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 2020. 04.
어린이책 콘텐츠가 독자를 확장해 나가는 길
김문정(시공주니어)
2020. 04.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해석되며 리메이크되는 명작들
2020년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영화 〈기생충〉이었다. 기생충과 함께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 중에 〈작은 아씨들〉이 있었는데, 19세기 중반에 발표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소설 『작은 아씨들』이 영화의 원작이다. 이야기 속 자매들 중 누가 자신과 가장 비슷한지 비교해보는 것은 전 세계 과거, 현재, 미래의 소녀들의 통과의례가 아닐까 싶다. 그 힘이 열 번 가까이 리메이크되며 진화한 캐릭터들은 시대에 호응, 새로운 화두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문학의 힘, 책의 힘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로알드 달은 20세기를 빛낸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 중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영화, 뮤지컬로 제작되어 성공을 거두었고,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애니메이션 시리즈 제작을 발표했다. 〈마틸다〉는 국내 뮤지컬계에서 무대에 올리고 싶어 하는 작품 1위, 또 관람객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뮤지컬로도 1위에 이름을 올리곤 했는데 ‘동화’가 원작임에도 불구하고 2018년 가을 국내 무대에 올라 5개월간 화제 속에서 성인 뮤지컬 관객들은 물론 독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1990년대 중반 영화로도 사랑받았던 〈마틸다〉는 최근 뮤지컬을 기반으로 한 영화 제작이 발표되어 주목을 받았다.
영화, 뮤지컬 등으로 제작되어 사랑받고 있는 로알드 달의 동화들
국내에도 비슷한 예가 있는데 2007년 100쇄 돌파에 이어 2011년 100만 부를 돌파한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명필름의 기획, 제작으로 2011년 애니메이션으로 개봉하였다. 아이유가 부른 주제가도 사랑을 받았고, 해외에도 수출이 되었으며,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그림책이 각색되어 출간되었다. 문소리, 유승호, 최민식, 박철민 등의 배우진이 목소리로 참여하여 2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60년 한국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새 역사를 기록했다. 이어 2015년에는 뮤지컬로도 무대에 올려졌다. 이러한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예들은 일단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원작, 즉 책이 큰 성공을 거둔 후 이어진 성과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오싹하고, 슬프고, 재미있고, 기이한 단편 동화가 가족 뮤지컬로
2008년 웅진주니어 문학상을 받으며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작가 송미경.작가의 단편 동화집 『어떤 아이가』는 시공주니어에서 2013년에 출간되었고, 그해 제54회 한국출판문화 대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이후 한국 최초로 2017년 북트러스트 ‘올해의 외국 도서’ 최종 후보작에 오르며 해외의 주목도 이끌었다. 황선미 작가가 ‘오싹하고 슬프고 재미있고 기이하다.’는 평을 하였고, 김지은 평론가는 한국 아동문학에서의 송미경 작가만이 가진 ‘환상성’에 주목하며 작가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였다.
『어떤 아이가』에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 중 하나인 「어른동생」은 짤막한 단편이다. 감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한 주인공 열두 살 하루는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다섯 살짜리 남동생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엿듣게 된다. 너무나 어른스러운 말투로 어린애인 척하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동생. 동생이 통화를 한 사람은 서른넷의 삼촌인데 뭔가 이상하다. 삼촌은 몸만 어른일 뿐 마음은 열세 살에 머물러 있고, 동생은 날 때부터 이미 서른넷이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감당해야 하는 하루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어떤 아이가』(시공주니어, 2013)의 책표지
가족 뮤지컬 〈어른 동생〉(2017)의 포스터
작품의 완성도에 반해 일반적인 동화의 결을 벗어났던 터라 대중성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이 작품을 한 연출가가 눈여겨보고 회사로 연락해왔고, 미팅을 했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 여러 제안을 해본 적도 있고, 제안을 받은 적도 있었다. 계약에 이르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계약까지 했어도 실제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영화화되지 못하고, 드라마화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설사 무대에 오른다 하여도 기대에 부풀었던 것에 비해 결과는 많이 아쉬웠다. 공연계의 현실이 그러했던 것 같다.
