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19  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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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헌책방을 사양산업이라고 했나?
- 헌책방의 간략한 역사와 앞으로의 과제

 

 

 

윤성근(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2021. 3.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내가 헌책방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왜 젊은 사람이 사양산업에 손을 대려고 하느냐”였다. 당시 나는 김광석 노래처럼 서른 살 즈음이었고 출판사에서 몇 년, 규모가 큰 헌책방에서 직원으로 몇 년 동안 일한 직후였다. 내 머릿속은 이미 헌책방이 가득했고 ‘사양산업’이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상업계 고등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그 단어를 알고는 있었지만, 딱히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부정적인 단어라고만 짐작할 뿐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젊은 사람들이 하고 싶지 않아서 사양하는 직업이라 사양산업이라고 부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사양산업이란 성장하는 산업의 반대로, 서서히 그 중요성을 잃거나 산업 자체가 사라질 처지에 놓인 일이다. 아니, 그런데 왜 다들 헌책방이 사양산업이라고 하는 걸까? 어릴 때부터 자타공인 헌책방 단골손님이라고 자부하는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헌책방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론 헌책방도 전성기가 있었다. 헌책방 사장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1970~80년대 장사가 잘되던 시절에는 밥 먹을 틈도 없이 온종일 손님을 맞은 날도 허다했다고 한다. 그 많던 책손님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예 출판 자체가 사양산업이 된 것은 아닐까?

 

헌책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웃 나라 일본의 그것을 보고 배우라고 조언한다. 나라의 수도에 세계 최대의 헌책방 거리를 가진 일본과 우리나라를 비교해 공부하면 뭔가 해법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비교라고 하는 것은 서로 비슷한 것을 견주어보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헌책방은 그 시작부터가 이미 달랐다. 시작이 다르니 시간이 지날수록 헌책방이 추구하는 방향도 다를 수밖에 없다. 비교하기 전에 우선 그 시작부터 짚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다음, 이를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 헌책방들의 살림을 더 튼실하게 키워나갈 수 있을지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일본은 1920년에 도쿄고서적상 협회원 400명이 모여서 첫 번째 총회를 개최한 것이 본격적인 진보초(神保町)와 간다(神田) 지역 헌책방의 시작이다. 당연히 그전에도 이 근방에는 헌책방이 많았다. 헌책방뿐만 아니라 출판사와 신간서점도 여럿 들어섰다.

 

그 이유는 메이지 시대 일본이 서양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만들어진 대학들이 여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메이지대학, 센슈대학, 호세이대학 등이 모두 이곳에 있다. 와세다대학과 도쿄대학, 도쿄예술대학도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대학이 생기고 새로운 학문이 쏟아져 들어오니 책의 수요도 함께 많아졌다. 대학 근처에 출판사와 서점, 그리고 헌책방이 들어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 기반은 10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든든하게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쉽게도 헌책방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도 조선시대부터 시장에서 책을 파는 사람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시스템에 의해 발생했고 훗날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근거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그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글들을 검토해보는 게 지금으로써는 최선이다.

 

여기 흥미로운 소설이 있다. 1976년에 발표된 이정환의 『샛강』을 보면 가족 3대가 헌책방을 꾸린 일대기를 마치 자서전처럼 그려내고 있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내용 대부분이 자전적인 이야기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잠시 참조해보기로 한다.

 

주인공은 아마도 작가인 이정환 본인인 것 같다. 그의 할아버지는 1894년 농민전쟁에 참가했다가 패하여 완주로 갔고 거기서 농사를 짓는 한편 서당에서는 책을 모아놓고 팔았다. 당시 우리나라엔 현대적인 헌책방의 모습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일본인들이 들이닥쳐 주권을 빼앗기고 그즈음 대도시를 중심으로 서점이 생겼다. 하지만 서울, 부산 등 대도시가 아니라면 아직은 서점의 모양새가 제대로 잡힌 것은 아니었다. 시장에서 좌판을 벌여놓고 주워 모은 책을 팔기도 했고 손수레에 책을 싣고 다니며 파는 사람도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아버지 역시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이런 식으로 책장사를 했다.

 

해방 전후로는 문인들 몇몇이 자기가 수집한 책을 가지고 직접 헌책방을 운영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오장환 시인의 “남만서점”, 박인환 시인의 “마리서사”가 대표적이다. 해방 후 몇 년 동안은 출판과 서점, 그리고 헌책방이 동시에 성장하던 시기였으나 호황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모든 게 멈췄다. 『샛강』의 주인공 아버지 역시 이즈음엔 책을 뜯어서 시장에서 쓰이는 봉투를 만들어 팔 정도였다.

