넓은 스펙트럼의 작품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국내 독자들이 장편소설과 산문의 매력을 좀 더 잘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영수(소설가, 문학동네 편집자)

낮에는 편집을 하고 밤에는 소설을 쓴다. 소설집 『애호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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