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36  2022.09.

게시물 상세

 

출판 매출의 급격한 하락을 이겨내는 최선의 방법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2022. 9.


 

팬데믹 초기에는 전반적인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출판사들의 성적표가 나쁘지 않았다. 아동·청소년 서적을 펴내는 일부 대형 출판사는 2020년에 전년 대비 30~40%의 매출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팬데믹 시기에도 아동·청소년은 학습을 멈출 수 없었다. 덕분에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글쓰기 교육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면서 관련 도서의 판매가 늘어나기도 했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외출마저 할 수 없게 된 아이들이 한번 잡으면 끝까지 정신없이 읽을 수 있는 시리즈 도서나 품질이 검증된 스테디셀러, 판타지·SF 등의 장르소설 등은 특수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특수는 오래 가지 않았다. 2022년 상반기를 마무리할 즈음부터 출판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출판사들은 매출 한파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과거에 1년 중 가장 책이 많이 팔리던 여름 휴가철에는 시장이 좀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름이 되자 오히려 위기감이 더욱 증폭되었다. 심하게는 50%에서 70%까지 매출이 급격하게 하락한 출판사들이 적지 않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팬데믹 시기에도 특수를 누렸던 대형 출판사들마저 5~10%의 매출이 하락했다는 소식이다.

 

반면에 이 시기에 분기별로 발표되는 대형 온라인서점의 매출은 증가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체 매출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형 서점들의 매출은 유통 집중화로 증가한 것이기 때문이다. 도매에 진출한 이후 시장 점유율을 키우고 있는 교보문고의 매출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교보문고와 출판 매출을 과점하고 있는 예스24와 알라딘도 경쟁적으로 도매 영업을 강화하고 있어서 이들 업체의 매출 집중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그로 인해 군소 도매상은 사실상 도산 상태에 빠져들고 있으며 전국 단위의 도매상들도 경영이 점점 악화되고 있다. 책 수급이 원활해진 소매 서점들은 여전히 근본적인 독자 감소에 시달리고 있다. 공공기관의 책 납품과 복권 판매로 겨우 버티고 있는 영세 서점의 폐점은 시간이 문제일 뿐 피할 수 없는 일로 치부되고 있다.

 

시장을 주도하는 대형 베스트셀러가 실종된 것도 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려주고 있다. 더군다나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의 판매 부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 인기 작가의 신작 소설도 10만 부를 넘기면 정체되기 시작하고 대부분의 작가는 초판 3,000부도 넘기지 못한다. 평균 판매 부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학술서, 인문사회과학서 등은 출판사들이 신간 발행 자체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에 비하면 전자책의 성장세는 뚜렷하다. 전자책의 매출을 선두에서 이끄는 것은 웹툰과 웹소설이다. 웹툰과 웹소설이 원작인 OTT 드라마의 인기로 이 분야의 성장은 가파르다. 국내 시장 매출이 약 1조 원에 육박하는 웹툰은 머지않아 세계 시장에서 100조 원 매출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웹툰과 웹소설의 매출은 네이버나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 계열사들에서 대부분 발생하고 있다. 이미 출판 매출의 절반에 육박하고 있음에도 중소 출판사들은 오히려 웹툰과 웹소설에서 소외되고 있다. 기존의 출판사들은 나머지 절반의 시장을 놓고 제로섬 게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모바일 중심으로 문화 소비가 이뤄지는 초연결시대의 독자는 종이 텍스트만 읽는 것이 아니다. 독자는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검색을 통해 무엇이든 쉬지 않고 읽고 있다.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에서는 읽으면서 쓰는 것이 일상이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바인(Vine) 등의 영상 매체, 팟캐스트 등의 음성 매체, 소셜 리딩 플랫폼 등을 서로 연결해서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는 디지털 콘텐츠를 소비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출판사는 콘텐츠 프로바이더로 변신해야 하지만 종이책만 펴내오던 영세 출판사가 이런 일에 뛰어들기에는 버거운 일.