 

그런데 이 난리 중에도 헌책방은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 중에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물건 중에서 책을 많이 처분했는데 이것이 훗날 우리나라 3대 헌책방 거리로 불리는 서울 청계천과 부산 보수동, 그리고 인천 배다리 일대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입구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입구. 해마다 가을이면 가게들이 모여 헌책축제를 기획하는 등 상권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1980년대까지는 그야말로 헌책방의 전성기였다. 『샛강』 소설 속 주인공도 아버지로부터 책장사 방법을 이어받아 번창했고 작지만 가게까지 만들어 운영했다. 헌책방은 전쟁 때문에 공부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책을 구하기 위해 붐볐고 이어진 도시개발 열풍을 타고 또다시 온갖 책들이 헌책방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헌책방의 인기는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책보다 멀티미디어 매체에 매력을 느꼈다. 이 시기에 일반 서점도 힘들었지만, 일본과는 달리 이렇다 할 기반도 없이 명맥을 이어 온 헌책방들은 크게 타격을 입고 적잖은 수가 폐업을 선택했다. 인터넷 헌책방을 개설해 온라인 판매를 시도하는 등 능동적으로 변화에 대처하는 가게도 있었지만 이제 시련은 걷잡을 수 없이 밀어닥치고 있었다.

 

하지만 헌책방의 시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더 큰 고비가 남았다. 드디어 대형 중고서점이 생긴 것이다. 여기서 ‘드디어’라고 말한 이유는 사실 이 사건이 이미 예견된 것이기 때문이다. 옆 나라 일본엔 이미 ‘북오프(Book-off)’라고 하는 대형 중고서점이 한창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1990년대 초에 첫 매장을 낸 북오프는 2020년 기준으로 일본 전역에 800여 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일본의 헌책방들 역시 북오프로 인한 타격이 작지 않았다.

 

북오프는 2006년, 서울에도 매장을 내며 사업을 확장했는데 몇 년 후 생긴 ‘알라딘 중고서점(이하 알라딘)’과의 경쟁에서 밀려 2014년에 철수하고 말았다. 알라딘은 2011년, 종로에 첫 오프라인 매장을 낸 이후 공격적으로 세력을 불려 나갔다. 현재 알라딘은 전국에 50개 가까운 매장을 거느리고 있는 거대 중고서점으로 발전했다.

 

알라딘은 보유한 책 목록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고 매장별 재고 현황도 검색해 볼 수 있도록 편리한 체계를 갖췄다. 바야흐로 싸고, 편리하며, 가격 비교까지 하면서 빠르게 중고책을 살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알라딘에 이어 온라인 서점 점유율 1위인 ‘YES24’도 중고책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분야는 분명히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 대형 중고서점은 사람들이 원하는 소비 방법과 패턴을 정확하게 공략했다. 이렇게 살펴보고 있으니 헌책방이 과연 사양산업인가라는 첫 번째 질문에 의문이 생길 만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승승장구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작은 가게를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모습의 헌책방은 여전히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작은 헌책방들은 벼랑 끝에 발끝을 걸치고 선 것처럼 위태로운 모습이다.

 

