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42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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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丘(신구), 여전히 새로운 희망의 언덕

 

 

 

이창경(한국출판학회 고문·신구도서관재단 이사)

 

2023. 04.


 

오직 출판과 교육만을 생각하며 굳은 의지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간 우촌 이종익 선생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출판인으로, 교육자로 선생께서 살아온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참으로 복이 많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전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새로움의 정신으로 좋은 책을 만들어 보급함으로써 인문적 가치를 세상에 구현하였고, 사후에는 후손들이 그 뜻을 받들어 더 널리 펼쳐가고 있으니, 이처럼 보람 있는 삶이 어디 있을까. 선생이 추구한 이상과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치열한 실천 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 삶의 지표가 되고 있다. 선생과 같은 출판인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출판 역사의 자랑이며 우리의 행복이기도 하다. 지금도 선생의 뜻은 신구대학, 신구도서관재단에서 새로운 희망의 언덕으로 여전히 자라고 있다.

 

우촌 이종익 선생. 신구문화사와 신구대학을 설립하여 양서 출판과 전문인 양성에 힘썼다.

우촌 이종익 선생.
신구문화사와 신구대학을 설립하여 양서 출판과 전문인 양성에 힘썼다.

 

 

 

광복동 네거리, 책을 팔던 청년

 

선생께서 학업을 마치고 처음 직장을 잡은 것은 교직이었다. 홍천농업학교 국어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해방 직후 시골 학생들과 보낸 짧은 1년간의 교사 생활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일본 스가모 상업학교에 약 2년간 유학할 당시 학예사 편집사원으로 근무하면서 크게 깨달은 출판의 영향력과 홍천농업학교에서 절실하게 느낀 교육의 필요성, 곧 출판과 교육은 둘이 아니라는 자각은 움직일 수 없는 굳건한 양대 축이 되었다.

 

홍천을 떠나 서울에 올라온 선생은 1948년 8월 인사동에 있었던 박문출판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출판인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서점과 인쇄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던 박문출판사는 개화기 고(古)소설과 번안소설 출판으로 규모를 키웠고 이광수, 현진건 등의 문학 작품도 출간하였다. 입사 당시에는 양주동의 『국문학고전독본』(박문출판사, 1953)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출판에 대한 철저한 기본을 다지는 중요한 시기였다.

 

1951년 봄, 박문출판사도 부산으로 피난길을 떠났다. 『이광수전집』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암담한 날의 연속이었다. 실의에 차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한 방안으로 박문출판사에서 간행한 이광수의 『무정』(1951), 김동인의 『젊은 그들』(1951) 등의 지형(紙型)을 빌려 자비로 출판하기로 했다. 출판사 이름은 ‘신구’였다. 부산 광복동 네거리에 책을 쌓아놓고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책은 불티나게 팔려 불과 며칠 만에 품절되었다. 선생의 나이 28세 때의 일이다. 피난지 부산에서 젊은 출판인의 의지로 신구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고달픈 피난 생활에서 새로운 희망의 언덕은 모든 사람의 꿈이었고, 가야 할 길이기도 했다.

 

 

 

1960년대 경이로운 발전, 이상의 실현

 

1953년 부산에서 환도한 후, 출판계도 전쟁의 상처를 씻고 새출발을 서둘렀다. 그해 10월 신구문화사도 정식 출판 등록을 하였다. 이 해 말에 등록된 출판사 수는 461개사였고 무실적 출판사도 89개사나 되었다. 총 발행 종수가 1,000종을 겨우 넘길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선생께서 가장 활발하게 출판 활동을 펼친 것은 1960년대다. 선생의 나이 40대, 왕성하게 출판의 꿈을 실현하는 시기였고 신구문화사의 전성기였다. 창립 초창기 동화, 교과서, 국문학 이론서 등을 꾸준히 출판하여 인지도를 높여 온 신구문화사는 『한국시인전집』(1957) 발행을 출발로 전집시대를 이끌었다. 신구문화사에서 간행한 『세계전후문학전집』(1960), 『세계의 인간상』(1962), 『한용운전집』(1973) 등 총 19종의 전집 가운데 11종이 이 시기에 간행되었다. 대표 도서 중 하나인 『한국인명대사전』(1967), 『시조문학사전』(1966) 등도 이 시기에 간행되었다. 전집류 가운데는 9종이 문화공보부 우량도서로 선정되었고, 7종이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다. 1960년대 중반에는 사옥도 확장하고 전국에 116개의 직영 지사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신생 출판사로서 놀라운 발전이었다. 그만큼 신구문화사의 책이 보급되었고 그것은 독서로 이어져 지식과 정서의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용운전집』은 한용운 선생의 사상과 문학을 집대성한 최초의 전집이다.

