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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1  2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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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사회에서 수평 사회로, 독자가 작가를 만든다

 

 

 

박현영(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소장)

 

202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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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와 책

 

미래의 핵심은 ‘혼자 산다’와 ‘오래 산다’로 요약된다. 1인 가구, 고령화 사회와 일맥상통하는 말이지만 꼭 같은 말은 아니다. 핵심은 지금 ‘혼자 산다’, ‘오래 산다’가 아니라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 예상한다는 것이다. 그 예상이 현재의 선택을 결정한다. 지금은 혼자지만 언젠가 누구와 함께 살리라 기대하는 사람과 앞으로도 계속 혼자 살 거라 예상하는 사람의 선택지는 다르다. 후자의 경우 전세나 집을 사는 것을 고려한다. 물건을 하나 사더라도 신중하게 고른다. 공기청정기,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구매를 고려하는가 하면, 큰 침대 사는 것을 뒤로 미루지 않고 매트리스에 투자한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반려’의 대상을 찾는다.

 

반려의 상승은 코로나19 이전부터 이미 포착되었다. 2019년 1월 발간된 〈생활변화관측지〉 1호에 ‘반려의 상승과 반려 중에 가장 상승 폭이 높은 것은 반려 식물이다’라는 내용이 실려 있다. 4년이 지났고 그 사이 코로나를 겪었다. 현재 반려 식물은 일반화되었고 식물 재배기 시장도 커졌다. 반려는 트렌드가 아니라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반려’라는 키워드의 언급량도 2배 이상 증가하였고, 반려 대상의 폭도 점차 넓어진다. 동물로는 파충류, 물고기로 확장되고, 반려 식물에 이어 반려 기기까지 반려의 대상에 합류한다.

 

트렌드를 넘어, 문화로서 자리하는 반려 존재

트렌드를 넘어, 문화로서 자리하는 반려 존재

* ‘반려(G)’는 ‘반려’, ‘반려 동물’, ‘반려 기기’, ‘반려 식물’ 등의 합.
출처: 생활변화관측소, 커뮤니티 & 블로그, 2017.01.01.~2022.07.31.

 

우리를 반려해주는 다양한 존재들

우리를 반려해주는 다양한 존재들

* ‘반려(G)’는 ‘반려’, ‘반려 동물’, ‘반려 기기’, ‘반려 식물’ 등의 합.
출처: 생활변화관측소, 커뮤니티 & 블로그, 2017.01.01.~2022.07.31.

 

 

혼자, 오래 살 것을 기대하는 인간은 ‘애착’의 대상을 찾는다. 그 대상이 꼭 인간일 필요는 없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기기든, 나와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날로그적인, 가장 근본적인 콘텐츠로서 ‘책’은 반려의 대상이다. 책의 고유함 - 손에 잡히는 물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시간을 들여 읽어내야 하는 콘텐츠를 담고 있다는 특성은 책의 반려성과 동의어다. 책은 혼자만의 시공간을 완성시킨다. 책이 어디에 어떻게 놓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훌륭한 출판사, 위대한 작가의 책이 아니라 개인의 시공간을 채우는 책, 개인이 아카이브로 쌓아서 완성시키는 책, 개인이 기여하여 같이 만드는 책, 이 책을 사랑한다는 것이 나의 정체성이 되는 책, 나를 나답게 만드는 그 책이 필요하다.

 

아이돌 팬덤에서도 빠질 수 없는 것이 팬이다. 아이돌만 중요하고 나는 뒤로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돌을 사랑하는 나를 드러낸다. 아이돌의 서사를 내가 만들어 간다. 아이돌 없는 아이돌 생일 파티를 하며 팬끼리 유대감을 갖는다. 최고의 야구단 별칭이 바뀌었다. ‘최강 ○○’이 아니라 ‘관종 ○○’, 관심종자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관중이 가장 많을 때 경기를 잘한다는 뜻으로 관중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함을 드러낸다. 따라서 내가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책, 독자의 요구에 따라 다음 시리즈가 기획되는 책, 책을 만든 사람들이 상상되는 책,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선반 위에 내가 직접 고른 조명과 이파리가 넓은 나의 반려 식물과 나란히 놓여 있는 동반자 책이 필요하다.

