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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7  20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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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책방, 모두의 책방, 그림책방노란우산

 

 

 

이진(그림책방노란우산 대표)

 

2021. 11.


 

2021년 9월 13일 월요일, 책방에 불이 났습니다.

 

제주 그림책방노란우산 서귀포점이 월요일 오후에 잠깐 문을 여는 날이었습니다. 오전 11시 45분경 그림책방노란우산 제주점으로 다급한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책방 주인인지 확인하면서 책방에 불이 났는데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다며 빨리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너무 믿기지 않았지만 다급한 목소리 때문에 생각보다 큰 불이 났구나 싶었습니다.

 

화재 신고를 해야 할 만큼 큰 불인지 알 수 없어서 일단 가까이 있는 지인에게 연락을 먼저 하였습니다. 책방 일을 도와주시던 선생님께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으셔서, 마침 안채에 잠시 머물고 계시던 책방이음 대표님께 전화하여 화재 상황을 알아봐달라고 부탁드리고, 황급히 서귀포점으로 갔습니다. 차로 20분 거리였지만 1시간은 걸린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소방차가 와서 화재를 진압하고 있었고, 내부는 연기가 가득한 상태였습니다. 가장 걱정이 되었던 인명 피해와 이웃 피해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금은 안심이 되었지만, 책방 내부가 모두 타거나 물에 젖은 상황을 보니 막막한 심정이었습니다.

 

현장 감식반과 수사관과의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 제주점으로 연락을 주신 분이 119로 신고도 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근 직장인이었는데 지나가던 중 화재를 목격하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책방과 119에 바로 연락을 해주셔서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화재 후 외부, 화재 철거 후 서가 모습


화재 후 외부, 화재 철거 후 서가 모습

 

7년 전 제주 서쪽 시골에 카페를 열고 한편에 그림책 서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카페와 함께 그림책방을 운영해도 좋겠다는 지인의 말을 들은 이후 저희는 그저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꼭 행동으로 옮겨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카페에 오는 손님이 커피를 마시고 좋은 그림책도 만날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시골에 카페를 열더니 책방까지 하겠다는 저희 부부를 보고서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셨습니다. 시가지에서나 할 법한 일인데 이런 시골에 누가 찾아오겠냐며 걱정 어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일본으로 그림책 투어를 하러 가서 만난 그림책 갤러리,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마을을 다녀오며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가능성을 보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장소는 모두 큰 도시 시가지가 아닌 한적한 시골이나 산골에 있었고, 그 공간 안에는 꼭 카페와 그림책서점이 함께 있었습니다. 견학을 다녀온 후 그림책 전면이 보일 수 있는 서가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공간 효율성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림책이 제일 빛날 수 있는 배치를 위해 책 사이즈에 맞추어 책장을 짰습니다. 그림책을 소개하는 마음으로, 그림책을 제대로 알려 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전면 배치할 수 있는 서가를 만들었습니다. 자본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이라 전문 목수에게 맡길 형편이 되지 않아 저희끼리 머리를 모아 구두장이 요정처럼 밤에는 공사를 하고 낮에는 카페 장사를 하며 책방을 준비했습니다.

 

화재 전 내부, 서가 모습


화재 전 내부, 서가 모습

 

제주에 그림책방이 생겼다는 소식이 그림책을 사랑하는 분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어 제주에 여행을 오면 한 번쯤은 들러 가는 곳이 되었고, 그림책 작가와 그림책 출판사 관계자분들도 많이 들러 주셨습니다. 작가님들이 오실 땐 작가와의 만남 자리를 갖기도 했습니다. 시골 작은 책방에서 그렇게 많은 북 토크와 행사를 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제주시에서, 제주 동쪽에서 한라산을 넘어 책방 행사에 참여하러 오시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제주 분들 중에는 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곳은 장거리로 생각하고 잘 움직이지 않으려는 분들이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제주시에 그림책방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너무 먼 게 흠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지역의 주민들이 이용하는 동네서점이 되고 싶었는데 여전히 관광 책방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주시와 접근성이 좋은 곳에 책방을 하나 더 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 원화를 보여줄 수 있는 작은 전시공간도 마련하고 다양한 도서문화 활동들을 기획하여 책방이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닌 책을 통해 문화와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꿈꾸며 2호점인 제주시 광령점을 오픈했습니다.