알라딘이나 YES24 등에서 운영하는 대형 중고서점이 소비자들에게 환영받는 공간인 것은 틀림없다. 앞서 살펴본 대로 우리나라 헌책방은 대학이라는 신식 학문과 함께 성장한 일본의 그것과는 달리 책을 싸게 판매하는 가게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책이 진열된 곳에서 편리하게 검색까지 하며 책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면 목적에 충실한 것 아닌가? 더 무엇이 필요한가?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았다. 헌책방이 출판 산업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 말이다. 저렴한 책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싫어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좀 더 폭넓게 보면 대형 중고서점의 탄생이 우리나라 출판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우선은 지금껏 운영해 온 영세한 헌책방 생태계에 이미 큰 타격을 입혔다. 이에 더해 대형 중고서점이 도서정가제를 교묘하게 회피하여 판매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책 세탁”의 장소라는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대형 중고서점은 이렇듯 앞으로 제도적으로 견제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 문제는 작은 헌책방이다. 나 역시 이쪽에서 일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 작은 헌책방이 경쟁력을 잃으니까 큰 중고서점을 만들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옆 나라 일본 역시 북오프라는 거대 중고서점 때문에 비슷한 시련을 겪었고 헌책방들은 여전히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고민해 볼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 헌책방 일꾼은 책을 공부해야 한다.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책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끊임없이 그것을 연구해야 한다. 몇 년 전 한 헌책방에서 주인과 손님이 하는 대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그 헌책방은 1970년대부터 운영해 오는 곳이라 역사가 깊은 만큼 가게 규모도 작지 않았다. 손님은 이외수 작가의 소설 『괴물』을 찾고 있었다. 주인은 책을 건네주면서 이외수에 대한 장광설을 늘어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괴물』은 영화보다는 책으로 봐야 더 재밌다는 것이었다. 손님은 그 얘기에 황당해했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주인은 소설 『괴물』과 그즈음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혼동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중간에 끼어들고 싶었으나 주인이 워낙 자신감 있게 말하고 있어서 단념하고 말았다. 나는 평소에 책 지식이 해박한 이 가게 주인을 존경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가서 대화를 해보니 주인은 1990년대 이후 책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시피 했다. 장사가 잘되던 시절에 공부가 멈춰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자연스레 그 가게에 자주 가지 않게 되었다. 아마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작은 헌책방의 경쟁력은 무엇보다 주인의 매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 매력이란 당연히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달려 있다.

 

둘째, 작은 헌책방도 시스템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나라 헌책방은 시작부터 제대로 된 시스템이 없었다. 버려진 책을 수집해서 판매하는 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오래된 헌책방을 보면 사업자등록증에 ‘고물수거업’이라고 표시된 경우가 많다. 그야말로 고물상과 헌책방이 비슷한 일을 한 것이다.

 

일본에는 고서조합이 있는데 진보초의 고서회관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고 있다. 여기에서는 헌책방을 새로 개업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실무 교육에서부터 고서 축제 기획, 회원들을 위한 책 경매 행사 등을 통해 대형 중고서점에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작은 헌책방들이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내실 있는 운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중앙에 고서조합이라는 든든한 뒷받침이 있기 때문이다.

 

셋째, 헌책방들이 가진 정보는 네트워크로 연결되어야 한다. 몇 해 전 나는 일본의 유명 헌책방 전문 작가인 오카자키 다케시(岡崎武志) 씨를 인터뷰 한 일이 있다. 그는 이웃 나라에 온 손님에게 일본의 헌책방이 어떻게 강한 모습을 지켜가고 있는지 설명했다. 오카자키 씨의 안내로 반나절 동안 도쿄 중앙선 근처의 헌책방을 방문하며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필자를 만나 헌책방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오카자키 다케시


필자를 만나 헌책방에 관해 설명하고 있는 오카자키 다케시(왼쪽. 오른쪽이 필자). 프랜차이즈 중고서점과 상대하는 작은 헌책방들은 오랜 역사를 가진 고서조합을 중심으로 서로 협력하고 있다.

 

그때 알았던 놀라운 사실 중 하나가 바로 가게들 간의 네트워크였다. 일본 고서조합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お客さまがお探しの商品はきっとどこかの古本屋の棚に隠れているはずです(손님이 찾으시는 책은 반드시 어떤 헌책방의 선반에 숨어있습니다)”라는 문구를 확인할 수 있다. 헌책방들은 조합을 중심으로 책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어떤 가게에 없는 책을 다른 가게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를 만들었다. 마치 우리나라 도서관이 시행하는 상호대차 서비스와 비슷하다.

 

북오프라는 프랜차이즈 중고서점이 거대한 도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서 영세한 헌책방들을 위협할 때, 일본 전역의 헌책방 회원이 모여 만든 네트워크는 이를 적극적으로 상대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일본과 우리나라의 헌책방은 그 시작부터 달랐기 때문에 단순히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본질은 똑같다. 가게를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헌책방 일꾼들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제도적으로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우리만의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마련된 제도 아래 각각의 헌책방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느슨하게나마 사업적으로 협력한다면 우리 고유의 헌책방 문화를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윤성근(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출판사와 헌책방 직원으로 일하다가 2007년부터 서울 은평구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만들어 살림을 꾸리고 있다. 일하는 틈틈이 쓴 글로 『탐서의 즐거움』, 『내가 사랑한 첫 문장』, 『서점의 말들』 등 책을 몇 권 펴냈다. 2018년에 서울시로부터 우수서점인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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