 

 

 

‘루틴’과 독서

 

Z세대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로 열심히 사는 세대라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어가 ‘갓생’이다. 갓생은 신이라는 뜻의 갓(GOD)과 인생의 생(生)을 합친 단어로 신과 같은 삶을 뜻하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한 삶’이 아니라 ‘과정적으로 부지런히 사는 삶’을 말한다. 갓생은 이런 식으로 쓰인다.

 

“갓생 살기 프로젝트”, “갓생 가자!”, “겨울 방학 때 정말 갓생 살 거예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촘촘한 계획표로 채우고 이를 실천할 것을 선언하고 실천한 뒤 인증을 한다. 갓생은 타인에 의해 주어진 숙제를 검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갓생은 스스로의 시간에, 스스로 정한 규칙을 적용하고, 스스로 뿌듯해 하고, 스스로 인증하는 시간 관리다.

 

핵심은 시간의 운용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공동체의 시대가 아니라 개인의 시대가 되었을 때, 개인은 시간의 주인성을 획득한다. 좋은 점은 개인이 시간 운용의 주체라는 것이고, 안타까운 점은 그리하여 개인이 시간에 대한 강박을 갖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 52시간제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정점을 찍은 시간관의 변화는 우리 사회 많은 변화의 근간이다. 개인의 시간이 증가했고, 시간의 주도권을 조직이 아니라 개인이 쥐게 되면서, 자신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자 하는 선언적 키워드 ‘루틴’의 사용이 늘었다.

 

‘갓생’과 ‘루틴’은 이 시대의 성취와 성취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론을 대표한다. 이 시대의 성취는 꾸준함 그 자체다. 결과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없는 세상인데 효율적인 성취가 중요하다. 하여, 달성 가능한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성취 과정을 기록함으로 나의 효능감을 획득한다. 꾸준히 하는 행위 자체를 목표로 삼는다면 그 목표는 달성 가능하다. 어려운 것은 꾸준히 할 수 없다. 마라톤이 아니라 즐겁게 30분 걷기/달리기 코칭 앱 ‘런데이’가 뜨는 이유다. 마라톤 완주가 목표이고 완주하기 위해 세 달을 연습한다면 세 달은 비효율적인 과정으로 남고 마라톤 완주는 실패와 성공 두 가지 갈래로 판가름 난다. 하지만 세 달 동안 30분 달리기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다면 매일 매일이 오늘의 성취다. ‘과정’이 ‘결과’보다 쉽다고는 할 수 없지만 달성 가능성은 높다. ‘성실’이 ‘창의’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실은 증명이 가능하다. 100점짜리 창의성은 사진 한 장으로 보여주기 어렵지만 100일짜리 성실함은 논쟁 없이 확인이 가능하다. 효율적인 성취라는 열망과 성취할 것이 없다는 현실 사이의 갭은 매일 매일 행하는 루틴을 통해 메워진다. 루틴의 궁극적 목표는 마음의 안정과 평화다.

 

책만큼 루틴의 좋은 친구도 없다. 독서는 루틴의 창시자다. ‘의지를 갖고 매일 매일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을 하나만 꼽는다면 단연 독서다. 책이 아니라 책과 함께 하는 루틴을, 루틴을 통해 완성되는 갓생을 팔아야 한다. 갓생은 특정 세대의 트렌드가 아니라 시대의 트렌드다. 트렌드는 특정 연도 이후에 태어난 Z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먼저 알고, 먼저 받아들이고, 먼저 행할 가능성이 높지만 시대의 흐름은 누구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미라클 모닝 챌린지 1일 차, 2일 차, ○○일 차로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를 매일 바꾸는 사람들, 특정 이벤트가 아니라 꾸준한 관리를 위해서 피부과를 방문하는 사람들, 정해진 기간 동안 꾸준히 한 줄이라도 블로그를 쓰기만 하면 성공이라고 말하는 네이버블로그 챌린지…. 모두 정해진 기간 동안 매일매일, 대단한 일이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몇 등 안에 드는 사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행동한 사람에게 박수를 치는 방식이다. 우리는 책을 읽는 독자들을 독서 루틴으로 연결하고 책을 읽는 지속적인 행위를 독려해야 한다. 책을 읽고 난 후의 훌륭한 감상문이 아니라 책을 지속적으로 읽은 14일, 길어도 한 달 이하의 기간 그 자체에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공정’과 작가

 