 

엄마들과 아빠·삼촌들과 청소년들의 독서모임을 통해 건강한 몸, 건강한 정신, 건강한 환경, 건강한 사회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꿈꾸게 되었습니다. 책방지기 부부가 간호사와 목사였던 이력 때문일까요? 저흰 책방이 중심인 그런 마을을 꿈꿉니다. 마을까지는 아니더라도 느슨한 공동체를 꿈꿉니다. 지치고 아픈 사람들이 와서 쉬고, 치유 받고, 힐링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습니다. 제주는 자연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울창한 숲과 수백 개의 오름과 너무나 아름다운 바다와 한라산이 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힘과 그림책으로 아프고 지친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고, 자연에서 온 먹거리와 운동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함께 이루어갈 친구들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그림책방노란우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화재로 수천 권의 그림책과 함께 7년 동안 쌓아놓은 추억들이 함께 불에 타 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몇 번을 확인하고 꿈인가도 싶어 언제 꿈이 깨려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화가 났다가 원망도 했다가 멍해져 있었습니다. 내가 책방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부터 ‘무얼 잘못했을까? 먼지 청소를 하지 않았을까? 전기 점검을 정기적으로 안 받아서 그랬을까? 왜 화재보험은 안 들었을까? 내가 무얼 잘못한 걸까?’하는 자책까지 들어 황망한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중에도 혹시나 책방에 찾아오신 손님이 이런 책방 모습을 보면 어쩌나 싶어 sns에 리모델링 공사를 하오니 문을 열지 못한다는 소식을 올렸습니다. 그 소식을 보신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의 책방 대표님 한 분이 왜 갑자기 리모델링을 하냐며 연락이 와서 화재 소식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신 대표님이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운영위원회에 알리셨고,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에서 모금 운동을 해주셨습니다. 처음엔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안에서 모금을 하신다 하여 코로나로 가뜩이나 동네책방들도 힘든데 이런 일로 심려 끼치는 게 너무나 면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화재 소식이 그림책협회에, 한국그림책출판협회에, 대한독서문화예술협회에, 꿀시사회에 퍼지면서 모금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더니 온 sns에 그림책방노란우산의 후원 메시지를 담은 노랑이 퍼지기 시작하고 신문에도 나왔습니다. 책방에 불이 나더니 후원의 불이 일어났습니다.

 

모금이 시작하고 31시간 만에 5천만 원이 넘는 금액이 모였습니다. 너무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 어찌해야 할지 또 이걸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고 가시방석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여러 선생님들과 대표님들, 작가님들이 빨리 재건하는 게 갚는 거라며 격려해주셨고, 그림책방노란우산에서의 추억을 아쉬워하시며 다시 복귀에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저희 책방의 화재 소식을 들으신 인테리어 전문가 한 분이 돕고 싶다는 말씀을 이웃 책방 대표님을 통해 전해주셨습니다. 어떻게 공사를 진행할지 막막했었는데 이렇게 도와주시겠다는 분이 나타나주셨습니다. 또한, 목공기술로, 전기기술로, 철공기술로 도움이 되는 일을 돕겠다며 일부러 시간을 조율해서 자기 일처럼 그림책방노란우산 복구를 도와주시고 있습니다. 잿더미가 된 화재 현장을 철거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를 때, 이를 알려주시고 상의할 수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예전보다 더 따뜻하고 멋진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복구 중인 외부, 내부 모습


복구 중인 외부, 내부 모습

 

이제 그림책방노란우산은 저희 개인의 책방이 아닌 모두의 책방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화재 전부터 그림책방을 찾아오는 모든 분들이 쉼을 얻고 기운을 받아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건강하고 맛있는 음료와 음식을 먹고, 그림책으로 마음을 나누며, 하룻밤 쉬어도 가고, 소소하지만 멋진 전시회도 보고, 음악 공연이나 연극 등의 행사도 간간이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혼자는 할 수 없어 함께 운영하는 책방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방이라는 공간에 이러한 사람들이 함께 꾸려가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화재 후 후원으로 다시 시작한 이곳이 이제는 생각했던 그런 공간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 책방을 만들 때에도 책방을 만들기 위한 ‘방법’보다 ‘사람’을 먼저 소개받았던 것이 그림책방노란우산이 된 것처럼, 책방 삶 공동체를 만드는 길에 이렇게 사람들이 저희 곁에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고 든든합니다.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책방을 열고 싶습니다.

 

책방에 불이 났는데 힘든 일보다 감사한 일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번 모금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고서 많은 분들이 너무나 행복하고 따뜻한 순간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각박하고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싶어 희망이 보였다고 해주셨습니다. 제주의 작은 책방의 일에 관심 가져 주시고, 응원해주시는 걸 보면서 참 이런 일들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책방을 사랑하는 분들이 이렇게 힘이 세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곧 그림책방노란우산 서귀포점이 다시 오픈합니다.

 

힘들고 지치셨나요? 많은 분들의 후원과 사랑으로 다시 시작하는 그림책방노란우산에 언제든 찾아오세요. 따뜻한 쉼이 되고 치유와 힐링이 되는 책방이 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모두의 책방 그림책방노란우산입니다.

이진

 

이진(그림책방노란우산 대표)

남해의 섬 나로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열한 살 때 부모님 손에 이끌려 뭍으로 이주했습니다. 대학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병원에서 일했습니다. 2015년 제주도로 이주하여 다시 섬사람이 되었으며, 두 아들을 낳아 기르면서 그림책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어 결국 그림책 전문 책방 주인이 되었습니다. 2020년에는 어린 시절 섬의 추억을 담은 첫 그림책 『엄마의 섬』을 보림출판사에서 출간하였습니다. 현재 그림책 작가와 강사로 활동하면서 제주 그림책방노란우산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Instagram @jinyalllim
jiny72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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