『한용운전집』은 한용운 선생의 사상과 문학을 집대성한 최초의 전집이다.
1973년 경향양서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고 문화공보부 우량도서에 선정되었다.

 

 

 

우촌 선생의 출판 철학

 

선생은 어떤 자세로 책을 만들었는가. 선생이 내면에 간직하고 있었던 출판 정신은 무엇이었을까. 선생은 책이 가야 할 길, 도착 지점을 앞서 예측하고 실현하고 고뇌하는 출판인이었다. 또한 가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 각도에서 치밀하게 현상을 분석하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 반영하는 창의적인 기획자였다. 책의 진화에는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기획자의 창의적 사고와 편집 능력이 크게 작용한다. 출판인으로서 선생의 인격 안에는 강인한 문화주의와 철저한 상업주의가 공존하고 있었다. 이것이 신구문화사만의 가치 있는 책을 만들어낸 핵심 동력이었다.

 

선생은 책이 기본적으로 대중적인 지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곧 특정 계층이 아니라 일반인 누구나 가까이할 수 있고, 그것이 마음의 휴식과 정신의 양식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출판의 지향점을 분명히 하고 있었다. 민족문화의 주춧돌이 되고 국민 정서의 계발에 도움이 될 수 있을 책을 간행하는 것, 그것이었다.

 

“지식이 많은 소수의 사람만이 읽을 수 있는 책도 아니고 대중의 호기심에 영합하는 책도 아닌 말하자면 민족문화의 진전에 주춧돌이 되면서 국민정서의 일반적인 계발에 도움이 될 책을 내자는 것입니다. 저자에 대한 책임과 독자에 대한 친절이야말로 출판인의 자랑스러운 사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1966, 〈출판문화〉 12호, 제15회 서울시문화상 수상소감

 

 

 

새로움을 추구하는 창의 정신

 

책의 생명은 새로움에 있다. 새로움은 기획에서 출발한다. 선생은 현상을 진단하는 예리한 눈과 미래를 내다보는 기획자로서의 통찰력을 지녔다. 그래서 신구문화사의 책은 오랜 생명력을 지닌다. 1962년에 10권으로 완간한 『세계전후문학전집』은 이러한 신구문화사의 출판 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책이다. 염무웅 교수가 “우리 나라 출판사(出版史)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책”이라고 평한 이 전집은 전후 세계 각국의 문학 흐름을 대표하는 최신작들을 수록하고 있다. 일본어 번역판을 참고하지 않고 작품 선정에서 번역까지 우리의 힘으로 진행된 이 전집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시도였다. 당대 대석학으로 구성된 초당적 편집위원, 백여 명이 넘는 번역진이 참여하여 공을 들였다. 이 전집의 기획에 참여한 이어령 교수는 전집의 가치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60년대 이후에 문단에 데뷔한 문인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책이 바로 『세계전후문학전집』이었고 그러기 때문에 이 전집을 논의하지 않고는 한 시대의 문학사적 배경을 올바르게 진단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법이 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세계전후문학전집』을 기획 간행한 이종익 선생은 출판사 사장 이상의 이름으로 기억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세계전후문학전집』

『세계전후문학전집』은 1960년대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였다. 이 책을 읽고 문학의 꿈을 키웠다.

