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이모저모

Vol.24  202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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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작가를 꿈꾼다
출판사에 폭증하는 투고 원고들

 

 

 

김교석(푸른숲 출판사 편집장)

 

2021. 8.


 

팬데믹은 많은 걸 바꿨다. 전 세계인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며 건물 입구마다 신분 및 생체 신호를 검사하는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현실이 되었고, 2년간 사실상 섬나라인 반도에 갇혔다. 도로를 점령한 배달 플랫폼 소속 오토바이와 재택근무 확대 등으로 퇴근길의 풍경도 급변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우리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부국이자 사회 시스템과 국민 의식을 가진 나라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풍경뿐 아니라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변화는 각각의 개인에게 자리 잡은 각자도생의 마인드셋이다. 살아생전에 ‘예측 불가능한 미래’라는 상용어구의 끝판을 체험하면서 자연스레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런 흐름은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매대 구성을 바꿔버렸다. 가장 믿을 수 있는 튼튼한 울타리는 결국 자기 자신이란 자각에 이르자 주식투자, 자본, 부 등이 서점가의 키워드를 독식했다. 나이나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투자든, N잡이든, 유튜브든 조직이나 명함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키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여전히 가장 전통적인 콘텐츠 생산 방식인 출판에 대한 관심 또한 무척 커졌다. 포털이나 유튜브에 ‘원고 투고’ 등의 관련 키워드를 치면 경험담, 비기, 가이드라인을 알려주는 콘텐츠들이 무수히 등장한다.

 

효과적인 원고 투고를 위해서는 출판의 현재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 출판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기획의 시대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10여 년 전부터 글을 파고들어 다듬고, 교정·교열을 보고, 공부를 해서 따지고 바로잡는 편집자의 역할에서, 저자를 섭외해서 잘 보이게 큐레이션 및 패키징을 하는 기획자의 역량으로 무게 추는 계속해서 넘어오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글을 보고 작가를 만나는 일보다 책이 될 만한(팔 수 있을 만한) 저자를 발굴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실제로 1인 출판사부터 팀 간 경쟁이 치열한 대형 출판사까지 기획에 사활을 건다. 출판에서 기획이란 대부분 섭외를 뜻한다. 얼마나 발 빠르게 연락하는가와 그러면서도 얼마나 저자의 출판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기획안을 제시할지가 관건이다.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은하수를 이루고 있는 유튜브의 경우 도서화가 아예 불가능한 장르가 아니라면 1만 단위의 구독자만 보유해도 최소 서너 군데 이상의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의가 들어온다. 인지도 있는 유튜브 채널을 갖고 있는 경우 판매 사이즈가 어느 정도 담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경우 출판사가 갖고 있는 유통망, 마케팅 업력, 편집 노하우, 브랜드보다 저자의 브랜드와 홍보 수단이 더욱 직접적인 결과를 만든다. 물론, 다루는 장르와 회사에 따라 상이할 순 있지만 국내서의 경우 저자의 티켓 파워는 나날이 중요해지고 있다.

 

출판 편집자 출신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제임스 미치너는 『소설』(1991)에서 출판사에 쌓이는 투고 원고가 출간으로 이어질 확률을 ‘900편 중 하나’라고 했다. 그리고 30년이 흐른 지금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종합 출판사에서 무명 저자의 투고 원고가 출판으로 이어질 확률은 그보다 더 낮아졌을 것이라 짐작한다. 푸른숲의 경우 투고 원고가 적어도 하루에 5~6편 들어오지만 지난 3년간 투고 원고를 출판한 경우는 브런치북 대상 수상 경력이 있는 안바다 작가의 『나와 당신의 작은 공항』 단 한 편이다. 물론, 기획서 생산에 자신 있는 출판사나 자산이라 할 수 있는 기획 거리가 적은 신생 출판사, 특정 분야에 특화된 전문 출판사일 경우 이보다 투고 원고가 출간으로 진행될 확률이 훨씬 높을 것이다. 『90년생이 온다』나 『82년생 김지영』 같이 투고 원고가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이어지는 사례는 근래에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편집자 입장에서 투고 원고 검토는 모래밭에서 사금을 채취할 수 있는 확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출판이란 제조업의 특성상 정해진 일정을 최대한 맞춰 생산하면서 동시에,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기획의 레이더를 돌리는 와중에 효율이 낮은 검토 업무도 해야 한다. 우리 출판사를 알아봐주고 원고를 맡겨준 저자이자 너무나 감사한 독자이기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투고한 저자들의 노력과 정성과 염원에 비해 원고 검토를 맡은 담당자들은 대체로 턱없이 부족한 시간과 동기 부여가 안 된 지친 마음으로 투고 원고를 살펴본다.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투고하는 저자의 입장에 잠시 서 보자. 책을 펴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글쓰기가 주는 순수한 창작의 희열이나 자기계발의 성취도 있을 것이고,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을 나누고 싶은 소통의 욕구도 있을 수 있다. 경제적 동기도 무시할 수 없다. 글쓰기는 제약이 가장 적은 창작 행위다. 특별한 장비와 인원, 장소, 기술 습득 등의 제약도 없다. 잘 되면 인세가 발생되고, 유명세 등 또 다른 기회의 실타래가 술술 풀리길 기대할 수 있는 반면 기회비용은 현저히 낮다.