‘공정성’은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피크를 만드는 키워드이다. 긴 시간 축으로 보았을 때, ‘공정성’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상승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이슈에 피크가 만들어지고 그 피크가 점점 커진다. 공정성은 주로 논란이 있을 때 피크를 만드는데, 최근에 가장 큰 피크를 만든 이슈는 엠넷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킹덤: 레전더리 워〉의 공정성 이슈다. 아이돌 그룹의 경연 대회인 킹덤은 시청자 평가와 전문가 평가를 합산해서 최종 평가를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전문가 심사위원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룹별 무대 세팅이 상이했다는 것도 공정성 논란을 일으켰지만 평가 방식에서는 전문가 명단과 그 기준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전문가 평가는 정말 화나는데. 당장 누군지+기준 뭔지 공개하시죠? 공정성 논란 날 만한데, 이거.”

 

공정성의 통용되는 뜻은 정의로움이 아니라 설명 가능한 평가 기준이다. 공정한 평가에서 필요한 것은 전문가의 권위가 아니라 공정한 차별이다. 평가 기준이 ‘교수님이 판단하신 창의력’일 때와 ‘정해진 날짜 안에, 3개의 논지를 갖고, 1,000~1,200자 내로 작성한 글’일 때 무엇이 공정하다고 느끼는가? 전자와 같은 평가 기준이 발표된다면 학생들은 100% 물을 것이다. ‘교수님이 판단하시는 창의력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작가는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웹소설 플랫폼에서 작가는 독자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전문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진입 장벽도 낮아서 플랫폼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작가는 아니다. 작가의 조건은 독자의 반응이다. 당신이 쓴 소설을 많은 독자가 읽고 반응해 준다면 당신은 작가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냥 습작해 본 사람이다. 이전 작가에게도 독자가 중요했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전에 작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문단이었다.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작가 ‘싱숑’을 검색하면 데뷔 연도가 나오지 않지만 일반적인 시인이나 소설가는 데뷔 연도가 명확히 나온다. ‘2002년 〈현대문학〉을 통해서 등단’이라고 한다면 2002년에 〈현대문학〉에서 수여하는 상을 받으면서 정식으로 작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상은 독자들과는 무관한 것이다. 독자는 아직 그 작가의 작품을 한 편도 읽은 적이 없던 때이기 때문이다.

 

플랫폼을 통해 독자의 반응에 의해 시작하는 웹소설은 문단이라는 권력을 대체하는 등단 방식이다. 웹소설 플랫폼의 회원은 누구나 후보 작가다. 한 장르를 깊이 판 마니아들은 ‘내가 한 번 써 볼까?’라는 생각을 한다. 전업 작가를 꿈꾸어서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돈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다. 웹소설 플랫폼은 그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아도 쓰고 싶은 사람은 많은 시대이다. 웹소설 플랫폼의 현재 독자는 미래 작가를 꿈꾼다. 지금의 작가들도 과거의 독자였고, 그들도 습작의 과정을 거쳐 작가가 되었고, 작가가 된 뒤 플랫폼으로부터 다운로드와 조회 수에 따라, 즉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산을 받고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소비자를 단순히 소비하는 사람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파트너로 끌어들여야 한다. 내가 아는 것보다 내가 만든 것에 더 애정이 간다. 나를 위해 준비된 것보다 내가 직접 참여한 것에 마음이 가는 법이다. 출판사 플랫폼은 출판사가 만든 상품을 구경하는 곳일 수도 있고, 내가 만든 상품을 출판하는 곳일 수도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가 모여 있는 플랫폼의 회원이 되고 싶다. 그 곳에 유료 멤버십 회원이 되어 혜택도 누리고, 때로는 콘텐츠 메이커가 되어 돈을 받고 싶다. 돈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좋은 관계는 나도 돈을 벌고, 상대도 돈을 벌게 만드는 것이다. 웹소설 플랫폼은 독자를 왕으로 모시지 않았다. 대신 독자를 작가로 만들었다.

 

박현영

박현영 바이브컴퍼니 생활변화관측소 소장

데이터라는 숫자를 이야기라는 글로 쓰는 것을 좋아한다. 좋은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꿈을 꾼다. 『2023 트렌드 노트』, 『2022 트렌드 노트』, 『2021 트렌드 노트』, 『2020 트렌드 노트』, 『2019 트렌드 노트』, 『2018 트렌드 노트』의 공저자이다.
hypark@vai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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