 

 

독자들의 반응도 선풍적이어서 이 전집 출간을 계기로 본격적인 할부 판매를 시작하게 되었다. 최근 이 전집의 편찬 배경, 수록 작품 경향 등에 관한 학계의 논문이 발표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독자가 항상 먼저라는 생각

 

책은 활자 매체다. 이것은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면서 어려운 점이다. 그 장점은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서 시작되고 완성된다. 독자를 책으로 이끄는 친절한 배려, 독자를 이해하고 독자를 존중하는 태도가 편집자의 선한 덕목이다. 선생은 독자의 입장에서 모든 면에 철저를 기했다. 편집자로서 한결같이 모든 책에 적용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1965년에 간행된 『한국의 인간상』 편집에 참여한 이홍우 교수는 선생의 이러한 점을 상기한다.

 

“그가 책을 출판하면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읽기 어려운 책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 독자를 위해야 한다는 한 가지 원칙에만은 절대로 양보함이 없었고 자신이 그 원칙을 실현하는 일에 늘 골몰하는 것 같았다.”

 

『한국의 인간상』

『한국의 인간상』은 신구문화사에서 한국의 역사를 정리하는 방법으로 기획된 첫 번째 출간 도서다.
1965년에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표현하는 일은 1차적으로 저자의 몫이지만 이를 이끌고 보완하는 일은 독자와 더 가까이 있는 편집자의 역할이다. 그래서 책을 만드는 선생은 항상 독자의 곁에서 독자의 생각을 먼저 읽었다.

 

 

 

최고의 품질만을 고집하는 장인 정신

 

책의 내용, 디자인, 장정에서 최고의 품질은 책의 제작 과정을 철저하게 확인하는 데서 나온다. 편집자로서 선생은 기획에서 유통까지 책의 모든 과정에서 완벽을 추구했다. 완벽함은 전문성이 우선이겠지만 묻고 또 묻고, 확인하고 한 번 더 확인하는 철저함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시간이 걸리고 힘든 일이지만 독자에 대한 예의이며 책의 긴 수명을 약속받는 일이기도 했다. 어떤 때는 실무 담당자들을 많이 힘들게 하기도 했고 이중으로 경비를 낭비하는 때도 있었다. 신구문화사의 책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성숙의 과정을 거쳐 독자와 만났다. 한때 신구문화사에서 편집을 담당한 적이 있었던 염무웅 교수의 회고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 이종익 사장은 출판의 기획에서나 심지어 조그만 광고 문안의 작성에서나 매우 신중하고 뜸을 오래 들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그들의 의견을 예리하게 경청하였다.”

 

1962년에 착수하여 5년 만인 1967년 4월에 『한국인명대사전』이 간행되었다. 이 사전은 김민수 교수가 “이 방면의 사전으로서는 최초의 쾌거이거니와 그 레이아웃은 정교하여 특히 출판문화상으로도 추종을 불허하는 백미”라고 평가했듯이 신구문화사의 대표적인 출판물이다. 인물 선정, 내용 기술의 철저는 물론, 사진 자료 수집팀은 2년에 걸쳐 현지 촬영을 하였으며, 각 도서관, 유가족과 후손들을 찾아다녔고 각종 부록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제작에 있어서도 우리는 편찬실과 인쇄소에 각각 대표자 한 사람을 두어 끊임없이 연락을 취하면서 철저히 정확성을 기하고자 노력했다. 평균 10교를 거듭하는 동안 여러 차례 원고를 첨삭하였으며 조판이 진행되는 동안에 작고한 인물들을 계속 추가하였다.” - 『한국인명대사전』 간행사

 

『한국인명대사전』

『한국인명대사전』은 고조선부터 1966년 사이에 작고한 인물 1만 1천여 명을 수록하고 있으며
900여 점의 사진과 300여 점의 새로운 사진을 공개하였다.

 

 

 

인쇄 출판 전문인 양성의 기틀

 

이종익 선생은 신구문화사를 설립하여 책을 만들면서도 출판은 곧 교육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았다. 학교는 공간적으로 제약을 받지만 책은 무한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생각, 그 생각으로 책을 만들었다. 1974년 3월 신구대학교를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35년 전 스물다섯 청년 시절 꿈꾸었던 육영사업의 출발이다. 평소 선생의 삶의 태도였던 ‘무실역행(務實力行)’을 교육 이념으로 삼고, ‘성실, 정직, 근면’을 교훈으로 했다.