아이들만을 겨냥한 작품이 아닌 가족 뮤지컬로 기획하였는데 12장 남짓 되는 동화를 60분짜리 작품으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 가능할까 우려도 되었지만 어른 아이와 아이 어른이 나온다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무대에 올릴 원작을 찾았다고 말하는 연출가가 아니라 동화 한 편의 완성도에 몰입하여 작가의 전작을 읽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파악해보고자 한 연출가의 진심이 느껴졌다.
각색 작업에 들어간 이후 연출가와 작가는 공동 작업을 하다시피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원작을 최대한 반영하며 행간을 메우는 극단과, 무대에 올릴 각색은 연출가의 역할이라며 응원과 격려를 마다하지 않은 작가의 합이 열기를 더해 갔고, 홍보에 힘을 보탰다. 프레스콜에서도 출판 담당 기자와 공연 담당 기자가 함께 초대되어 기사화되도록 하였고, 공연 초반에 관객들의 반응을 꼼꼼하게 모니터링하여 조금씩 강약 조절을 해나가며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연출과 배우들의 수고로움이 요구되는 과정이었다.
이런 마음이 통해서일까 처음에는 한 달을 예정한 공연이 입소문이 나면서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또 주말에는 가족이 총출동하는 관람이 이어졌다. 재관람도 이어지면서 공연은 계속 이어졌고, 작가를 초대한 GV 행사의 티켓은 조기 마감되기도 하여 소극장용 가족 뮤지컬로 자리 잡을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고, 공연은 3년 가까이 이어졌다.
〈어른 동생〉 공연을 마친 작가, 연출가, 배우들
가족 뮤지컬 〈어른 동생〉의 한 장면
『어떤 아이가』 오디오북을 녹음 중인송미경 작가
무엇보다 짧지만 흥미로운 상상력을 가지고 독자에게 호기심을 가지도록 한 원작과 원작의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완성도 있는 노래들을 작곡하여, 곡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작품을 완성한 것을 독자들과 관객들은 놓치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에 언제든 볼 수 있는 콘텐츠와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연의 경쟁력이 통했다. 지방 극단에 극 자체의 라이선스 판매도 이루는 기쁨도 있었다.
공연으로 인연을 맺은 배우들과의 인연으로 오디오북 제작을 기획하고 도전했다. 다섯 편의 작품이 수록된 단편집이었기에 작가와 배우들이 각각 한 편씩 낭독하여 한 권을 완성했다. 공연을 본 독자에게는 특별한 추억으로 책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고, 독자들에게는 작가의 음성으로 듣게 되는 동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작가는 물론 배우들에게도 남다른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좋은 작품은 다양한 형태로 리메이크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 권의 책이 뮤지컬로, 오디오북으로 기획되고 실현되는 것을 경험하며 새삼 콘텐츠의 놀라운 생명력을 깨달았다.