 

그런데 만약 출판을 꿈꾸는 이유가 경제적 활로를 찾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거나 소통 혹은 콘텐츠 생산의 즐거움에 있다면 굳이 출판사의 문만 두드리는 건 더 이상 효율적인 전략이 아니다. 자신의 콘텐츠를 생산하고 불특정 다수의 잠재적 독자(수요자)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출판계가 좋아하는 표현인 ‘단군 이래로’ 가장 많이 널려 있기 때문이다. 유튜브, SNS, 블로그, 브런치는 물론이고 ‘부크크’ 같은 종이책 자가 출판 플랫폼도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강연 시장의 빈자리를 일부 차지하면서 약진한 ‘크몽’, ‘탈잉’ 같은 PDF 출판 플랫폼도 활황이다. 독립 출판도 풀뿌리 같은 커뮤니티를 구축했다. 이처럼 자신을 브랜드로, 자신의 글을 콘텐츠로 대중과 소통하는 길은 무척이나 많은 데다 규모와 이름이 있는 출판사에서 출판한다고 상업적인 성공을 보장받는 것도 절대로 아니다. 다시 말해 출판을 위해 투고를 고려 중이라면 생각을 넓게 가지고 출판의 개념과 형태를 재고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업력을 인정받은 상업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 꿈을 포기할 수 없다면 준비를 달리해야 한다. 현재 출판사에서 찾는 저자는 콘텐츠와 글도 글이지만 해당 분야에서 영향력을 갖고 있거나, 자기만의 마케팅 툴이 있거나, 프로필상 포인트가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투고의 성사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프로필을 매력적으로 가꿔야 한다. 편집자 입장에서 기획의 주제 다음에는 글보다 저자가 누군지 먼저 눈이 가기 마련이다. 오해하면 안 될 것이 인맥이나 성과의 과시가 아니라, 기획한 원고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경력을 갖고 있거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플랫폼에 관한 이야기다. 브런치 연재물을 기획으로 성사시킨 성공 사례 중 한 권인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는 글도 무척이나 좋지만, 저자가 MBC 라디오 PD라는 점이 글의 주제를 돋워주는 매력 포인트로 작동했다. 많은 수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소통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면 그 자체가 구미가 당기는 마케팅 요소다.

 

즉,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들려줄 수 있는 저자인지 어필하거나, 출판했을 경우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다고 추산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브랜드를 먼저 키워야 한다. 다시 말해, 해당 영역의 전문가라 할 수 있거나, 유의미한 소통의 창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유력한 출판사의 간택을 받았다고 한들 대중에게 발견되기까지는 더욱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불확실성을 돌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무기가 바로 저자의 티켓 파워다. 훗날 나올 책을 위해서라도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플랫폼과 영향력을 갖추는 일은 필수다.

 

그다음에는 독자에게 시선을 두는 훈련이 필요하다. 글쓰기와 출판의 가장 큰 차이는 돈을 지불하는 독자의 존재 여부다. 투고 원고를 검토하다 보면 때때로 현재 출판 트렌드에 조금씩 뒤처지는 경향이 있다. 10여 년 전, 여행 에세이가 에세이 매대를 독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감성 충만한 포토 에세이와 퇴사 후 비행기를 잡아타고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이는 설렘과 용기와 로망으로 띄운 풍선은 이미 몇 년 전에 터지고 지금은 여행서 코너 끄트머리에 남겨졌다. 그럼에도 여행 에세이는 팬데믹 이전까지 정말 꾸준하게 들어왔다.