 

이렇게 출판 시장은 콘텐츠 중심으로 급격하게 재편되고 있다. 그로 인해 출판 전체의 매출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규모가 있는 대형 출판사들이다. 앞으로 출판 시장에서 대형 출판사와 1인 출판사만 살아남고 중소 규모의 출판사는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극단적인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창의력이 관건인 문화 시장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중형 규모의 출판사들은 직원 수와 신간 종수를 줄이면서 억지로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이 다수이니 출판 불황의 신음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출판 시장은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의 입구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미래의 산업으로 여겨지는 콘텐츠 사업의 핵심은 IP(지식재산권)이다. 대형 콘텐츠 기업들은 IP를 확보한 다음 트랜스(크로스) 미디어 전략으로 가능성을 키워가고 있다. K-팝을 필두로 세계 시장에 두각을 보이는 K-문화는 이미 ‘콘텐츠의 대세’로 부상하고 있다. 그로 인해 웹툰과 웹소설뿐만 아니라 그림책과 소설의 저작권 수출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콘텐츠의 가능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물론 지금 출판사들은 일시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원자재의 공급이 불안해지면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라는 ‘3고(高)’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으로 국제 정세도 불안하다. 이런 위기로 인하여 책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되었다. 경기 침체기에 소비자들은 문화비 지출부터 줄이곤 했다.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더군다나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OTT 시스템에서 영상 매체는 값싼 가격으로 얼마든지 골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책 소비가 줄어들 것은 불문가지.

 

중앙 권력과 지방 권력이 동시에 교체되면서 도서관과 학교를 비롯한 공적 기관들이 책 구매 예산을 집행하지 않고 관망한 것도 출판계 경기 침체의 원인이 되었다. 더군다나 문화 이벤트가 크게 줄어들면서 책에 관한 관심도 크게 떨어졌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출은 줄어드는데 비용은 계속 증가했다. 용지를 비롯한 원자재, 제작비, 물류비, 임대료 등이 하루가 다르게 뛰었다.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하니 인건비도 올랐다. 능력 있는 편집자들이 스타트업 벤처로 옮겨가는 바람에 사람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했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출판 불황은 쉽게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출판은 문명의 대전환에 따른 근본적인 변화를 해야 할 시점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출판 시장이 위기이자 기회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지적한 문명비평가들이 적지 않았다. 편집자 출신의 평론가인 하워드 라인골드(Howard Rheingold)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명의 교체기인 20세기 말에 “인쇄·출판의 미래는 민주주의와 사회, 나아가서는 인류 자체의 미래상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의 지식인들이 참가해 벌인 책의 미래에 관한 한 온라인 토론에서 “권력은 모든 것을 능가하지만,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등장으로 권력이나 부의 소재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옮겨갈 것이다. 따라서 종이에 인쇄된 텍스트에서, 네트워크화·디지털화된 화면상의 텍스트로 이행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써 주목할 것이 권력 행사에 영향을 미칠 변화”라고 예측한 바 있다.

 

하워드 라인골드가 예측한 변화는 21세기에 접어들어 꾸준하게 진행됐다. 출판 편집자는 저자의 집필 기간과 제작 기간을 감안해 3년 뒤의 시장을 겨냥해 책을 기획한다. 그러나 2년 동안 팬데믹을 겪고 나자 10년 뒤의 세상이 성큼 다가와 버렸다. 덕분에 출판사들은 이미 기획해놓은 책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포기하지 않고 책을 펴낼 수는 있지만 독자의 외면을 각오해야만 하는 일이다.

 

지금 세상에는 하워드 라인골드가 앞의 토론에서 예측한 바대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에 의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사회적인 공간’이 창출되었다. 이미 인간은 스마트폰 하나로 도서관과 시장과 사교클럽이 뒤섞인 듯한 공간에서 마음껏 지식과 교양에 접근하고 있다. 인문학자 김용규는 『생각의 시대』에서 “2030년이 되면 지식이 3일마다 2배씩” 늘어난다고 예측했지만 2030년까지 갈 것도 없이 벌써 3시간마다 2배씩 늘어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지식의 양은 급증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인 공간이 우리의 “사고방식이나 의사 전달 방식에서부터 상거래나 집단 통치 방법”까지 바꿀 것이라는 하워드 라인골드의 예상도 틀리지 않았다. 내가 머무르는 공간은 이전의 ‘집(my home)’에서 ‘방(my room)’으로, 다시 ‘스마트폰(my phone)’으로 그 영역이 점점 좁아졌지만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 시민 모두와 자유롭게 연결하고 있다. 우리는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도 전문 검색을 통해 인류가 생산한 모든 지식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고, 원하는 모든 물건을 구매할 수 있으며, 여러 상대와 게임을 즐기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마음껏 소비할 수 있다. 연결은 무엇으로 하나? 주로 글로 연결된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일은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 되고 있다.