 

“언젠가 내가 학교에 찾아가 보니 그는 노동복을 입은 공사 감독이었다. 험준한 산등성이를 깎아 골짜기를 메워가면서 학교 정원 조경을 지휘하고 있었다. 일에 미친 사람 같았다.” - 생명의 전화 이사장 조향록 목사

 

산업사회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실무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였지만 인쇄과와 사진과, 출판과를 개설하여 이 분야 인재를 육성하려 한 것은 양서 출판에 온힘을 쏟아온 선생으로서는 절실한 문제였고 당연한 귀결이었다. 현재 학과명은 각각 그래픽커뮤니케이션과, 사진영상미디어과, 미디어콘텐츠과로 변경되었지만 정신은 그대로 살아 있다. 또한 선생은 교내에 인쇄박물관, 인쇄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연구 기능을 확충할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당대에 실현을 보지는 못했다. 현재 이숭겸 총장은 교내에 우촌박물관을 개관하고 인쇄, 사진, 출판 코너를 별도로 마련하여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우촌박물관

우촌박물관. 신구대학 우촌관에 있다. 민속품을 비롯해 출판, 인쇄, 사진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신구대학에서는 2001년 선생의 출판 정신 계승과 독서 운동 확산을 위하여 전교생을 대상으로 우촌독서대상 독후감 공모사업을 시작하였다. 또한 2004년부터는 전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확대하여 ‘전국 고교생 우촌독서대상’을 제정하여 운영하였다. 이 공모전은 한때 2천 명 정도가 응모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2022년 22회를 개최하였고, 10여 년 계속된 고등학교 대상 독후감 공모는 중단된 상태다.

 

 

 

책과 독자를 잇는 신구도서관재단

 

2022년엔 도서관 전문기업 ㈜이씨오(대표 이사영)에서 ‘책과 사람, 도서관을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문화재단’을 비전으로 신구도서관재단을 설립했다. 선생의 교육과 출판에 대한 뜻과 열정과 뜻을 이어받아 실천해 가는 것을 재단 운영의 좌표로 삼고 있다. 문화 발전에 도서관이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책과 사람을 잇는 독서 촉진 사업, 사람과 도서관을 잇는 도서관 활성화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도서관 사서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가는 ‘더 북리스트’, 도서관의 당면한 과제를 중심으로 미래 도서관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K-FORUM’ 개최, 품격 있는 도서관 전문 웹진 〈THE LIVERARY〉 발간, 신구문화상 제정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여 도서관 활성화와 국민 독서 활성화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

 

 

 

다시, 그리운 우촌 선생

 

선생께서 활발하게 출판 활동을 한 것이 1960년대라면 벌써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매체 환경도 크게 변화하고 책의 형태도 바뀌고 있다. 이제 검색의 시대도 끝나가고 인공지능 챗GTP가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선생은 1966년 제15회 서울시문화상 수상소감에서 “버스 안에서도, 공원 벤치에서도 그리고 상인도, 가정주부도 모두 책을 읽는 광경이란 상상하기만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런 꿈같은 이상에서 출판에 대한 신념은 출발했다고 했다.

 

지금은 어떤가? 아이도, 학생도, 어른도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문명비평가 웬델 베리(Wendell Berry)는 “지금까지 우리는 접속할 수 있는 방대한 규모의 정보 모음을 축적해왔다. 하지만 접속할 수 있다고만 해서 정보가 지식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책은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 이 시대라면 선생은 어떤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어떤 책을 만드셨을까? 그래서 더 그리운 것일지 모른다.

 

* 원고 내 인용 글은 『出版과 敎育에 바친 열정』(우촌이종익추모문집간행위원회, 1992)을 참고하였음.

 

이창경 한국출판학회 고문·신구도서관재단 이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신구대학 미디어콘텐츠과에서 30여 년 출판을 가르쳐왔으며 한국출판학회, 출판문화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신구도서관재단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로 『함께 걷는 책의 숲』(신구문화사, 2022) 등이 있다.
lck198411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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