이 인연으로 가족 뮤지컬을 꾸준히 무대에 올리겠다는 극단의 의지와 원작자와의 좋은 호흡은 작가의 또 다른 책인 『봄날의 곰』 공연화로도 이어졌다. 이 역시 좋은 반응을 얻길 기대해본다. 또 오랜 공연을 해왔던 〈어른 동생〉도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재정비하여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로알드 달의 경우처럼 송미경 작가나 다른 많은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다른 분야의 창작들과 협업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봄날의 곰〉(2020) 공연 포스터
『봄날의 곰』(문학동네, 2018)
원 소스의 힘을 담은 『코드네임』 프로젝트
위 경험을 기반으로 준비 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하고자 한다. 볼로냐 라가치 상 수상 작가인 강경수 작가의 『코드네임』 시리즈를 어린이 가족 뮤지컬로 2021년 무대에 올리려는 계획이 그것. 2017년부터 출간하기 시작한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6권이 출간되었고 앞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코드네임』 시리즈는 11살 소년 ‘강파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판타지 첩보 액션 동화로, 멀티미디어 시대 단문 세대, 스낵 컬처 세대 독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러스트도 만화 형식으로 (강경수 작가는 만화가로 출발하였다) 그리며, 문장의 호흡은 짧게, 속도감 있게 전개하였다. 또한 이 시리즈의 독자인 어린이들의 부모님이 유년·청년기에 좋아했던 문화들을 이야기 속에 녹여 내어 공감대를 확대하도록 하였다. 실제로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레트로 붐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시리즈는 현재 중국에 판권이 수출되었고, 대만 등 해외 판권 수출이 연이어 추진되고 있어 뮤지컬이 완성되면 공연 수출에 대한 부분도 함께 추진해보고자 한다. 각 권마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지기 때문에 시즌제 공연으로도 가능하다. 또 캐릭터가 많고 배경도 다채로워 중대형 공연장을 염두한 기획도 필요하다.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한 기대와 계획도 가지고 있다. 애니메이션은 비용과 인력의 규모가 공연과는 또 다른 케이스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책의 판매와 독자의 호응을 꾸준히 상승시켜 현실화되도록 하려 한다.
작가는 본 책에 담지 못한 아이디어를 모아 ‘코드네임 매거진’을 구상하기도 하고, 이야기 속 특정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을 출간하는 등 ‘스핀 오프’ 출간도 계획하고 있다. 캐릭터의 원 소스 멀티 유즈가 이루어지는 셈이다. 또한 굿즈 개발도 염두에 두어 독자들과 출판사가 소통하며 니즈를 파악하고 있다. 신간 출간 시에 사은품 개념이 아닌 완성도 있는 굿즈로 머천다이징하고자 하는 것.
〈코드네임〉 행사
작가 스스로 캐릭터가 되어 어린이 독자들과 즐겁게 소통한다.
『코드네임』 시리즈는 2019년까지 6권이 출간되었고,
송미경 작가의 경우 공연 연출가의 제안이 출발점이 된 것이 사실이다. 그로 인해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독자를 확대해 나가는가를 경험했다. 그 경험을 기반으로 보다 효과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조건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원 소스 멀티 유즈의 성공 조건 중 가장 큰 조건은 ‘원 소스(책)의 인지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2차 콘텐츠를 전제한 치밀한 기획과 사전 점검이 필요하다.
강경수 작가는 만화가로 출발하여 그림책 작가로 볼로냐 라가치 상을 수상하고, 글과 그림을 오롯이 책임지는 동화책 작가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데, 기획하면서부터 무대에 올려지거나 드라마 또는 애니메이션이 될 경우를 염두에 두고 집필과 편집의 결을 다듬어 왔다. 그 노력의 결과가 무대로, 영상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모두 한마음으로 달리고 있다.
‘우리들의 고전’을 꿈꾸며
뮤지컬이나 애니메이션은 의지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기획이 아무리 좋아도 결국 상업적 성공을 기대하는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현실화되지 않는 것도 알고 있다. 변수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앞서 언급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나 〈마틸다〉 등의 사례는 현실적으로 아직 먼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의 전성기에 발표한 작품들이 베스트셀러로, 스테디셀러로 그리고 영화화, 뮤지컬화하면서 작가의 책을 읽고 자란 세대가 부모가 되어, 할머니·할아버지가 되어 자녀들, 손주들과 문화를 공유하고 또 새로운 세대가 클래식으로 자리 잡은 명작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게 되는 것이 그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콘텐츠를 공유하고, 협업하고 상생하여 ‘우리들의 고전’을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 본다. 김문정(시공주니어) 1996년 웅진출판에 편집자로 입사하며 출판계에 입문했다. 2001년부터 시공주니어에서 어린이책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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