 

스마트폰은 이미 인공지능(AI)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AI는 검색형 독서 체제를 강화한다. 손으로 써서 검색을 하지 않고 말만 해도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개인에게 알맞은 해답을 산출해낸 다음 적절한 조언을 스마트폰으로 전송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AI의 실용화는 이제 비즈니스의 핵심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콘텐츠 사업자는 지식을 분절화해서 일일이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하나로 통합해 임팩트가 강한 ‘한 문장’으로 지혜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멜린다 데이비스(Melinda Davis)는 『욕망의 진화』에서 날로 분주해지는 일상에서 늘 시간이 부족한 대중에게 구매 활동을 도와줄 에이전트나 가이드가 필요한 현상을 ‘요다이즘(Yodaism)’이라 표현했다. ‘요다’는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외계인으로, 초능력과 예지력으로 사람을 가르치고 인도하는 존재를 상징하는 일종의 지식중개자라고 할 수 있다. 요다이즘은 달리 말하면 큐레이션, 편집력이기도 하다. 이제 편집자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팬데믹 상황 2년은 이런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모두가 집에 앉아서 광대한 바다처럼 떠도는 무료 정보나 정액제로 제공되는 콘텐츠, 나를 위해 정선해 놓은 것 같은 무료 뉴스레터 등을 즐겼다. 책이 아니어도 즐길 콘텐츠는 차고 넘친다. 이제 독자는 일방적인 소비만을 즐기지 않는다. 그들은 생산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는 세컨드 크리에이터다. 그들을 만족시키려면 양질의 다양한 콘텐츠부터 확보해야만 한다. 과거에 편집자들은 엘리트 지식인만 찾아다녔다. 이처럼 팔릴 만한 아이템이 있는 저자를 찾아다니는 것을 ‘낚시형 출판’이라고 하자. 과거에는 낚시를 하다가 대어를 낚을 수 있었지만 급속하게 세상이 바뀌는 지금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앞으로 출판사는 둑부터 막고 물이 고이게 만들어야 한다. 물이 고인 저수지가 있어야 발전을 하고, 농사도 짓고, 물고기도 키울 수 있다. 물이 맑으면 수영을 하겠다고 뛰어드는 사람이 늘어난다. 출판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를 ‘어장형 출판’이라 부르면 어떨까! 이제 편집자는 세컨드 크리에이터들과 같은 어장에서 놀다가 시의성 있는 주제를 발견하면 그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임팩트가 강한 글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시스템을 확보한 출판사는 미래가 두렵지 않을 것이다.

 

2020년 봄부터 2022년 봄까지의 불과 2년 사이에 이러한 세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출판인들은 자신이 간단한 사다리만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엄청난 계곡(캐즘, chasm)’이 발생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전대미문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출판사들은 벌써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신음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몰락해가고 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는 최선의 길은 무엇일까? 바야흐로 1인 크리에이터가 되는 길이다. 내가 공장이 되고 내 생각이 공장이 되는 시대다. 창의력이 있는 사람이 놀기 좋은 세상이 도래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놀 수 없다. 함께 놀아야 한다. 선한 연대부터 이뤄내야 한다. 타인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면 이타적인 마음자세부터 가져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부터 키워야만 한다.

한기호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출판평론가. 격주간 출판전문지 〈기획회의〉를 1999년에 창간해 올해로 24년째 발간해오고 있다. 2010년 한국 최초의 민간 도서관 잡지인 월간 〈학교도서관저널〉을 창간해 학생들을 대상으로 책 읽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책으로 만나는 21세기』, 『새로 쓰는 출판 창업』 등 20여 권과 다수의 공저가 있다.
khhan21@hanmail.net
blog.naver.com/khhan21

 

출판계 이모저모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