 

가장 흔한 케이스가 개인적 상황에 심취하거나 콘텐츠에 함몰되는 경우다. 번역 기획을 제외한 투고 원고의 대표 장르가 글쓰기, 독서 에세이, 소설이다. 육아를 하면서 생긴 변화와 깨달음을 담은 에세이, 육아법 기획들도 최근 치고 올라와 이 리스트에 포함될 수 있을 듯하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젊어서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자기계발 에세이들도 눈에 띄게 늘었다. 그간 오래도록 공부한 내용을 정리했다는 원고들도 꾸준하다. 이런 유형의 원고들이 공통으로 갖는 문제는 관점과 정보가 지극히 개인적이란 점이다.

 

그러다 보니 기획서를 쓸 때 이 책의 독자가 어떤 특별한 내용을 얻을 수 있는지 정보 값을 내세우는 편이 유리하다. 일상 에세이라고 하더라도 글을 읽는 사람이 배우거나 깨달을 수 있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른바 출판에서 말하는 재미는 대부분의 경우 정보의 유무에서 판가름이 난다. 그러니 내 경험과 공부를 소재로 글을 쓰고 싶다면 내가 느낀 점과 경험의 소중함보다는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을지, 더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흔히들 서문과 목차가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이유는 이러한 소구점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았기 때문이다.

 

투고 형식과 원고 분량도 중요하다. 코로나 시대 출판사들이 맞은 직격탄은 원자잿값 폭등이다. 단행본 한 권 분량으로 200자 원고지 800~900장을 넘는다면 이제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PC 통신 시절의 문서 양식에다가 이력서를 쓰듯 기획서를 작성한 경우보다는 한눈에 들어오는 PDF로 정리한 깔끔한 파일이 더 눈에 잘 띈다. 기획서는 한 장이면 충분하다. 앞서 언급한 저자 소개와 저자 차원의 마케팅 툴, 어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인지 등의 기획 의도가 충실히 담겨 있으면 된다.

 

마지막은 정중함이다. 이 또한 업무상 제안인데 비즈니스 미팅에 격식을 차려 나가는 것과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투고 원고 검토 업무는 지치고 별 기대 없는 상황에서 짬을 내어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찰나의 첫인상이 운명을 좌우한다. 정말 많은 투고 원고들이 놀랍게도 한두 줄 쓰여 있거나 아예 정말 공란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숱한 거절의 역사가 쌓이다 보니 지쳤을 것이라 이해는 하지만 기획의 시대를 살아가는 편집자들 또한 출간 제안의 거절과 무시가 일상 업무 중 하나다. 우리의 경우 중국 역사를 통해 배웠듯 삼세번까지는 거절을 당하지 않았단 생각으로 재차 문을 두드린다. 그렇게 소진된 상태에서 정성과 진정성이 담긴 메일을 볼 때와 그저 첨부 파일만 달랑 있는 원고를 마주하는 태도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삐라를 뿌리듯 살포하며 얻어걸려보자는 저인망식 조업 마인드는 금물이다. 코드가 맞을 만한 출판사를 찾아서 맞춤 투고하는 것은 원고에 대한 예의다.

 

투고 원고는 언제나 넘쳐났지만 코로나19 시대를 관통하면서 보다 늘어났다. 저자의 연령층이 보다 낮아졌으며, 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다. 좋은 현상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따르면 납본 기준 국내 출간 종수는 2015년 4만 5,213종에서 2020년 6만 7,792종으로 5년 새 무려 45.5% 폭증했을 만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출판을 택하는 경우도 실제로 늘어났다. 1인 출판과 플랫폼 비즈니스의 활성화 덕분이다. 그러나 고전적인 개념의 투고는 여전히 바늘구멍이다. 아마도 추세를 볼 때 바늘의 호수는 계속 작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운 확률에 꿈을 거는 이유는 ‘책’에 갖는 믿음 때문이다. 편집자들이 확률과 효율의 문제를 차치하고 언제나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는 이유도 같다. 그러니 부디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언젠가 책을 매개로 기꺼이 튼튼한 실과 바늘로 엮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건승을 기원한다.

김교석(푸른숲 출판사 편집장)

푸른숲 출판사 편집장 겸 TV 칼럼니스트.
한국방송대상, 서울드라마어워즈, 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mcwivern@pruns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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